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is American Life'에 해당되는 글 3건

  1. 2010/05/11 #168: The Fix Is In (4)
  2. 2010/02/22 5 Best Podcasts (1)
  3. 2008/09/08 #339: Break-Up (3)
너블형님 블로그의 글 "으앜 이건 또 무슨 개그"에서 트랙백. 너블형님 글 읽다보니 This American Life를 통해 들었던 이야기가 생각나서 소개.

방송을 직접 듣기를 원하시는 분들은 (클릭). (참고로 본 글은 방송 내용에 약간의 첨삭이 있었고, 개인적인 커멘터리도 조금 들어갔습니다.) 영화도 있으니 관심 있으시면 찾아들 보시라. 아무튼 이 이야기를 풀어나가는데 꼭 필요하진 않지만 알아둬서 나쁠 건 없는데서 시작해보자. 이름하여 라이신(lysine).


라이신, 그게 뭔가효? 먹는 건가효? 우걱우걱...

소위 3대 영양소라는 게 있고, 그게 탄수화물, 단백질, 지방이라는 것쯤은 거의 누구나 알고 있다. 이 3가지 중, 단백질은 아미노산이라고 하는 분자들이 연결되어 보통 신체 중 근육/살을 구성하는 물질이다. 사람한테 필요한 아미노산은 (내 기억이 맞다면) 20개 정도되는데, 이중 8개는 필수아미노산, 나머지는 비필수아미노산으로 구분된다. 사실 필수/비필수로 나누면 왠지 비필수 아미노산은 사람한테 있어도 없어도 그만인 아미노산을 지칭하는 것 같은데 사실 그런 개념이 아니다, 멍청~. -_-,,

이 구분은 음식을 통해 섭취해야 하느냐, 아니면 사람의 몸에서 생산할 수 있느냐에 따른 것으로, 사람 신체에서 만들 수 없는 아미노산은 그 아미노산을 포함한 음식을 필수적으로 섭취해야 한다는 의미에서 필수아미노산이라 하고, 사람 신체에서 만들 수 있다면 그 아미노산을 포함한 음식은 먹어도 안 먹어도 그만이란 의미에서 비필수아미노산이라 부른다. 지금 이 아미노산 20종을 다 외우자는 건 아니고 (외우자고 해도 외울만한 브레인 파워가 더 이상 없달까나 -_-a) 필수아미노산 중 라이신이란 게 있다.

결론은, 네, 라이신은 먹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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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라이신 및 각종 식품 첨가제를 제소하는 회사 중 미국의 Archer Daniels Midland (ADM)이란 회사가 있다. 식품 첨가제라는 게 최종 소비자가 직접 사먹는 게 아니라, 시리얼, 소다(콜라, 사이다 류), 식빵, 주스 등 각종 가공 식품에 들어가는 물건이다 보니, 솔직히 우리 같은 최종 소비자들한테는 다소 생소한 이름의 회사다. ADM? 그거 컴퓨터 CPU 만드는 회사 아니던가, 긁적? 그건 AMD이고, 아무튼 ADM이라는 생소한 이름의 회사가 사실은 Fortune 500에 손꼽히는 거대한 회사다.

연방법원에서 그 ADM에게 1997년 담합을 통한 가격 조작 등의 공정거래 위반에 대한 처벌로 1억불의 벌금을 물렸다. 내용인즉슨 미국(1), 일본(2), 한국(2)의 5개 회사가 담합하여 전세계 라이신 시장을 나눠 먹고는 입을 맞춰 가격을 조작했다는 거다. 1억불이란 당시까지만 해도 기업 하나에 매겨진 벌금으로는 역사상 최대의, 상상도 하기 힘든 규모의 벌금이었고, 1999년에는 같은 이유로 회사 중역 3명이 미국 연방 정부 교도소 수감을 선고 받았다.

대형 자본에 대한 의혹의 눈초리와 음모론은 끊이지 않지만, 이를 증명하기란 쉽지 않다. 수많은 사람들이 증거를 찾았다며 소란을 피워대지만 이들은 대부분 정황 증거에 불과하다. 물론 왠지 들어보면, 너무나 X-파일 스러워서 솔깃하며, 한편으론 가슴 두근거리는 얘기들이긴 한데 법정에 설 자리는 없다. 음모론을 우리가 음모이라고 부르는 데에는 다 이유가 있는 법. 그런데 이 ADM 사건이 실로 놀라웠던 것은 실제로 법정에서 유효한 증거들--ADM과 그들의 협력업체 경쟁업체들 사이에서 가격 조작을 논의하는 대화 내용 및 영상을 담은 테입들--이 수백개나 쏟아져 나왔기 때문이다. 그런 테입들을 얻는 데에는 FBI 역사상 가장 능숙하고 생산적인(prolific한) 정보원이 있었기 때문이다.


마크 위타커의 등장

1989년, ADM은 데구사(Degussa)라는 독일 화학 회사와 라이신 제조를 위한 합작 논의를 시작한다. 당시 ADM은 라이신 제조에 필요한 포도당(dextrose)을 상당량 보유하고 있었고, 이를 이용해 바이오프로덕트(bioproduct) 산업에 손을 뻗치길 원했기에, 이미 다양한 아미노산 제조 기술을 보유하고 있던 데구사와 접촉을 한 거다. 이때 데구사는 마크 위타커(Mark Whitacre)라는 데구사의 미국지사 화학약품부서 부사장을 협상 대표로 내보냈다. ADM은 데구사의 업무 방식이 너무 느리고 관료적이라 판단해서 결국 이 합작은 실패로 돌아갔지만, 180센티의 키에 눈부신 금발을 지닌 카리스마 넘치는 32세의 위타커의 수완만큼은 높이 사서 결국 그를 빼가는데 성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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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부신 금발? 물론 지금은 머리 다 벗겨진 중년의 아저씨일 뿐.


ADM은 위타커를 생화학 부서 초대 사장으로 임명하는데, 그런 ADM의 위타커 영입은 성공이었다. 위타커는 ADM에 가서 그의 재능을 본격적으로 발휘하며 3년만에 ADM의 라이신 제조 공장을 세계 최대 규모로 키워낸다.


정보원의 탄생

그런데 1992년 하반기 들어 라이신 공장에서 유난히 말썽이 잦아진다. 그러던 어느날 위타커는 회사 간부 회의에 들어가 어젯밤에 자신이 경쟁업체 소속이라고 밝힌 사람한테 집으로 전화가 왔는데, 우리 라이신 공장에 방해 공작원이 있다며, 자신에게 천만달러를 지급하면 그 공작원의 신분을 알려주겠다고 하더라는 이야기를 한다. 이에 ADM은 이 사실을 CIA에 신고하지만, CIA는 자신들의 관할이 아니라며 사건을 FBI에 넘긴다. 이 사건을 맡은 FBI는 조사에 착수하지만 조사는 난항에 난항을 거듭, 별 소득이 없었다.

그도 그럴 수밖에 없었던 것이, 위타커의 훗날 진술에 따르면 방해 공작원이 있다는 이야기는 자신이 지어낸 것이었다고? 에엑? 왜 이런 거짓말을 했는지는 아직도 분명하지 않은데, 어찌됐건 이 어이없는 거짓말 하나로부터 위타커가 희대의 내부고발자가 돼버리는 아이러니를 당시에는 그 누구도 알지 못했다. 위타커 본인조차도.

허위신고인 줄도 모르고 별 소득 없이 여기저기 들쑤셔보기만 하던 당시 사건을 맡았던 브라이언 셰퍼드(Brian Shepard)라는 FBI 요원은 결국 1992년 11월 5일 저녁 위타커의 집으로 찾아간다. 위타커의 말에 따르면 경쟁업체 사람이 그에게 계속 전화를 한다고 하니, 그의 집 전화에 도청 장치를 설치하여 일단 이 협박 전화를 녹음하자는 단순한 이유에서였다. 셰퍼드가 도청 장치 설치를 마치고 위타커의 집을 나서려는 순간 또 하나의 결정적인 사건이 터진다.

내막은 정확히 몰랐지만 ADM 내에 뭔가 다른 비리(?)들이 있다고 의심한 위타커의 아내는 위타커에게 이에 대해서도 FBI에게 자백하라고 성화를 했지만 그가 듣지 않자, 그러면 자신이 직접 이야기를 하겠다며 셰퍼드를 따라 나서려 한 거다. 그런 그의 아내의 고집에 못 이겨 결국 위타커는 셰퍼드를 따라 나서며 "잠깐 이야기 좀 합시다"라며 셰퍼드의 차에 탄다. 무슨 이야기를 하려나 의아해하던 셰퍼드에게 위타커는 "ADM가 경쟁사들과 공모하여 라이신 및 기타 식품 첨가제 가격을 조작하고 있다"는 자백을 한다.

물론 세상에는 유토피아와 사회 정의 따위를 믿는 순수하고 아름다운 인간들도 많겠지만, 그런 사람들은 보통 거대 기업의 중역이 되진 않는다. 그 반대로 거대 기업에서 엄청난 녹을 받아 먹는 회사 중역이 FBI가 묻지도 않았고 의심조차 하지 않고 있던 회사 기밀, 그것도 그냥 기밀이 아니라 회사 내부의 거대한 음모와 범죄에 대해 난데없이 자백하지도 않는다. 그런데 이 35살의 풋내기 같은 녀석이 지금 뭐라는 거야? 멍~.

순간 벙찐 셰퍼드는 "증거 있소? (Prove it.)"라며 가격을 조작했다는 대화 내용이 있으면 녹음해 오라고 하고, 별로 어려울 거 없다고 생각한 위타커는 그러마고 응한다. 위타커의 계산으로는 비밀 회의 중 하나에 참석해서 회의 내용을 녹음해다가 FBI에 건네주는, 이틀이면 끝날 일이었던 거다. 그렇지만 실제는? 자그마치 33개월에 걸쳐 수백번의 회의 내용을 녹음해주기에 이른다. FBI는 물론 세계적으로도 유례를 찾아보기 어려울만큼 협조적이면서 동시에 수완이 뛰어난 정보원은 이렇게 탄생했다.


신이 내린 정보원

회의에 녹음기를 주머니나 브리프 케이스에 숨겨 들어가는 일은 누구나 할 수 있다. 그리고 많은 경우에 들키지 않을 거다. 그렇지만 FBI나 경검찰 등에게 쓸모있는 정보원이란 법정에서 유효한 증거가 될 수 있는 대화 내용을 녹음하는 일이다. TV 수사물 같은 데서도 자주 나오는데, 경찰이 정보원을 마약상에게 보내면서 항상 이게 키워드니까 마약상이 자기 입으로 그 키워드를 뱉어내게 만들어야 된다고 강조를 하며, 그들의 대화 내용을 도청하다가 그 키워드가 나오면 "됐어"라며 현장을 덮치는 장면은 꽤나 익숙할 거다.

마찬가지로 기업들의 가격 조작 모의를 증명하기 위해서도, 증거로 채택되기 위한 몇가지 기본적인 조건이 있다. 그중 하나는 물론 범죄 행위가 FBI 관할 내에서 이뤄져야 한다는 거다. 그렇지만 위타커가 말한 대부분의 비밀 회의들은 대부분 아시아나 유럽 등 외국에서 벌어지고 있었다. 공모자들 모두 미국의 독점규제(antitrust)법안들에 대해 꽤나 익숙했기에 되도록이면 미국에서 모임을 갖는 건 꺼려했기에 FBI에서도 이에 대해 손쓸 방법이 없었던 거다.

그렇지만 FBI의 고민(?)을 이해한 위타커는 별일 아니란 듯이 "하와이에 골프 치러 오라고 하면 되지, 뭐"라며 경쟁사 사람들을 능청스레 마우이로 초대한다. 물론 이 대화 내용도 녹음돼 있는데, 일본인 파트너가 "마우이는 미국이잖소"라고 하자, 위타커는 "미국이잖소라뇨? 그게 무슨 상관이오?"라고 되묻는다. 일본인은 다시 "미국은 독점 규제가 심한 거 다 알잖아요." 빙고! 위타커는 다시 에이~ 하와인데? 골프 코슨데? 진짜 관심없어?라며 일본인을 살살 꼬셔 내고, 결국 이 모임을 미국 영토에서 갖게 하는데 성공한다.

그 외에도 FBI가 이게 필요하다 그러면 이거, 저게 필요하다 그러면 저거를 정확히 낚아다 줬다. 당시 FBI 수사관들의 증언에 따르면 위타커는 모든 수사관들이 꿈꾸는 그런 정보원이었다고 한다. 위타커가 이토록 능숙한 정보원이었던 데에는 크게 두가지 요소가 작용했다. 한가지는 물론 공모자들 중 누구도 그를 의심하지 않았다는 거고, 또 한가지는 위타커 스스로 절대로 걸리지 않을 거라는 자신감이 있었다. 위타커의 이 자신감은 조금 병적인 구석이 있었는데, 이런 병적인 자신감이 결국 ADM은 물론 위타커 본인의 몰락도 초래하게 된다.


횡령한 놈 vs 조작한 놈

정보원으로서의 이중생활에서 오는 스트레스가 그를 그렇게 만들었는지, 원래 그런 성향이 조금 있었는지는 정확히 알 수 없지만, 위타커에 대한 이야기들을 들어보면 확실히 그에게서 강박적인 거짓말쟁이(compulsive liar)적인 요소들이 발견된다. 우선 이 모든 사건의 단초가 경쟁사의 공작원이 ADM의 라이신 제조를 방해하고 있다는 거짓말이었다.

FBI의 ADM에 대한 수사가 한창 진행 중이던 상황을 살펴 보면 그는 그를 둘러싼 모든 조직을 속이고 있었다. 하나는 물론 그가 ADM이 바깥 세계는 물론이고 극소수의 중역들을 제외한 ADM 사원들에게조차 하고 있는 거짓말--치열한 경쟁을 통해 라이신을 공급하고 있다는 거짓말--의 일부였다는 거다. 둘째로, 그는 ADM 및 협력경쟁업체 중역들 몰래 FBI와 협조를 하고 있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어이없게도 그는 FBI조차 속이고 있었다.

1995년 8월 FBI의 수사는 이미 마무리단계에 접어 들었고, ADM 사건이 법정으로 넘어가는 시점에서 FBI 수사관 둘이 위타커와 점심을 먹게 되는데, 위타커가 난데없이 자신이 ADM으로부터 50만달러를 횡령했다고 자폭자백을 한다. 아니, 이 씨밤바 쉐키가 점심 먹은 거 소화 안 되게 갑자기 뭔 소리야? 지금 50만달러라고 했니? 횡령이라고 했니? 이 메가톤급 핵폭탄에 FBI와 검찰은 패닉 모드.

물론 횡령은 횡령이고, 가격 조작은 가격 조작이니 횡령한 놈들은 횡령한 놈들대로, 가격 조작한 놈들은 가격 조작한 놈들대로 처벌하면 그만이겠지만, 우리가 사는 세상은 우리가 상상하는 세상과 다른 법. 특히나 횡령한 놈이 가격 조작한 놈들을 폭로한 상황이라면 결국 횡령한 놈이 더 나쁜 놈이냐, 가격 조작한 놈이 더 나쁜 놈이냐의 Evil vs Evil의 싸움이 되게 돼 있다. 그리고 물론 횡령한 놈이 얼마나 나쁜 놈이냐는 횡령한 놈이 얼마나 횡령했냐와 동치. 그래서 FBI는 정말 50만달러 뿐인지 몇차례 물었고, 위타커는 그것뿐이라고 맹세를 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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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후로도 위타커의 다양한 종류의 거짓말은 계속 되는데, 급기야는 FBI 수사관이 자신에게 증거를 파괴하도록 시켰다는 등의 모함도 서슴치 않고 하며, 자신과 주변 사람들의 삶을 끊임없이 파괴하기에 이른다.


거짓말쟁이를 어떻게 믿지?

누군가가 정말 뛰어난 거짓말쟁이라면 그로부터 진실과 거짓을 구분해내는 건 불가능하다. 진실이나 거짓이나 원래가 그 외형과 내형 사이에 어느 정도의 통계적 상관관계는 있을 지언정 그 둘이 연결되어 있어야 할 당위성은 없다. 위타커가 맹세코 50만 달러만 횡령했다고 거듭 다짐하고, 그의 말과 태도가 정말 믿음이 간다고 하더라도, 그에게 이미 한번 속았다면 더 이상 그를 철저하게 신뢰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아이러니하게도 우리는 가끔 진실을 밝히는 거짓말쟁이보다는 진실을 조금도 밝히지 않는 철저한 거짓말쟁이를 훨씬 더 믿을 수밖에 없다.

그리고 위타커의 경우엔 그가 결국 믿을 수 없는 사람이었음이 밝혀졌다. 그가 횡령했다는 50만달러는 미국 달러와 거의 20:1의 환율을 갖는 그의 머릿속의 가상의 화폐로 50만달러에 불과(?)했다. 그가 실제로 횡령한 미화는 9백만 달러를 넘었다. 결국 그는 1998년 탈세와 사기죄로 연방 교도소에서 10년형을 선고 받는다. 그가 고발한 ADM의 중역들이 3년형을 받은 것을 감안하면 참으로 어이없는 일이었다.

위타커가 언론이나 수사기관에 꽤나 진솔하게 많은 이야기를 털어놨음에도 불구하고, 그가 처음에 왜 ADM 간부들에게 공작원에 대해 거짓말을 했고, 왜 FBI에게 가격 조작 사실을 자백했는지에 대해서는 여전히 의문이 많이 남아있다. 물론 앞서 말한 거짓말쟁이를 어떻게 믿느냐의 문제도 여기에 일조를 하고 있음에 틀림없다.

후자와 관련해서는 그의 이야기를 책으로 쓴 커트 아이켄월드(Kurt Eichenwald)나 당시 수사를 맡았던 FBI 수사관들의 짐작으로는 ADM이 FBI를 끌어들이자 자신의 회사공금 횡령 사실이 들어날까봐 걱정했던 것 같다고 한다. 공작원 이야기가 허위임을 누구보다 잘 아는 위타커로서는 FBI가 유령을 쫓으며 수사를 계속 하다보면 결국 위타커에 대해서도 조사를 시작하게 되면 얼마 못 가 공금 횡령 사실이 들어날 거라 판단해서, FBI의 관심을 다른 데로 돌릴 필요가 있었다는 추측이다. 이틀이면 끝날 거라 생각했던 정보원으로서의 역할을 자그마치 33개월간이나 지속하며 결국은 본인의 몰락까지 끌고 가게 된 것은, 일단 FBI의 가격 조작에 대한 수사가 시작된 이상, 위타커는 본인이 협조를 하든 안 하든 FBI가 진실을 캐낼 거란 생각에 협조를 했던 것 같다고 한다. 그렇지만 수많은 정보원과 내부고발자들을 상대해본 FBI에 의하면, 위타커 없이는 이 사건의 전말을 파헤치는 건 불가능했을 거라고 하니, 이 이야기는 과연 비극인지 희극인지 분간할 길이 없다. 진실은 본인 또는 신만이 안다고들 하는데, 이 이야기는 들으면 들을수록 본인도 신도 모를 것 같지 않아?

스티븐 소더버그(Steven Soderbergh)는 물론 희극이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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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티븐 소더버그 감독, 맷 데이먼 주연의 The Informant!


우리는 흔히 어떤 사건이나 사회 현상의 결과가 그 원인이나 동기와 잘 정렬돼 있을 거라고 믿는 오류에 빠진다. 누군가가 위타커와 같이 불의를 파헤치는데 결정적 역할을 했다면 그의 동기는 사회정의구현이었을 거라는 식의 믿음이다. 마찬가지로 그의 동기가 불순했다면, 그로 인해 발생하는 모든 결과가 역시 아무런 의미가 없다는 식의 믿음이다. 정말?

물론 누가 무엇을 왜 했느냐는 중요한 문제지. 그렇지만--그건 아이들에게 어떤 동기를 갖고 어떤 행동을 하라고 가르치는--교육적 관점에서 훨씬 더 중요한 문제라고... 애들한테 걸리지만 않으면 나쁜 짓 마구해도 된다고 가르치는 건 곤란하잖아. 그렇지만 동기가 결과와 정렬됐는가만을 들여다보는 짓은 사회 현상의 본질을 이해하는데 썩 도움이 되지 않는다규. 우리 삶에서 일어나는 수많은 사건, 사고들은 일차원적이지 않기 때문에 원인과 결과가 반드시 일치하지 않거등.

2000년 위타커가 교도소 수감 중에 This American Life의 아이라 글라스(Ira Glass)가 그를 찾아가 인터뷰를 했다.
위 : Knowing what I know now, %$#%# seven or eight years out of college at that point, and I didn't know anything about law enforcement at that stage. Knowing what I know now, there is no way they would have hardly any evidence to do anything. And all I had to do was go to ADM and tell them what was going on and ADM would have worked with me so much and put so much behind it that there's no way they could have done anything. There's no way.

I definitely regret my part of it, cause to me my family is more important than solving price fixing problems of the world and therefore I wish I just would have left and been with my family instead of been sitting here as a result of working on a big price fixing case.

글 : You did good by accident.

위 : Yeah, by accident. Purely by accident, believe me.

@ 정말이지 회사를 위해 양심을 팔아먹을 수 있냐고 묻는 건 순진한 거임? 멍청한 거임? 뭐, 물론 둘이 상호배타적일 필요는 없지만, 전혀 순진하지 않고, 멍청하기만 할 것 같은 이 기분은 뭐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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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이 지식과 정보를 전달하기 위해서는 언어를 이용하는데, 이는 문자와 말의 두가지로 나눠서 생각할 수 있다. 이중 문자는 시각적 정보 전달 법이고 말은 청각적 방법에 해당된다. 전자의 경우는 공간적 매질에만 거의 전적으로 의존하는데 반해, 후자의 경우는 음파라고 하는 시공간적으로 한정된 매질을 이용해야하기 때문에 그 한계 또한 분명했다. 수만년된 동굴의 벽화는 아직까지 우리에게 남아 있지만, 그 당시 인류의 음성은 그 어디에도 없다. (물론 한번 세상에 내뱉어진 소리는 한없이 약해지기는 하지만 절대로 사라지지 않기 때문에 아주아주 성능이 좋은 마이크만 있으면 재생해낼 수 있다고 믿은, 라디오의 아버지, 마르코니 같은 사람도 있긴 했다.) 인간이 수천년간 거의 모든 기록을 문자로 남긴 건 결코 우연이 아니다.

그러다가 1857년 세계 최초의 녹음기가 발명됐다. 녹음기와 축음기의 등장으로, 소리를 기록할 수 있게 되면서, 더 이상 음원과 같은 공간, 같은 시간을 공유하지 않고도, 원하는 시간에 원하는 곳에서 소리를 재생할 수 있게 된 거다. 그렇지만 녹음과 축음, 특히 고품질의 녹음 비용은 너무 많이 들다보니, 인간이 정보를 전달하는 가장 보편적인 매체는 여전히 종이에 인쇄된 활자였다. 우리한테는 너무 흔해서 이젠 감도 잘 안 오지만, 수백에서 수천년간 축적된 제지 기술과 인쇄술의 효율이란 사실 어마어마하게 놀라운 거다. 매년 쏟아져 나오는 책, 팜플렛, 전단지의 양과 하루도 거름없이 이들 중 쓰레기통으로 들어가는 양을 생각해보라.

그렇지만 정보 전달의 효율과 정보 습득의 효율은 전혀 다른 문제다. 거의 모든 동물에게 있어서 주변 환경을 인식하고 이에 대응하기 위해 사용하는 1차 감각은 시각이다. 그런데 독서는 바로 이 시각을 이용한 정보 습득 과정이다보니, 독서와 다른 활동을 멀티태스킹하기란 거의 불가능하다. 반면에 청각은 2차적인(?) 감각이기 때문에 청각을 반드시 이용해야 하는 활동--다른 사람과 대화를 하거나 음악/영화(이 경우는 시청각을 모두 이용) 감상 따위--중이 아니라면, 귀는 아무것도 안 하고 놀고 있는 경우가 많다. 따라서 운전이나 요리 등을 하면서도 청각을 이용한 정보 습득은 얼마든지 가능하다.

바꿔 말하면, 지난 수천년간은 인쇄기술이 녹음 및 축음기술보다 월등히 싸게 먹힌다는 기술적 한계 때문에 인간에게 정보 습득 활동은 다른 활동으로부터 100% 분리된 독립적 활동으로 존재해 왔다. 그렇지만 디지털 미디어의 등장, 대용량 저장 매체와 광통신을 이용한 통신 대역폭의 엄청난 증가로 이 모든 게 바뀌었다.

아날로그 정보를 복사하는 일을 생각해보자. 책 한권 복사하기 vs 카세트 테입 하나 복사하기, 어느게 더 쉬운지는 묻지 않아도 다 알 거다. 그런데 이 정보를 디지털화해서 컴퓨터에 담아두기 시작하면서 그 차이가 줄어들기 시작했다. 화일이 뭘 담고 있든 간에, 아래아 한글 화일이든 mp3 화일이든, 화일 하나 복사하는 과정은 동일하다. 한번 기록된 정보는 그게 문자 정보든 음향 정보든 이를 공유하는 비용 차이가 거의 없다. 물론 완전히 동일하지는 않다. 책한권 분량의 문서 화일의 용량으로는 음향 정보는 일반적으로 고작 몇분 정도 분량밖에 못 싣는다. 여전히 음향 정보는 전송 및 보관하는 비용이 상대적으로 비싸다. 그러나 테라바이트짜리 하드 드라이브가 일상화(아직은 아닌가?)되고, 이런 저장 매체에 화일을 쓰거나, 저장 매체로부터 화일을 읽는 속도, 또 이를 공유하기 위한 인터넷 통신 속도가 엄청나게 빨라짐에 따라 그 비용의 차이가 실질적으로는 거의 없어졌다. (물론 음질 좋은 녹음 장비의 비용은 성능 좋은 가정용 프린터 비용과 비교가 안 되다보니, 컨텐츠의 생산 비용에서는 여전히 차이가 있다.)

책을 소리내 읽는 걸 녹음해 놓은, 소위 audiobook의 등장은 1930년대였지만, audiobook이 크게 인기를 끌기 시작한 건 불과 최근 몇년 사이인 데에는 이런 기술적 발전의 역할이 숨어 있다. 어쩌면 책을 어야 하는 시대가 가고 있는지도 모른다. 물론 각종 삽화나 그래프 등의 시각적 장치를 대체하는 건 불가능하고, 활자 중독증이 있는 사람도 있다보니 책을 읽는 행위가 완전히 사라지지는 않겠지만, 운전 중에, 운동 중에, 요리 중에, 산책 중에 음악 뿐만 아니라 다양한 지식과 정보를 습득하는 일이 가능해진, 정보를 듣는 시대가 오고 있다. 이를 잘만 이용하면, 읽기라는 독립된 행위에만 의존해야 하던 시절에 비해 인간이 단위 시간당 습득하는 정보량이 빠르게 증가할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이런 디지털 미디어가 바꿔놓은 흐름을 정확히 집어내서 가장 생산적으로 활용한 예가 podcast와 iTunes U다. Podcast는 iPod의 pod와 broadcast의 cast를 조합한 단어로 그야말로 오만가지 사람들이 오만가지 주제에 대해 녹음을 해서는 이걸 iTunes Store를 이용해 무료로 배포하는 인터넷방송이고, iTunes U는 iTunes University의 약자로 다양한 교육기관(이라고 해봐야 현재로는 영국과 미국의 대학들과 씽크탱크(?)들로 한정돼 있다)이 자신들이 제공하는 프로그램 중 일부를 역시나 iTunes Store를 통해 무료로 제공하는 서비스다. 미디어 플레이어로서의 iTunes의 효용--특히 Windows 기반에서--에 대해서는 아직도 말이 많지만, podcast와 iTunes U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만으로도 iTunes는 나한테는 엄청나게 만족스러운 소프트웨어다.

아무튼 서론이 길었는데, 이런 맥락에서 맛있는 걸 나눠먹는 심정으로 내가 즐겨듣는 podcast 중 일단 5개만 소개해볼까 한다. 순서는 알파벳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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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EconTalk
분류 : 경제
진행자 : Russell Roberts
홈페이지 : http://www.econtalk.org
소개 : 앞서 몇번 언급한 적이 있는데, George Mason 대학의 경제학자인 Russell Roberts가 다양한 경제학자, 저자들과 약 1시간 가량의 인터뷰를 진행한다. 다양한 경제학 이론, 최근의 경제/경기 상황에 대한 분석, 주목할만한 경제학/사회학 저술의 내용 소개 등 경제와 관련된 다양한 주제를 아우른다. 모든 문제에 대해 학문적(?) 접근을 하기 때문에 특별한 투자 전략은 건 논하지 않지만, 특정 투자 전략의 이면에 있는 이론에 대해서는 가끔 다루기도 한다. 참고로 Roberts는 University of Chicago 대학원에서 학위를 받아 시카고 학파에서 출발해서 오스트리아 학파로 넘어간 성향이다보니 시장 친화적인 관점을 유지한다. 업데이트는 주 1회로 매주 월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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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Radio Lab
분류 : 과학
진행자 : Jad Abumrad & Robert Krulwich
홈페이지 : http://radiolab.org
소개 : 위약효과, 우주의 기원 등부터 시작해서 사랑이 뭘까? 도덕이란, 시간이란 뭔가 등 언뜻보면 전혀 과학과 상관없어 보이는 질문에 대한 답변을 과학에서 찾아보는 프로그램. 다양한 사람들의 개인적인 경험담과 이에 대한 과학적 분석을 내리는 과학자들과의 인터뷰들을 솜씨좋게 배치시켜 이야기를 풀어나가는데, 이야기 진행에 있어 음향효과를 탁월하게 잘 활용한다. 차분하고 편안한 목소리의 Abumrad와 조금 요란한 목소리의 Krulwich 두 진행자 사이의 호흡도 만점. 그리고 무엇보다도 프로그램 이면의 철학(?)에 완전 공감.

Krulwich가 Caltech 졸업식에 연사로 초청되어 갔을 때 졸업생들에게 연설한 내용에서 그 철학이 가장 잘 나타나있길래 여기서 소개해본다. Tell Me a Story라는 제목으로 2008년 7월 podcast에 방영된 바 있다.

이하는 연설문.


업데이트 주기는--항상은 아니지만--주로 2주에 1회, 화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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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Stuff You Should Know
분류 : 상식
진행자 : Charles W. Bryant & Josh Clark
홈페이지 : http://blogs.howstuffworks.com/category/stuff-you-should-know
소개 : howstuffworks.com이라는 웹페이지가 있는데 초끈이론, 블랙홀 등의 난해한 과학 분야부터, 손톱깎는 팁에 이르기까지 온갖 잡다한 주제에 대해 일반인들을 상대로 쉽게 설명해놓고 있다. 이들중 일부를 역사, 과학, 음악, 여행, 자동차 등등 다양한 분야로 나눠서, podcast 시리즈를 내놓고 있는데 그중 가장 대표적인 podcast로, 굳이 분야를 나누자면 약간의 과학 + 잡상식에 해당하려나? 두 진행자의 격식없는 진행도 podcast를 듣기 편하게 하는 요소 중 하나. 업데이트는 주 2회, 수요일과 금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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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TED Talks
분류 : 교육
홈페이지 : http://www.ted.com
소개 : Technology, entertainment, design의 약자를 딴 TED라는 비영리 단체가 매년 개최하는 TED Conference의 강연 내용을 업데이트해주는 podcast. TED가 뭐하는 곳이다라고 콕 찝어 설명하기는 굉장히 애매한데 대충 혁신적인이고 진보적인 발상의 전환을 추구하기 위한 조직이라고 하면 될까? 그런 취지에 맞춰서 TED Conference는 성공적인 경영인, 학자, 정치가, 예술가 등을 초청하여 강연을 청하는 모임. 가끔 혁신과 진보적 사고라는 게 소위 미국이 누리는 풍요와 American Dream의 토대라는 느낌을 주기도 하지만 뭐, 미국에서 시작해서 미국 사람들 기준의 성공의 잣대에 맞춰져서 초청된 사람들의 자리이니 그걸 피할 수는 없겠지. 그렇지만 대체적으로 굉장히 수준 높고, 감탄할 만한 아이디어들을 많이 접할 수 있는 강연들이다. 오디오, 비디오, HD의 세가지 버전으로 제공되는데, 강연이 시각 자료에 의존하는 경우도 많기 때문에 비디오나 HD로 구독(?)을 권함. 업데이트는 수시로/지멋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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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This American Life
분류 : 생활/이야기
진행자 : Ira Glass
홈페이지 : http://thisamericanlife.org
소개 : 전에도 간단히 소개한 적이 있지만 다시 한번. 지금까지 소개한 podcast들이 전부 조금은 교육적(?)인 테마라면, 이 podcast는 제목의 'Life'라는 단어가 암시하듯, 삶의 숨결을 전달하는데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앞서 Radio Lab을 소개하면서 Robert Krulwich의 연설도 같이 실었는데, Krulwich가 언급하고 강조한 "power of story"가 무언지, 한 인간이 다른 인간에게 정서적 연대를 느끼는 게 얼마나 소중한 일인지를 생생하게 느낄 수 있다. 본인의 podcast 중독을 유발한, 가장 먼저 듣기 시작한 podcast이기도 하다. 업데이트는 주 1회, 월요일.


@ 안타깝게도 국내에서는 아직 podcast가 활성화되지 않은 관계로 여기에 소개된 모든 컨텐츠는 영어다. 집집마다 초고속 인터넷 깔아놓고, 너도 나도 싸이질, 블로그질 하는 걸 갖고 '인터넷 강국'이라는 수사만 남발할 게 아니라, 그 인터넷망으로 뭘 하느냐를 고민할 때다. 물론 블로그도 유용한 정보 교환의 수단이지만 이제 한발 더 나갈 때도 됐잖아? 그런 의미에서 과학 관련 podcast를 시작해보고 싶기는 한데, 어떤 포맷으로 해야할지 잘 모르겠는데다가, 결정적으로 꾸준히 할 자신이 없다. orz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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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전에 소개한 바 있는 This American Life라는 라디오 프로그램을 유럽에 가 있는 2주 동안 못 듣다가 한국에 돌아와서 다시 챙겨 들었는데 신기(?)하게도 두 방송분 중 하나가 Break-Up (실연, 이별, 이혼 등을 총칭하는 말인데 우리말로는 딱 일대일 대응되는 표현이 없는 듯).

This American Life 투고가 중 Starlee Kine이라는 아가씨가 있는데, 이 방송분에서 소개된 첫번째 에피소드는 Starlee Kine이 남자친구와 헤어진 후 방황(?)하다가 스스로 Break-up song을 하나 쓰기로 결심, 곡을 쓰는 과정을 소개한 이야기. 그렇게 씌여진 곡은 여기서 들을 수 있다. (클릭)

물론 나의 경우야 연애하다 깨진 것도 아니고 혼자 속끓이는 (어찌보면 더 처량하고 한심한) 케이스긴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아가씨 이야길 듣고 있자니 어찌나 구구절절 공감이 가던지... ㅠ.ㅜ

사실 이 에피소드 타이밍이 더 골때리는 이유는, 유학 갔을 때 사귄 친구 한명을 이번에 확회 기간 동안 만났는데 이 친구가 또 7년 사귄 여자 친구랑 헤어져야 하나 고민하고 있더라는 거. 며칠 전에 이메일이 왔는데 결국은 헤어지기로 한 듯.

정작 하려던 이야기는 이번 방송분의 두번째 에피소드.

1987년 2월 11일, Noah Adams라는 양반이 진행하는 All Things Considered라는 미국의 라디오 프로그램의 게스트로 뉴욕 맨하탄에 사는 8살짜리 소녀가 출연한다. 그녀의 이름은 Betsy Allison Walter. 사연인즉슨, 부모의 이혼을 어떻게든 막기를 원한 이 소녀가 당시 뉴욕 시장이던 Edward Koch에게 편지로 도움을 요청한 것이다. 이 사실을 알게 된 이 라디오 프로그램 프로듀서들이 이 소녀를 초청한 것.

사실 부모의 이혼을 막길 원하는 자신의 절박한 심정을, 입에 침이 고인 것을 채 삼키지도 못하는 듯한 어린 말투와 목소리로, 그럼에도 불구하고 놀랍도록 조리있게 이야기하는 걸 듣노라면 그 자체만으로도 안타깝지만, 이 사연을 들으면서 이 소녀에게 동정심을 갖게되는 가장 큰 이유는 '어른들의 쓸모없음'을 뼈저리게 느꼈기 때문... 일단 Koch 시장의 답장을 살펴보자.

Thank you for the letter. I was saddened to learn of the difficult times you are experiencing now. It is important for you to share your feelings and thoughts with someone during this time. I wish there is….was an easy solution to these problems, but thee is not. Please remember that you are loved and that people care about you. All the best. Sincerely, Edward Koch.

어쩔 수 없이 정치인일 수밖에 없는 이 식상한 답변을 보라. 라디오 프로그램 진행자의 "이 답장이 조금이라도 도움이 됐니?"라는 질문에 소녀는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단호하게 "No"라고 대답한다. 그래도 이건 약과다.

이 아이는 뉴욕 시장 외에 Boys' and Girls' Book of Divorce라는 책의 작가/심리학자에게도 도움을 청하는 편지를 썼는데 이 심리학자라는 양반의 답이 또 걸작이다. 이 소녀의 표현을 빌리면, "Well, he said that I should try another of his books to find out help." -_-,, "내 책이나 사서 봐"라니, 이 무슨...

사실 Betsy가 직면한 문제의 본질은 '별 달리 뾰족한 답이 없다'는 사실에 있다. 어른들이 이런 문제를 아이들에게 설명하는 과정에서 나타나는 문제는 크게 두가지다. 한가지는 "어린 아이는 세상의 어두운 면으로부터 철저하게 보호돼야 한다"는 발상이고, 또 다른 한가지는 "아이들이 이런 세상의 복잡함을 이해할 수 없기 때문에 답이 없는 문제들에 대해서도 답이 있는 척 해야 한다"고 믿는다는 점이다. 이 함정에 빠지고 나면, 이미 충분히 아이들에게 해줄 말이 없는 우리는 더더욱 할 말이 없어진다.

재미있는 것은 Noah Adams는 이 인터뷰가 있은 20년 후인 2007년에 Betsy Allison Walter를 다시 한번 자신의 프로그램에 초청한다. 만 29살의 그녀는--왠지 꽤나 잘 어울리게도--초등학교 선생님이 되어 있었다. 자신의 그 옛날 인터뷰를 들을 때면, 그 당시 무슨 생각들을 했는지 아직도 정확히 기억이 난다는 그녀는--당시 인터뷰를 하던 Noah Adams도 자신에게는 도움이 안 되는 틀에박힌 어른들 중 하나라고 생각했다는 이야기까지 물론 웃으며 전혀 악의없이 솔직하게 한다--지금의 Betsy가 그때 그 8살짜리 Betsy에게 조언을 해준다면 무슨 말을 해주겠냐는 Adams의 질문의 무게를--게다가 초등학생 교육자이기 때문에 더더욱--온전히 느끼는 듯했다.

8살 소녀가 바라보는 부모의 이혼에 대한 진실 혹은 진실이라고 생각하는 이미지와 29살 숙녀가 바라보는 부모의 이혼에 대한 진실 사이의 괴리를 너무나도 잘 이해하는 그녀는, 당시 자신은 실제 어른들 세계의 진실에 노출됐다더라면 이를 견딜 수 없었을 것이라고 당시를 회고한다. 그러면서 8살의 Betsy에게 "부모의 이혼이라는 하나의 사건에 대해 라는 질문으로 스스로를 괴롭히기 보다는, 그 질문은 그 사건의 당사자인 부모들이 충분히 고민했으리라 믿고 맡겨놓고 앞으로 그녀 스스로 무얼 어떻게 해야 하는가에 대해 고민할 걸 부탁하겠다"고 대답한다.

8살짜리 Betsy는 그 대답이 여전히 진실을 회피하고 있다고 느낄 것이기에 충분한 답변이 되지 않는다고 느끼겠지만 적어도 무력감을 느끼지는 않을 대답을 해주고 싶다며...

시장과 심리학자란 사람들이 그녀에게 들려준 조언이란 것은 쓸모없기 짝이 없었지만, 그 덕분에 자신을 반복해서 8살로 되돌릴 수 있는 그 인터뷰 하나를 평생을 안고 살 수 있었던 건 그녀에게는 행운이었는지도 모른다. 그 인터뷰 내용을 듣고 있노라면 너무 너무 가슴이 아프다는 그녀는, 부모의 이혼으로 고통받는 아이들에게 '세월이 지나면 아무것도 아닌 일 혹은 수 많은 다른 사람들도 겪는, 그렇지만 결국은 극복해내는 일'이라는 클리셰만을 반복해서 되뇌이는 이들이나, 부모의 이혼에 대한 어린 나이에 느끼던 막연한 불안, 슬픔 또 때로는 분노의 희미한 흔적만을 갖고 사는 사람들은 고민할 수 없는 부분에 대해 끊임없이 고민할 수 있었을 테니까.

원래가 다른 사람을 이해한다는 건 그렇게나 어려운 일이다. 결국 자기 자신을 이해하기 전엔 절대로 불가능하다고 보면 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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