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간격으로 라니 누님
옛날에 고모들이 할머니한테 옷을 선물하면 늘 마음에 안들어하셨다. 색깔이 어떻고 소매 길이가 어떻고 <갑삭해야>하는데 너무 무거워서 틀렸다는 둥, 요란해서 이런 걸 어떻게 입냐는 둥... 교환이 가능한 경우면 몇번이나 바꿔오기 일쑤였고, 그게 아니면 할머니가 손수 리폼을 하시거나 그냥 옷장에 처박히기 쉽상이었다. 고모들은 할머니가 너무 까다롭게 군다면서 웬만해선 옷 선물을 하지 않았던 것 같다. 그나마 울 엄마가 사드리는 옷은 할머니의 취향을 최대한 고려해 골랐으므로 고모들의 안목보다는 성공률이 높았지만, 할머니가 나한테만은 못마땅한 부분을 털어놓을 때가 더러 있었다. "니네 엄마한테는 비밀로 하라"면서...
외할머니도 마찬가지였다. 평생 남자 한복을 맞춰입고 사셨던 외할머니의 외투 선택은 더더욱 까다로울 수밖에 없어 엄마나 이모가 심혈을 기울여 코트를 사거나 심지어 제일 좋은 양모 털실을 수십만원어치 사다가 뜨개질로 떠드려도 결국 그옷은 다른 사람 차지가 되는 경우가 많았다. 해서 친할머니, 외할머니 공히 최고의 선물은 <현금>으로 굳어지고 말았던 것 같다.
나 역시 십수년간 두분 할머니께 선물할 스카프나 목도리, 장갑 따위의 선물을 애써 고르기도 했지만, 정말 마음에 들어하셔서 애용했던 선물은 손에 꼽힐 정도다. 무난하게 가자고 산 내복마저도 색이나 레이스가 요란하다 (내 눈엔 정말 수수한 건데도!)는 이유로 슬쩍 다른 사람에게 양도되었음을 안 뒤론, 나 역시 철저하게 <현금> 선물을 추구하는 수밖에 없었다.
hazelle 누님
3. 굴 어머니 생신선물

신촌 현대백화점을 두 바퀴쯤 돌아본 뒤 렉스털이 트리밍된 캐시미어 숄을 샀다.
남대문시장에서라면 비슷한 물건을 훨씬 싸게 살 수 있었을 터이나,
'선물'이라는 용도로 상품을 구입할 때에는 구매자의 실속보다 훨씬 더 복잡미묘한 기제들이 작동하는 법이다.
각자의 블로그에 선물의 어려움(?)에 대한 이야기를 한 김에 생각나서 선물에 대해 몇마디 해야지 생각만 하고는 바빠서 차일피일 미루다가 오늘 드디어.

일단 이와 관련된 생각을 하게 만든 참고 자료 몇가지 :


선물이란?

일단 이야기를 더 진행하기에 앞서 선물이 정확히 뭔지부터 살펴보자. 네이버 국어사전에 따르면 선물(膳物)을 다음과 같이 정의하고 있다.
[명사] 남에게 어떤 물건 따위를 선사함. 또는 그 물건.
이 사전적 정의에는 명시되지 않았는데, 선물이 선물일 수 있는 핵심적 요소 중 하나는 자신이 댓가를 바라지 않고 어떤 물건을 선사한다는 점일 것이다. 물론 다른 기회에 자신이 선물을 받기를 내심 기대할 수는 있겠지만, 막연한 기대 이상의 암묵적 동의가 이뤄질 경우 우리는 보통 이런 걸 뇌물이라고 한다.

그러면 우리는 어떤 경우에 선물을 할까?

뭐, 선물을 하는 가장 주된 이유는 크게 두가지 정도가 아닐까 싶다. 한가지는 어떤 일--생일, 졸업식, 결혼기념일, 발렌타인 데이 따위--기념하거나 축하하는 경우고, 다른 하나는 감사의 마음을 표시하는 경우다. 후자의 예로는 누군가의 집에 저녁 식사를 초대받은 경우에 빈손으로 가지 않는다거나, 누군가에게 도움을 받은 일이 있으면 그에 대한 답례로 작은 선물을 하거나, 식사 대접을 하거나 따위가 이에 해당된다. 이런 경우 뇌물과 구분되는 지점은 물건을 선사하는 것이 어떤 일이 일어난 사후냐 사전이냐가 중요한 경계가 된다고 볼 수 있겠다. 그러면 어떤 경우에 어떤 선물을 하면 될까?


좋은 선물 vs 나쁜 선물

언제 선물을 하면 되는지는 알겠는데, 뭘 선물하면 되느냐... 이건 전혀 다른 문제가 된다.

예쁘게 포장된 선물을, 뭘까하는 호기심을 안고 풀어봤다가 실망한 기억, 나름 고민하다가 '아하, 그래, 이게 좋겠다'라며 고른 선물에도 정작 선물을 받은 사람의 반응은 뜨뜨미지근해서 '에이씨, 선물 한번 잘 하기 진짜 어렵네' 싶었던 기억 다들 몇번쯤은 있을 거다. (이 몸은 그런 기억이 너무 많다. 온갖 날짜 챙기고, 선물 주고 받는 걸 포기(?)한 이유가 모르긴 몰라도 거기 있지 않나 싶다, ㅋ.)

사실 좋은 선물은 이런 거다라고 딱히 정의하기 매우 어렵다. 단순히 실용적이냐, 아니냐로 구분되는 것도 아니고, 딱히 싸냐, 비싸냐가 중요하냐면 그렇지도 않다.

  • 찻잔, 술잔을 비롯한 각종 식기는 괜찮지만 종이컵 같은 일회용 식기는 이상하다.
  • 책은 괜찮지만 A4 용지 한박스는 이상하다.
  • 장갑은 괜찮지만 양말은 이상하다.
  • 옷은 괜찮지만 (집들이 같은 특수한 경우를 제외하고) 세탁기 세제는 이상하다.
  • 향수는 괜찮지만 샴푸는 이상하다.
  • 랩탑 가방은 괜찮지만 프린터 잉크는 이상하다.
  • 면도기는 괜찮지만 청소기는 이상하다.
  • 밖에서 맛있는 식사대접을 하는 것보다, 맛없어도 직접한 준비한 식사가 좋다. (물론 너무너무 맛없는 경우엔 이야기가 달라진다.)
  • 식사 초대 받았을 경우에, 같이 먹을 디저트나 같이 마실 술한병 사가는 건 괜찮지만--이때도 아주 친한 사이가 아니라면 양주나 와인은 괜찮지만 소주는 뭔가 좀 어색하다--, 밥 얻어 먹고 현금 내고 오는 건 완전 에러다.
  • 그 외에도 상품권은 괜찮지만 현금은 많은 겨우에 좀 이상하다.
  • ...
(리스트 추가 받습니다, -_-a.)

기준이 뭔지 정확히는 모르겠는데도, 이래저래 뭔가 심정적으로 이상한 것들 가려내다보면 옷, 장신구, 책, CD 등의 표준 아이템들이 있고, 십수년전에 구두상품권, 도서상품권에서 출발해서 최근에는 다양한 종류의 상품권들이 나오고 있다. 뭐, 결국엔 선물을 받는 사람이 좋아하느냐, 좋아하지 않느냐가 좋은 선물과 그렇지 못한 선물을 구분짓는 거의 유일한 기준이다. 그런데 선물을 받는 사람이 좋아하는 것에는 단순히 그 물건을 좋아하느냐 이상의 함의가 조금 있다. 대개 선물을 받는 사람이 선물하는 사람의 '정성'을 느끼느냐가 중요한 변수로 작용한다.

예를 들어, 갑이 iPod Touch(지금 컴퓨터 옆에 눈에 띄는 게 이거라서 이걸 예로 들었다)를 갖고 있는데, 을이 이를 매우 부러워하고 있었다고 하자. 그런데 iPhone이 발매되면서 갑이 iPhone을 새로 장만하고, 을에게 이 iPod Touch를 선물하는 경우를 생각해보자. iPod Touch라는 물건 자체는 을이 매우 갖고 싶어하던 물건이지만, 갑이 을에게 선물하는 정황에 따라 을은 이 선물을 고마워할 수도 있고, '뭐야, 나는 지가 쓰던 떨거지나 가지라 이거야?'라며 기분 나빠할 수도 있다.

그래서 선물을 하는 사람은 선물을 받는 사람의 취향을 정확히 파악하고, 두 사람이 어떤 관계인지를 정확히 이해하고 있는 게 중요하다. 자칫 잘못하면 돈은 돈대로 쓰고 욕은 욕대로 먹는다고... 그렇지만, 이걸 충분히 숙지하고 있어도 때론 나쁜 선물을 하게 된다.


Thought shouldn't be all that counts


이미 충분히 어려운데, 정작 일을 더 꼬이게 만드는 점이 또 있다. 사회적 통념상, 특히 친하지 않은 관계라면 더더욱, 선물을 받을 경우 선물이 마음에 안 들어도 싫은 내색을 하지 않는 게 예의바른 태도로 간주된다. 여기서 다시 한번 등장하는 게 '정성'이다. It's the thought that counts, right?

받은 선물을 싫어하면 선물한 사람의 정성을 무시하는 것처럼 보인다는 거다. 그러다보니, 나쁜 선물도 선물을 주고 받는 자리에서는 좋은 선물로 둔갑한다. 그렇지만, 그런 좋은 선물들은 그 자리에서'만' 좋은 선물이란 게 문제고, 나쁜 선물을 좋은 선물로 만들어 버림으로써 다음번에 나쁜 선물을 하는 걸 예방하지 못한다는 게 또 다른 문제다. <Scroogenomics>를 쓴 Joel Waldfogel 교수의 고민은 여기에 있다. 중요한 일들을 기념하기 위해 마음 훈훈하게 선물 주고 받는 건 좋은데, 이게 실제로는 엄청난 낭비라는 거다. Waldfogel 교수의 주장을 조금 따라가보자.

일반적으로 사람들이 물건을 살 때에는 어떤 물건이 그 가격에 상응하는 가치 혹은 그 이상의 가치를 갖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보자. 날씨가 쌀쌀해져서 오리털 잠바를 사기 위해 동대문 시장을 돌아다녀보니, 맘에 드는 물건이 있는데, 똑같은 제품의 가격이 10만원부터 20만원까지 천차만별이라고 해보자. 대부분의 사람들은 10만원을 주고 이 옷을 살 경우, 10만원의 가치가 있는 물건을 샀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이건 정확한 계산이 아니다. 예를 들어 이 잠바를 제일 싸게 파는 곳의 가격이 11만원이었다면 안 샀을까? 아마 11만원짜리 물건이라고 생각하고 별 생각없이 샀을 것이다. 12만원이었다면? 15만원이었다면? 20만원이었다면? 100만원이었다면? 이렇게 가상의 가격을 생각했을 때, '이 가격 이상은 못 주지'라고 선을 긋는 곳이 있을 거다. 그 마지노선이 15만원이라면? 이 경우 소비자는 경제학적으로는 15만원과 10만원의 차액만큼의 이득을 봤고, 이를 소비자 잉여(consumer surplus)라고 한다.

대부분의 사람들은--소비자에게 유리하게 상황을 해석하다보니--최저가를 기준으로 다른 곳에서 필요 이상의 폭리를 취한다고 생각하는데, 꼭 그런 건 아니다. 시장에서 가격 흥정을 하기보다는 정찰가에 익숙한 현대인들에게는 다소 반직관적이게도 어떤 상품의 매매가 이뤄지는 가격은 소비자가 지불할 용의가 있는 최대가격(X)과 같거나 그보다 낮고, 판매자가 받고자 하는 최소한의 가격(Y)과 같거나 그보다 높다. 그래서 X가 Y보다 크다면, 같은 상품에 대해서도 누가 더 흥정을 잘 하느냐에 따라 가격대는 다양하게 형성될 수 있다. 물론 X가 Y보다 더 작다면 거래 자체가 성립하지 않는다.

소비자 잉여와 관련하여 조금 다른 예를 들어보자. 갑이 어느날 길을 가다 옷가게를 지나치는데 유독 맘에 드는 스웨터를 발견, 그런데 가격을 확인해보니 20만원. 15만원 정도를 예상했던 갑, "에이, 너무 비싸다"라며 돌아선다. 다음주에 그 가게를 지나치는데 재고 정리를 한다며 50% 세일 사인이 붙었네. 들어가보니 전의 그 스웨터가 남아 있길래 10만원에 한벌 사고는, 싸게 샀다고 좋아한다. 이런 경우 사람들은 이 물건을 얼마나 싸게 샀는지에 대해 생각할 때 20만원짜리를 10만원에 샀으니 10만원을 벌었다고 생각한다.

그렇지만 경제학에서는 이렇게 계산하지 않는다. 갑이 이 스웨터를 15만원까지는 지불할 용의가 있었기 때문에 갑에게 이 스웨터는 15만원의 가치를 갖는 물건이다. 이 가격의 정찰가가 20만원이었다는 사실은 갑에게는 중요하지 않다. 갑은 15만원어치의 가치가 있다고 판단한 물건을 10만원에 샀으니, 20-10=10만원이 아니라 15-10=5만원어치의 소비자 잉여가 발생했다. 반면에 당장 돈은 없어서 한주 미뤘지만, 애초에 20만원에 이 스웨터를 살 의향이 있던 을이 세일을 통해 이 스웨터를 샀다면, 을의 소비자 잉여는 10만원이 맞다.

소비자 잉여란 어떤 정해진 양이 아니라, 개개인의 기호에 따라 동일 상품에 대한 가치는 다 다르기 때문에, 각 개개인이 그 상품을 구입함으로써 얻을 수 있는 잠재적/심리적 이익이다. 여기서 핵심은 이 소비자 잉여라는 게 철저하게 개개인의 선호도에 달렸다는 거다. 즉, 너는 오리털 잠바를 10만원 주고 살지 몰라도, 나는 추위를 별로 안 타기 때문에 오리털 잠바가 별 쓸모가 없다면? 글쎄, 오리털 잠바의 가격이 5만원까지 떨어지면, 정말 정말 추운 날씨를 대비해서 하나 정도 구입할지도... 그렇지만, 겨울철에 오리털 잠바보다 스웨터를 훨씬 즐겨 입을 거란 걸 알기 때문에, 10만원을 주고도 스웨터 한벌은 사 입게 되는 거다.

자, 이제 내가 내 돈 10만원을 써야 한다면, 당연히 오리털 잠바가 아니라 스웨터를 사입을 거다. 그게 나한테는 더 많은 소비자 잉여, 즉 가치를 발생시키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런 나의 취향과 선호도를 정확히 알지 못하는 사람이 10만원을 들여 나한테 오리털 잠바를 선물했다면? 나는 그 선물을 받아들고 좋아하는 척을 할 수는 있겠지만, 누군가는 오리털 잠바를 위해 10만원을 지불했음에도, 그 상품의 최종 소비자인 나는 그 상품을 5만원짜리로 취급하기 때문에, 실제로는 5만원어치의 가치가 손실된다.

그렇지만 오리털 잠바를 만든 사람은 10만원을 벌었으니 누군가에게는 득이 된 거 아님? 그건 맞는데, 내게 스웨터를 사줬더라면, 똑같은 10만원은 누군가가 벌어들였고, 최종 소비자인 나도 더 이익을 봤을 테니, 어차피 한정된 자원을 이용해서 다양한 상품을 생산, 판매하는 사회 전체를 봤을 때, 여전히 내게는 스웨터를 선물하는 게 이익이란 거다.

선물 하나 받은 게 맘에 안 들어서 잘 사용안 하는 거야 별거 아니라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이게 누적된다면 전혀 다른 문제다. Waldfogel 교수는 바로 이 점에 착안해서, 사람들이 매년 받는 크리스마스 선물들의 만족도를 조사해본 결과 실제로 15% 정도의 가치 손실이 꾸준히 발생하더라는 거다. 미국에서 크리스마스철에만 매년 수백억달러에 해당하는 다양한 자원과 노동력이 쓰레기통으로 버려지는 것과 마찬가지라는 것.


그래서 어쩌라고?

Waldfogel 교수는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몇가지 제안을 하는데, 이 제안들의 핵심은 '기부'를 하라는 거다. 응? A에서 Z로 건너뛴 기분인데?

자, 설명을 조금 해보자. 단순히 경제학적 가치만 따진다면 가장 좋은 선물은 현금이다. 최종 소비자가 최대의 효용을 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앞서 말했듯, 현금은 적어도 오늘날의 사회적 기준에서는 선물로서 주고 받기엔 영 찜찜한 물건이다. 그렇다면 현금과 유사한 형태의 선물을 찾아보자. 온갖 상품권? 이것도 괜찮은데, 이것 역시 '정성'이 없다고 못마땅해하는 사람도 많고, 실제로 상품권의 경우에도 도난, 분실, 혹은 상품권의 용도가 맘에 안 들어서 등등의 이유로, 상품권 판매량과 실제 상품권을 통해 상품 구입이 이뤄지는 양을 비교해보면 10% 정도의 가치 손실이 발생한다고 한다.

그렇다면, 다른 대안은? 최종 소비자가 현금을 선물로 받을 경우 그 현금으로 무엇에 소비할지를 예측하는 거다. 선물로 현금을 받는다는 건, 실질적으로는 소득이 증가하는 것과 같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경제적으로 풍요로와짐에 따라 소비 패턴이 변한다. 이를 나타내는 대표적인 개념이 엥겔지수인데, 간단히 말하면 소득이 늘어남에 따라 소득 전체에서 생필품 구입의 비중은 줄어든다는 거다. 반면에 문화 생활이나 기타 사치재의 소비는 증가한다. 바꿔말하면 생필품의 경우 없이는 못 살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구입하지만, 돈이 더 많다고 굳이 더 많이 소비하게 되지는 않는 것들인데 반해, 사치재의 경우 돈이 없어서 못 사서 쓰지만, 돈이 더 많다면 더 많이 향유하고 싶어하는 것들이라는 것.

그런데 Waldfogel 교수에 따르면 소득 증가에 따른 선물을 위한 소비 증가율을 보면, 거의 대부분의 국가에서 선물은 사치재가 아닌 생필품에 가깝게 취급되고 있다는 거다. 바꿔 말하면, 서로에게 선물하는 건 최소한의 예의/의무감에 의한 형태라는 거다. 반면에 기부금은 확실히 사치재의 성향을 띈다고 한다. 즉, 누구나 다 그렇지는 않지만 평균적으로는, 사람들이 돈이 조금 더 있다면 기부를 더 많이할 거라는 거다.

조금 더 정확히 말하자면, 단순히 기부의 금액이 늘어나는 게 아니라, 전체 소득에서 기부가 차지하는 비중이 늘어난다. 누군가 나한테 현금을 많이 주면 줄수록, 이 현금 중 일부를 기부할 확률은 높아진다고도 말할 수 있겠다. 이런 패턴을 고려했을 때, 선물로 기부 상품권--선물을 주는 사람이 정한 액수를 선물 받은 사람이 원하는 재단에 기부할 수 있는 상품권--을 주는 게 좋겠다는 이야기1. 선물 주는 사람도 기분 좋게 선물할 수 있고, 선물 받는 사람도 기분 좋게 쓸 수 있다능... 국내에 '기부상품권'이 있는지 모르겠는데, 무척 괜찮은 발상 같다. 기부상품권이 없다면 일단 하나 만들어야할 텐데... 어디부터 시작해야 하나? 암튼 오늘도 누군가에게 뭔가를 선물할 일로 고민하는 영혼들이 다 같이 동참했음 좋겠다.

1 이 결론에 도달하는 방법은 Waldfogel 교수의 논리를 본인이 살짝 재해석/편집했음을 밝혀 둡니다.

@ 일단 기부/후원할 만한 조직부터 뽑아보는 게 순서일 듯, 추천할만한 단체 아는 분들, 리플 부탁.
  • 고래동무 그러고보니 재작년에 1년치 일시불로 후원 시작한 후원 기간이 작년에 끝났을 텐데, 작년 언제 끝났지? 까먹고 갱신 안 했는데, 올해 이거부터 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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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AG 선물
폴 사뮤엘슨 향년 94세에 타계.

@ 제목을 '어머나'라고 붙였는데, 94세니 어머나라 할 일은 아니구나. ㅡㅠㅡ 암튼 명복을 빕니다.
@@ 폴 사뮤엘슨이 누구삼? 간단히는 경제학에 수학을 접목시킨 공로로 미국인으로는 최초로 1970년 노벨 경제학상을 수상한 미국의 경제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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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번에 수요곡선과 공급곡선, 그리고 이를 통해서 시장에서 가격이 결정되는 과정을 살펴봤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간혹 뉴스에서 이런 소식을 접합니다, '조류독감이 발생하여 닭값이 떨어졌다' 내지는 '태풍으로 쌀농사를 망쳐서 쌀값이 올랐다.' 그리고 이런 소식을 접할 때면 거의 누구나 '조류독감으로 인해 사람들이 닭고기를 기피하니까 닭에 대한 수요가 줄었을 거고, 그래서 닭값이 떨어졌구나', '태풍으로 농사를 망쳤으니 쌀 공급이 (평소에 비해) 부족할 거고, 그래서 쌀값이 올랐구나'라고 직관적으로 이를 이해합니다. 그런데 이걸 수요곡선-공급 곡선을 통해서 어떻게 이해해야 될까요?

이에 대한 답을 하기에 앞서 다음의 경우를 생각해봅시다. 정부에서 담배가 몸에 해롭다는 연구결과를 입수하고는 국민들이 담배 소비량을 줄이기를 희망합니다. 이를 위해서는 결국 담배의 수요가 줄어들어야겠지요. 앞서서 우리는 어떤 물품의 가격이 오르면 그 물품에 대한 수요가 줄어든다고 했습니다. 이 원리를 이용하기 위해 정부에서 담배에 대한 세금을 올리는 것이 한가지 방법입니다. 그러나! 그게 유일한 방법은 아닙니다. 담배 가격은 그대로 둔 상태에서 정부가 담배의 해악에 대한 공익광고를 지속적이고 효과적으로 전개해나갑니다. 그러면 사람들은 "담배의 가격과는 전혀 관계없이" 건강을 염려해서 담배를 덜 피우기 시작합니다. 이 경우에는 조류독감이 닭값을 떨구는 것과 똑같은 이치로 담배가 건강에 나쁘다는 이유로 담배의 수요가 줄어들고, 그로 인해 담배 가격이 떨어집니다!

정부의 첫번째 정책에서는 가격이 오른 결과로 담배의 수요가 줄어드는 현상이 나타났고, 정부의 두번째 정책에서는 담배의 수요가 줄어든 결과로 담배의 가격이 떨어지는 현상이 나타났습니다. 그런데 일반적으로는 가격 변화와 수요 변화 사이의 시차를 정확히 가려내기 어렵기 때문에 보통의 경우 담배 수요가 줄었다는 한 가지 상황에 대해 1) 가격이 올랐다와 2) 가격이 내렸다는 두가지 서로 다른 관측을 하게 됩니다. 결국 수요와 가격 변화의 선후관계를 살피지 않는다면, 수요와 가격 사이의 상관관계를 정확히 이해할 수 없습니다.

이를 그래프를 통해 다시 살펴 봅시다.

자, 날씨가 점점 쌀쌀해지고 있으니, 붕어빵 이야기를 해봅시다. 여름철에는 붕어빵을 찾아보기 어렵지만, 겨울만 되면 (요새는 좀 덜하지만) 동네마다 붕어빵 노점상이 등장하죠. 여름에야 날도 더운데 따뜻한 붕어빵 따위 생각도 하고 싶지 않지만, 날씨가 추워지면 나름 먹음직하죠. 똑같은 가격의 붕어빵을 여름엔 안 사먹다가도 겨울엔 사먹게 됩니다. 붕어빵의 수요가 증가하는 거죠. 이를 그래프로 표현하면 아래와 같고 수요 곡선이 오른쪽으로 이동한다고 합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수요 곡선이 우로 이동함에 따라서 수요 곡선과 공급 곡선이 만나는 점은 공급 곡선을 따라 우측 상향으로 이동합니다. 이 지점이 위로 올라갔다는 것은 가격이 올랐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리고 가격이 상승함에 따라 공급량이 증가하면서 두 곡선이 만나는 점이 오른쪽으로 이동하는 거죠. 즉, 수요 증가가 가격 상승을 부추기고, 이에 반응하여 생산자는 공급량을 증가시킴으로써 새로운 가격 및 수량의 평형점을 이룬다는 겁니다.

자, 그러면 조금 다른 경우를 생각해 봅시다. 작년 겨울과 올해 겨울 사이에 붕어빵의 수요는 크게 변하지 않았는데, 올해 밀가루 농사가 잘 안 돼서 밀가루 값이 올랐다고 해봅시다. 이 경우에 붕어빵 생산 단가가 오르게 되므로, 붕어빵 장사는 붕어빵 공급량을 줄이게 됩니다. 이 경우에는 앞선 예에서와는 달리 공급 곡선이 움직이게 되는데 이는 아래 그래프와 같습니다. 여기서 한가지 주의할 점은, (앞선 예에서처럼 수요 증가로 인해) 붕어빵의 판매가격이 변하면 공급량이 한가지 공급곡선을 따라 움직이지만, 붕어빵의 생산 가격이 변할 때는 공급 곡선 자체가 달라진다(혹은 이동한다)는 점입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이렇게 공급 곡선이 왼쪽으로 움직일 경우 수요 곡선과 만나는 점은 좌측 상향으로 이동하죠. 이는 공급의 감소가 가격 상승을 부추기고, 이 가격 상승에 반응하여 수요가 감소하는 현상을 나타내는 겁니다. 반대로 공급이 증가한다면 가격은 하락하고 수요가 증가하겠죠.

앞선 글에서는 다른 모든 조건이 동일할 경우, 가격 변동이 수요나 공급에 어떤 영향을 끼치는지, 그리고 이를 각각 수요 곡선, 공급 곡선을 통해 표현할 수 있고, 이를 통해 시장에서 가격이 형성된다는 이야기를 했습니다. 그렇지만 이렇게 시장에서 형성된 가격은 그렇게 고정되는 것이 아니고, 가격 이외의 요인들, 예를 들면 계절이나 유행, 혹은 소득 증가나 감소, 생산 비용의 증가나 감소 등이 변함에 따라 수요 곡선과 공급 곡선 자체를 변화시키기 때문에 시장에서의 가격이 변한다는 것을 살펴 봤습니다.

다음에는 수요-공급-가격 변화의 단기적 효과와 장기적 효과 및 수요/공급의 탄력성에 대해 이야기해보고, Sumner 교수가 말한 identification problem이 수요-공급 곡선과 어떻게 얽히는지 차례로 알아 보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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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ow Did Economists Get It So Wrong? by Paul Krugman
Even a Blind Squirrel Occasionally Finds a Nut by Peter Boettke
Krugman vs. Blanchard on the State of Macro by Arnold Kling
But the Economists DIDN'T Get Everything Wrong by Justin Fox
Mistaking Beauty for Truth by Sean Carroll
How Did Krugman Get It So Wrong? by Scott Sumner
A Few Notes on My Magazine Article by Paul Krugman
The Recalculation Model, Simplified by Aronold Kling
Economists and the Crisis by Philip Lane

추가 링크
Krugman on Economics by James Kwak (이 양반은 곽씨성인데 영어로 써놓으면 크왁!이 돼서 너무 웃긴다, ㅋㅋㅋ.)
Waiting for the Death of the Chicago School, and the Keynsian School also, Redux by David Merkel
Krugman, Fox, McCain, Prescott, and Company by Brad DeLong

@ 블로그 읽는 것만 해도 시간이 모자랄 정돈데, 이 양반들은 진짜 연구들은 다들 어떻게 하시나 몰라. ㅡㅠㅡ
@@ 맨 첫번째의 Krugman의 글 번역중인데 길어서 며칠째 붙잡고 있는 중. -_-a 번역 끝내는대로 올리겠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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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번에 수요-공급에 대한 Scott Sumner 교수의 글을 소개하면서 수요-공급 곡선에 대해 설명할 필요를 느꼈기에 이에 대해 간단히(과연?) 소개해보죠. 일단 수요 곡선 이야기부터...

아주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수요 곡선은 일반적으로 아래의 그래프처럼 생겼습니다. 그래프의 수평축이 수요, 수직축이 가격을 나타내는데, 이 그래프를 읽는 방법은 다른 모든 조건이 동일할 때에 '어떤 물품의 가격이 내려가면 그에 대한 수요가 증가하고, 가격이 올라가면 그에 대한 수요가 감소한다'가 됩니다. 그래프 상의 두 점 A와 B를 비교해봅시다. A가 B에 비해 가격이 비싸죠? 따라서 사람들이 이 제품을 구매하는 양이 A점인 경우에 B점인 경우보다 더 적습니다. 수요 곡선이 이런 모양일 때, 수요 곡선은 아래로 기울어있다(slopes downward)고 하는데, 기본적으로는 백화점에서 세일할 때 사람이 몰리는 현상을 반영한 그래프라고 생각하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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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 그럼 공급 곡선에 대해 살펴봅시다. 일반적인 공급 곡선은 수요 곡선과 반대로 아래 그래프처럼 생겼고, 수요 곡선은 위쪽으로 기울어있다(slopes upward)고 합니다. 다른 모든 조건이 동일할 경우 어떤 물품의 가격이 올라가면 그에 대한 공급은 증가하고, 반대로 가격이 내려가면 그에 대한 공급은 감소합니다. 옥수수값이 오르고 밀가루 가격이 떨어질 경우 밀농사를 짓던 사람들이 옥수수 농사로 바꾸는 경우가 이에 해당합니다. 가격이 오른 상품에 대한 공급을 늘리고, 가격이 떨어진 상품에 대한 공급은 줄이는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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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 그러면 가격은 어떻게 결정되는가? 위의 두 그래프를 한꺼번에 그려봅시다. 그러면 아래 그래프에서처럼 두 그래프가 교차하는 점이 있죠? 그 점에서의 수량과 가격이 이 제품에 대한 적정한 가격과 생산량-소비량이 되는 겁니다. '가격은 수요와 공급에 의해 결정된다'는 건 '수요 곡선과 공급 곡선의 두 그래프가 만나는 지점이 있다'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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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요(공급) 곡선을 올바로 이해하는 중요한 점 중 하나는 다른 모든 조건이 동일한 경우에 가격 변화에 따라 소비자(생산자)가 이 가격 변화에 어떻게 대응하는가를 나타내는 그래프라는 점입니다.

즉, 소비자의 입장에서 자신의 다른 경제적 조건이 전혀 변하지 않은 상황에서 특정 제품에 대한 가격 변화를 경험했을 때 이에 대해 어떻게 반응할 것인가를 고려한 것이 수요 곡선인 겁니다. 예를 들어 백만명의 사람들의 일주일 우유값에 대한 예산이 평균 삼천원이라면, 우유값이 리터당 이천원이라면 일주일에 1.5리터를 사먹겠지만 우유값이 삼천원으로 오르면 1리터만, 천원으로 떨어지면 3리터를 사서 먹기로 결정하게 되는 것 따위가 그것이지요.

반면에 생산자의 경우에는 왜 가격이 오르면 공급량을 늘릴까요? 앞선 글에서 한계비용에 대해 소개를 했는데, 보통의 경우 어느 시점을 넘어서면 생산량을 늘릴 수록 한계비용, 즉 제품 한개의 추가생산단가가 늘어나게 되기 때문에 가격과 한계비용이 맞는 지점에서 생산을 멈추게 됩니다. 예를 들어 낙농업자가 우유를 생산하는데, 처음 천톤의 생산비용이 10억이라고 해봅시다. 이 낙농업자가 우유를 리터당 천원이나 그 이상에 팔 수 있다면 우유를 생산해도 손해를 보지는 않습니다. 그런데 천톤을 추가하여 총 이천톤의 우유를 생산하는 비용은 20억이 아니라 22억, 삼천톤의 생산비용은 36억이라면 리터당 천원의 우유값으로는 2천톤을 생산하면 2억을 손해보게 됩니다. 그렇다면 우유 생산을 천톤에서 멈추는 게 좋겠죠. 그렇지만 우유를 리터당 천백원이나 그 이상의 값을 받고 팔 수 있다면 우유를 이천톤까지 생산해도 되겠지만 삼천톤까지 생산하는 건 좋은 생각이 아닙니다. 즉, 가격이 올랐다는 이야기는 생산자의 입장에서 가격 상승분만큼 한계비용이 상승하는 걸 감당할 수 있기 때문에 그만큼 추가 생산을 하게 되는 것이죠. '생산자는 언제나 물건을 한개라도 더 팔기를 원한다'고 생각하지만, 여기에 숨어 있는 중요한 가정 한가지는 판매가가 생산단가보다 높아야 한다는 것이죠.

다시 한번 강조하자면 여기서 핵심은 수요곡선의 경우 소비자는 생산자와 생산행태와 무관하게 자신의 주어진 경제적 조건 하에서 특정 제품을 X원에 살 수 있다면 그 제품을 얼마나 많이 사서 쓸 것인가, 또 공급곡선이란 생산자가 소비자의 소비행태는 전혀 신경쓰지 않은 채 자신의 생산비용을 감안하여 특정 제품을 X원에 팔 수 있다면, 그 제품을 Y개 생산하면 되겠다는 결정을 반영한 그래프라는 점입니다.

그런데 뭔가 조금 이상합니다. 주어진 제품에 대한 수요곡선과 공급곡선이 정해져 있다면, 가격도 한가지로 정해집니다. 그렇다면 '가격이 변함에 따라 소비자나 생산자가 수요와 공급을 변화시킨다'는 말은 무슨 뜻일까요? 가격이 정해졌는데, '가격이 변하면'이라는 조건은 도대체 어떤 쓸모가 있나요? 가격이 변하긴 변하나요? 변한다면 어떻게 왜 변하죠? 바로 이 질문들 속에 일전에 소개한 Scott Sumner 교수의 글의 핵심이 담겨 있습니다. 이 질문들에 대한 답변은 다음에 이어서 하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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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새 수요-공급에 대해 이야기를 조금 했는데 마침 벤틀리 대학의 스캇 썸너 교수가 자신의 블로그에 이에 대해 쓴 글이 있어서 소개. 쉽게 쓴 글이지만 그래도 수요-공급 곡선이 뭔지 정도는 알아야 이해 가능한 수준. 원문은 Why is supply and demand so confusing? 이하는 원저자 동의 없이 번역. -_-a

수요-공급은 왜 이리 헷갈릴까?

뭐, 남들은 별로 안 헷갈려할지 모르겠지만, 확실히 나한텐 헷갈린다. 몇년전 Bentley의 학력고사(? placement exam)에 "함정이 있는 문제"가 있다는 사실을 발견하면서 이 모든 문제가 시작됐다. 그 문제의 문제는 커피가 건강에 나쁘다는 이야기가 퍼지기 시작하면 차의 수요에 무슨일이 생기겠냐는 거였다. 물론 여기서 커피와 차는 상호 대체 가능한 품목이다. 커피가 건강에 나쁘다면 커피 가격이 떨어지기 시작할 거고, 그러면 당연히 차의 수요는... 흠, 조금만 더 생각해보자.

그로부터 몇년 후, 만큐(역자주: 하버드 대학의 경제학자, 만큐의 블로그)의 미시경제학 교과서 4장의 도입부에 이런 설명을 발겨했다:
냉동 요거트의 가격이 떨어졌다고 해보자. 수요의 법칙에 따르면 사람들은 냉동 요거트를 더 많이 사먹게 될 거고, 그와 동시에 아이스크림은 덜 사먹게 된다.
자, 이걸로 커피/차 예시는 해결된 셈이다. 커피가 건강에 나쁘다면, 커피값은 떨어질 거다. 커피와 차는 서로 대체 가능한 상품이니까, 커피 값이 떨어진다는 얘기는 사람들이 차를 덜 살 거란 이야기가 되는군.

그런데 정말 그럴까? 만큐의 요거트 예에서 가격이 떨어지면 "공급의 법칙에 따라 사람들이 요거트 판매(생산)를 줄여야 하지 않을까?" 그리고 "논리적"으로 따졌을 때 어떤 상품의 판매량과 구매량은 같아야 한다면, 어딘가 아귀가 맞지 않잖아.

4장의 "Problems and Applications"로 가면 이야기가 더 복잡해진다. 12번 문제를 보자:
뉴욕타임즈 기사에 따르면 프랑스의 샴페인 업계가 성공적인 마케팅 전략을 펼쳤다고 한다. 기사에 따르면 "많은 (샴페인) 사업가들이 비싼 샴페인 가격에 들떠 있다고 한다. 그러면서도 가격이 더 폭등해버리면 수요가 급감할 거고, 그러면 가격이 다시 폭락할 까봐 걱정하고들 있다"고 한다. 이 상황에 대해 이 사업가들은 잘못된 판단을 하고 있다. 뭐가 잘못된 걸까?
처음에는 마케팅이 샴페인 수요를 증가시켰고, 그로 인해 가격과 공급 모두 오른 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만큐는 앞서 가격이 오르면 사람들이 요거트를 덜 산다고 하지 않았던가? 이는 샴페인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로 적용돼야 할 텐데... 그렇담 여기에도 뭔가 모순이 있군.

이 내용은 전부 제3판에 있던 이야기다. 그런데 4판에서는, 스탈린 시대의 단체 사진에서 얼굴을 지운 것처럼, 12번 문제는 불가사의하게 사라지고 없었다. 다른 문제들은 전부 그대로였는데 말이다. 나는 만큐에게 내가 가장 좋아하는 문제가 왜 없어졌냐고 이메일로 문의를 했고, 그는 교재를 사용하는 교수들의 피드백을 받고 그에 따라 개정판을 내놓는다고 알려줬다.

요거트 이야기는 4판에도 그대로 있었다. 아마 대부분의 교수들이 요거트 가격이 오르면 소비가 줄어든다는 데에는 동의하면서도, 12번 문제에서처럼 수요-공급을 정확하게 다루는 건 "매우 헷갈린다"고 판단한 모양이다.

그때부터 나는 내가 소수자 중 하나라는 걸 눈치채기 시작했다. 많은 경제학자들은 "가격 변화에 따른 논리 전개"를 좋아하는 것 같다. 예를 들면 다음과 같다:

1. 이율이 떨어지면, 투자가 .... 될 것이라 예상할 수 있다.
2. 유가가 떨어지면, 소비자들은 .... 할 것이다.
3. 달러 가치가 떨어지면, 수입/수출/경상수지는 .... 될 것이다.

이 문제들을 하나씩 살펴보자. 올해 이율은 굉장히 낮은 수준까지 떨어졌고, 투자 역시 곤두박질쳤다. 그렇다면 낮은 이율은 투자 감소를 낳는다는 이야기군. 올해 유가도 바닥을 쳤고, 기름 소비량도 줄었다. 그렇다면 기름값이 떨어지면, 기름 소비가 떨어진다는 거고... 자, 이쯤에서 사람들은 뭔가 못마땅해하면서 "이봐, 다른 변수들을 고정시켜 놓지 않았잖아. 뭔가 다른 요인이 있는 거라고"라고 할 거다.

그렇지만 진짜 문제는 그게 아니다. 물론 다른 뭔가가 변했겠지. 그렇지 않았다면 애초에 가격/이율/환율이 변할 리가 없잖아! 방금 든 예시들에 "함정" 따위는 없다. 이들은 전부 수요-공급 법칙의 기본이다. 수요-공급 곡선을 그려보자. 그리고 공급 곡선을 왼쪽으로 밀어보자. 가격이 낮을 때 소비도 낮다는 걸 단번에 알 수 있다.

그럼 우리는 가격에 대해 뭘 알고 있는지부터 다시 생각해보자. 공급 증가로 인해 가격이 내려가면, 소비(수요)가 증가하고, 수요가 떨어져서 가격이 떨어졌다면, (당연히) 소비는 감소한 것처럼 보인다. 바꿔말하면, 가격(혹은 이율이나 환율) 변동이 발생할 경우, 우리는 소비가 증가할 확률이 50%, 감소할 확률도 50%임을 알 수 있다. 뭐, 여기까지만 알아도 진전이라면 진전이 있군.

최근에 작금의 낮은 유가는 소비자로 하여금 에너지를 낭비하게 만들 것이므로 "좋지 않다"는 기사를 읽었다. 이것도 꽤나 흥미로운 시각이란 말이지. 왜냐하면 내 생각엔 작금의 낮은 유가는 소비자들이 에너지를 절약하고 있는 걸 반영한 결과기 때문에 좋지 않거든. 사람들이 왜 갑자기 에너지 "절약"을 하냐고? 다들 실직했거든.

간혹 2003년에 Fed(연방준비은행)가 이율을 1%까지 낮추는 바람에 부동산 거품을 키웠다며, Fed가 큰 실수를 한 거라는 이야기를 접하곤 한다. 나는 2003년에 이율이 낮았던 건 투자가 낮아서 그랬는 줄 알았는데...

사람들은 환율 문제에 있어서는 정말 모든 걸 꿰뚫었다는 듯이 말한다. 솔직히 고백하자면, 나는 개방 거시 경제에 대해서는 아는 게 없지만, 사람들이 달러화 가치 추락의 의미를 이야기할 때면, 사람들이 무슨 이야길 하는 건지 궁금해진다. 달러가치가 애초에 왜 떨어졌는데? 조금 더 안다는 전문가들은 외국인들이 갑자기 달러에 매력을 느끼지 않는 시나리오에 대해서도 이야기한다. 자, 그럼 이제 원인을 알았으니, 무슨 일이 일어날지도 알 수 있겠군. 그런데 외국인들이 왜 달러를 원하지 않지? 더 이상 미국을 상대로 경상수지흑자를 내고 싶지 않단 이야긴가? 그렇다면 그건 왜지? 저금을 조금 덜 하고, 투자를 더 많이 하려고? 그들이 무역수지 균형을 잡고 싶어한다면 우리한텐 어떤 영향이 있는 거지? 결국 우리 무역적자가 없어질 거라는 것 외에는 아무것도 모르는 거 아닌가? 그러면 그게 미국 경제엔 어떤 영향이 있다는 거지? 수출 증가? 아니면 수입 감소? 달러화에 대한 신뢰도가 떨어지면 Fed에선 NGDP1를 타겟삼아 통화정책을 펼친다고 해보자? 근데 그 다음엔? 자, 54년간 온갖 예측들이 빗나가는 걸 관찰하면서 이끌어낸, 썸너 규칙을 보자:

사람들이 수차례의 경기순환 동안 어떤 경향이 지속가능하지 않다고 이야기할 때, 그 경향은 이미 지속가능하단 거다. 그게 아니라면, 그 경향이 뒤집히기 전에 우리는 죽고 없겠지. 언젠가는 뒤집힐 수 있겠지만, 그게 뒤집히는 걸 볼만큼 오래 살 게 아니라면, 별로 걱정할 필요가 없다.

지속가능하지 않은 경향이란 게 뭘 말하는 거냐고? 아시아 국가들이 호주나 미국에 돈을 빌려주지 않는 거? GDP 대비 의료비가 계속 증가하는 거? 이것과 관련해서는 "비의료비용"에 대해 생각하는 편이 더 쉬울 거다. 500년마다 GDP 대비 의료비용이 절반씩 떨어진다고 생각해보자. 그래도 RGDP2가 양호한 수준으로만 계속 증가한다면 비의료비용에 지출할 수 있는 총액은 계속 증가할 거다. 영원히 지속될 순 없다고? 나라면 거기에 돈은 안 걸 거다.

경제학 강의를 위한 지침들

우리가 수요-공급에 대해 가르칠 때 학생들이 아무것도 배우는 게 없을 수도 있을까? 내가 보기에 (가격통제나 세금 따위에 응용하기에 앞서서) 수요-공급과 관련해서는 학생들이 기본적으로 두가지만 배우면 될 것 같다:

1. 수요나 공급 변화의 효과.
2. 가격과 물량 변화로부터 추론하기.

나는 평균보다 훨씬 나은 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는데, 내가 그동안 깨달은 건 다음과 같다. EC101(역자주: 경제학의 가장 기초과목, 경제학개론쯤 되려나?)을 수강하는 거의 모든 학생들은 수요나 공급에 충격이 왔을 때 그 영향에 대해서는 잘 알고 있다. 플로리다의 오렌지 농장에 서리가 내린다면, 오렌지 가격이 어떻게 될지 다들 잘 알고 있다. 중국에서 수백만명의 사람들이 자동차를 사기 시작하면 유가가 어떻게 될지도 다들 안다.

내가 깨달은 다른 한가지는, 가격과 물량의 상관관계를 해석할 줄 아는 학생은 거의 없다는 거다. 더더욱 문제는, 학기가 끝났을 때에도 여전히 모른다는 거다. 나는 간혹 조금 더 상급 강의를 듣는 학생들이나 MBA 학생들에게 다음 문제를 물어보곤 한다:

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영화가격이 $6일 때 평균적으로 100명의 사람들이 영화를 본다고 하고, $9일 때는 300명의 사람들이 영화를 본다고 한다. 이는 수요 공급의 법칙에 위배되는가?

정말 정말 극소수의 학생들만 이 문제의 답을 안다. 더 큰 문제는, 학생들이 대부분 이 문제에 '함정'이 있다고들 생각한다는 거다. 사실 이보다 더 단순한 문제는 없는데 말이다. 수요-공급의 기본 중에 기본이다. 이는 영화에 대한 수요가 변할 때 무슨 일이 일어나느냐는 질문에 불과하다. 내 생각에 수요-공급의 법칙에 대해서 이보다 더 단순하고 직설적인 문제는 없는데 말이다. 저녁 시간에는 영화에 대한 수요가 오른쪽으로 움직인다. 가격이 오른다. 공급량이 이에 반응한다. 뭐가 그렇게 어렵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거의 대부분의 학생들이 이 문제를 틀린다. 학생들은 수요-공급에 대해 알아야 할 두가지 중 한가지를 이미 알고 있는 상태에서 EC101을 수강하러 오고, 두가지 중 한가지를 안 채로 떠난다. "공급을 변화시키는 5가지 요인"이나 "수요를 변화시키는 5가지 요인" 따위를 아무생각없이 외우게 하는 것보다, 경제학이 뭔지에 대해 설명하는, 경제학자들을 identification problem3을 해결하는 탐정으로 묘사하는, Freakonomics(역자주: 시카고 대학의 경제학자 스티븐 레빗과 저널리스트 스티븐 더브너가 뉴욕 타임즈에서 운영하는 블로그) 같은 글/책들을 읽으라고 해야 할지도 모르겠다.

경제학을 가르치는 다른 사람들이 이글을 본다면 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의견을 듣고 싶다. 정말이지 우리가 플로리다 오렌지 농장에 서리가 내리면 무슨 일이 생기는지 학생들에게 가르칠 필요는 없는 것 같다. 수요와 공급은 부록에 넣고, 필요하면 공부하라고 하는 대신에, 4장을 통째로 identification problem으로 채우는 거다. 정말 전문적인 내용들은 경제학을 전공하는 학생들이 나중에 더 배울 수 있게 하면 된다. 어쩌면 identification problem도 너무 어려울 수 있으니, 수요-공급은 그냥 재낄 수도 있다. 기회 비용, 인센티브, 한계 분석 등만 가르치는 거다.

어떤 제안도 좋다. 가끔 신문, 심지어는 엘리트 신문이라는 뉴욕 타임즈, 파이낸셜 타임즈, 월스트리트 저널 등의 신문을 읽을 때도 뭔가 잘못됐다는 느낌이 든다. 신문의 경제면 기사들과 경제학은 점성학(astrology)과 천문학(astronomy)의 관계쯤 되는 것 같다. 가격/이율/환율이 내포하는 의미에 대한 논의는 건 토성이 물병자리의 별 중 하나라는 게 무슨 의민지 논하는 것만큼이나 쓸모없는 이야기다.

PS. 그렉 만큐가 이 글을 읽는다면 말이지: 이 책을 예로 들었다는 건, 이 책이 가장 좋은 미시경제학 교재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라고.

PPS. 타일러 코웬(역자주: 조지 메이슨 대학의 경제학자, 코웬과 알렉스 타바락의 블로그)가 이 글을 읽는다면 말이지: 요 위의 PS는 무시하시구랴. 아직 선생(이랑 알렉스가 공저한) 책은 내가 못봤거덩.


역자주:
1NGDP, 2RGDP: 여기서 길게 얘기하기는 좀 그렇고, nominal gross domestic product와 real gross domestic product의 약자. 전자는 GDP 측정 당시의 통화단위와 가치를 그냥 사용한 것이고, 후자는 이를 인플레이션에 대해 보정한 것. 보통 통화정책은 인플레이션이 위험하지 않은 수준(0-3% 정도)으로 묶는 걸 목표로 펼치는데, NGDP 성장률을 목표로 잡아서 펼칠 수도 있음. 이 차이가 뭐냐고? 거시경제학은 경제학자들 중에서도 잘 이해하는 사람이 없다고 할 정도니, 내가 여기서 간단하게 설명할 내공은 절대 안 되므로 일단은 패스.

3Identification problem: 예를 들면 이런 거다. 수요-공급 이론에 따르면 수요 곡선과 공급 곡선이 만나는 지점에서 상품의 거래량과 가격이 결정된다. 이 이론은 참 그럴 듯한데, 실제 세계에서 어떤 상품에 대한 수요 곡선과 공급 곡선이 어떻게 생겼는지 우리는 모른다는 거다. 왜냐하면 가격이 아닌 다른 다양한 변수에 의해 어떤 상품의 수요나 공급은 수시로 변할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관측 가능한 지표는 어떤 상품의 가격과 거래량인데, 이를 통해서 실제 수요 곡선과 공급 곡선을 역으로 추적하는 일은 생각처럼 만만치가 않다. 이런 류의 문제를 (parameter) identification problem이라고 한다. 이글에 대한 이해를 돕기 위해 다음에 수요-공급 곡선에 대해 이야기할 테니, 그때 조금 더 자세히 자루도록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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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시장이 정말 사람의 삶을 풍요롭게 만든다면 왜 모든 사람이 시장주의자가 아닌가요?

A) 지금까지 시장이 어떻게 작동하는지에 대해 간단한 예를 들어 비교적 긍정적인 관점에서 살펴봤는데요, 시장이 해결하지 못하는 문제에 대해 이야기해보죠. 계속해서 갑과 쌀의 예를 들겠습니다. 쌀 생산의 한계비용이 충분히 낮아서 쌀값이 30만원 이하로 형성된다면 이 경우에 문제는 전혀 없습니다. 그런데 쌀의 시장가격이 35만원이라면, 쌀값이 모자라서 쌀을 못 사먹는 사람이 발생한다고 했죠.

흔히 생각하는 이상적인 경우는 갑이 자신의 이윤을 조금 줄이더라도 자기보다 어렵게 사는 사람들을 생각해서 쌀값을 낮추는 겁니다. 그런데 이때 문제가 발생합니다. 가격이 낮아지면 대부분의 경우 수요가 증가하기 때문에 갑이 갖고 있던 쌀이 모자라게 됩니다. 이해를 돕기 위해 올초에 가뭄이 극심했던 태백의 예를 들어보죠. 가뭄이란 이야기는 물의 공급이 줄어든다는 이야기입니다. 이경우 물값을 시장 메커니즘에 맡겨둘 경우 물값이 오르겠죠. 그런데 물이란 게 생존에 꼭 필요하고, 물을 대체할 경쟁 품목이 없는 물건이라 시장에 맡겨두면 상수도를 쥔 회사가 폭리를 취할 여지가 많습니다. 수도 민영화에 크게 반대하는 이유가 그런 데에 있죠. 그래서 시장에 맡기는 대신에 정부가 관리하면서 물값을 통제합니다.

여기서 한가지 문제가 발생합니다. 가뭄이 들었는데도 물값이 인위적으로 낮다보니 수요가 줄지를 않는 겁니다. 공급이 줄었는데 수요가 그대로면 물고갈 현상이 발생하는 거죠. 가뭄이니까 물부족이 당연한 거 아니냐는 이야기는 맞습니다만, 이때 물 사용의 우선순위가 중요하다는 거죠. 우선 마시거나 요리에 사용될 물이 가장 우선일 거고, 그 외에 간단히 손발을 씻는 정도, 그리고 머리를 감고, 샤워를 하고, 그 외에 세차나 정원에 물주는 것 등은 뒤로 밀려나는 게 정상이겠죠. 중요한 건 똑같이 10리터의 물이라고 해도 용도에 따른 그 가치가 다르다는 거고, 가격의 등락이 일어날 경우 그 가격에 따라 개개인이 자연스럽게 자신이 생각하는 각 용도별 물의 가치와 가격을 비교해서 우선순위가 정해지게 되면 평소에 비해 물이 부족하겠지만, 물이 완전고갈되는 일은 막을 수도 있습니다. (물론 가뭄의 정도에 따라서 생존에 필요한 최소한의 물도 남지 않았다면 이야기는 전혀 다릅니다.)

이렇게 가격이 낮을 때 특정 상품의 품귀현상이 일어나는 건 소비자 개개인은 시장 전체에서 그 상품의 수요에 대한 정보를 갖고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정해진 가격대비 효용을 고려해서 자신에게 필요한 만큼을 가져다 쓸 수 밖에 없는 거죠. 쌀도 마찬가지입니다. 개별 소비자는 쌀 수요에 대한 종합적인 정보가 없기 때문에 쌀의 가격대비 효용을 고려해서 자신이 사고 싶은 만큼을 사게 되고, 그렇게 되면 조금 늦게 오는 사람에게는 돌아갈 쌀이 없는 거죠.

갑이 이 문제까지 해결해야겠다고 하면, 쌀값을 낮춘 상태에서 일인당 살 수 있는 쌀의 양을 제한할 수도 있습니다. 할당제가 되는 거죠. 그런데 이것도 그렇게 쉽지만은 않습니다. 앞서든 예에서는 중간 상인도 없고, 시장 규모도 작아서 가능할 것도 같아 보이지만, 현실세계에서 이를 적용하기란 굉장히 어려운 거죠.

그래서 정부가 등장합니다. 정부가 취할 수 있는 방법은 두가지가 있습니다. 한가지는 쌀값이 모자란 사람에게 쌀값을 지원해주는 거고, 다른 한가지는 갑이 쌀 생산량을 늘렸을 경우 발생하는 손해분을 메워주고 쌀을 더 생산하게끔 장려하는 겁니다. 이것도 말처럼 쉽지는 않습니다. 전자의 경우 소위 쌀값이 모자란 사람을 어떻게 찾아서 얼만큼을 지원해주느냐의 문제가 있고, 후자의 경우엔 쌀의 시장 가격과 정부의 목표 가격의 차액을 메워줘야하는데, 대체작물의 등장이나 새로운 품종 개발로 인한 생산량 증가 등의 수많은 변수로 수요-공급이 계속해서 변하는 실제 세상에서 이 가격차를 어떻게 찾느냐는 어려움이 있습니다. 게다가 어떤 변수를 인위적으로 조정했을 때 발생할 수 있는 부작용을 '전부' 예상한다는 건 불가능하기 때문에, 예상찮았던 부작용에 대해 끊임없이 반응해야하는 골치 아픈 상황이 발생하기도 하겠죠.

사실 이건 굉장히 어려운 문제고, 명쾌한 해결책은 저도 갖고 있는 게 없습니다. 게다가 아직까지는 모든 개인이 비교적 합리적인 수준의 이윤 추구를 하는 경우를 가상했는데 (쌀 생산자가 갑 한명 뿐임에도 독점의 가능성에 대해서는 이야기를 하지 않았죠) 독과점 상황에서 폭리로 인한 소비자 착취나, 거대자본을 비롯한 다양한 사용자들의 노동자 착취의 가능성에 대해서는 전혀 고려하지 않았습니다. 이 이야기는 지금까지 다룬 것들에 비하면 조금 더 이념적이고 정치적인 부분이라 앞으로 틈틈히 이야기를 풀어나가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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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생산자는 자신이 생산하는 상품의 공급량을 어떻게 결정하나요?

A) 자, Q & A, part 2에서 소개했던 쌀 생산자 갑을 생각해 봅시다. 지난 번 예에서 가격 평형이 이뤄진 시점에서 갑은 십톤의 쌀을 생산해서 3500만원을 벌어들였죠. 이제 갑에게 선택의 여지가 있습니다. 자신이 최소한으로 받아야 한다고 생각했던 3000만원보다 많이 받았으니 만족하고 살 수도 있겠고, 돈을 더 많이 벌 수도 있을 것 같다는 생각에 이윤을 극대화하는 방법을 모색할 수도 있겠지요. 갑이 후자를 택했다고 해봅시다.

이야기를 더 진행시키기에 앞서서 한가지 짚고 넘어가야 하는 부분이 있습니다. 노동력을 돈 주고 사서 쓰는 소위 사용자 혹은 자본가와 본인이 직접 노동을 하는 자영업자의 경우 '노동의 가치'를 판단하는 방법이 조금 다릅니다. 사용자의 경우 누군가에게 노동에 대한 대가를 화폐로 지불히야하기 때문에 노동력은 생산비용에 반드시 포함이 되는데, 자영업자의 경우 본인의 노동력은 원자재값이나 임대료 등과는 달리 화폐로 지불하지 않아도 됩니다. 즉, 자영업자에게 이윤은 (본인의) 노동의 가치와 정확히 구분이 되지 않는 개념입니다. 그래서 갑의 경우에 엄밀히 말하면 손익 분기점이 천만원이겠지만, 쌀 농사가 생계수단으로써 정상적으로 기능하기 위해 순이익이 최소한 2천만원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하면 2천만원을 생산비용에 포함시키는 게 합리적인 계산 방법입니다.

이렇게 되면 생산비용 중 고정 비용이 2천만원이 있고, 비료값처럼 쌀을 생산량을 늘이거나 줄임에 따라 변하는 가변비용이 있을 겁니다. 갑이 이윤을 극대화하기 위해서 생산량을 조절할 때 중요한 요소는 (쌀을 100kg 단위로 판매한다면) 쌀 100kg을 더 생산하는데 추가적으로 드는 비용이 얼마인가라는 겁니다. 이렇게, 특정 상품을 기존 생산량보다 추가적으로 한단위(이 경우엔 쌀 100kg) 더 생산하기 위해 드는 비용을 경제학에서는 한계비용이라고 합니다. (되도록이면 전문 용어는 안 쓰고 설명하려고 했는데, 쉽지 않군요. -_-a) 앞선 예에서 쌀을 십톤 생산했을 때 100kg에 대한 가변 생산비용이 10만원, 쌀의 판매가격은 35만원이라고 했었죠. 그런데 100kg을 더 생산한다고 할 때, 생산비용이 추가로 10만원만 든다면 쌀 생산량이 십톤일 때의 한계비용은 10만원입니다. 쌀값은 여전히 35만원이라고 하면 100kg을 더 생산해서 판다고 하면 25만원의 이윤이 더 남겠죠.

그러면 쌀을 더 많이 생산하면 할수록 이윤이 더 많이 남는 거 아닌가요? 그런데 꼭 그렇지는 않습니다. 왜냐하면 주어진 토지와 갑이 갖고 있는 본인의 노동력으로 생산할 수 있는 쌀의 양에는 한계가 있으니까요. 그 한계량이 쌀 11톤이라고 해봅시다. 쌀을 더 많이 생산하려면 토지를 새로 매입해야할 수도 있고, 그 땅에서 농사를 도울 사람도 고용해야 합니다. 비료값은 여전히 생산량에 비례해서 증가할 거고요. 또 한가지 고려할 점은 쌀의 생산량이 늘어난다는 것은 공급이 증가한다는 것이고, 이는 가격 하락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습니다. 가격이 변하지 않을 때에는 쌀 100kg을 추가로 생산할 때마다 얻을 수 있는 추가 수입은 가격과 같지만, 가격이 변할 수 있다면 가격에서 이 가격 변화분을 빼준 게 실질적인 추가 수입이 됩니다. 이렇게, 특정 상품의 기존 생산량보다 추가적으로 한단위(이 경우엔 쌀 100kg)를 더 생산함으로써 벌어들일 수 있는 수입을 한계수입이라고 합니다.

결국 쌀을 11톤까지 생산할 때는 쌀 100kg을 추가로 생산하기 위한 한계 비용이 한계 수입보다 상대적으로 적었는데, 쌀을 11톤 이상 생산하려하면, 쌀 100kg을 한계 비용이 가파르게 상승할 것이고, 이 비용이 쌀의 한계 수입보다 커진다면, 쌀 생산량을 늘릴 경우에 11톤까지는 이윤이 증가하지만, 11톤을 넘어서서부터는 이윤이 줄어들기 시작할 겁니다. 갑에게 합리적인 선택은 한계 비용과 한계 수입이 딱 맞는 지점까지만 생산을 하는 겁니다.

여기서 앞선 질문 '쌀값이 모자라 쌀을 못 사먹는 사람이 생길 경우 이들을 어떻게 도울 수 있을까?'에 대한 한가지 답이 나옵니다. 쌀의 한계 비용을 낮추는 겁니다. 쌀의 한계 비용이 30만원보다 훨씬 낮다고 하더라도 갑은 쌀의 한계 수입이 한계 비용보다 높기만 하다면 쌀을 많이 생산할수록 갑의 이윤은 늘어나기 때문에 쌀값이 30만원 밑으로 떨어지더라도 상관이 없을 거고, 쌀값으로 30만원 이상 사용할 여유가 없는 사람들도 쌀을 사먹을 수 있게 되는 거죠.

여기에 시장의 아이러니가 한가지 숨어 있습니다. 우리는 흔히 생산자가 자신의 이윤을 극대화하는 방법은 폭리를 취함으로써 소비자의 피를 빨아먹는 방법밖에 없다고 생각하는데, 꼭 그렇지만은 않다는 겁니다. 앞선 예에서 갑이 '나의 이윤만 생각하는 건 옳지 않아'라고 생각해서 쌀 생산량을 묶어 두거나, 오히려 생산량을 줄인다면 쌀값은 오히려 오를 것이고, 그 피해는 가장 가난한 사람들이 보게 됩니다. 시장 메커니즘은 제로썸 게임이 아니다보니 '내가 조금 손해를 보더라도 다른 사람에게 그만큼의 이익이 돌아갈 수 있을 거야'라는 이타적인 판단이 양방에게 피해를 줄 수도 있다는 점이죠.

다음에는 쌀값이 모자라 쌀을 못 사먹는 사람이 생길 경우 이들을 도울 수 있는 다른 방법들에 대해서도 또 이야기해보도록 하겠습니다.

@ 제가 경제학에 대해 이해하고 있는 (아주 좁은 ㅋㅋㅋ) 범위 내에서 다양한 개념을, 아주 단순한 예 한가지만 갖고 설명하려다보니, 미시경제학에서 말하는 불완전경쟁과 완전경쟁에 대한 가정이 뒤죽박죽 섞여 있습니다. 글을 쓰면서도 '응? 내 설명이 틀린 것 같긴 한데 뭐가 틀렸지? 에라 모르겠다' 싶은 순간들이 무척 많군요. orz

여기서 예시로 사용된 숫자나 디테일들은 잘 다듬어진 경제이론을 바탕으로 정확히 계산해서 내놓은 것들이 아니라, 전반적인 개념을 전달하기 위해 단순화시켜서 대충 짜맞춘 도구로 보시면 됩니다. 사실 아주 잘 다듬어진 경제이론도 실제 세상에선 맥을 못 추는 경우도 허다하니까, 경제학 전공이 아니라면 어차피 그런 걸 정확하게 계산해야할 필요는 별로 없지 않나 싶습니다. (라고 무책임하게 발뺌을... 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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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가격이 수요-공급에 의해 결정된다는 게 무슨 뜻인가요?

A) 지금까지 거의 모든 논의를 가격이 수요-공급에 의해 결정이 되었다는 가정 하에서 진행했는데, 실제로 가격은 어떻게 결정될까요? 앞선 글에서 수요-공급에 의한 가격 결정에 대한 개념적 이해와 실생활에서의 경험 사이에 약간의 차이가 있다고 간단히 언급은 했는데, 그게 정확히 무슨 말인지 다시 생각해봅시다.

쌀 생산자 갑이 있습니다. 일년에 쌀을 십톤 생산하는데, 자신의 노동력을 제외한 비료, 농기계 등등에 드는 생산비용이 천만원이라고 합시다. 생산한 십톤의 쌀을 팔아서 일년간 먹고 살아야 할테니 갑은 천만원 + 일년간 먹고 살 정도의 가격에 쌀을 팔기를 원하겠지요. 여기서 '일년간 먹고 살 정도'라는 건 누구에게 묻느냐에 따라 답이 달라지겠습니다만 보통은 사회 전반적인 생활 수준 범위 내에서 개인이 원하는 최소한의 생활비가 결정됩니다. 그 최소한의 정도가 일년에 이천만원이라고 하면 이 쌀 생산자가 원하는 쌀 가격은 '많으면 많을수록 좋겠지만, 적어도 십톤에 삼천만원은 받기를 바랄 겁니다. 그리고 이 이천만원+알파가 갑의 노동에 대한 가치가 되겠습니다.

논의를 간소화하기 위해 중간상인 없이 갑이 쌀 소비자와 직거래를 하는 경우를 생각하도록 하겠습니다. 쌀 소비자는 총 100명이 있습니다. 이중 10명은 100kg에 50만원까지 지불할 용의가 있고, 20명은 45만원, 40명은 40만원, 20명은 35만원, 나머지 10명은 30만원까지 지불할 용의가 있다고 해봅시다.

문제는 쌀의 생산자 갑은 수요에 대한 정보를 사전에 알 수 없고, 쌀의 소비자 역시 쌀의 공급에 대한 정보를 갖고 있지 않습니다. 그래서 갑은 처음에 그래도 내가 일년간 뼈빠지게 일했는데 오천만원은 벌어야지라는 생각에, 생산비용 천만원을 감안해서 100kg에 60만원의 가격표를 붙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이 아무도 안 사는 겁니다. 60만원의 가격으로는 공급 과잉이 발생하는 겁니다. '이쯤에서, 너무 비쌌나?' 싶어서 가격을 50만원으로 낮춥니다. 그러자 10명이 와서 총 1톤어치의 쌀을 사갔지만, 그 이상은 팔리지 않습니다. 그래서 가격을 40만원으로 다시 깎습니다. 그러자 60명이 더 와서 총 1톤어치의 쌀을 사갑니다. 여전히 쌀이 남습니다. 쌀값을 35만원으로 더 깎았더니 20명이 더 와서 2톤어치의 쌀을 사갔습니다만 여전히 1톤이 남았습니다. 5만원을 더 깎았더니 10명이 와서 마지막 1톤어치를 사갔습니다. 갑은 자신이 생산한 쌀을 다 팔았고, 쌀 더 없냐고 사러 오는 사람도 없습니다. 쌀 값이 30만원이 되기 전까지는 계속해서 공급과잉이 발생한 거죠.

그런데 이때 쌀의 평형 가격은 얼마일까요? 쌀을 50만원 주고 산 사람도 있고, 쌀을 30만원 주고 산 사람도 있다는 거죠. 갑이 쌀을 팔아 벌어들인 총액이 3900만원이니까 100kg 당 39만원일까요? 아니면 마지막 한톨을 팔아 치울 수 있었던 가격인 30만원일까요?

문제는 공급자나 수요자나 모두 상호간에 대한 정보가 없다는 겁니다. 갑은 쌀 수요에 대한 정보가 사전에 없었기 때문에 수요가 전혀 없는 가격대인 60만원에서 출발해서 쌀값을 조금씩 조금씩 낮추게 된 겁니다. 반면에 쌀을 50만원 주고 산 사람들은 쌀값이 60만원에서 50만원으로 떨어지자 '이 가격이면 조금 비싸기는 한데'라고 생각하면서도, 쌀의 공급에 대한 정보가 없었기 때문에 '지금 안 사면 나중에는 모자라서 못 살지도 몰라'라고 생각해서 50만원을 주고 사게 됩니다. 그런데 나중에 쌀을 30만원을 주고 산 사람이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는 후회를 하겠지요.

자 일년이 지나서 갑이 다시 쌀을 내다 팝니다. 전년도의 기억을 떠올려서 50만원부터 시작합니다. 그랬더니 올해는 어쩐 일인지 아무도 안 삽니다. 그래서 가격을 45만원, 40만원, 35만원 차례로 낮춰 봤는데 여전히 아무도 안 삽니다. 30만원까지 낮췄더니 갑자기 사람이 몰립니다. 그런데 지난해에는 100kg씩만 사가던 사람들이 이번에는 어떤 사람은 쌀을 120kg, 어떤 사람은 110kg, 어떤 사람은 100kg을 달라고 합니다. 쌀의 적정가격이 35만원 이상이라고 생각했던 사람들은 쌀값이 비쌀 때는 100kg씩만 샀지만, 쌀값이 30만원이 되고보니 쌀을 조금 더 많이 먹어도 되겠다고 판단하는 겁니다. 그래서 쌀을 다 팔고 보니 줄의 끝에 있던 20명 정도가, '어, 쌀 더 없어요?'라고 하는 겁니다. 쌀값이 30만원일 때는 공급 부족이 발생한 거죠. 쌀의 평형 가격은 30만원보다는 비싸다는 이야기입니다.

자, 또 일년이 지났습니다. 이번에는 쌀값을 35만원으로 잡아봤습니다. 사람들이 지난해에 쌀이 모자라서 못 사는 사람이 있었단 이야기를 들었기 때문에 올해는 30만원까지 값이 떨어지지 않았는데도 쌀을 사러 오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 가격대에서 90명의 사람이 와서는 쌀 10톤을 다 사갔고, 더 이상 쌀을 사러 오는 사람이 없습니다. 이렇게 되면 이게 바로 쌀의 평형 가격입니다. 쌀 공급자의 공급량과 쌀 수요자의 수요량이 이 가격대에서 딱 맞아떨어진 거죠.

사람들이 쉽게 오해하는 부분 중 하나가, '30만원에 쌀을 사고 싶어하던 사람들은 쌀을 전혀 못 샀으니 공급 부족 아니냐!'라고 생각하는 건데 30만원에 쌀을 사고 싶어하던 사람들은 쌀값이 30만원일 때는 수요자이지만 쌀값이 그보다 높을 때에는 수요자에 포함이 되지 않는다는 겁니다. 아주 극단적인 예를 들어서 '내가 무언가를 공짜로 갖고 싶다'고 생각한다고 해서 시장의 수요에 반영이 되지는 않는 것과 마찬가지 이치이죠. 경제학적으로 수요-공급은 35만원에서 평형이 맞춰졌다는 겁니다.

이에 대해 심리적 거부감이 드는 이유는 쌀값을 30만원으로 잡은 사람들은 저소득층일 가능성이 많다는 겁니다. 자동차나, 대형TV, 아이팟 등의 생필품이 아닌 품목이라면 내가 지불할 수 있는 비용보다 비싸서 못 사는 일이 항상 일어나고 있고 이에 대한 거부감이 안 들겠지만, 쌀이나 물처럼 생존을 위해 꼭 필요한 품목에 대해 시장에서 형성된 평형 가격이 '쌀값이 모자라 쌀을 못 사먹는 사람'을 만들어낸다면 문제가 조금 다른 거죠. 다음에는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방법들에는 어떤 게 있는지에 대해 이야기를 해보겠습니다.


@ Q & A의 Q는 제 개인적인 경험에 비춰서 제가 옛날에 오해했거나 의아하게 생각했던 부분들, 주변 사람들이 오해하고 있다고 판단되는 점들로 골라가면서 이야기를 풀어가고 있는데, 혹시 독자분들이 실제로 궁금한 부분이 있으면 질문도 받겠습니다. 물론 제가 답을 해드릴 수 없는 질문들도 많겠지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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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돈이 많으면 부자 아닌가요?

A) 아닙니다. 부를 축적한다는 개념에 대해 사람들이 많이 헷갈리는 부분 중 하나가 이를 '돈을 많이 번다'와 같은 의미로 해석한다는 점이죠. 물론 돈이 많은 사람이 돈이 적은 사람보다 더 부자이긴 하겠지만, 내가 어제 갖고 있던 돈보다 오늘 돈을 더 많이 갖고 있는다고 해서 반드시 어제보다 오늘 부자가 된 건 아니랍니다.

이는 다른 모든 재화와 마찬가지로 '화폐의 가치'가 고정불변이 아니기 때문인데, 돈과 다양한 상품이나 서비스의 상대적 가치, 즉 가격이 변하지 않는다면 돈을 많이 버는 것이--그것으로 언제든지 내게 가치 있는 어떤 것과 교환할 수 있다는 점에서--부자가 되는 것과 마찬가지겠지만, 실제로 가격은 고정돼 있지 않는다는 점을 주목해야 겠지요. 아주 극단적인 예로 1차대전 후 하이퍼인플레이션을 경험한 독일이나 오늘날 짐바브웨이를 떠올려 보면 되겠습니다.

보통 돈을 가치(value)의 저장매체인 동시에 상거래의 수단이라고 이야기하는데, 돈이란 건 나한테 실제로 유용한 다른 가치 있는 상품이나 서비스와 교환하는 용도로써만 유용하다는 겁니다. 음식은 맛도 있고 굶어죽지 않기 위해 꼭 필요하고, 옷은 내가 입음으로써 벌거벗고 다니지 않을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멋도 부릴 수 있고, TV는 잘만 이용하면 훌륭한 엔터테이닝 수단이 될 수 있으며, 자동차는 이동 수단으로써 아주 유용하지만, 돈은 '갖고 있는 것만'으로는 쓸모가 없다는 이야깁니다.


Q) 그럼 가격이 왜 자꾸 변하나요? 짜장면 한그릇은 700원으로 고정시켜 놓으면 안 되는 건가요?

A)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가격은 식당 메뉴판, 백화점 상품에 붙어 있는 가격표, 과자 봉지 뒷면에 찍혀 있는 숫자지요. 그런데 재래 시장에 한번 가서 콩나물 한봉지를 산다고 생각해봅시다. 요새 콩나물 가격이 얼만지는 모르겠지만, 시장에서 콩나물 한줌 집으면서

- 콩나물 이만큼에 얼마에요?
= 3000원
- 어우, 너무 비싸다. 조금 깎아주시면 안 돼요?
= 우리도 남는 거 없는데...
- 에이, 조금만 깎아 주세요.
= 그럼 2800원만 줘.

그러면서 콩나물을 조금 봉투에 담아 주시는 아주머니께 2800원을 건내며,

- 쪼금만 더 넣어 주세요.

이런 경험들 있을 겁니다. 흥정이라고 하죠. 산업화가 진행이 많이 되면서 공장에서 나오는 물건들은 대부분 '소비자가'라는 걸 달고 나오면서 가격 흥정의 변수가 많이 줄었지요. 그러면서 동시에 가격은 판매자가 자신에게 필요한 수준의 이윤을 남길 수준에서 결정한 어떤 정해진 숫자라고 많이들 생각하지만, 기본적으로 가격 결정은 판매자와 구매자 사이에서 결정됩니다. 실제로 요새 소비자가가 찍혀 나오는 상품들도 동네 구멍가게에서 사느냐, 대형 할인마트에서 사느냐, 집앞의 가전제품 대리점에서 사느냐, 인터넷에서 사느냐에 따라 그 가격이 천차만별이지요? 구매자는 되도록이면 같은 제품을 더 싼 가격에 파는 판매자를 찾으러 다닐 거고, 판매자는 더 비싼 가격에 살 의향이 있는 구매자를 찾게 됩니다.

흔히 가격은 수요-공급에 의해 결정된다고들 하잖아요? 이게 아주 직관적이고 당연한 개념 같긴 한데, 특정 개인의 경험은 보통 자신이 어떤 물건을 원하냐 원하지 않느냐와 그 물건의 공급자가 있냐 없냐 이상으로 확장되지 않기 때문에 다양한 경제주체들의 통합적인 수요-공급이 어떻게 평형점을 찾아가는지 확인하기 어렵기 때문에, 쉽게 체감이 되지는 않는 개념입니다.

이 문제를 이렇게 생각해 봅시다. 수요란 구매자, 즉 돈을 가진 사람의 등장, 공급은 판매자, 즉 상품(여기서는 이를 서비스도 포함한 의미로 사용하겠습니다)을 가진 사람의 등장이란 개념에서 수요-공급이란 결국 화폐공급-상품공급의 조정입니다. 각 개별 상품에 대해서 생각하면 조금 복잡할 수 있는데, 어떤 시점에서 시장에 존재하는 총 통화량과 상품의 총량은 정해져 있으므로 모든 상품에 대한 평균적인 가격이 정해질 겁니다. 어떤 이유에서든 상품 A의 수요가 감소하면 A의 가격이 떨어지겠지만, 이때 통화량이 정해져 있으니 다른 어떤 상품 B(물론 한가지 이상의 상품에 대한 수요가 증가할 수도 있습니다)에 대한 수요는 증가를 해야 할 거고, 상품 B의 가격은 증가할 겁니다. 따라서 통화량과 상품량이 정해진 상황에서는 특정 부분에서의 가격 하락(상승)은 다른 부분에서의 가격 상승(하락)을 동반할 수밖에 없고, 모든 상품들의 '평균'적인 가격은 변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어제 쓴 글에서처럼 기술혁신을 통해 특정 상품A에 대한 생산단가가 떨어진다면, 다른 제품들의 가격이 그대로 유지되는 상황에서 상품A의 가격만 떨어지는 게 가능합니다. 이 경우 경제주체 중 누군가는 잉여화폐를 갖게 되고, 이를 사용할 새로운 상품이나 투자 대상을 찾게 된다고 했지요. 그 경우 통화량은 고정돼 있는데 시장에 존재하는 총 상품의 양이 늘어납니다. 따라서 전체 상품의 평균적인 가격은 전에 비해서 낮아진 거고, 다른 말로하면 똑같은 양의 돈을 갖고 있던 사람들의 구매력이 증가한 겁니다. 이게 소위 디플레이션이지요. 문제는 디플레이션이 지속적으로 일어날 경우, 사람들은 '돈'을 쓰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더 기다렸다가 더 싼 가격에 같은 물건을 살 수 있을 거라는 기대가 생기니까요. 그런데 문제는 이 경우 사람들이 다 돈을 안 쓰고 묶어두기 시작하면, 상품의 생산자는 수입이 줄어들기 시작하고 어떤 시점에서는 생산을 중단해야 합니다. 결국 실업자가 되는 거지요. 이런 일이 도미노 현상처럼 나타나기 시작하면, 실업률이 급격히 치솟고 경기는 침체 일로로 접어듭니다. 이 대표적인 경우가 1920-1930년대의 대공황입니다.

그래서 디플레이션을 막기 위해 각 나라의 정부는 보통 통화정책을 씁니다. 아주 쉽게는 기술혁신을 통해 증가한 생산량만큼 돈을 더 찍어내서 시장에 풂으로써 총상품의 '평균'적인 가격이 어느 정도 수준을 유지하게 조정하는 것이지요. 그런데 이 평균적인 가격이 전혀 변하지 않게 맞추는 건 굉장히 어려운 일이기 때문에 통화팽창량이 상품 생산량보다 아주 살짝 더 많은 수준으로 맞추게 되고, 이 경우 시간이 갈수록 시장내부의 화폐총량이 상품 총량보다 조금씩 빠르게 많아지므로 '평균'적인 가격은 오르는 인플레이션이 발생합니다. 그래서 20년전엔 700원이던 짜장면이 이제는 그 4.3배인 3000원인 겁니다. 물론 그 시절보다 버는 돈은 4.3배 이상 많아졌기 때문에, 상대적으로는 짜장면이 옛날보다 덜 귀한 음식인 겁니다.

여기서 중요한 건, 일차적으로는 인플레이션이 결국 화폐가치를 떨어뜨리는 게 맞는데, 이는 기술혁신에 따른 생산량 증가에 따른 화폐가치 증가 혹은 구매력 증가의 심리적 효과가 경제 침체를 일으킬 수도 있기 때문에, 의도적 통화팽창정책에 의한 효과로, 기술혁신에 의해 소비자가 확보한 구매력 증가는 유지가 된다는 겁니다. 다시 말하면, 보통 그 떨어진 화폐가치를 보상하고도 남을 정도로 돈을 더 많이 벌게 된 거지요. 정말 중요한 건 가격의 절대적인 숫자가 아니라, 가격 상승 대비 내가 벌어들이는 임금 상승, 즉, 실질 구매력입니다. 짜장면 값이 비싸졌다고 투덜댈 때, 옛날보다 짜장면을 훨씬 자주 사먹고 있다는 사실도 한번쯤은 상기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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