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에 해당되는 글 225건

  1. 2010/03/13 부자급식과 4대강
  2. 2010/02/26 우리는 왜 김연아에게 유독 열광하는가 (6)
  3. 2010/02/26 연아 인정
  4. 2010/02/25 이거슨 진리 (5)
  5. 2010/02/25 일본 쌀값이 이래서 비싼가?
  6. 2010/02/24 온국민이 김연아에 열광하는 사이에 (수정) (5)
  7. 2010/02/23 뇌와 인류
  8. 2010/02/22 5 Best Podcasts (1)
  9. 2010/02/19 도쿄 맛집: 다이와 스시 (1)
  10. 2010/02/18 동면 (1)
선거철도 다가오고 하니 간만에 정치 얘기. 사실 그동안 신문을 열심히 안 봐서 한국에선 뭐가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 잘 모르긴 했다. -_-a

일단 관련기사: 여 "부자급식" - 야 "아동기본권"

사실 이건 딱히 한나라당만의 문제는 아닌데, 어떤 정책을 찬성하는 입장이든, 반대하는 입장이든 명분은 거의 언제 어디서나 끌어올 수 있다. 중요한 건 당장 문제가 된 그 정책에 대해 자신이 내세운 명분이 다른 정책들을 지지하거나 반대할 때 똑같이 적용되느냐다.

일단 본인 입장은 이례적이게도 한나라당의 입장에 조금 더 가까운 편. 대한민국 정부가 현재보다 국민 복지에 훨씬 많은 예산을 투입해야 한다는 게 기본 입장이지만 국민 복지라는 게 정부가 모든 국민을 걷어먹이는 형태일 수는 없다. 특히 개도국--대한민국이 왜 개도국이냐고 거품 무는 사람도 많겠지만 일인당 소득 2만불 간당간당한 수준에서 목에 너무 힘줘봤자지--정부의 재정이란 그리 넉넉한 편이 못 되기 때문에 다수의 국민을 대상으로 돈을 뿌리는 것보다는 "선택과 집중"을 잘 하는 게 훨씬 중요하다.

현재로서는 실업수당, 최저 생계비 지원 증가 등 경제적 위협에 노출이 가장 많이 된 사람들을 보호하는 게 선택과 집중의 우선 순위. 그 외에 전국민을 대상으로 한 복지는 의무 교육, 의료 보험 등 장기적으로는 아주 중요하지만 단기적으로는 개인별 경제적 지출의 우선순위에 따라 뒤로 밀려 버릴 가능성이 있는 것들을 제공. 무슨 얘기냐면, 교육이 중요하다고 해도 그 효과는 당장 눈에 나타나지 않기 때문에, 혹은 건강은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다고 하면서도 당장 몸이 아프지 않다면, 들인 돈의 효과를 바로 볼 수 있는 것들에 돈을 먼저 쓰기로 하고, 아이들 학교를 안 보내거나, 의료 보험에 가입하지 않는 등의 선택을 내릴 가능성이 있다. 그래서 이런 부분에 대해서는 정부가 조금 가부장적 포지셔닝을 해서라도 무상 제공하는 게 중요하다.

급식은 약간 이야기가 다른 게, 당장 밥을 안 먹으면 배고프기 때문에 거의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지출의 우선순위에서 상위권에 올라 있다는 것. (가난할수록 소위 엥겔지수가 높다는 것도 다 이런 맥락.) 그래서 이런 복지 사업은 온국민을 상대로 제공할 필요는 없다. 중산층의 몰락을 이야기하고 있지만, 아이들 한끼 점심 식사값 3-4000원 못 낼 정도로 형편이 곤란한 국민이 대다수는 아니잖아. 여기까지는 좋은데, 한나라당의 문제는 "그래서 무상급식 안 하면 그돈으로 뭐할 건데?"에 대한 답이 없다는 거. 결국 4대강? orz 그 혜택은 누가 누리는데? 설마 전국민이 똑같이 누린다고 생각하는 건 아니겠지?

물론 저소득층 아이들에게는 무상급식이 필요하다고 본다. 그런데 누구는 밥값을 내고, 누구는 밥값을 안 내면, 이미 심각한 학교내에서 학생들 사이의 계급화 및 왕따 문제에 기름을 들이붙는 격이니, 결국 급식비만큼 저소득층에 대한 최저 생계 보장비를 늘리는 게 방법. 이 정책의 딜레마는 한쪽에서 거둬들인 돈을 다른 곳에 노골적(?)으로 쥐어주는 정책은 그 명분이 얼마나 고상하든 간에 절대로 인기가 없다는 것. 결국 이 문제를 어떻게 포장해서 국민들을 설득하느냐가 소시민을 보호하자는 소위 진보정당의 취지에도 더 어울린다. 물론, "다 좋은데 일단 선거부터 이기고 봐야지"라는 정치적 전략이라면 이해해줄 순 있다.
이올린에 북마크하기(0) 이올린에 추천하기(0)
일단 김연아 선수 올림픽 금메달 딴 거 축하할 건 축하하고 이야길 시작하자.

온국민이 한 스포츠 선수에게 이 정도로 열광하기는 90년대 후반 박찬호가 메이저리그에서 수준급 활약을 펼치던 이후로 거의 처음이 아닐까 싶다. 그 다음에 특정 선수는 아니지만 2002년 월드컵을 빼놓을 순 없겠지. 이들의 공통점은? 한국인(들)이 국제적으로 좋은 활약을 펼친다는 거다. 집안에서 판검사가 나오면 그 부모는 말할 것도 없고 할아버지, 할머니, 삼촌, 사촌할 것없이 그걸 뿌듯해하고 자랑스러워하는 거랑 꽤나 유사한 심리일 거다. 물론 가족들끼리 모였을 때도 즐거워하며 이야기하겠지만, 그 뿌리에는 결국 자신이 속한 집단--판검사의 예에선 가족, 김연아의 경우엔 국가--이 혹은 그 집단의 구성원이 그 이외의 집단이나 집단의 구성원에 비해 상대적 우위를 점한다는데에 있다.

이는 물론 진화론적으로 지극히 당연한 감정에 뿌리를 두고 있다. 인간이 작은 부족 단위로 정착하여 농경 사회를 이루면서, 힘에 의한 권력 관계가 형성되기 시작한다.1 이는 도시 내에서 지배와 피지배의 관계에서도 중요한 역할을 하지만, 도시가 팽창함에 따라 주변 도시들과 힘겨루기를 하게 되면서 더더욱 중요해진다. 이 당시에 내가 꼭 힘이 세지 않더라도 힘이 더 센 집단에 속한다는 것만으로도 내게는 하나의 권력이 되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게 사회가 팽창함에 따라 애매해진다. 힘센 사람, 예를 들면 오늘날 박찬호와 나 사이의 사회적 공간은 만년전 우리 부족장 및 부족원들과 나 사이의 사회적 공간에 비하면 엄청나게 팽창했음에도 불구하고--앞서 <뇌와 인류>란 제목의 글에서 비슷한 얘기를 했는데--그 넓디 넓은 사회적 공간은 200년 정도 묵은 국가관이라는 비교적 새로운 개념 하나로만 가득 메워버리고는, 이 만년 묵은 뇌는 여전히 '박찬호는 한국인, 나도 한국인, 그러니까 우리는 같은 편, 다른 편인 니들은 날 함부로 보면 안 돼'라고 똑같이 반응하고 있는 거다. 지난 200년 새에 근대 국가관이 왜 생겼는지는 또 전혀 다른 이야기지만, 아무튼 뭐, 진화의 속도란 게 원래 좀 느린 편이라 별 수 있나, 꽤나 정상적인 반응이다. 특히 그동안 한국 사람들 중에 다양한 스포츠에서 세계 1위를 해본 사람은 제법 많았지만, 페더러나 우즈처럼 시대를 초월한 수준은 김연아가 처음이니까.

자, 여기서 이야기를 살짝 비틀어 보자. 내가 세살 때 아빠는 웬 여자와 눈이 맞아 엄마, 우리 형, 나를 버리고 집을 나갔다. 내가 한 열두살 때까지는 생일 때면 그래도 생일 카드 한장 정도는 보내주더니 어느날인가 그것마저도 끊어졌다. 엄마는 어떻게든 형과 나를 모두 대학에 보내고 싶어하셨지만, 그럴 형편이 못 됐던 걸 잘 알던 형은 형보다 공부를 잘 하던 날 학교에 보내기 위해 결국 직업 전선에 뛰어들었고, 그렇게 뼈빠지게 일해서 나를 대학까지 뒷바라지한 끝에 난 아주아주 성공한 청년 사업가가 되었다. 나의 이런 이야기가 신문에 실린지 얼마지 않아 웬 사내에게서 연락이 왔다. 아빠였다. "이 녀석 잘 컸구나, 허허허"에서 시작해서, 눈물을 흘리며 "미안하다, 아들아. 그렇지만 아빠 얘기도 좀 들어봐"로 이어지는 뻔한 뒷이야기... 경제학에서 무임 승객 문제(free rider problem)라고 하는데, 어느 사회에서고 단물만 빨아먹는 사람들은 항상 있게 마련이라, 무임 승객이 있다는 사실은 꽤나 정상적이지만, 사회 대다수의 사람들이 무임 승차를 하려 한다면 정상적이라고 보기 어렵다.

원래 피겨 스케이팅에 관심이 있었던 게 아니라면, 김연아에 대한 국민적 관심은 이 두가지의 복합이라고 보면 되겠다. 김연아가 나와 같은 한국인이란 게 자랑스러운 건 만년 묵은 뇌가 삽질 중인 거지만, "애국가가 나오면 눈물을 흘릴까요"라고 말하는 건 김연아에게 우리의 존재를 잊지 말라고 말한다는 점에서 무임 승차 중이라고 보면 되겠다.

그런데 이 무임 승차가, 축구에 대해서는 조금 냄비근성이 있긴 해도 그래도 프로축구도 있고, 언론에서도 축구 이야기는 수시로 하는 점을 감안하면 월드컵 때는 조금 덜하고, 박찬호 때는 월드컵 때에 비하면 조금 더 심하지만, 그렇게 심각한 수준은 아니었는데, 김연아 때에 가서는 중증이 됐다. 문제는 앞서 말한 두가지 전혀 다른 증상을 사람들이 동일한 증상으로 받아들인다는 데에 있다. 앞서 말했듯 만년 묵은 뇌가 삽질하는 건 비교적 정상적인 반응이고 그 자체만으로는 큰 해악이 없지만, 무임 승차를 원하는 건 아주 아주 바람직하지 않고, 당연히 서로 지적을 해줘야 정상적인 부분임에도, 두가지를 동일화하다보면 무임 승차하는 행위를 정상적이라고 받아들이게 되는 거다. 이미 몇년 묵은 이야기지만 황우석 사태 때도 동일한 현상이 나타났었는데, 황우석이란 과학자가 한국에 있어서 자랑스럽다 + 황우석의 과학이 국가에 엄청난 부를 안겨줄 거다--물론 구라로 판명이 나긴 했지만--라는 무임 승객 심보가 여과없이 드러난 케이스에 해당한다.

그래서 뭐 어쩌라고? 자, 아래에 자가 진단 테스트가 있습니다. 자가 진단들 해보십시오.

자가 진단 해보기


@ 위 자가 테스트 결과를 너무 진지하게 받아들이시면 고혈압, 심장마디, 뇌경색 등의 질환이 찾아올 수 있으니 주의 바랍니다.
@@ 다시 읽어보니 글 쓰다 귀찮아서 급하게 둘둘 말아버린 티가 너무 나는데. -_-a


1 물리적 힘에 의한 권력에는 뭔가 원초적이고 원시적인 느낌이 있지만 사실 먹을 걸 찾아 가젤과 물소를 쫓아다니고, 다 익은 열매가 있으면 따먹던 오히려 훨씬 더 원시적인 시절엔 권력층과 피권력층의 관계가 오히려 형성이 되질 않는다. 한 자리에 머물지 않고 작은 무리를 지어서 계속해서 떠돌아다닌다는 점과 잉여--이말을 요새 인터넷에서 잘못 쓰면 오해받는데 -_-a--의 음식물을 축적할 여력이 아무도 없었기 때문에, 먹을 걸 못 구한 힘센 사람이 먹을 걸 가진 다른 사람의 것을 한시적으로 뺏어 먹을 순 있어도, 언제 어디서 또 만날지 알 수 없는 관계 속에서 토착적인 상하관계가 유지되지 않는다.
이올린에 북마크하기(0) 이올린에 추천하기(0)

연아 인정

일상다반사 2010/02/26 17:20
연아, 이쯤되면 피겨계의 로저 페더러 또는 타이거 우즈. (물론 타이거 우즈의 사생활은 빼고 논하자. -_-a) 그렇지만 왜 전 국민이 열광하는지는 아직 잘 모르... 아니, 잘 알지만 제발 좀 안 그랬으면 좋겠다. 물론 피겨 스케이팅을 좋아한다면 이야기가 다르지만, 피겨 스케이팅 다들 그렇게 좋아하지도 않잖아. ㅡㅠㅡ

사용자 삽입 이미지

아싸, 이쯤되면 나도 저 아저씨들이랑 동급!

사용자 삽입 이미지

아저씨라니, 난 아직 20대라고!

사용자 삽입 이미지

나... 난, 아...아저씨 맞군. orz


@ 참고로 사진들은 각각 올림픽, 2010 호주 오픈, 2008 US 오픈 때로 각 선수들에게 가장 최근의 메이저 대회 우승 당시임.
이올린에 북마크하기(0) 이올린에 추천하기(0)
사용자 삽입 이미지
사진출처: http://failblog.org/2010/02/23/tag-fail/

세탁 이야기가 나와서 말인데,

이올린에 북마크하기(0) 이올린에 추천하기(0)
사용자 삽입 이미지
논에 색칠한 게 아니고, 품종이 다른 쌀을 심어서 그렸다고 함. 이 사람들에게 농사는 여가인가...(라고는 해도 이게 하나의 관광 상품인 듯.)

정보제공: Tyler Cowen의 Marginal Revolution
원본사진출처: http://www.hoax-slayer.com/japanese-rice-crop-art.shtml
이올린에 북마크하기(0) 이올린에 추천하기(0)
TAG , 일본
온국민이 김연아, 응? 누구? 김연아에 열광하는 사이에, 나는 테사 버츄한테 열광하기로 했다. ㅡㅠㅡ 응? 얘야 말로 누구?

어제 저녁에 퇴근해서 올림픽 하일라이트나 볼까하고 TV를 딱 틀었는데, 이 장면이 화면에 떴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오~, 완전 호감.

피겨 스케이팅이고, 아이스 댄싱이고 전혀 관심없지만,
사용자 삽입 이미지
사용자 삽입 이미지
이런 아가씨한텐 관심 있지. ㅡㅠㅡ 무...물론 포샵질에 낚였을 가능성도 무시할 순... -_-a

사진제공: http://relish.myraklarman.com/archive/tessa-virtue/


@ 아이돌(?)을 우러러 보는 게 아니고, 내려다 봐야 하는 나이라 좀 아프다. -_-,,
@@ 화장을 어떻게 하냐에 따라 인상이 많이 달라 보이긴 하는데, 아래 사진 보면 Nicole Kidman이랑 Anna Friel을 섞어 놓은 얼굴 같기도 하고... 근데 이런 거나 비교하고 있는 거 보면, 나 할 일 별로 없나봐. 사실 바쁜데... ㅡㅠㅡ
사용자 삽입 이미지사용자 삽입 이미지사용자 삽입 이미지
이올린에 북마크하기(0) 이올린에 추천하기(0)

뇌와 인류

일상다반사 2010/02/23 15:35
자, 다음의 시나리오들을 각각 생각해보자.
  1. 시대는 나치 독일. 유대인인 당신은 독일군의 눈을 피해 한 가정집 지하에 다른 유대인들과 숨어있는 가운데 독일군이 집에 들어와 수색을 시작했다. 아직 젖도 못 뗀 당신의 아기를 안고 있는데, 아기를 보니 울음을 터뜨리기 일보 직전. 정황상 아이의 숨을 틀어막아 아이를 죽이거나, 독일군에게 발각돼 모두 죽거나 둘중의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면, 당신의 아이를 죽일 수 있겠는가? 설령 당신의 손으로 죽이지는 못하더라도 옆사람이 아이를 죽여야 한다고 말하면, 그 사람이 죽이게끔 아이를 넘겨줄 수 있겠는가?

  2. 고장난 열차 안에 5명의 사람이 갖혀 있는데, 이 열차가 철로를 따라 빠른 속도로 달리고 있다. 문제는 완공되지 않은 철로의 끝에는 낭떠러지가 있다. 당신 앞에 레버가 하나 있는데, 이 레버를 당기면 열차가 다른 철로로 옮겨가서 무사히 방향을 바꿀 수 있다. 문제는 이 다른 철로에는 현재 뭔가 작업을 하고 있는 귀머거리 인부가 한명 있다. 레버를 당기지 않을 경우 열차 안의 5명이 죽게 생겼고, 레버를 당긴다면 철로에서 작업하는 인부 한명이 죽게 생겼다. 당신은 레버를 당기겠는가?

    이번에는 조금 비슷하지만 또 조금 다른 문제를 생각해보자. 역시나 5명의 사람이 갖혀 있는 고장난 열차가 낭떠러지를 향해 달리고 있다. 당신은 아주 거구의 사나이와 함께 그 철로 옆에 서 있다. 당신이 그 사나이를 철로로 밀어버리면 열차와 사나이의 충돌로 열차를 멈출 수 있다면, 당신은 그 사나이를 밀겠는가?

  3. 당신이 엄청나게 비싼 옷을 입고 강가를 거닐고 있는데, 강물에 어린 아이가 빠져서 허우적대고 있다. 강물에 뛰어들어 어린 아이를 구할 것인가, 말 것인가? 그 아이를 구해주고는 집에 와서 우편물을 확인해보니, 당신이 입고 있던 양복값의 10분의 1만 기부를 하면 지구 반대편에서 기아에 허덕이는 아이에게 1년치 식량을 제공해줄 수 있다고 한다. 당신은 기부를 하겠는가, 하지 않겠는가?

각각의 경우 여러분의 대답은?

다양한 연구 결과에 따르면 1번의 경우 아이를 죽인다와 죽이지 않는다가 반반 정도라고 하는데, 실제로 아이가 있는 사람들만 대상으로 할 경우 죽이지 않는다가 더 많다고 한다. 2번 문제는 많은 사람들이 레버는 당기겠지만, 사람을 철로에 밀어넣지는 않겠다고 하며, 3번에서는 거의 대부분의 사람들이 어린 아이를 구하기 위해 비싼 옷을 버리게 되더라도 강물에는 서슴없이 뛰어들겠다고 하지만, 당장 눈앞에 보이지 않는 사람들을 위해 호주머니를 선뜻 열겠다는 사람의 수는 그보다 현격하게 작다고 한다.

그래서 뭐 어쨌다고? 당연한 거 아냐? 뭐, 그렇게 놀라운 결과는 아닌데, 그렇다고 논리적으로 쉽게 설명되는 결과도 아니다. 일단 2번에서 주어진 두가지 상황에서 논리적으로는 둘다 예라고 하던가 둘다 아니오라고 하는 게 일관성 있는 대답이다. 그리고 2번에 예라고 대답한다면 1번에서 또한 아이를 죽일 수 있어야 일관성 있는 태도다. 물론 이쯤에서 '원래 이 세상은 논리만으로 모든 게 설명되지 않는다고'라고 대수롭지 않게 넘어갈 수도 있겠지만, 그건 좀 너무 편리하잖아.

온 우주의 신비를 밝혀내려면 아직 멀었음에도 불구하고, 현대 과학 기술은 우리가 쉽게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많은 걸 할 수 있다. 1번 질문을 사람들에게 던져놓고, 그 사람들 뇌의 사진을 찍어보면, 아이를 죽이겠다고 대답하는 사람들과 아이를 죽일 수 없다고 하는 사람들 사이에 실제로 주로 이용하는 뇌의 부위에 차이가 있다고 한다. 더 신기한 건, 3번 질문에서, 물에 빠진 아이를 구하겠다고 대답할 때와 기아에 허덕이는 아이를 위해 성금을 하겠다고 대답할 때, 두 경우 모두 피상적으로는, 내가 모르는 아이를 위해 약간의 경제적 희생을 각오한다는 동일한 논리구조를 따른 결론임에도 불구하고, 실제로 그 결정을 내리는 뇌의 부위는 다르다고 한다.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거야? 물론 아직은 추측에 불과하지만, 인간 사회가 복잡해짐에 따라 이에 맞춰 인간의 뇌 또한 진화하고 있다는 이야기가 힘을 얻고 있다. 무슨 말이냐면, 인간이 동굴에 살면서 사냥과 수렵을 하던 시절의 개체 혹은 종족의 생존 개념과 오늘날 개체 또는 종족의 생존에 대한 개념은 완전히 다르다는 거다. 수천, 수만년전의 인간에게 인류, 지구 반대편, 대의 따위의 개념은 없었다. 물에 빠져 허우적거리는 사람이 있으면 건져주면 되고, 맹수를 발견하면 도망치면 그만이었다. 무리지어 사냥을 했으면, 고기를 나눠 먹으면 됐고, 그걸 뺏어가려는 외부인이 있으면 힘을 합쳐 물리쳤다. 내 생존의 아군과도, 적군과도 언제나 눈을 마주칠 수 밖에 없었다. 그렇게 눈빛을 교환해야 하는 상황에서, 인류란 내가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만나는 사람들 전부일 뿐이고, 인류의 생존을 위해 내가 해야 하는 행위의 경계는 분명했다. 나의 유전자를 품고 있는 아이의 눈빛을 보고도 그 아이의 숨통을 끊을 수는 없는 일이고, 무기력하게 물살에 휩쓸려 허우적거리는 사람의 눈빛을 보고도 모른 척할 수는 없는 일이다. 이는 본능의 문제이지 논리의 문제가 아니었다.

대의를 위해 내 아이를 죽이고, 인류의 기아 문제를 위해 내 지갑을 여는 일 따위는 오늘날의 사회구조가 만들어낸 문제라는 이야기다. 그래서 얼핏보면 똑같아 보이는 문제를 놓고도, 무의식은 이 문제들 사이에 나도 모르는 사이에 본능적으로 해결할 문제와 추상적 사고로 해결할 문제라는 경계를 긋는다. 레버를 당기는 건 5사람의 목숨과 1사람의 목숨의 가치를 저울질하는 추상적 문제지만, 사람을 철로로 미는 건 내게 아무런 해를 끼치지 않은 사람을 살인해야 하는 본능적 문제가 된다.

그런데 이렇게 뇌가 각 부위별로 그 기능이 나뉘어서, 각 부위가 결투를 벌이는 거면, 더 어찌해볼 수 없는 거 아니냐고? 물론 이미 어떤 사람의 뇌의 각 기능이 충분히 발달했다면, 그 사람의 행동 양식을 바꾸기는 쉽지 않겠지만, 아직도 희망은 있다.

다음의 상황을 생각해보자. 갑에게 을과 나눠 가지라며 100달러를 주는데, 이때 조건이 한가지 있다. 100달러를 갑과 을 사이에 몇 대 몇으로 나눌지는 1달러 단위로 갑이 결정하되, 을이 이 비율에 수긍하면 그 비율에 따라 두 사람이 돈을 나눠가지면 되고, 을이 이 비율을 거부하면 돈을 내가 도로 회수해간다는 조건이다. 이 경우 단순 논리만 따지면, 갑은 자신의 이익을 극대화하기 위해 갑=99 : 을=1의 비율을 제시하고,을 역시 갑이 우선권을 쥔 상황하에서 자신의 이익을 극대화하려는 방법을 모색하려 한다면 1달러 > 빵달러니까, 이 조건을 받아들이는 게 합리적이다. 그렇지만, 갑이 실제로 이런 조건을 제시하면 을은 열에 아홉 거부해버리고 만다. 흔히 말하는 괘씸죄가 성립했다고 볼 수 있겠다.

재미있는 건, 이 실험(?)을 해보면, 더 파편화되고, 개인주의적이라고 생각되는 소위 선진국 사람들은 5:5 내지는 6:4 정도의 비율로 돈을 성공적(?)으로 나눠 갖는데 반해, 여전히 주변 사람들과의 유대가 중시되는 개도국이나 후진국 사람들은 오히려 8:2, 9:1 같은 편파적(?)인 비율로 돈을 나누려고 하다가 괘씸죄에 걸려 거부당하는 경우가 더 잦다고 한다.

이는 선진국 사람들이 타인에 대한 사랑이 더 넘치기 때문이 아니다. 사실 그동안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인간이 이 기계화된 사회의 부품으로 전락함으로써, 인간미가 파괴되고 있다고 소리 높이고 있느냔 말이다. 얼마나 많은 이들이 이웃과 눈빛조차 안 마주치는 파편화된 사회가 인간을 이기적으로 만들고 있다고 걱정하고 있느냔 말이다. 그러면서, 많은 이들이 가족과 친구를 사랑하는 마음을 더 넓은 인류를 향해 확대하라는 이야기를 하곤 했는데, (나도 예전엔 그랬다 -_-a) 이게 그렇게 단순히 가족, 친구, 동향사람, 동포 등으로 그어진 임의의 경계선을 한없이 넓힘으로써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닌 것 같다.

변화된--예전에는 상상할 수 없이 거대해진--사회 구조가 요구하는 변화된 삶의 규칙이 존재한다. 그리고 그 규칙을 체화하는데 있다. 현생 인류 사이에서 진화적으로 뇌의 구조 차이가 있지는 않을 거다. 다만 가족, 친구, 이웃 등의 친밀하고 구체적인 대상에서 출발하는 타인에 대한 연대감과 더 큰 인류라는 추상적 개념에서 출발하는 인류애 사이에 모종의 긴장 관계가 있는데, 후자를 경험할 기회가 적은 사람들은 상대적으로 전자를 인식하는 뇌의 활동이 더 활발하게 일어나는 것뿐.

그래서 아이들에게, 곤란에 처한 친구에게 느끼는 애틋한 마음을, 이름도 얼굴도 알지 못하는 지구 반대편 누군가에게 똑같이 느끼게 함으로써 그들을 돕게 만들 게 아니라, 나의 사소한 행위 하나 하나가 거미줄처럼 얽히고 섥힌 이 거대한 세상에 끼치는 영향이 있다는 걸 늘 머리로 유념하게 가르치는 게 현명한 일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100달러를 8:2로 나누는 대신 6:4로 나누면, 내 가족, 내 친구에게 돌아가는 몫은 줄지만, 그게 인간이 만들었음에도 인간에게조차 익숙하지 않은 이 거대한 사회가 요구하는 새로운 생존방법이라는 걸 가슴으로 느끼게 하는 것보다는, 그냥 머리에 넣어버리 게 빠를지도...

일전에 Fredrich Hayek의 <Fatal Conceit: The Errors of Socialism>의 일부를 소개한 적 있는데, 이런 최근에 밝혀진 인간의 행동 양식에 대한 지식 없이도 이를 꿰뚫어본 Hayek의 통찰력은 새삼 감탄스럽다.
Part of our present difficulty is that we must constantly adjust our lives, our thoughts and our emotions, in order to live simultaneously within different kinds of orders according to different rules. If we were to apply the unmodified, uncurbed, rules of the micro-cosmos (i.e., of the small band or troop, or of, say, our families) to the macro-cosmos (our wider civilisation), as our instincts and sentimental yearnings often make us wish to do, we would destroy it. Yet if we were always to apply the rules of the extended order to our more intimate groupings, we would crush them. So we must learn to live in two sorts of world at once.

- <The Fatal Conceit: The Errors of Socialism> 중에서

오늘날 우리가 당면한 쉽지 않은 과제 중 하나는, 서로 다른 규칙에 따라 작동하는 두개의 집단사이에서 동시에 존재하기 위해, 우리의 삶과 생각, 감정을 끊임없이 조절해야 한다는 점이다. 우리가 우리의 본능과 감상에 젖어, (가족과 같은) 소규모 집단에서 작동하는 다듬어지지 않은 규칙들을 (사회 전체와 같은) 대규모 집단에 적용하려 한다면 우리는 우리 사회를 파괴해버리고 말 거다. 반면에 우리가 대규모 집단의 규칙들을 보다 친밀한 관계들에 적용시키려 한다면, 우리는 그 관계들을 모두 훼손시켜버리고 말 거다. 따라서 우리는 두가지 서로 다른 세상에서 동시에 사는 법을 배워야 한다.

- <치명적 자만: 사회주의의 오류> 중에서

@ Hayek 얘기가 나왔으니 본 주제와는 전혀 상관없는 보너스 하나.

원출처: http://www.econstories.tv
이올린에 북마크하기(0) 이올린에 추천하기(0)
인간이 지식과 정보를 전달하기 위해서는 언어를 이용하는데, 이는 문자와 말의 두가지로 나눠서 생각할 수 있다. 이중 문자는 시각적 정보 전달 법이고 말은 청각적 방법에 해당된다. 전자의 경우는 공간적 매질에만 거의 전적으로 의존하는데 반해, 후자의 경우는 음파라고 하는 시공간적으로 한정된 매질을 이용해야하기 때문에 그 한계 또한 분명했다. 수만년된 동굴의 벽화는 아직까지 우리에게 남아 있지만, 그 당시 인류의 음성은 그 어디에도 없다. (물론 한번 세상에 내뱉어진 소리는 한없이 약해지기는 하지만 절대로 사라지지 않기 때문에 아주아주 성능이 좋은 마이크만 있으면 재생해낼 수 있다고 믿은, 라디오의 아버지, 마르코니 같은 사람도 있긴 했다.) 인간이 수천년간 거의 모든 기록을 문자로 남긴 건 결코 우연이 아니다.

그러다가 1857년 세계 최초의 녹음기가 발명됐다. 녹음기와 축음기의 등장으로, 소리를 기록할 수 있게 되면서, 더 이상 음원과 같은 공간, 같은 시간을 공유하지 않고도, 원하는 시간에 원하는 곳에서 소리를 재생할 수 있게 된 거다. 그렇지만 녹음과 축음, 특히 고품질의 녹음 비용은 너무 많이 들다보니, 인간이 정보를 전달하는 가장 보편적인 매체는 여전히 종이에 인쇄된 활자였다. 우리한테는 너무 흔해서 이젠 감도 잘 안 오지만, 수백에서 수천년간 축적된 제지 기술과 인쇄술의 효율이란 사실 어마어마하게 놀라운 거다. 매년 쏟아져 나오는 책, 팜플렛, 전단지의 양과 하루도 거름없이 이들 중 쓰레기통으로 들어가는 양을 생각해보라.

그렇지만 정보 전달의 효율과 정보 습득의 효율은 전혀 다른 문제다. 거의 모든 동물에게 있어서 주변 환경을 인식하고 이에 대응하기 위해 사용하는 1차 감각은 시각이다. 그런데 독서는 바로 이 시각을 이용한 정보 습득 과정이다보니, 독서와 다른 활동을 멀티태스킹하기란 거의 불가능하다. 반면에 청각은 2차적인(?) 감각이기 때문에 청각을 반드시 이용해야 하는 활동--다른 사람과 대화를 하거나 음악/영화(이 경우는 시청각을 모두 이용) 감상 따위--중이 아니라면, 귀는 아무것도 안 하고 놀고 있는 경우가 많다. 따라서 운전이나 요리 등을 하면서도 청각을 이용한 정보 습득은 얼마든지 가능하다.

바꿔 말하면, 지난 수천년간은 인쇄기술이 녹음 및 축음기술보다 월등히 싸게 먹힌다는 기술적 한계 때문에 인간에게 정보 습득 활동은 다른 활동으로부터 100% 분리된 독립적 활동으로 존재해 왔다. 그렇지만 디지털 미디어의 등장, 대용량 저장 매체와 광통신을 이용한 통신 대역폭의 엄청난 증가로 이 모든 게 바뀌었다.

아날로그 정보를 복사하는 일을 생각해보자. 책 한권 복사하기 vs 카세트 테입 하나 복사하기, 어느게 더 쉬운지는 묻지 않아도 다 알 거다. 그런데 이 정보를 디지털화해서 컴퓨터에 담아두기 시작하면서 그 차이가 줄어들기 시작했다. 화일이 뭘 담고 있든 간에, 아래아 한글 화일이든 mp3 화일이든, 화일 하나 복사하는 과정은 동일하다. 한번 기록된 정보는 그게 문자 정보든 음향 정보든 이를 공유하는 비용 차이가 거의 없다. 물론 완전히 동일하지는 않다. 책한권 분량의 문서 화일의 용량으로는 음향 정보는 일반적으로 고작 몇분 정도 분량밖에 못 싣는다. 여전히 음향 정보는 전송 및 보관하는 비용이 상대적으로 비싸다. 그러나 테라바이트짜리 하드 드라이브가 일상화(아직은 아닌가?)되고, 이런 저장 매체에 화일을 쓰거나, 저장 매체로부터 화일을 읽는 속도, 또 이를 공유하기 위한 인터넷 통신 속도가 엄청나게 빨라짐에 따라 그 비용의 차이가 실질적으로는 거의 없어졌다. (물론 음질 좋은 녹음 장비의 비용은 성능 좋은 가정용 프린터 비용과 비교가 안 되다보니, 컨텐츠의 생산 비용에서는 여전히 차이가 있다.)

책을 소리내 읽는 걸 녹음해 놓은, 소위 audiobook의 등장은 1930년대였지만, audiobook이 크게 인기를 끌기 시작한 건 불과 최근 몇년 사이인 데에는 이런 기술적 발전의 역할이 숨어 있다. 어쩌면 책을 어야 하는 시대가 가고 있는지도 모른다. 물론 각종 삽화나 그래프 등의 시각적 장치를 대체하는 건 불가능하고, 활자 중독증이 있는 사람도 있다보니 책을 읽는 행위가 완전히 사라지지는 않겠지만, 운전 중에, 운동 중에, 요리 중에, 산책 중에 음악 뿐만 아니라 다양한 지식과 정보를 습득하는 일이 가능해진, 정보를 듣는 시대가 오고 있다. 이를 잘만 이용하면, 읽기라는 독립된 행위에만 의존해야 하던 시절에 비해 인간이 단위 시간당 습득하는 정보량이 빠르게 증가할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이런 디지털 미디어가 바꿔놓은 흐름을 정확히 집어내서 가장 생산적으로 활용한 예가 podcast와 iTunes U다. Podcast는 iPod의 pod와 broadcast의 cast를 조합한 단어로 그야말로 오만가지 사람들이 오만가지 주제에 대해 녹음을 해서는 이걸 iTunes Store를 이용해 무료로 배포하는 인터넷방송이고, iTunes U는 iTunes University의 약자로 다양한 교육기관(이라고 해봐야 현재로는 영국과 미국의 대학들과 씽크탱크(?)들로 한정돼 있다)이 자신들이 제공하는 프로그램 중 일부를 역시나 iTunes Store를 통해 무료로 제공하는 서비스다. 미디어 플레이어로서의 iTunes의 효용--특히 Windows 기반에서--에 대해서는 아직도 말이 많지만, podcast와 iTunes U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만으로도 iTunes는 나한테는 엄청나게 만족스러운 소프트웨어다.

아무튼 서론이 길었는데, 이런 맥락에서 맛있는 걸 나눠먹는 심정으로 내가 즐겨듣는 podcast 중 일단 5개만 소개해볼까 한다. 순서는 알파벳순.


사용자 삽입 이미지
제목 : EconTalk
분류 : 경제
진행자 : Russell Roberts
홈페이지 : http://www.econtalk.org
소개 : 앞서 몇번 언급한 적이 있는데, George Mason 대학의 경제학자인 Russell Roberts가 다양한 경제학자, 저자들과 약 1시간 가량의 인터뷰를 진행한다. 다양한 경제학 이론, 최근의 경제/경기 상황에 대한 분석, 주목할만한 경제학/사회학 저술의 내용 소개 등 경제와 관련된 다양한 주제를 아우른다. 모든 문제에 대해 학문적(?) 접근을 하기 때문에 특별한 투자 전략은 건 논하지 않지만, 특정 투자 전략의 이면에 있는 이론에 대해서는 가끔 다루기도 한다. 참고로 Roberts는 University of Chicago 대학원에서 학위를 받아 시카고 학파에서 출발해서 오스트리아 학파로 넘어간 성향이다보니 시장 친화적인 관점을 유지한다. 업데이트는 주 1회로 매주 월요일.


사용자 삽입 이미지
제목 : Radio Lab
분류 : 과학
진행자 : Jad Abumrad & Robert Krulwich
홈페이지 : http://radiolab.org
소개 : 위약효과, 우주의 기원 등부터 시작해서 사랑이 뭘까? 도덕이란, 시간이란 뭔가 등 언뜻보면 전혀 과학과 상관없어 보이는 질문에 대한 답변을 과학에서 찾아보는 프로그램. 다양한 사람들의 개인적인 경험담과 이에 대한 과학적 분석을 내리는 과학자들과의 인터뷰들을 솜씨좋게 배치시켜 이야기를 풀어나가는데, 이야기 진행에 있어 음향효과를 탁월하게 잘 활용한다. 차분하고 편안한 목소리의 Abumrad와 조금 요란한 목소리의 Krulwich 두 진행자 사이의 호흡도 만점. 그리고 무엇보다도 프로그램 이면의 철학(?)에 완전 공감.

Krulwich가 Caltech 졸업식에 연사로 초청되어 갔을 때 졸업생들에게 연설한 내용에서 그 철학이 가장 잘 나타나있길래 여기서 소개해본다. Tell Me a Story라는 제목으로 2008년 7월 podcast에 방영된 바 있다.

이하는 연설문.


업데이트 주기는--항상은 아니지만--주로 2주에 1회, 화요일.


사용자 삽입 이미지
제목 : Stuff You Should Know
분류 : 상식
진행자 : Charles W. Bryant & Josh Clark
홈페이지 : http://blogs.howstuffworks.com/category/stuff-you-should-know
소개 : howstuffworks.com이라는 웹페이지가 있는데 초끈이론, 블랙홀 등의 난해한 과학 분야부터, 손톱깎는 팁에 이르기까지 온갖 잡다한 주제에 대해 일반인들을 상대로 쉽게 설명해놓고 있다. 이들중 일부를 역사, 과학, 음악, 여행, 자동차 등등 다양한 분야로 나눠서, podcast 시리즈를 내놓고 있는데 그중 가장 대표적인 podcast로, 굳이 분야를 나누자면 약간의 과학 + 잡상식에 해당하려나? 두 진행자의 격식없는 진행도 podcast를 듣기 편하게 하는 요소 중 하나. 업데이트는 주 2회, 수요일과 금요일.


사용자 삽입 이미지
제목 : TED Talks
분류 : 교육
홈페이지 : http://www.ted.com
소개 : Technology, entertainment, design의 약자를 딴 TED라는 비영리 단체가 매년 개최하는 TED Conference의 강연 내용을 업데이트해주는 podcast. TED가 뭐하는 곳이다라고 콕 찝어 설명하기는 굉장히 애매한데 대충 혁신적인이고 진보적인 발상의 전환을 추구하기 위한 조직이라고 하면 될까? 그런 취지에 맞춰서 TED Conference는 성공적인 경영인, 학자, 정치가, 예술가 등을 초청하여 강연을 청하는 모임. 가끔 혁신과 진보적 사고라는 게 소위 미국이 누리는 풍요와 American Dream의 토대라는 느낌을 주기도 하지만 뭐, 미국에서 시작해서 미국 사람들 기준의 성공의 잣대에 맞춰져서 초청된 사람들의 자리이니 그걸 피할 수는 없겠지. 그렇지만 대체적으로 굉장히 수준 높고, 감탄할 만한 아이디어들을 많이 접할 수 있는 강연들이다. 오디오, 비디오, HD의 세가지 버전으로 제공되는데, 강연이 시각 자료에 의존하는 경우도 많기 때문에 비디오나 HD로 구독(?)을 권함. 업데이트는 수시로/지멋대로.


사용자 삽입 이미지
제목 : This American Life
분류 : 생활/이야기
진행자 : Ira Glass
홈페이지 : http://thisamericanlife.org
소개 : 전에도 간단히 소개한 적이 있지만 다시 한번. 지금까지 소개한 podcast들이 전부 조금은 교육적(?)인 테마라면, 이 podcast는 제목의 'Life'라는 단어가 암시하듯, 삶의 숨결을 전달하는데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앞서 Radio Lab을 소개하면서 Robert Krulwich의 연설도 같이 실었는데, Krulwich가 언급하고 강조한 "power of story"가 무언지, 한 인간이 다른 인간에게 정서적 연대를 느끼는 게 얼마나 소중한 일인지를 생생하게 느낄 수 있다. 본인의 podcast 중독을 유발한, 가장 먼저 듣기 시작한 podcast이기도 하다. 업데이트는 주 1회, 월요일.


@ 안타깝게도 국내에서는 아직 podcast가 활성화되지 않은 관계로 여기에 소개된 모든 컨텐츠는 영어다. 집집마다 초고속 인터넷 깔아놓고, 너도 나도 싸이질, 블로그질 하는 걸 갖고 '인터넷 강국'이라는 수사만 남발할 게 아니라, 그 인터넷망으로 뭘 하느냐를 고민할 때다. 물론 블로그도 유용한 정보 교환의 수단이지만 이제 한발 더 나갈 때도 됐잖아? 그런 의미에서 과학 관련 podcast를 시작해보고 싶기는 한데, 어떤 포맷으로 해야할지 잘 모르겠는데다가, 결정적으로 꾸준히 할 자신이 없다. orz
이올린에 북마크하기(0) 이올린에 추천하기(0)
TAG podcast
슬슬 그간 가본 도쿄 음식점들이나 정리해볼까나. 뭐니뭐니해도 일식하면 스시, 그래서 소개할 첫번째 음식점은 스시집으로 선정.

상호 : 다이와 스시 (大和

사용자 삽입 이미지

분류 : 일식/스시
평점: ✭✭✭✭✭
간단평: 태어나서 먹어본 스시 중 단연 최고!
백미를 휘날리는(?) 인상 좋은 영감님과 그 아들이 츠키지 시장에서 운영하는 스시집으로 알만한 사람은 다 아는 가게. 새벽 5시반에 문을 열고 그날 재료가 떨어질 때까지만 영업을 하는데 보통 점심 시간 전후로 가게 문을 닫는다. 세번 다녀와본 경험으로는--물론 줄이야 항상 있지만--아침 7시반 기점으로 줄이 특히 더 길어지는 것 같음. 일단 줄이 생기면 기본 30분은 기다려야 하니, 이집의 스시를 맞보고 싶은 분들은 아침 일찍 서두르시라.
가격: 세트메뉴 3500엔 (2010년 1월 기준)
홈페이지: 비공식 홈페이지 http://www.tsukijigourmet.or.jp/17_daiwa/
주소 및 지도: 日本東京都中央区築地 5丁目 2-1-6

View Larger Map
이올린에 북마크하기(0) 이올린에 추천하기(0)

동면

일상다반사 2010/02/18 17:14
얼마 안 된 거 같은데 한달이 넘게 글을 안 썼네. -_-a 동면에서 깨어나야겠구나, 크허.

일단, 이몸은 여전히 일본에 있습니다. 2월 1일 귀국했다가 10일에 재출국, 4월 10일까지 이곳에 머물 계획. 동면에서 깨어난 기념 포스팅은...

사용자 삽입 이미지

이게 뭐 어쨌냐고? 가격이 무려... 1센트다. 정말이지 풍요의 시대는 풍요의 시대인가보다.

− How can you sell your product at such a low price?
= We lose a little bit on each sale, but we make it up on volume.

@ 물론 배송비가 거의 $3이긴 하다.
이올린에 북마크하기(0) 이올린에 추천하기(0)
TAG 동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