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번에 신용위기를 나타내는 지표 중 한가지로 TED spread에 대해 언급하면서 이번에 이에 대해 간단히 설명하고, 신용위기가 실물경제에 어떻게 번지고 있는지 이야기하려고 했는데 요새 이 바닥이 워낙에 급변하다보니 잠깐 기회를 놓친 사이에 벌써 디플레이션, 제2의 대공황 따위의 이야기가 나오고 있다. 그래서 TED spread에 대해 이야기하기에 앞서 잠깐 방향을 선회, 20세기 초반 세계경제를 뒤흔든 대공황에 대해 이야기해볼까 한다. 이 이야기를 하려면 아무래도 현행 화폐제도 내에서 중앙은행의 통화량 조절 메커니즘 이야기도 하게 될 테니 TED spread를 설명하기에 한발 앞서 이야기하는 것도 나쁘지 않으리라.

1944년 7월 미국 New Hampshire의 작은 휴양도시인 Bretton Woods에 전세계 44개국 대표가 모인다. 한국 사람들이라면 이름만 들어도 치를 떠는 IMF(International Monetary Fund, 국제통화기금)라는 조직의 결성에 합의를 이룬 것도 바로 이때 이곳에서다. 도대체 그러면 이 44개국 대표들은 왜 IMF라는 조직의 필요성을 느꼈으며, 보다 근본적으로 애초에 왜 이곳에 모였으며, 그렇게 모여서 도대체 무엇을 했을까? 이에 대한 답을 하기 전에 '돈'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이야기부터 해보자.


금본위제도 (Gold standard)

돈이라고 하면 흔히 지갑이나 핸드백 안에 있는 지폐와 동전을 떠올리게 되는데, 이보다 더 근본적으로는 '시장에서 결정되는 가치에 대한 약속'이다. 무슨 이야기냐면 내게 만원이 있다면, 이 만원으로는 시장에서 결정된 만원만큼의 가치의 어떤 물물이나 서비스와 교환할 수 있다는 사회적 약속을 손에 쥐고 있다는 이야기이다. 그러면, 만원어치의 가치는 어떻게 결정되는가?

자본주의가 발달한 모든 나라들은 19세기 말이래로 금본위제도(gold standard)를 따랐다. 금본위제도란 화폐의 가치를 역사적으로 가장 인기있는 귀금속 중 하나였던 금에 묶어둔 것이다. 예를 들면 '금 1그램 = 1원'이라고 묶어두는 거다. 이렇게 함으로써 얻어지는 효과는, 금은 들고 다니기는 불편하니 어딘가에 보관만 해두고 '금과 교환 가능한 증서'를 들고 다니는 거다. 대신 이 증서의 유통을 통해 금이 유통되는 효과를 얻는다.

다음과 같은 상황을 생각해보자. 농사꾼 갑이 쌀 한가마를 시장에서 팔기를 원한다. 사람들이 와서 쌀을 사가는데 을이라는 사람은 와서 금 1그램을 주겠다고 하고, 병이라는 사람은 금 1그램을 보여주면서 '갑만이 금 1그램으로 교환할 수 있다'는 약서를 써주겠다고 한다. 그런데 갑이 시장에서 집에 가는 길이 멀기도 하거니와 도적도 많기도 해서 금을 몸에 지니고 가자니 불안하고, 차라리 갑에게'만' 가치가 있는 증서가 더 나아보인다. 문제의 핵심은 병의 증서를 '무슨 수로 신뢰하느냐'에 있다. 병에게 금이라고는 1그램 밖에 없는데,갑에게만 약서를 써준 게 아니고, 시장을 주욱 돌면서 이사람 저사람에게 똑같은 약서를 써주며 고기, 옷, 신발 등등을 다 사들이지 않았다는 걸 어떻게 알 수 있을까? 이를 다른 말로 하면 과연 병에게 병이 이런 약속을 한 모든 사람에게 금을 줄 수 있을 만큼 충분한 양의 금을 갖고 있는지 신뢰할 수 있느냐의 문제이다.

그런데 문제는 또 있다. 갑이 어떤 이유에서든 병을 신뢰한다고 하더라도, 이 증서를 금으로 바꾸기 위해서는 차후에라도 병을 찾아가야 한다는 점이다. 갑이 사는 마을에 금을 보관하고 있는 병의 대리인이 있어서 그 대리인으로부터 이 증서를 금으로 교환할 수 있다면 훨씬 편리할 것이다. 그리고 금본위제도란 바로 이런 두가지 문제를 정부가 보증함으로써 해결하는 방식이다. 즉, 정부에서 발행한 모든 화폐상의 '1원 = 금 1그램'과 동일하다는 증서가 됨가 동시에, 마을 마을마다 정부의 중개자들이 퍼져 있고, 이들이 충분한 양의 금을 보관하고 있어서, 정부가 발행한 증서상의 금액에 해당하는 금을 항상 내줄 준비가 되어 있는 시스템이 바로 금본위제도이다.

이 제도하에서 정부가 신용을 잃지 않기 위해서는, 병이 발행한 증서만큼의 금을 확보하고 있어야만 다른 사람들이 병을 신뢰할 수 있듯, 정부가 발행하는 화폐의 양은 결국 정부가 보유하고 있는 금의 양과 동일해야 한다. 다른 말로 하면, 정부가 화폐를 발행할 경우 이 화폐를 항상 금을 사는 데에만 사용할 수 있다. (이 부분은 금본위체제가 폐지된 이후의 각국 중앙은행의 역할에도 밀접하게 관계된다. 그 이야기는 나중에 자세히 하게 될 테니 여기서는 요정도만.) 그리고 여기에 바로 대공황이라는 보이지 않는 위험이 도사리고 있었다.


금본위체제와 국제통상

자, A와 B라는 금보위체제를 채택한 두 나라로 구성된 경제 시스템을 생각해보자. A라는 나라에서는 금 1그램 = 1원A이라는 화폐단위를 사용하고, B에서는 금 1그램 = 10원B라는 화폐단위를 사용한다. 각국 정부가 부가 보유한 금의 양이 각각 1억그램이라면 A국에서 발행하여 유통시킬 수 있는 화폐의 총량은 1억원A이고, B국의 경우엔 10억원B가 될 것이다. 새로운 금광을 발견하거나 하지 않는 한 정부가 사들일 새로운 금이 없으므로, 각국민들이 자국내에서만 경제활동을 한다면 사실 정부가 '내금을 대신 쥐고 있다'는 사실을 굳게 믿기만 하면 누구나 그 화폐를 들고 거래를 할 수 있으므로 유통되는 화폐량이 변하지 않는다.

그런데 또 이런 경우를 생각해보자. A는 자동차 생산국이고, B는 산유국으로, A는 B에서 석유를 수입할 필요를, B는 A에서 자동차를 수입할 필요를 느낀다. 그런데 막상 A국의 갑이라는 인물이 B국의 을이라는 인물로부터 석유를 사려고 했더니, 을이 갑에게 석유 100리터에 10원B를 내라고 한다. 문제는 A국에 사는 갑에게는 원A만이 있을 뿐 원B는 한푼도 없다는 거다. 이때 금본위체제는 또 다시 위력을 발휘한다. 갑은 자국내 은행에 가서 1원A를 주고, 금 1그램을 받아온다. 그리고 을에게 금 1그램을 주고 차를 사온다. 이 금을 받은 을은 B국의 은행에 가서 금 1그램을 주고 10원B를 받아와서 필요한 데에 사용할 수 있다.

여기서, 한가지 중요한 사실이 있다. 갑이 A국 내의 은행에서 1원A를 금 1그램으로 바꿔오는 시점에서 정부가 보유하고 있던 금의 양은 1그램 줄었다. 그렇지만 동시에 갑이 갖고 있던 1원A가 정부로 돌아옴으로써 실질적으로 이 화폐는 사라지는 효과가 나타난다. 그리고 그렇게 바꾼 금 1그램을 B국에 사는 을에게 건내준 순간 A국 내의 금의 총량은 1그램만큼 줄어들었고, 동시에 B국에 내의 금의 총량은 1그램만큼 늘어났다. 결국 A국 내의 금의 총량이 1그램 줄었고, 동시에 A국 내의 화폐량이 1원어치 줄어들었다.

금본위체제에서 경상수지의 지속적인 적자는 국내 금보유량의 감소로 이어지고, 이에는 통화량 축소가 수반된다. 기본적인 의식주 영위를 위해 필요한 다양한 재화는 그대로 있는데, 이에 비해 금/화폐의 양이 줄어들 경우, 금/화폐의 가치는 상대적으로 오를 것이다. 즉, 역으로 말해서 물가가 떨어지는 현상, 디플레이션이 발생한다. 물론 역으로 수출이 늘어날 경우 화폐가치가 떨어지는 인플레이션이 일어난다. 이 경우 인플레이션이 발생하는 국가의 상품은 디플레이션이 일어나는 나라 국민들에게 너무 비싸지기 때문에 이에 대한 수요가 줄어들고, 결국 수출이 감소한다.

앞선 예에서 생각하면 A국의 갑이 석유를 계속 사오다보면, 석유값이 계속 오르기 때문에 석유를 사올 마음이 없어지는 거다. 반면에 B국의 을 같은 경우에는 A국의 자동차가 너무 비싸서 안 샀었는데 석유를 팔아서 돈을 벌다보니 A국의 디플레이션으로 인해 자동차 값이 떨어지는 것을 보고 전에 안 사던 자동차를 사게 된다. 즉, A국의 석유 수입은 감소하고 자동차 수출이 증가하게 되어 경상수지가 적자에서 흑자로 전환된다. 이런 메커니즘을 통해 경상수지의 흑자와 적자가 자동적으로 0점을 기준으로 조정이 된다. 쉽게 생각하면 자동적으로 작동해야만 할 것 같은 금본위제에 위기가 찾아온다. 바로 1차대전이라고 하는 거대한 전쟁이다.

오늘은 이 정도로 하고, 다음 글에서는 1차대전과 금본위제의 붕괴, 인플레이션, 디플레이션, 대공황의 관계에 대해 이야기한 후에, Bretton Woods 이야기로 돌아가도록 하겠다.


@ 다음편 글을 쓰다보니 이글에서 설명한 것과는 뭔가 아귀가 맞지 않더군요. 마지막 부분 경상수지와 관련한 부분을 곰곰히 생각해보니 내용이 잘못돼서 수정했습니다.

@@ 이런 실수를 피하려면 아무래도 책 좀 다시 뒤져본 후에 다음편을 올려야겠군요. 다음편 올라오려면 시간이 좀 걸릴 것 같습니다. -_-a 아무생각없이 떠들기 시작하다보니 "남들에게 쉽게 설명할 수 있어야만 무언가를 제대로 이해했다고 할 수 있다"는 말을 새삼 실감하고 있습니다, 쿨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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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너부리군 2008/12/01 03:1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마지막에 동감. 실은 그 효과를 이용하기 위해 --과연 뭘 얼마나 제대로 아는지 스스로 확인하기 위해-- 짧은 지식이라도 무안함을 무릅쓰고, 잘못된 부분은 까일 것을 감수하고, 꿋꿋이 용감하게 끄적여 보는 거 아니겠나 ㅎㅎ ...이럼 좀 너무 편리한 입장? -ㅂ-