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전 MB가 '취업 안 되는 젊은이들 기술 교육 시키자'는 발언을 했는데, 이에 대한 이택광님의 반응은 조금 과민반응이 아닌가 싶으면서도, 이 발언과 이 해석이 실험이 좀 딜딜 말리는 타이밍에 나와버리니 꽤나 의미심장하다. 내가 하는 일이란 게, 정말 딱 인문학만큼 경제적 가치 창출에 이바지한다고 생각하는데, 비용은 그에 비해 천문학적으로 많이 드니 사실 경제적으로 쓸모없기로 말하자면 내가 인문학자보다 더하면 더했지 덜하진 않을 것 같다.
사실 어디가서 물리학한다고 나에 대해 소개하면 '조금 더 구체적으로 어떤 걸 연구하냐?'는 질문에 가차없이 따라 오는 게 '그래서 그걸 어디에 쓰냐?'는 질문이다. 그럴 때면 정말 과학과 기술이 동치인 시대를 살고 있구나란 실감이 난다. 나는 물론 꽤나 자랑스럽게 '써먹을 데 없다'고 대답하지만, 대부분 내가 무언가를 숨기고 있거나, 대답하기 귀찮아한다고 생각하는지 많은 사람들이 '그래도 어딘가엔 사용할 수 있으니 연구할 거 아녜요'라며 집요하게 캐묻는다.
물론 이에 대한 모범답안이 몇가지 있긴 하다. '지금은 뭐에 써먹을 수 있을지 모르지만, 우리가 아직 모르는 걸 더 많이 알고 있는 후세들에게는 매우 유용한 기술일 수 있다'거나 '그저 인간의 지식의 지평을 넓히는 순수한 호기심의 발로다' 따위가 그거다. 이런 수사들을 누가 언제 처음으로 읊조렸는지는 알 수 없다만, 그 최초의 누군가는 그 당시에 이런 수사들로 다른 사람들을 설득시킬 수 있었거나, 나름 섹시해 보였을 수도... 그렇지만 요샌 사실 좀 진부하다. 가끔은 나조차 믿지 않으면서도, 더 좋은 답이 없어서 아무생각 없이 내뱉는 게 아닌가 싶기도 하고... 그런데 더 나은 답이 없다는 거, 그보다는 더 나은 답이 없을까 별로 고민해보지 않는다는 거, 생각보다 심각한 문제다.
사실 교육기관과 학문의 발전 과정을 보면, 근대 과학의 시초가 된 대부분의 아이디어들은 근대 이전의 봉건제시절에 탄생했는데, 당시 교육의 기회라는 건 대부분 노동의 의무로부터 자유로운 지배계급에게 한정돼 있었다. 지배계급과 노동계급이 분명한 봉건제도 하에서 노동계급은 노동하는 동안 지배계급은 남는 시간 동안 만물의 근원에 대해 고민하거나, 존재 자체에 대한 의심을 품는 것을 노동계급에게 정당화할 이유 따위는 없었다. 과학이든 철학이든, 혹은 예술이든 '나한텐 재미있으니까'라는 순수한 관심 이외의 그 어떤 목적을 갖지 않아도 됐다.
'돈이 되느냐, 안 되느냐'의 단 하나의 잣대로 세상사를 가늠하는 천민자본주의가 인문학이나 순수 과학, 혹은 인간성을 죽인다는 이야기를 많이 듣는데, 사실 이들을 죽이는 건 자본에 힘을 실어준 자본주의가 아니라 자유와 평등의 개념 위에서 출발한 민주주의일 거다. 무슨 이야기냐면 '만인이 평등하다'는 자유민주주의 하에서 과학과 인문학의 당위성은 봉건제 하에서의 그것과 완전히 달라야만 한다는 이야기다. 만인이 평등하다면 특정 집단의 노동의 결과를 다른 집단이 정당한 댓가없이 취할 수 없어야 한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일용할 양식을 구하기 위해 노동하는 동안, 나는 내 지적 호기심을 충족시키는 데에 일년 365일을 다 사용하느라 노동을 하지 않았/못했다면, 누가 잘못한 걸까?
물론 오늘날 소위 지식인들에게 있어서 지식의 생산은 노동이다. 대부분의 과학자, 인문학자, 예술가에게 물어도 자신이 놀고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을 거다. 농부가 1년 내내 땅을 일궈 쌀을 생산하듯, 책, 실험기구, 악기 등과 매일 씨름하며 인간의 지식의 지평을 넓히고 새로운 예술 세계를 창조하고 있다고 할 거다. 그렇지만 문제는 "누구를 위해서?"인가 이다.
이건 자본주의가 지식과 진리, 문화를 상품화하거나 돈거래로 만드는 것과는 관계 없는 문제다. 내가 A만 하는 것을 직업으로 삼아서 B를 생산하여 '먹고 살기'위해서는, 누군가는 내게 B의 댓가를 지불해야 한다. 즉, 나는 A의 결과물 B를 누군가에게는 자본 혹은 B가 아닌 다른 어떤 재화와의 교환 가치가 있는 상품으로 만들어야 가능한 거다. 여기서 B가 무엇이냐, 그리고 댓가를 지불하는 그 누군가가 누구냐는 전혀 상관없다. 지식/문화 생산을 취미활동이 아닌 직업으로 만드는 순간, 지식/문화의 상품화는 일어났고, 자본주의와 사회주의의 차이는 그 가격을 누가 어떻게 매기느냐의 차이일 뿐...
이걸 인정하지 않는다면, 모든 인간이 평등하긴 한데, 누군가의 노동의 결과는 당연히 상품화되는 거고, 누군가의 노동의 결과는 상품화하기에는 너무나 고귀하다는 자가당착에 빠진다. 실제 문제는 지식의 상품화가 아니라, 지식의 가치이다. 다른 말로 하면 자본주의에서 시장이 지식의 교환 가치를 너무 싸게 매겨 버린 거다. 그런 현실에서 이공계/인문학 기피와 맞물린 한/치/의/법/경영대로의 급속한 인력 이탈 현상은 놀랄 일이 아니다.
과학하는 사람들이 '과학은 중요하다', 인문학하는 사람들이 '인문학은 중요하다'고 믿는 건 당연하다. 과학이 혹은 인문학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니까 과학을 하고 인문학을 하고 있는 거잖은가? 그런데 시장은 별로 그렇게 생각하지 않고... 결국 정부의 역할은 때로는 시장의 횡포 때로는 시장의 삽질을 바로 잡는 건데, 어라, 정부는 꼼짝도 않네. 그런데 여기서 한가지 중요한 게 빠졌는데, 정부가 이 중개자의 역할을 효과적으로 수행하려면, 정부는 시장과는 다른 가치 판단의 기준을 갖고 있어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정부의 철학과 정책, 매스미디어의 포지셔닝 등이 모두 나름의 역할이 있는 건 맞다. 그렇지만 이런 가치 판단의 기준은 어디선가 저절로 나타나지 않는다. 내가 흥미로워하는 것을 남들이 흥미로워하지 않을 때, 그게 흥미로운 일이란 걸 납득시킬 책임은 전적으로 내게 있다. 그럼에도 정작 학계에서 과학을, 인문학을 살리라고 하면서 정작 뱉어내는 수사들은 '음식이 육체를 살찌운다면, 문화는 정신을 살찌운다', '돈이 행복을 살 수는 없다' 따위 뿐이라면--이런 주장들이 왜 참인지를 효과적으로 납득시킬 능력이 없다면--딱, '하느님이 우리를 구원해 주실 거다'라고 주장하면서 기독교를 국교로 만들자고 주장하는 것만큼의 설득력을 가질 뿐이다.
노동계급이 사회 대부분의 부를 생산함에도, 정작 그 부의 대부분을 누리는 게 소수의 지배계급인 사회 구조에서, 지배계급이 지식과 문화의 대부분을 생산하고 동시에 이를 누리는 건 당연하다. 오늘날의 과학자, 인문학자, 예술가들이 그 당시의 지배계급이 향유했던 그 특권을 부러워하는 것 역시 이해할 수는 있지만, 그에 대한 낭만에 사로잡혀 자본주의와 정부의 어리석음을 향해 손가락질한다면, 이는 집단 이기주의에 기반하여 내게도 그 당시 그들이 누렸던 '특권'을 달라는 투정에 지나지 않는다.
쌀 농사꾼이 고객을 상대로 빵 대신 밥을 먹어야 하는 '이유'를 그럴 듯하게 설명할 수 있어야하듯, 우리는 핸드백 하나를 사는 것보다 책 10권을 읽는 게 더 좋은 이유, 혹은 아이폰 같은 신제품 하나 더 개발하는 것보다 초유체의 신비를 규명하는 게 더 좋은 이유를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 그 이유가 단순히 '책 10권 안에는 새 핸드백 하나로는 누릴 수 없는 즐거움이 있다'라면 '나는 새 핸드백 하나 사는 게 책 10권 읽는 것보다 좋던데?'라고 되돌아오는 한마디만큼이나 허탈하잖은가.
내가 생산하는 지식과 문화를 단순히 돈으로 교환하게 만들어 버림으로써, 그 진정한 가치에 대해 세상 사람들의 눈을 멀게 한 자본주의가 세상을 망친 게 아니라, 내가 생산하는 지식/문화는 천박한 자본 따위와는 비교도 안 되게 고귀하고 중요하다는 사실에 눈이 멀어서, 그 사실을 다른 이들에게 어떻게 설명해야 하는지 한번도 고민해보지 않은 지식인들이 자기 무덤만 파고 있다고 보는 편이 정확할 거다. 원래가--인류의 지식/문화는 돈으로 매길 수 없다는 믿음처럼--나한테는 너무도 당연한 게, 남들한테는 완전 딴 세상 이야기이게 마련이다.
@ 언제나처럼 답은 없이 문제제기만... 그렇지만 솔직히 말하자면, 난 내가 하는 일에 왜 국민의 혈세를 들여야 하는가에 대한 답은 포기한지 오래. 그냥 나는 이거 하고 싶은데, 국가가 (국민들을 대표해서) 이 일에 돈 들이겠다면 땡큐고, 싫다면 그게 정상이지 싶음... -_-a 진리를 밝혀내기 위한 인간의 무한한 호기심이란 따지고 보면 무한한 호기심이 있는 인간들도 더러는 있다는 얘길 아전인수식으로 비틀어 버린 것 뿐이라고...
사실 어디가서 물리학한다고 나에 대해 소개하면 '조금 더 구체적으로 어떤 걸 연구하냐?'는 질문에 가차없이 따라 오는 게 '그래서 그걸 어디에 쓰냐?'는 질문이다. 그럴 때면 정말 과학과 기술이 동치인 시대를 살고 있구나란 실감이 난다. 나는 물론 꽤나 자랑스럽게 '써먹을 데 없다'고 대답하지만, 대부분 내가 무언가를 숨기고 있거나, 대답하기 귀찮아한다고 생각하는지 많은 사람들이 '그래도 어딘가엔 사용할 수 있으니 연구할 거 아녜요'라며 집요하게 캐묻는다.
물론 이에 대한 모범답안이 몇가지 있긴 하다. '지금은 뭐에 써먹을 수 있을지 모르지만, 우리가 아직 모르는 걸 더 많이 알고 있는 후세들에게는 매우 유용한 기술일 수 있다'거나 '그저 인간의 지식의 지평을 넓히는 순수한 호기심의 발로다' 따위가 그거다. 이런 수사들을 누가 언제 처음으로 읊조렸는지는 알 수 없다만, 그 최초의 누군가는 그 당시에 이런 수사들로 다른 사람들을 설득시킬 수 있었거나, 나름 섹시해 보였을 수도... 그렇지만 요샌 사실 좀 진부하다. 가끔은 나조차 믿지 않으면서도, 더 좋은 답이 없어서 아무생각 없이 내뱉는 게 아닌가 싶기도 하고... 그런데 더 나은 답이 없다는 거, 그보다는 더 나은 답이 없을까 별로 고민해보지 않는다는 거, 생각보다 심각한 문제다.
사실 교육기관과 학문의 발전 과정을 보면, 근대 과학의 시초가 된 대부분의 아이디어들은 근대 이전의 봉건제시절에 탄생했는데, 당시 교육의 기회라는 건 대부분 노동의 의무로부터 자유로운 지배계급에게 한정돼 있었다. 지배계급과 노동계급이 분명한 봉건제도 하에서 노동계급은 노동하는 동안 지배계급은 남는 시간 동안 만물의 근원에 대해 고민하거나, 존재 자체에 대한 의심을 품는 것을 노동계급에게 정당화할 이유 따위는 없었다. 과학이든 철학이든, 혹은 예술이든 '나한텐 재미있으니까'라는 순수한 관심 이외의 그 어떤 목적을 갖지 않아도 됐다.
'돈이 되느냐, 안 되느냐'의 단 하나의 잣대로 세상사를 가늠하는 천민자본주의가 인문학이나 순수 과학, 혹은 인간성을 죽인다는 이야기를 많이 듣는데, 사실 이들을 죽이는 건 자본에 힘을 실어준 자본주의가 아니라 자유와 평등의 개념 위에서 출발한 민주주의일 거다. 무슨 이야기냐면 '만인이 평등하다'는 자유민주주의 하에서 과학과 인문학의 당위성은 봉건제 하에서의 그것과 완전히 달라야만 한다는 이야기다. 만인이 평등하다면 특정 집단의 노동의 결과를 다른 집단이 정당한 댓가없이 취할 수 없어야 한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일용할 양식을 구하기 위해 노동하는 동안, 나는 내 지적 호기심을 충족시키는 데에 일년 365일을 다 사용하느라 노동을 하지 않았/못했다면, 누가 잘못한 걸까?
물론 오늘날 소위 지식인들에게 있어서 지식의 생산은 노동이다. 대부분의 과학자, 인문학자, 예술가에게 물어도 자신이 놀고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을 거다. 농부가 1년 내내 땅을 일궈 쌀을 생산하듯, 책, 실험기구, 악기 등과 매일 씨름하며 인간의 지식의 지평을 넓히고 새로운 예술 세계를 창조하고 있다고 할 거다. 그렇지만 문제는 "누구를 위해서?"인가 이다.
이건 자본주의가 지식과 진리, 문화를 상품화하거나 돈거래로 만드는 것과는 관계 없는 문제다. 내가 A만 하는 것을 직업으로 삼아서 B를 생산하여 '먹고 살기'위해서는, 누군가는 내게 B의 댓가를 지불해야 한다. 즉, 나는 A의 결과물 B를 누군가에게는 자본 혹은 B가 아닌 다른 어떤 재화와의 교환 가치가 있는 상품으로 만들어야 가능한 거다. 여기서 B가 무엇이냐, 그리고 댓가를 지불하는 그 누군가가 누구냐는 전혀 상관없다. 지식/문화 생산을 취미활동이 아닌 직업으로 만드는 순간, 지식/문화의 상품화는 일어났고, 자본주의와 사회주의의 차이는 그 가격을 누가 어떻게 매기느냐의 차이일 뿐...
이걸 인정하지 않는다면, 모든 인간이 평등하긴 한데, 누군가의 노동의 결과는 당연히 상품화되는 거고, 누군가의 노동의 결과는 상품화하기에는 너무나 고귀하다는 자가당착에 빠진다. 실제 문제는 지식의 상품화가 아니라, 지식의 가치이다. 다른 말로 하면 자본주의에서 시장이 지식의 교환 가치를 너무 싸게 매겨 버린 거다. 그런 현실에서 이공계/인문학 기피와 맞물린 한/치/의/법/경영대로의 급속한 인력 이탈 현상은 놀랄 일이 아니다.
과학하는 사람들이 '과학은 중요하다', 인문학하는 사람들이 '인문학은 중요하다'고 믿는 건 당연하다. 과학이 혹은 인문학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니까 과학을 하고 인문학을 하고 있는 거잖은가? 그런데 시장은 별로 그렇게 생각하지 않고... 결국 정부의 역할은 때로는 시장의 횡포 때로는 시장의 삽질을 바로 잡는 건데, 어라, 정부는 꼼짝도 않네. 그런데 여기서 한가지 중요한 게 빠졌는데, 정부가 이 중개자의 역할을 효과적으로 수행하려면, 정부는 시장과는 다른 가치 판단의 기준을 갖고 있어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정부의 철학과 정책, 매스미디어의 포지셔닝 등이 모두 나름의 역할이 있는 건 맞다. 그렇지만 이런 가치 판단의 기준은 어디선가 저절로 나타나지 않는다. 내가 흥미로워하는 것을 남들이 흥미로워하지 않을 때, 그게 흥미로운 일이란 걸 납득시킬 책임은 전적으로 내게 있다. 그럼에도 정작 학계에서 과학을, 인문학을 살리라고 하면서 정작 뱉어내는 수사들은 '음식이 육체를 살찌운다면, 문화는 정신을 살찌운다', '돈이 행복을 살 수는 없다' 따위 뿐이라면--이런 주장들이 왜 참인지를 효과적으로 납득시킬 능력이 없다면--딱, '하느님이 우리를 구원해 주실 거다'라고 주장하면서 기독교를 국교로 만들자고 주장하는 것만큼의 설득력을 가질 뿐이다.
노동계급이 사회 대부분의 부를 생산함에도, 정작 그 부의 대부분을 누리는 게 소수의 지배계급인 사회 구조에서, 지배계급이 지식과 문화의 대부분을 생산하고 동시에 이를 누리는 건 당연하다. 오늘날의 과학자, 인문학자, 예술가들이 그 당시의 지배계급이 향유했던 그 특권을 부러워하는 것 역시 이해할 수는 있지만, 그에 대한 낭만에 사로잡혀 자본주의와 정부의 어리석음을 향해 손가락질한다면, 이는 집단 이기주의에 기반하여 내게도 그 당시 그들이 누렸던 '특권'을 달라는 투정에 지나지 않는다.
쌀 농사꾼이 고객을 상대로 빵 대신 밥을 먹어야 하는 '이유'를 그럴 듯하게 설명할 수 있어야하듯, 우리는 핸드백 하나를 사는 것보다 책 10권을 읽는 게 더 좋은 이유, 혹은 아이폰 같은 신제품 하나 더 개발하는 것보다 초유체의 신비를 규명하는 게 더 좋은 이유를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 그 이유가 단순히 '책 10권 안에는 새 핸드백 하나로는 누릴 수 없는 즐거움이 있다'라면 '나는 새 핸드백 하나 사는 게 책 10권 읽는 것보다 좋던데?'라고 되돌아오는 한마디만큼이나 허탈하잖은가.
내가 생산하는 지식과 문화를 단순히 돈으로 교환하게 만들어 버림으로써, 그 진정한 가치에 대해 세상 사람들의 눈을 멀게 한 자본주의가 세상을 망친 게 아니라, 내가 생산하는 지식/문화는 천박한 자본 따위와는 비교도 안 되게 고귀하고 중요하다는 사실에 눈이 멀어서, 그 사실을 다른 이들에게 어떻게 설명해야 하는지 한번도 고민해보지 않은 지식인들이 자기 무덤만 파고 있다고 보는 편이 정확할 거다. 원래가--인류의 지식/문화는 돈으로 매길 수 없다는 믿음처럼--나한테는 너무도 당연한 게, 남들한테는 완전 딴 세상 이야기이게 마련이다.
@ 언제나처럼 답은 없이 문제제기만... 그렇지만 솔직히 말하자면, 난 내가 하는 일에 왜 국민의 혈세를 들여야 하는가에 대한 답은 포기한지 오래. 그냥 나는 이거 하고 싶은데, 국가가 (국민들을 대표해서) 이 일에 돈 들이겠다면 땡큐고, 싫다면 그게 정상이지 싶음... -_-a 진리를 밝혀내기 위한 인간의 무한한 호기심이란 따지고 보면 무한한 호기심이 있는 인간들도 더러는 있다는 얘길 아전인수식으로 비틀어 버린 것 뿐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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ㅎㅎ 어쩐지 데자뷰가 느껴지는 글이로군; -ㅂ-
여전히 민주주의를 좀 과신하고 계신 듯 한데.. 민주주의 역시 도구라네. 어떻게 보면 순수한 정의가 선행하는 것이고, 민주주의란 그걸 현실적으로 규정하는 한 방법에 불과하지. 그리고 도구를 사용할 때는 "어울리는 곳에 써야 효과적"이라는 점을 항상 유념할 필요가 있겠네.
이상적으로는 모든 이들이 전인(?) 교육을 받고 과학 뿐만 아니라 모든 분야에서 서로를 이해할 수 있다면 수단의 문제는 차치하고라도 일단 자네가 말한 '민주적 정의'가 가능할 지도 모르겠네. 그러나 실제로는, 특히 점점 더 세분화/파편화되는 현대 문명의 토대 위에서는 불가능한 얘기지.
물론 자네가 지적한 대로 "설명", 그리고 정당화된 "가격"이 필요하다는 말에는 동의하네. 다만 그 논리가 사회 구성원 전체를 커버할 필요는 없다는 거야. 의사소통, 이해, 신뢰는 물론 중요하고 각자가 이것을 위해 노력할 의무는 있다 하겠지만, 그 다음에는 이게 가능한 사람들 사이에서만 성립해도 괜찮다네. 결국 그 '신뢰의 연쇄'가 전체로 확대될 수만 있다면 말일세.
*
자네는 연구를 위해 납세자 모두를 이해시킬 필요가 없네. 연구 예산을 집행하는 담당자를 납득시키면 되는 것이지. 다른 사람들은 어찌어찌 신뢰할 수 있는 루트를 거쳐서 그 담당자의 결정을 믿을 수만 있으면 된다네.
실제로 적어도 철기 시대 이후, 인류 문명에서 약 100k 이상의 크기를 안정적으로 유지했던 모든 정치 체계는 이러한 신뢰 체인과 위임 기작에 기반하지. 아니면 "당장 내 입에 들어갈 빵을 만드는 일" 이외의 복잡하고 얼핏 쓸모없어 보이는 작업들을 수행할 수가 없거든.
*
다시 강조하지만, "끼리끼리 알면 그만"이라는 극단적 입장을 취하는 게 아니네. 오히려 실제적 한계를 지적함으로써 현실적으로 가능한 "이해와 신뢰"의 모델을 확인하는 정도랄까? 그러니까..
case 1. 오늘도 변함없이 십수 년째 각의 삼등분 작도에 매진하시는 재야수학자 K씨, 탐구열과 지적 호기심은 아마 메인스트림(?) 학자 누구와 비교해도 뒤지지 않을 것 같지만.. 안타깝게도 세계 어느 나라에서도 이 연구를 위해 세금이 쓰이는 일은 없을 걸세.
case 2. 동방의 K모 국에서는 이따금 열역학 2법칙에 위반하는 기술을 개발했다는 벤처에 투자한다는 뉴스 따위가 나오기도 하는데.. 이건 참 갑갑한 얘기이고 결정권자에 대한 신뢰를 잃기 쉬운 상황이지만, 어쨌든 그게 자주 있는 일은 아니라는 가정 하에 사람들은 세금을 내고 있다네.
case 3. 개인적으로는 이른바 '4대강'이라는 묘한 토목사업에 반대하는 편인데, 이것은 내가 철저한 환경영향평가를 직접 수행하고 견고한 시뮬레이션을 직접 실행한 결과에 기반한 입장은 아니라네. 다만 나는 파란기와집 그 분의 주장으로 연결되는 신뢰의 루트를 찾을 수 없었고, 오히려 찾으면 찾을 수록 해당 주장에 반하는 근거들이 신뢰의 체인 끝에서 딸려나왔기 때문이지.
case 4. 지구가 돈다고? :)
@ 본질적으로, 과학이나 종교나 비슷한 점이 있다는 것은 어떤 면에서는 맞는 얘기지. 그러므로 앞에서 자네가 말한 이 부분: "이런 주장들이 왜 참인지를 효과적으로 납득시킬 능력이 없다면 ... 설득력을 가질 뿐이다." -- 이건 사실 애매한 얘기라네. "효과적"인 건 뭐고 "설득력"은 또 뭔가? 자네는 "이해"에 대해 재귀적인 정의를 사용해서 직관적으로 당연한 말을 했을 뿐이야.
형 이야기는 대부분 인정합니다. 글에서 '시장'이 순수학문(?)에 관심이 없다면 '정부'를 통해 이를 해결하게 된다는 이야기를 했는데, "자네는 연구를 위해 납세자 모두를 이해시킬 필요가 없네. 연구 예산을 집행하는 담당자를 납득시키면 되는 것이지. 다른 사람들은 어찌어찌 신뢰할 수 있는 루트를 거쳐서 그 담당자의 결정을 믿을 수만 있으면 된다네."라는 이야기와 같은 맥락에서 한 이야기입니다.
다만 제가 지적하고 싶은 건 "복잡하고 얼핏 쓸모없어 보이는" 것들 중에 실제로는 쓸모없어 보이지만 쓸모있는 것과 쓸모없어 보이고 실제로도 쓸모없는 것이 있는데, 어느게 어느건지 100% 정확하게 알고 있는 사람은 없다는 거죠. 설령 그런 사람이 있다고 할지라도, 다른 사람들이 그걸 모른다면, 100% 정확하게 알고 있는 사람과 100% 정확하게 알고 있다고 착각하고 있는 사람을 구분할 방법이 없기 때문에 실질적으로는 별 의미가 없다는 거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학문하는 사람들의 다수가 나는 100% 정확하게 알고 있기 때문에 이걸 하고 있는데, 왜 ㅂㅅ 같은 예산 집행 담당자는 알지도 못하면서 내가 하는 일에 대한 예산을 잘랐다고 노발대발하거나 세상이 막장으로 치닫는다는 식으로 한탄하는데, 그게 노발대발할 일도 아니고, 세상이 막장으로 치닫는 증거도 아니잖아요.
예산 집행 담당자를 설득시키는 일이든, 나랑 비슷한 생각을 가진 예산 집행 담당자를 임명할 정치인을 밀어서 권좌-_-에 앉히는 일이든, 사실 언제나 게임이었긴 마찬가지었는데 말예요. 내가 속한 팀이 이겼느냐 졌느냐의 차이일 뿐인데, 마치 게임의 룰 자체가 바뀐 것마냥 호들갑을 떨면 곤란하잖습니까.
그래서 제 기본적인 스탠스는, 우리팀은 워낙에 약체라, 지는 게 정상, 이기면 땡큐란 겁니다, ㅋㅋ.
@ 민주주의를 과신하는 건 아니고, 그렇게 보인다면, 제가 다른 사람보다 혹은 제가 하는 일이 다른 사람이 하는 일보다 본질적 혹은 내재적으로 더 중요하다고 믿어서는 안 된다는데서 출발점으로 '민주주의'라는 용어를 사용하다보니 그렇게 된 것 같습니다.
ㅇㅇ 물론 자네가 매우 건전한 사고방식을 가지고 있다는 점은 기꺼이 인정하고, 일부 "게으른 양반"들의 자폐성 한탄이 헛되다는 지적에도 동의하네. 난 다만, 자네가 너무 고상한 이상을 기준으로 스스로에게 불필요한 시련(?)을 부여하는 게 아닌가 싶어서, 조금쯤 양심의 가책을 덜어주고 싶었을 뿐이야. :)
"100% 아는 사람이 없다"는 부분이 전에 같이 떠들었던 바로 그 지점에 닿는군. 내 얘기도 그 얘기지. 다만 이 전제로부터 자네는 "구분할 방법이 없기 때문에 실질적으로 별 의미가 없다"는 결론으로 점프했는데, 나는 "90% 혹은 80%라도 가능하다면 확률적으로 그럭저럭 잘 굴러가는 시스템을 가질 수 있다"라고 하는 것이지. 100%는 불가능하지만, 반면 모두가 0%인 것도 아니니까.
상대성 이론이 100년이 넘었군.. 요즘엔 비단 NASA 뿐만 아니라 GPS를 필두로 실생활에도 제법 요긴하게 활용되고 있지만, 아인슈타인 생전에야 뭐 이건 세상에서 제일 끔찍한 최신형 폭탄을 만드는 기초가 됐을 뿐이지; 이 정도 상황에서는 글쎄 양심의 가책을 조금쯤 느끼는 게 자연스러울 지도 모르겠네만, 자네의 경우는 걍 즐겁게 연구해도 괜찮을 듯 싶네. ㅎㅎ
새해 복 많이 받으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