5월 31일 촛불집회에서 참가자들과 경찰 사이의 긴장감이 높아지면서 부상자가 속출, 이와 관련해서 경찰의 과잉진압의 부당성과 집회의 불법성/폭력성 논쟁이 다시 불 붙고 있다.

이 논쟁의 요점을 추려보면 이렇다.

과잉진압론 : 국민을 보호해야할 경찰이 살수차를 앞세우고, 방패와 군화발을 휘두르며 국민을 폭행한다는 게 있을 수 있는 일이냐? 게다가 그들의 폭력은 부녀자나 노약자, 상황을 관찰/보도하러 나온 기자들이 포함되어 있어 더욱 문제가 된다.

불법시위론 : 애초에 시위 자체가 불법이다. 게다가 단순히 촛불을 밝히고 거리를 활보하는 것만이 아니라, 경찰이 친 바리케이트를 무너뜨리려고 하고, 경찰차를 훼손하는 등의 초기에는 경찰과 물리적 접촉을 먼저 시도한 것은 집회 참가자들이고, 이들 제지하는 과정에서 상호간에 폭력이 발생했다. 경찰의 폭력만을 규탄하는 것은 부당하다.

이 논쟁이 발생하는 지점은 국가의 국민에 대한 책임과 역할이라는 원칙과 대한민국의 실정법이 충돌하기 때문이다. 시위 자체가 불법이라면 '경찰력이 동원되어야 한다'는 주장은 설득력을 가질 수 있다. 그런데 21세기의 대한민국이라면 문제를 조금 다르게 가져갈 필요가 있다.

문제는 '우리는 이 시위를 불법이라고, 혹은 불법이 아니라고 생각하는가?'이다. 잠시 숨을 고르고 대한민국 헌법을 살펴보자.

제 1조
1)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2)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

여기서 헌법 전문을 다 읽고 있긴 그렇고, 앞으로 조금만 빨리 감아보자. 자, 이쯤에서 정지,

제 21조
1) 모든 국민은 언론/출판의 자유와 집회/결사의 자유를 가진다.
2) 언론/출판에 대한 허가나 검열과 집회/결사에 대한 허가는 인정되지 아니한다.
3) 통신/방송의 시설기준과 신문의 기능을 보장하기 위하여 필요한 사항은 법률로 정한다.
4) 언론/출판은 타인의 명예나 권리 또는 공중도덕이나 사회윤리를 침해하여서는 아니된다. 언론/출판이 타인의 명예나 권리를 침해한 때에는 피해자는 이에 대한 피해의 보상을 청구할 수 있다.

그렇다, 대한민국 헌법 제 21조에서 국민의 집회/결사의 자유를 보장하고 있고, 이는 그 누구의 허가도 받을 필요가 없다고 분명하게 명시돼 있다. 언제 어디서 어떻게 하는 집회에 대한 자유만이 있다고 되어 있지도 않고, 합헌의 집회는 어떤 어떤 구체적 조건을 필요로하는지 '법률로 정한다'고 별도로 강조하지도 않았다.

헌법이 법률보다 상위법이므로, 우리가 단순한 흑백의 문자에만 의존한다면, 우리가 불법이면 너희는 위헌이다. 물론 이야기는 이렇게 단순하지만은 않다. 다시 앞으로 조금 감아서 헌법 제 37조를 보자.

1) 국민의 자유와 권리는 헌법에 열거되지 아니한 이유로 경시되지 아니한다.
2) 국민의 모든 자유와 권리는 국가안전보장, 질서유지 또는 공공복리를 위하여 필요한 경우에 한하여 법률로써 제한할 수 있으며, 제한하는 경우에도 자유와 권리의 본질적인 내용을 침해할 수 없다.

대한민국 헌법이 집시법의 숨통을 완전히 죄지 못하는 것은 저 애매한 구절 한 가지다. 그런데 우리가 거리로 나서는 것이 국가안전보장, 질서유지 또는 공공복리 중 그 무엇을 해칠까? 일단 쉬운 거 부터, 공공복리. 광우병 파동의 본질은 공공복리 그 자체다. 따라서 이 부분은 크게 문제가 안 되고, 그 다음에 국가안전보장. 집회 참가자 중 그 누구도 체제의 전복을 바라지 않는다. '이명박 물러나라'를 외치는 게 어떻게 국가안전보장을 흔들어놓는 게 아니냐고 묻는다면, 이명박이라는 한 개인--그가 대통령이라는 건 전혀 중요하지 않다, 이명박이 현재 그 직책에 있다고 해서 그가 대통령의 공적 기능을 상징하지는 않는다. 그의 퇴진을 원하는 것이 현재 대한민국이 택한 대의 민주주의 체제를 부정하는 것이라고 오해하지 않기 바란다--과 대한민국 민주공화국을 등치로 놓는 그런 개념이야말로 일인독재적 발상으로 국가안전보장을 뒤흔드는 개념이다.

자, 이제 남은 게 조금 애매한 질서유지. '도로를 점거하여 교통혼잡을 빚는 것, 그게 질서를 파괴하는 행동이 아닐까?'라는 의문이 들 수 있다. 그렇지만 이에 대한 해답 또한 의외로 분명하다. 도로는 기본적으로 차량의 소통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지만, 많은 사람들의 필요, 경우에 따라서는 몇몇 사람들의 필요에 따라 교통을 통제하는 일은 비일비재하다.

일단 머릿속에 떠오르는 건 마라톤. 많게는 수만명, 적게는 수백명의 달림이들을 위해 우리는 휴일 낮시간 동안 번잡한 시내 도로를 몇시간씩 통제하곤 한다. 구경꾼들을 포함하더라도 마라톤을 즐기는 사람들이 절대 다수가 아님에도, 이런 특별한 이벤트를 위해 교통을 통제할 때, 우리는 이에--더러 투덜거리는 사람들도 있겠지만--순순히 응한다. (마라톤이라고 하면--하필이면--조중동-_-의 대규모 국제 마라톤을 떠올리며 국가적 위상이 걸렸다고 생각하기 쉬운데, 전국 각지에서 연중 내내 펼쳐지는 다양한 규모의 마라톤들이 있고, 이를 위해서도 도로는 수시로 통제된다.)

우리나라에서는 조금 드물지만 각종 퍼레이드를 위해 교통이 통제되는 일도 많다. 그보다 더 극단적으로 한두사람을 위해 수많은 시민들이 참아야 하는 경우도 있다. 대통령이나 국빈 등의 소위 VIP--이를 대체할만한 마땅한 단어가 없어서 사용하긴 했는데, 제발이지 누구는 very important하다는 이런 개념이 사라졌으면 좋겠다--들이 이동할 때 이들의 동선을 따라 신호를 풀어주는 모습을 어렵잖게 볼 수 있다.

이런 예를 든 것은 시민들의 도로 이용권은 시민들의 편의를 위해 대단히 유용하기는 하지만 불가침의 절대적 권리는 아님을 보여주기 위해서다. 그렇기 때문에 소수의 취미활동, 문화활동, 혹은 직무를 위해 다수의 도로 이용권이 침해 당하는 일을 우리는 겪곤 한다. 그런데 우리는 왜 헌법이 보장하는 집회/결사의 자유를 위해 똑같은 일을 할 수 없을까? 왜 우리는 집회지를 경찰에 신고하면 경찰이 앞장서서 그 일대의 교통을 통제하고, 우회 노선을 확보하여 그 일대를 통과해야 하는 시민들이 겪을 불편을 최소화하도록 발빠르게 움직이지 못할까? 왜 우리 경찰은 집회자들이 갈 길을 막는 데에만 혈안이 된 사이에 집회자들과 경찰이 충돌하고, 어느 도로가 막히고 어디가 뚫렸는지 모르는 비집회자들은 차를 타고 일대를 빙빙 도는 불합리가 발생할까?

물론 집회라고 하면 화염병과 최루탄, 죽창과 곤봉이 난무하던 시절이 있었다. 그렇지만 오늘 우리가 가진 건 고작해야 촛불이고 깃발이다. '쇠고기 재협상'에서 시작해서 '이명박의 퇴진'까지도 외쳤지만 우리의 무기는 그 외침과 그 외침에 필요한 목소리가 다였다. 청와대 앞으로 몰려가고자 하는 것은 그 앞에서 소리를 치면 이명박이 말한 소통의 문제가 해결이 될까하는 답답함 때문이지, 청와대에 처들어가 이명박의 머리채를 잡아 끌고 나오려함이 아니다.

과거의 시위들이 격렬했던만큼이나 화염병과 최루탄의 기억은 강렬하다. 당시 어린 나이에 그 맥락은 전혀 이해하지 못했지만, 저녁마다 터지는 최루탄에 눈물을 찔끔거리던 80년대의 기억은 내게도 생생하다. 하지만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고,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다'는 대한민국 헌법 제 1조를 이해한다면--이를 머리로 이해해도 좋고, 가슴으로 이해해도 좋다. 어떻게든 이 조항을 이해한다면--우리는 국민 정치 참여의 숭고함을 되새겨야 한다. 그리고 모든 집회는 평화적이라면 합법이어야 한다. (경찰의 바리케이트를 뚫은 집회가 어떻게 평화적이냐고? 촛불과 깃발만을 든 집회 참가자들에게 뚫어야 할 바리케이트가 있었다는 게 문제다.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가 아니다. 이건 선우관계가 분명하다.)

역사를 통해 드러나는 국민의 정치 참여를 두려워하는 정권과 독재 정권의 밀착 관계를 애써 외면하는 대한민국의 경찰, 공권력, 그리고 정부는 21세기가 국민에게 딸랑 투표권 정도나 안겨주면서 '국민주권 국가'를 선언하는 몰상식의 시대이기를 바라는가?

21세기를 맞은지도 8년째다. 이제 세상을 보는 눈을 바꿀 때가 왔다. 물론 나와 입장이 다른 사람들이 거리로 몰려나와 내 갈 길을 막는 일이 짜증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을 향해 '불법 도로 점거'라며 손가락질을 하는 대신에 그 짜증을 참는 것은, 그래야만 언젠가 내가 거리로 뛰어나가고 싶을 때, 상대방도 나를 위해 참아주리라 기대할 수 있기 때문이다. 비록 저항의 이유와 대상은 다를지라도 그들의 저항권과 나의 저항권의 본질은 언제나 동일하다. 그들이 희망하는 정치가 무엇인가를 떠나서 민주주의가 인정하는 '국민의 정치 참여'가 지닌 가치를 존중하기 때문에 약간의 불편을 감수하는 거다.

그리고 물론 내가 거리로 뛰어나가게 되는 그날 오늘 내 발목을 잡은 이놈들이 낼 짜증을 통해 내가 느낄 카타르시스를 떠올리며 지금 잠시 인고해도 좋겠다. 그날 그런 이유로 카타르시스를 좀 느낀다해도 아무도 뭐라 하지 않을 거다. 대한민국의 민주주의가 방향을 제대로 잡고 있다면 말이다.

@ 아고라에도 올렸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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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BlogIcon 미아 2008/06/07 11:4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아고라에는 무개념 댓글들도 많을 텐데, 각오한거야? ㅋ

  2. BlogIcon 완전영도 2008/06/08 16:1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댓글이 사람 잡아먹는 것도 아닌데요, 뭐. 근데 워낙에 글이 많이 올라와서 여간해서는 댓글 달릴 정도로 눈에 띄지도 못해요.

  3. 은하 2008/06/12 19:0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확실히 집시법 개정 논의도 이참에 나와버렸으면 좋겠네요. 멋진 글입니다.

    • BlogIcon 완전영도 2008/06/16 01:11  댓글주소  수정/삭제

      제가 보기에도 이번이 집시법 개정 논의의 기회임에 틀림없는데, 어째 좀 조용하죠? 그나저나 제가 생각하는 그 은하님이신가요? 제가 생각하는 그 은하님이 어느 은하님인지 은하님이 어떻게 알고 이 질문에 답을 하냐고요? 쿨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