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01'에 해당되는 글 2건

  1. 2010/01/05 I Am Your Father (1)
  2. 2010/01/04 선물의 경제학 (7)
선물 이야기를 한 김에 조금 비슷하면서도 다른 이야기 하나. Waldfogel 교수는 선물이 지니는 경제적 의도(?)를 부의 재분배, 가부장주의, 또는 이타주의로 분류하고 있다. 내가 봤을 때 이 세가지가 완전히 대등한 관계는 아니지만 어쨌든 세가지가 뭔지 분리해서 생각해보자.

뭐, 부의 재분배란 말 그대로 무대가성 선물을 함으로써 경제적 가치를 가진 재화가 한쪽에서 다른쪽으로 이동함에 따라 자연스럽게 발생하는 현상이다. 일반적으로 재분배라는 표현을 사용할 때는 많이 가진 사람의 것을 뺏어서(?) 적게 가진 사람에게 나눠주는 로빈 훗식 재분배를 생각하는데, 자발적 선물을 통한 재분배는 이와는 약간 다를 수 있다.

이타주의란 순수하게 뭔가를 주고 싶은 마음에 선물을 받는 사람이 가장 좋아할만한 것을 골라서 선물을 주는 걸 말하고, 가부장주의란 선물을 주는 사람이 선물을 받는 사람의 생활습관이나 취향 등을 특정한 방향으로 유도하려는 의도가 섞여 있는 걸 말한다. 전자는 선물 받는 사람이 좋아하는 음악 CD를 선물하는 일이 이에 해당할 거고, 후자는 선물 하는 사람이 자기가 좋아하는 음악 CD를 선물하는 일 정도가 될 거다. 물론 이런 수준의 가부장주의는 그 의도가 올바르든 조금 빗나갔든 크게 문제가 되지 않는다. 그렇지만 가부장주의의 영향은 꽤 클 수 있다.

정부가 집행하는 모든 공공정책은 공리주의적이거나 가부장주의적 요소를 포함한다. 예를 들어보자. 국가에서 공교육 강화를 위해 1) 세금을 걷지 않고, 아무것도 하지 않거나, 2) 세금을 걷어서, 학교를 새로 짓거나 오래된 학교 시설을 정비하고, 교사들의 질을 향상시키기 위해 교사들 월급을 올리는 등의 다양한 정책적 시도를시행하는 걸 고려하고 있다고 하자.

가상의 세계 A

"그래, 학원비 때문에 등골 휘겠어. 제발 교육제도 좀 정상화해봐!"라며 국민들 대다수가 정부의 정책을 찬성한다. 물론 민주주의 국가에서 모든 국민이 찬성하는 정책 따위란 불가능한 거 아님? 되도 않은 일에 세금을 걷어서 쓴다며 일부 볼멘 소리를 하는 사람들이 있겠지만, 정부는 이때 "대의를 위해 어쩔 수 없다, 어쩌겠냐, 몇명 안 되는 니들이 참아야지"라는 입장을 취한다. 이게 공리주의(utilitarianism).

가상의 세계 B

"세금 내라고? 시바, 세금 걷어서 나라에서 하는 일이 뭔데?" 어라, 이거 뭔가 익숙하잖아, 가상의 세계 맞아? ㅡㅠㅡ 아무튼 이 세계에서 어차피 필요한 건 다 학원에서 배우는 세상, 세금보다는 학원비가 훨씬 유용하다고! 그래서 국민 대다수가 1)번을 지지한다.

그렇지만 지금까지 공교육이 좆같았다고 앞으로도 그럴 리는 없쥐. 이번엔 혁명적인 아이디어가 있어!라며 세금을 걷어들이는 걸 강행할 때에 정부의 입장은"니들이 아직 뭘 몰라서 불만인가본데, 조금만 참아봐라. 내 참뜻을 알아들을 날이 올 거다"라는 거다. 이게 가부장주의(paternalism)다. 현정부의 대운하나, 미국산 쇠고기 파동 따위가 아주 좋은 예. 국민들이 찬성하는 정책을 본지 오래라 공리주의에 해당하는 예는 잘 생각이 안 나네. -_-a

물론 공리주의와 가부장주의가 완전히 갈리는 건 아니고, 사실 정부에서 시행하는 대부분의 정책의 순효과와 역효과가 게 칼로 잘리듯 갈리는 게 아닌지라, 찬반 세력이 항상 흙탕물 튀기며 싸우게 마련이고, 대부분의 정책 시행의 배후에는 두가지 원칙이 공존하게 마련이다. 공리주의에 입각했을 때에도 '다수의 소수에 대한 폭력' 같은 말들로 표현되는 역효과가 나타나긴 하지만, 수만명 이상을 대상으로 하는 정책 결정에서 공리주의적 접근은 꽤나 현실적인 선택이라고 할 수 있다. 오히려 공리주의와 관련한 약점은 '공공 혹은 다수의 이익'를 가려내는 효과적인 메카니즘이 존재하는가에 있겠다.

그럼 가부장주의는 어떨까? 일단 가부장주의에 대해서는 조금 더 설명하고 시작하자. 아이들의 저항에도 불구하고 "야채도 먹어라"며 아이들이 먹기 싫어하는 걸 억지로 먹이려는 부모의 노력 따위가 가부장주의에 해당하는데, 이런 부모들의 노력을 특별히 잘못됐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별로 없다. 이는 많은 경우에 어른들은 아이들이 아직 알지 못하는 것--다양한 영양분이 균형 잡힌 식사를 하는 게 중요하다 따위--을 알고 있다는 점과 자식을 사랑하는 부모가 자신의 아이들이 잘 되길 바라는 진심어린 마음이 있다는 두가지가 동시에 성립하기 때문에 설득력을 갖는다.

마찬가지로 정부나 기타 체계화된 조직이 개인에게 가부장적 압력(?)을 가할 때에 이 두가지를 동시에 성립시킬 수 있어야 하는데, 사실 이는 부모와 자식 사이의 그것보다 훨씬 어려운 일이다. 또 다른 예로 부모가 청소년기의 아이들에게 술, 담배를 못하게 하는 경우를 생각해보자. 술, 담배가--여전히 신체가 성장중인 아이들에게는 특히--몸에 나쁘다는 사실 혹은 정보 자체는 아이들도 이미 알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이들에게 술, 담배를 즐길 권한을 박탈하는 것이 특별히 아이들의 자유권 침해로 받아들여지지 않는 것은, 술, 담배가 몸에 나쁘다는 사실을 안다는 것과 그 사실을 알고 있음에도 그런 선택을 내렸을 때 그 이후에 발생할 수 있는 모든 상황--건강을 해치는 것뿐만 아니라 술에 취해 난동을 부린다거나 싸운다는 등의 다양한 상황--에 대한 책임이 전적으로 개인에게 있다는 사실과 그 의미가 무엇인지를 완전히 이해하고 있다고 생각하지 않기 때문이다. 물론 이를 완전히 이해하는 시점이 언제라는 건 쉽게 증명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기 때문에 통상적으로는 꽤나 임의적으로 20세 전후의 기준을 잡는다.

자, 그런데 정부에서 연령과 성별에 관계없는 완전한 금주령을 내린다면? 이는 많은 경우에 자유권 침해로 해석된다. 그 이유인즉슨, 20세 전후로는 내가 알지 못하는 것을 부모는 알고 있다는 통념이 성립하지 않는다면, 내가 알지 못하는 것을 정부, 보다 정확히는 누군가의 부모일 정부의 구성원들이 알고 있다는 것 역시 일반적인 통념으로 납득할 수 없기 때문이다. 내가 알지 못하는 것 중 정부가 알고 있는 것 따위는 전혀 없다는 게 아니라, 내가 알지 못하는 어떤 이유 때문에 나에게 어떤 제재를 가하기를 원한다면, 그게 뭔지 나에게 알려야 할 의무가 있다는 거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그 새로운 정보가 참이라는 가정 하에서 정부가 그 제재를 가하는 이유가 특정 이익집단의 편익을 보장하기 위함이 아니라, 나를 포함 혹은 나를 제외한 다수의 이익(여기서 공리주의가 다시 작동한다)을 보호하기 위함이란 걸 설명할 의무가 있다.

2008년 미국산 쇠고기 파동이 이에 실패한 아주 좋은 예라고 할 수 있다. 정부는 우리가 알지 못하는 것--미국산 쇠고기가 안전한가?--을 알고 있다는 것과 정부가 공공의 이익--쇠고기 수입이 과연 대중에게 값싼 쇠고기를 제공하기 위함인가?--을 염두에 두고 있다는 두가지를 모두 국민들에게 전달해야 함에도, 두가지에 모두 실패한 덕분에 꽤나 드라마틱한 몇달을 경험할 수 있었다. ㅡㅠㅡ

오늘날 신자유주의라고 불리는 경제철학의 이상적 핵심은 바로 경제적 가부장주의의 해체다. 정부가 다양한 정책을 시행하는 방법은 국민으로부터 세금을 거둬들임으로써 가능한데, 세금은 본질적으로 가부장적 요소가 있다. 그 이유인즉슨, 정부가 세금을 거둬 예산을 집행하는 과정 자체가, 나를 포함한 국민들을 위해서라는 명목하에 나를 대신해서 내 돈을 쓰는 행위이기 때문이다. 이상은 그럴 듯하지만 실상은 어떠한가? 갑은 돈을 모아 차를 사고 싶은데, 정부는 갑이 차 살 돈을 걷어가서는 4대강을 정비하겠다고 한다. 을은 새 카메라를 사고 싶었는데, (서울시) 정부는 그 돈을 걷어가서 청계천을 복원했다. 아, 어이없다. 소위 경제적 가부장주의의 해체를 지향하는 정부가 해체해버린 것은 고작해야 종부세. orz

대한민국을 포함한 전세계 모든 좌파의 딜레마는 아마 여기 있을 거다. 개인의 자유와 정부의 공공복지 사업 투자 확대를 동시에 주장하는 좌파는 정부의 사회적 가부장주의는 해체하되 정부의 경제적 가부장주의는 옹호해야 하는 숙제를 동시에 진행해야 한다. 그런데 작은 정부를 지향한다는 사람들이 '세금'이란 단어는 이미 더럽힐대로 더럽혀 놨다. 직장 다니며 돈 버는 동안 세금은 열심히 냈는데, 경기가 나빠 실직했더니, 4대강 정비한다는 이야기는 계속 들리는데, 나 실업 수당 준다는 얘긴 없다. 많이는 못 벌어도 열심히 벌어서 세금 낼 건 냈는데, 이 동네 재개발한다고 노점상 철거하란다. 안 하고 버텼더니, 정부에서 내가 낸 세금 받는 경찰들이 들어와서 다 철거해버렸다.

더럽혀질대로 더럽혀진 '세금'이란 이름의 돈에서 사람들이 희망을 발견하게 하는 일에 올해 대한민국의 좌파가 성공했으면 좋겠다. 신발이 당장 다 떨어지지도 않았는데 내가 새 신발을 사는 것보다는, 출퇴근길에 이용하는 너덜너덜해진 도로를 정비하는 게 더 중요할 수 있고, 내가 도서관에서 빌려 볼 수 있는 책을 사서 읽는 것보다는, 선생님이 부족해서 배우지 못하는 시골 아이들에게 새로운 선생님을 보내주는 게 더 중요할 수도 있다. 배도 별로 안 고픈데 입이 심심해서 야식 먹고는 다시 살 빼야 된다고 헬쓰장 다니는 것보다, 실직자들에게 직업 재교육의 기회를 주는 게 중요할 수도 있다. 물론 어떤 이들에게는 이 모든 것들이 사실이 아닐 수도 있다.

그렇지만 정부는 태생적으로 가부장적 존재다. 대통령직, 국회, 경찰, 군대조차 민영화할 게 아니라면, 그 태생적 한계는 어쩔 수 없다. 결연히 외쳐라, 까짓거. I am your father. 결국 누구의 편의를 봐주기 위해 누구를 설득할 것이냐의 문제다. 새해 벽두에 눈길에 막혀 각료 회의 제시간에 못하는 동안 MB가 이 문제를 진지하게 고민해봤길 희망한다.

"나는 올봄에 나온다는 애플 타블렛이 갖고 싶은데, 정부는 실업수당을 확대하겠다고 한다" 올해엔 이런 가슴 아픈 소식을 블로그 방문자들과 나누고 싶다.

@ 현정부에 대해서는 포기했다고? 포기하는 순간이 시합종료다. ㅡㅠ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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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간격으로 라니 누님
옛날에 고모들이 할머니한테 옷을 선물하면 늘 마음에 안들어하셨다. 색깔이 어떻고 소매 길이가 어떻고 <갑삭해야>하는데 너무 무거워서 틀렸다는 둥, 요란해서 이런 걸 어떻게 입냐는 둥... 교환이 가능한 경우면 몇번이나 바꿔오기 일쑤였고, 그게 아니면 할머니가 손수 리폼을 하시거나 그냥 옷장에 처박히기 쉽상이었다. 고모들은 할머니가 너무 까다롭게 군다면서 웬만해선 옷 선물을 하지 않았던 것 같다. 그나마 울 엄마가 사드리는 옷은 할머니의 취향을 최대한 고려해 골랐으므로 고모들의 안목보다는 성공률이 높았지만, 할머니가 나한테만은 못마땅한 부분을 털어놓을 때가 더러 있었다. "니네 엄마한테는 비밀로 하라"면서...
외할머니도 마찬가지였다. 평생 남자 한복을 맞춰입고 사셨던 외할머니의 외투 선택은 더더욱 까다로울 수밖에 없어 엄마나 이모가 심혈을 기울여 코트를 사거나 심지어 제일 좋은 양모 털실을 수십만원어치 사다가 뜨개질로 떠드려도 결국 그옷은 다른 사람 차지가 되는 경우가 많았다. 해서 친할머니, 외할머니 공히 최고의 선물은 <현금>으로 굳어지고 말았던 것 같다.
나 역시 십수년간 두분 할머니께 선물할 스카프나 목도리, 장갑 따위의 선물을 애써 고르기도 했지만, 정말 마음에 들어하셔서 애용했던 선물은 손에 꼽힐 정도다. 무난하게 가자고 산 내복마저도 색이나 레이스가 요란하다 (내 눈엔 정말 수수한 건데도!)는 이유로 슬쩍 다른 사람에게 양도되었음을 안 뒤론, 나 역시 철저하게 <현금> 선물을 추구하는 수밖에 없었다.
hazelle 누님
3. 굴 어머니 생신선물

신촌 현대백화점을 두 바퀴쯤 돌아본 뒤 렉스털이 트리밍된 캐시미어 숄을 샀다.
남대문시장에서라면 비슷한 물건을 훨씬 싸게 살 수 있었을 터이나,
'선물'이라는 용도로 상품을 구입할 때에는 구매자의 실속보다 훨씬 더 복잡미묘한 기제들이 작동하는 법이다.
각자의 블로그에 선물의 어려움(?)에 대한 이야기를 한 김에 생각나서 선물에 대해 몇마디 해야지 생각만 하고는 바빠서 차일피일 미루다가 오늘 드디어.

일단 이와 관련된 생각을 하게 만든 참고 자료 몇가지 :


선물이란?

일단 이야기를 더 진행하기에 앞서 선물이 정확히 뭔지부터 살펴보자. 네이버 국어사전에 따르면 선물(膳物)을 다음과 같이 정의하고 있다.
[명사] 남에게 어떤 물건 따위를 선사함. 또는 그 물건.
이 사전적 정의에는 명시되지 않았는데, 선물이 선물일 수 있는 핵심적 요소 중 하나는 자신이 댓가를 바라지 않고 어떤 물건을 선사한다는 점일 것이다. 물론 다른 기회에 자신이 선물을 받기를 내심 기대할 수는 있겠지만, 막연한 기대 이상의 암묵적 동의가 이뤄질 경우 우리는 보통 이런 걸 뇌물이라고 한다.

그러면 우리는 어떤 경우에 선물을 할까?

뭐, 선물을 하는 가장 주된 이유는 크게 두가지 정도가 아닐까 싶다. 한가지는 어떤 일--생일, 졸업식, 결혼기념일, 발렌타인 데이 따위--기념하거나 축하하는 경우고, 다른 하나는 감사의 마음을 표시하는 경우다. 후자의 예로는 누군가의 집에 저녁 식사를 초대받은 경우에 빈손으로 가지 않는다거나, 누군가에게 도움을 받은 일이 있으면 그에 대한 답례로 작은 선물을 하거나, 식사 대접을 하거나 따위가 이에 해당된다. 이런 경우 뇌물과 구분되는 지점은 물건을 선사하는 것이 어떤 일이 일어난 사후냐 사전이냐가 중요한 경계가 된다고 볼 수 있겠다. 그러면 어떤 경우에 어떤 선물을 하면 될까?


좋은 선물 vs 나쁜 선물

언제 선물을 하면 되는지는 알겠는데, 뭘 선물하면 되느냐... 이건 전혀 다른 문제가 된다.

예쁘게 포장된 선물을, 뭘까하는 호기심을 안고 풀어봤다가 실망한 기억, 나름 고민하다가 '아하, 그래, 이게 좋겠다'라며 고른 선물에도 정작 선물을 받은 사람의 반응은 뜨뜨미지근해서 '에이씨, 선물 한번 잘 하기 진짜 어렵네' 싶었던 기억 다들 몇번쯤은 있을 거다. (이 몸은 그런 기억이 너무 많다. 온갖 날짜 챙기고, 선물 주고 받는 걸 포기(?)한 이유가 모르긴 몰라도 거기 있지 않나 싶다, ㅋ.)

사실 좋은 선물은 이런 거다라고 딱히 정의하기 매우 어렵다. 단순히 실용적이냐, 아니냐로 구분되는 것도 아니고, 딱히 싸냐, 비싸냐가 중요하냐면 그렇지도 않다.

  • 찻잔, 술잔을 비롯한 각종 식기는 괜찮지만 종이컵 같은 일회용 식기는 이상하다.
  • 책은 괜찮지만 A4 용지 한박스는 이상하다.
  • 장갑은 괜찮지만 양말은 이상하다.
  • 옷은 괜찮지만 (집들이 같은 특수한 경우를 제외하고) 세탁기 세제는 이상하다.
  • 향수는 괜찮지만 샴푸는 이상하다.
  • 랩탑 가방은 괜찮지만 프린터 잉크는 이상하다.
  • 면도기는 괜찮지만 청소기는 이상하다.
  • 밖에서 맛있는 식사대접을 하는 것보다, 맛없어도 직접한 준비한 식사가 좋다. (물론 너무너무 맛없는 경우엔 이야기가 달라진다.)
  • 식사 초대 받았을 경우에, 같이 먹을 디저트나 같이 마실 술한병 사가는 건 괜찮지만--이때도 아주 친한 사이가 아니라면 양주나 와인은 괜찮지만 소주는 뭔가 좀 어색하다--, 밥 얻어 먹고 현금 내고 오는 건 완전 에러다.
  • 그 외에도 상품권은 괜찮지만 현금은 많은 겨우에 좀 이상하다.
  • ...
(리스트 추가 받습니다, -_-a.)

기준이 뭔지 정확히는 모르겠는데도, 이래저래 뭔가 심정적으로 이상한 것들 가려내다보면 옷, 장신구, 책, CD 등의 표준 아이템들이 있고, 십수년전에 구두상품권, 도서상품권에서 출발해서 최근에는 다양한 종류의 상품권들이 나오고 있다. 뭐, 결국엔 선물을 받는 사람이 좋아하느냐, 좋아하지 않느냐가 좋은 선물과 그렇지 못한 선물을 구분짓는 거의 유일한 기준이다. 그런데 선물을 받는 사람이 좋아하는 것에는 단순히 그 물건을 좋아하느냐 이상의 함의가 조금 있다. 대개 선물을 받는 사람이 선물하는 사람의 '정성'을 느끼느냐가 중요한 변수로 작용한다.

예를 들어, 갑이 iPod Touch(지금 컴퓨터 옆에 눈에 띄는 게 이거라서 이걸 예로 들었다)를 갖고 있는데, 을이 이를 매우 부러워하고 있었다고 하자. 그런데 iPhone이 발매되면서 갑이 iPhone을 새로 장만하고, 을에게 이 iPod Touch를 선물하는 경우를 생각해보자. iPod Touch라는 물건 자체는 을이 매우 갖고 싶어하던 물건이지만, 갑이 을에게 선물하는 정황에 따라 을은 이 선물을 고마워할 수도 있고, '뭐야, 나는 지가 쓰던 떨거지나 가지라 이거야?'라며 기분 나빠할 수도 있다.

그래서 선물을 하는 사람은 선물을 받는 사람의 취향을 정확히 파악하고, 두 사람이 어떤 관계인지를 정확히 이해하고 있는 게 중요하다. 자칫 잘못하면 돈은 돈대로 쓰고 욕은 욕대로 먹는다고... 그렇지만, 이걸 충분히 숙지하고 있어도 때론 나쁜 선물을 하게 된다.


Thought shouldn't be all that counts


이미 충분히 어려운데, 정작 일을 더 꼬이게 만드는 점이 또 있다. 사회적 통념상, 특히 친하지 않은 관계라면 더더욱, 선물을 받을 경우 선물이 마음에 안 들어도 싫은 내색을 하지 않는 게 예의바른 태도로 간주된다. 여기서 다시 한번 등장하는 게 '정성'이다. It's the thought that counts, right?

받은 선물을 싫어하면 선물한 사람의 정성을 무시하는 것처럼 보인다는 거다. 그러다보니, 나쁜 선물도 선물을 주고 받는 자리에서는 좋은 선물로 둔갑한다. 그렇지만, 그런 좋은 선물들은 그 자리에서'만' 좋은 선물이란 게 문제고, 나쁜 선물을 좋은 선물로 만들어 버림으로써 다음번에 나쁜 선물을 하는 걸 예방하지 못한다는 게 또 다른 문제다. <Scroogenomics>를 쓴 Joel Waldfogel 교수의 고민은 여기에 있다. 중요한 일들을 기념하기 위해 마음 훈훈하게 선물 주고 받는 건 좋은데, 이게 실제로는 엄청난 낭비라는 거다. Waldfogel 교수의 주장을 조금 따라가보자.

일반적으로 사람들이 물건을 살 때에는 어떤 물건이 그 가격에 상응하는 가치 혹은 그 이상의 가치를 갖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보자. 날씨가 쌀쌀해져서 오리털 잠바를 사기 위해 동대문 시장을 돌아다녀보니, 맘에 드는 물건이 있는데, 똑같은 제품의 가격이 10만원부터 20만원까지 천차만별이라고 해보자. 대부분의 사람들은 10만원을 주고 이 옷을 살 경우, 10만원의 가치가 있는 물건을 샀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이건 정확한 계산이 아니다. 예를 들어 이 잠바를 제일 싸게 파는 곳의 가격이 11만원이었다면 안 샀을까? 아마 11만원짜리 물건이라고 생각하고 별 생각없이 샀을 것이다. 12만원이었다면? 15만원이었다면? 20만원이었다면? 100만원이었다면? 이렇게 가상의 가격을 생각했을 때, '이 가격 이상은 못 주지'라고 선을 긋는 곳이 있을 거다. 그 마지노선이 15만원이라면? 이 경우 소비자는 경제학적으로는 15만원과 10만원의 차액만큼의 이득을 봤고, 이를 소비자 잉여(consumer surplus)라고 한다.

대부분의 사람들은--소비자에게 유리하게 상황을 해석하다보니--최저가를 기준으로 다른 곳에서 필요 이상의 폭리를 취한다고 생각하는데, 꼭 그런 건 아니다. 시장에서 가격 흥정을 하기보다는 정찰가에 익숙한 현대인들에게는 다소 반직관적이게도 어떤 상품의 매매가 이뤄지는 가격은 소비자가 지불할 용의가 있는 최대가격(X)과 같거나 그보다 낮고, 판매자가 받고자 하는 최소한의 가격(Y)과 같거나 그보다 높다. 그래서 X가 Y보다 크다면, 같은 상품에 대해서도 누가 더 흥정을 잘 하느냐에 따라 가격대는 다양하게 형성될 수 있다. 물론 X가 Y보다 더 작다면 거래 자체가 성립하지 않는다.

소비자 잉여와 관련하여 조금 다른 예를 들어보자. 갑이 어느날 길을 가다 옷가게를 지나치는데 유독 맘에 드는 스웨터를 발견, 그런데 가격을 확인해보니 20만원. 15만원 정도를 예상했던 갑, "에이, 너무 비싸다"라며 돌아선다. 다음주에 그 가게를 지나치는데 재고 정리를 한다며 50% 세일 사인이 붙었네. 들어가보니 전의 그 스웨터가 남아 있길래 10만원에 한벌 사고는, 싸게 샀다고 좋아한다. 이런 경우 사람들은 이 물건을 얼마나 싸게 샀는지에 대해 생각할 때 20만원짜리를 10만원에 샀으니 10만원을 벌었다고 생각한다.

그렇지만 경제학에서는 이렇게 계산하지 않는다. 갑이 이 스웨터를 15만원까지는 지불할 용의가 있었기 때문에 갑에게 이 스웨터는 15만원의 가치를 갖는 물건이다. 이 가격의 정찰가가 20만원이었다는 사실은 갑에게는 중요하지 않다. 갑은 15만원어치의 가치가 있다고 판단한 물건을 10만원에 샀으니, 20-10=10만원이 아니라 15-10=5만원어치의 소비자 잉여가 발생했다. 반면에 당장 돈은 없어서 한주 미뤘지만, 애초에 20만원에 이 스웨터를 살 의향이 있던 을이 세일을 통해 이 스웨터를 샀다면, 을의 소비자 잉여는 10만원이 맞다.

소비자 잉여란 어떤 정해진 양이 아니라, 개개인의 기호에 따라 동일 상품에 대한 가치는 다 다르기 때문에, 각 개개인이 그 상품을 구입함으로써 얻을 수 있는 잠재적/심리적 이익이다. 여기서 핵심은 이 소비자 잉여라는 게 철저하게 개개인의 선호도에 달렸다는 거다. 즉, 너는 오리털 잠바를 10만원 주고 살지 몰라도, 나는 추위를 별로 안 타기 때문에 오리털 잠바가 별 쓸모가 없다면? 글쎄, 오리털 잠바의 가격이 5만원까지 떨어지면, 정말 정말 추운 날씨를 대비해서 하나 정도 구입할지도... 그렇지만, 겨울철에 오리털 잠바보다 스웨터를 훨씬 즐겨 입을 거란 걸 알기 때문에, 10만원을 주고도 스웨터 한벌은 사 입게 되는 거다.

자, 이제 내가 내 돈 10만원을 써야 한다면, 당연히 오리털 잠바가 아니라 스웨터를 사입을 거다. 그게 나한테는 더 많은 소비자 잉여, 즉 가치를 발생시키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런 나의 취향과 선호도를 정확히 알지 못하는 사람이 10만원을 들여 나한테 오리털 잠바를 선물했다면? 나는 그 선물을 받아들고 좋아하는 척을 할 수는 있겠지만, 누군가는 오리털 잠바를 위해 10만원을 지불했음에도, 그 상품의 최종 소비자인 나는 그 상품을 5만원짜리로 취급하기 때문에, 실제로는 5만원어치의 가치가 손실된다.

그렇지만 오리털 잠바를 만든 사람은 10만원을 벌었으니 누군가에게는 득이 된 거 아님? 그건 맞는데, 내게 스웨터를 사줬더라면, 똑같은 10만원은 누군가가 벌어들였고, 최종 소비자인 나도 더 이익을 봤을 테니, 어차피 한정된 자원을 이용해서 다양한 상품을 생산, 판매하는 사회 전체를 봤을 때, 여전히 내게는 스웨터를 선물하는 게 이익이란 거다.

선물 하나 받은 게 맘에 안 들어서 잘 사용안 하는 거야 별거 아니라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이게 누적된다면 전혀 다른 문제다. Waldfogel 교수는 바로 이 점에 착안해서, 사람들이 매년 받는 크리스마스 선물들의 만족도를 조사해본 결과 실제로 15% 정도의 가치 손실이 꾸준히 발생하더라는 거다. 미국에서 크리스마스철에만 매년 수백억달러에 해당하는 다양한 자원과 노동력이 쓰레기통으로 버려지는 것과 마찬가지라는 것.


그래서 어쩌라고?

Waldfogel 교수는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몇가지 제안을 하는데, 이 제안들의 핵심은 '기부'를 하라는 거다. 응? A에서 Z로 건너뛴 기분인데?

자, 설명을 조금 해보자. 단순히 경제학적 가치만 따진다면 가장 좋은 선물은 현금이다. 최종 소비자가 최대의 효용을 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앞서 말했듯, 현금은 적어도 오늘날의 사회적 기준에서는 선물로서 주고 받기엔 영 찜찜한 물건이다. 그렇다면 현금과 유사한 형태의 선물을 찾아보자. 온갖 상품권? 이것도 괜찮은데, 이것 역시 '정성'이 없다고 못마땅해하는 사람도 많고, 실제로 상품권의 경우에도 도난, 분실, 혹은 상품권의 용도가 맘에 안 들어서 등등의 이유로, 상품권 판매량과 실제 상품권을 통해 상품 구입이 이뤄지는 양을 비교해보면 10% 정도의 가치 손실이 발생한다고 한다.

그렇다면, 다른 대안은? 최종 소비자가 현금을 선물로 받을 경우 그 현금으로 무엇에 소비할지를 예측하는 거다. 선물로 현금을 받는다는 건, 실질적으로는 소득이 증가하는 것과 같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경제적으로 풍요로와짐에 따라 소비 패턴이 변한다. 이를 나타내는 대표적인 개념이 엥겔지수인데, 간단히 말하면 소득이 늘어남에 따라 소득 전체에서 생필품 구입의 비중은 줄어든다는 거다. 반면에 문화 생활이나 기타 사치재의 소비는 증가한다. 바꿔말하면 생필품의 경우 없이는 못 살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구입하지만, 돈이 더 많다고 굳이 더 많이 소비하게 되지는 않는 것들인데 반해, 사치재의 경우 돈이 없어서 못 사서 쓰지만, 돈이 더 많다면 더 많이 향유하고 싶어하는 것들이라는 것.

그런데 Waldfogel 교수에 따르면 소득 증가에 따른 선물을 위한 소비 증가율을 보면, 거의 대부분의 국가에서 선물은 사치재가 아닌 생필품에 가깝게 취급되고 있다는 거다. 바꿔 말하면, 서로에게 선물하는 건 최소한의 예의/의무감에 의한 형태라는 거다. 반면에 기부금은 확실히 사치재의 성향을 띈다고 한다. 즉, 누구나 다 그렇지는 않지만 평균적으로는, 사람들이 돈이 조금 더 있다면 기부를 더 많이할 거라는 거다.

조금 더 정확히 말하자면, 단순히 기부의 금액이 늘어나는 게 아니라, 전체 소득에서 기부가 차지하는 비중이 늘어난다. 누군가 나한테 현금을 많이 주면 줄수록, 이 현금 중 일부를 기부할 확률은 높아진다고도 말할 수 있겠다. 이런 패턴을 고려했을 때, 선물로 기부 상품권--선물을 주는 사람이 정한 액수를 선물 받은 사람이 원하는 재단에 기부할 수 있는 상품권--을 주는 게 좋겠다는 이야기1. 선물 주는 사람도 기분 좋게 선물할 수 있고, 선물 받는 사람도 기분 좋게 쓸 수 있다능... 국내에 '기부상품권'이 있는지 모르겠는데, 무척 괜찮은 발상 같다. 기부상품권이 없다면 일단 하나 만들어야할 텐데... 어디부터 시작해야 하나? 암튼 오늘도 누군가에게 뭔가를 선물할 일로 고민하는 영혼들이 다 같이 동참했음 좋겠다.

1 이 결론에 도달하는 방법은 Waldfogel 교수의 논리를 본인이 살짝 재해석/편집했음을 밝혀 둡니다.

@ 일단 기부/후원할 만한 조직부터 뽑아보는 게 순서일 듯, 추천할만한 단체 아는 분들, 리플 부탁.
  • 고래동무 그러고보니 재작년에 1년치 일시불로 후원 시작한 후원 기간이 작년에 끝났을 텐데, 작년 언제 끝났지? 까먹고 갱신 안 했는데, 올해 이거부터 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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