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민)자본주의나 물질만능주의가 인간성을 파괴한다는 이야기의 취지는 십분 이해하겠는데, 이걸 받아들이더라도 항상 그 다음이 문제다. 왜냐하면 사람이 금전적 손익을 초월한 사랑, 우정, 박애에 감동하기는 쉽지만, 그런 거에 감동하는 것과 실천하는 건 전혀 다른 문제라...
계산적 인간관계의 원흉이 돈이나 물질이라고 해서, 이것들 없이 살 수 있는 건 아니잖아? 뭐, 아주 극단적인 경우라면 물물교환을 하면 되니 돈이나 자본은 없애자고 할 수도 있겠지만, 돈이 없어진다고 비용의 문제가 사라지는 건 아니니까. 예를 들어 내가 텃밭에다 토마토 농사를 지어서 이웃들에게 나눠줄 경우, 이웃들로부터 돈을 받지 않는다고 해서 내가 토마토를 생산하는 비용, 소위 시간과 노력이 들지 않은 건 아니다.
보통은 돈을 바라지는 않더라도 이웃들이 고마워하고 맛있게 먹어주기를 기대하고, 또 보통은 (설령 맛은 좀 없더라도) 이를 고마워 한다. 이는 내가 시간과 노력이라는 형태로 들인 비용을 상대방이 인정해주기를 바라는 것으로 비교적 자연스러운 행위로, 이웃들이 그런 나의 비용을 인정해주지 않으면, 사람에 따라선 섭섭해하기도하고, 불쾌해하기도 하고, 다양한 반응이 나타난다.
본질에는, 내가 들인 비용을 상대방이 인정해주느냐의 문제가 놓여 있는 거고, 금전 거래는 (다소 친밀감은 떨어지지만) 이런 비용을 인정해주는 한가지 형태에 불과하다. 돈이냐 아니냐가 아니고, 상대방의 비용을 흔쾌히 인정하고, 내가 상대방을 위해 비용 부담을 할 준비가 돼 있느냐 없느냐의 문제다.
이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 "자본주의가 문제야"라며 뒤엎어서 사회주의든 제3의 어떤 체제든 만들어내봐야, 그 시스템 속에서 금전적 손익을 초월한 인간관계란 허울에 불과, 결국에는 "우리가 째째하게 돈 몇푼 따지는 그런 사이 아니잖아. 그러니까 돈(비용)은 내가 기꺼이 낼께"보다는 "우리가 째째하게 돈 몇푼 따지는 그런 사이 아니잖아. 그러니까 돈(비용)은 너가 기꺼이 지불할 거지?"의 형태로 남의 골수를 뽑아먹는 기생충만 만들어낼 뿐.
사실 이런 풍경은 이미 우리가 생각하거나 원하는 것보다도 훨씬 자주 벌어지고 있는데, 재산 분배를 놓고 형제들이 싸우는 것도 "야만스럽게말야 형제들끼리 재산 갖고 싸우면 안 되지. 그러니까 (내가 보기엔 이렇게 재산을 나누는 게 정당한데, 설령 네가 보기엔 정당하지 않더라도) 치사하게 꼬치꼬치 따지지 말고 그냥 이것만 먹어"라는 태도를 취하기 때문. 형제들이 한 사람도 양보 없이 전부 다 이런 포지셔닝을 취해버리면 싸움이 안 날래야 안 날 수가 없잖아?
결국 문제는 사회 전반에 걸친 "우리가 째째하게 돈 몇푼 따지는 그런 사이 아니잖아. 그러니까 돈(비용)은 너가 기꺼이 지불할 거지?"라는 인식을 어떻게 하면 "우리가 째째하게 돈 몇푼 따지는 그런 사이 아니잖아. 그러니까 돈(비용)은 내가 기꺼이 낼께"로 전환시킬 수 있느냐인데 이게 정말 자본주의 vs 사회주의의 문제일까?
@ 물론 자본주의가 만들어낸 계산적 인간관계의 틀 안에 있기 때문에, 금전적 손익을 초월한 인간관계조차도 "우리가 째째하게 돈 몇푼 따지는 그런 사이 아니잖아. 그러니까 돈(비용)은 너가 기꺼이 지불할 거지?"의 형태를 띌 수밖에 없다고 한다면, 그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은 들지만, 그럴 수밖에 없다는 확신은 잘 안 서서...
계산적 인간관계의 원흉이 돈이나 물질이라고 해서, 이것들 없이 살 수 있는 건 아니잖아? 뭐, 아주 극단적인 경우라면 물물교환을 하면 되니 돈이나 자본은 없애자고 할 수도 있겠지만, 돈이 없어진다고 비용의 문제가 사라지는 건 아니니까. 예를 들어 내가 텃밭에다 토마토 농사를 지어서 이웃들에게 나눠줄 경우, 이웃들로부터 돈을 받지 않는다고 해서 내가 토마토를 생산하는 비용, 소위 시간과 노력이 들지 않은 건 아니다.
보통은 돈을 바라지는 않더라도 이웃들이 고마워하고 맛있게 먹어주기를 기대하고, 또 보통은 (설령 맛은 좀 없더라도) 이를 고마워 한다. 이는 내가 시간과 노력이라는 형태로 들인 비용을 상대방이 인정해주기를 바라는 것으로 비교적 자연스러운 행위로, 이웃들이 그런 나의 비용을 인정해주지 않으면, 사람에 따라선 섭섭해하기도하고, 불쾌해하기도 하고, 다양한 반응이 나타난다.
본질에는, 내가 들인 비용을 상대방이 인정해주느냐의 문제가 놓여 있는 거고, 금전 거래는 (다소 친밀감은 떨어지지만) 이런 비용을 인정해주는 한가지 형태에 불과하다. 돈이냐 아니냐가 아니고, 상대방의 비용을 흔쾌히 인정하고, 내가 상대방을 위해 비용 부담을 할 준비가 돼 있느냐 없느냐의 문제다.
이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 "자본주의가 문제야"라며 뒤엎어서 사회주의든 제3의 어떤 체제든 만들어내봐야, 그 시스템 속에서 금전적 손익을 초월한 인간관계란 허울에 불과, 결국에는 "우리가 째째하게 돈 몇푼 따지는 그런 사이 아니잖아. 그러니까 돈(비용)은 내가 기꺼이 낼께"보다는 "우리가 째째하게 돈 몇푼 따지는 그런 사이 아니잖아. 그러니까 돈(비용)은 너가 기꺼이 지불할 거지?"의 형태로 남의 골수를 뽑아먹는 기생충만 만들어낼 뿐.
사실 이런 풍경은 이미 우리가 생각하거나 원하는 것보다도 훨씬 자주 벌어지고 있는데, 재산 분배를 놓고 형제들이 싸우는 것도 "야만스럽게말야 형제들끼리 재산 갖고 싸우면 안 되지. 그러니까 (내가 보기엔 이렇게 재산을 나누는 게 정당한데, 설령 네가 보기엔 정당하지 않더라도) 치사하게 꼬치꼬치 따지지 말고 그냥 이것만 먹어"라는 태도를 취하기 때문. 형제들이 한 사람도 양보 없이 전부 다 이런 포지셔닝을 취해버리면 싸움이 안 날래야 안 날 수가 없잖아?
결국 문제는 사회 전반에 걸친 "우리가 째째하게 돈 몇푼 따지는 그런 사이 아니잖아. 그러니까 돈(비용)은 너가 기꺼이 지불할 거지?"라는 인식을 어떻게 하면 "우리가 째째하게 돈 몇푼 따지는 그런 사이 아니잖아. 그러니까 돈(비용)은 내가 기꺼이 낼께"로 전환시킬 수 있느냐인데 이게 정말 자본주의 vs 사회주의의 문제일까?
@ 물론 자본주의가 만들어낸 계산적 인간관계의 틀 안에 있기 때문에, 금전적 손익을 초월한 인간관계조차도 "우리가 째째하게 돈 몇푼 따지는 그런 사이 아니잖아. 그러니까 돈(비용)은 너가 기꺼이 지불할 거지?"의 형태를 띌 수밖에 없다고 한다면, 그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은 들지만, 그럴 수밖에 없다는 확신은 잘 안 서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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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또.. 스타트렉 보면 돈 없는 사회가 나오는데 말야? -ㅂ-
농담이고. "통화의 필요성"을 역설하신 다음 곧바로 자본주의 디펜스를 연결하셨는데, 실은 마르크스 본인은 물론이고 그 이후에 벌어진 온갖 생쑈에도 불구하고 소위 사회주의 경제학에서 '화폐' 개념이 부인된 적은 없지. 아니 오히려 자네가 묘사한 "실물가치와 등가 교환되는" 화폐야말로 마르크스적 화폐상품론에 가까운 시각인 것 같은데.
사실 알다시피 나도 뭐 잘 몰라서 이게 정확한 지는 확실하지 않네만.. 내가 아는 한, 자본주의 경제 vs. 사회주의 경제는 물신숭배에 대한 철학적 시각차나 화폐의 사용 여부 따위가 아니라네. 그보다 소위 화폐란 녀석이 "미래 수익에 대한 추상적 청구권"으로서, 잉여 가치의 소비가 연기되면서 이윤을 통해 축적되는 기작 = 자본의 집중을 보는 시각에서 차이가 있는 거지. 물론 이렇게만 쓰면 너무 중립적이니까 --코렁탕 먹을 지도 모르니까-- 소위 사회주의 경제체제, 혹은 "공산주의"랍시고 현실에 등장했던 모든 케이스들이 다 병맛 날리고 망했다는 점은 분명히 해야겠군; 중국? 아 거긴 일당독재 자본주의 체제. -ㅅ-
어쩌면 근본적으로 용어나 개념에서부터 꽤 혼란이 있기 때문일 지도 모르겠는데.. 이를테면 정치적 프레임으로서의 사회주의, 이를 바탕으로 기술된 경제이론인 마르크스의 자본론, 이걸 다시 정치적으로 써먹으면서 현실화된 특정 정치경제 체제인 공산주의 등 -- 이거 사실은 다 다른 얘기들이라능?;
그러니, 자네의 불편한 심기 혹은 고발의 타겟에 관해서라면.. 뭐랄까 사격 방향이 좀 엉뚱한 듯 싶군; 소위 자본주의, 혹은 더 좁혀서 신자유주의나 물질만능주의를 비판하는 이들 중에 뭐 화폐 없애자거나 기타 뭔가 엎어버리자는 식으로 환타지 쓰는 양반들은 별로 없겠고, 그보다는 더 구체적/현실적인 문제를 논하는 경우가 많겠지. 아니 그렇게 급진적인 주장은 내가 아는 한, 언젠가 딱 한 번 토마스 모어 선생이 소설로 쓰신 적은 있는 거 같지만..? :)
자본주의도 사회주의도 아닌 실천 가능한 (혹은 사람들이 적어도 몇만명 이상의 대규모 사회에서 실천을 시도한) 제3의 체제가 딱히 없어서 그냥 자본주의가 아닌 그 무엇의 개념으로 사회주의란 말을 갖다 쓴 바람에 약간 혼돈이 온 것 같군요.
맑시즘과 고전주의 경제 이론 사이에서 사회 전반의 부를 축적하는 방법론에는 큰 차이가 없다는 건 알고 있지요. 제일 큰 차이라면, 자본의 집중보다도 조금 더 뿌리 깊이에는, 정당한 노동의 가치가 뭐냐는 노동 이론의 시각 차이인 걸로 알고 있습니다. (맑스의 노동 이론의 씨앗이 리카도의 노동 이론이란 건 꽤나 아이러니하지요. 암튼 이야기의 핵심은 이게 아니니, 이 이야긴 다음 기회에...) 그것 때문에, 결국 계급 문제도 튀어 나오고, 토지 따위의 생산 시설 공동소유 따위의 소위 공산주의 해법이 나오는 거고...
사실 제가 하려던 이야기는 특정 체제를 옹호하거나 특정 체제를 비판하려는 게 아니고, "사람들은 체제가 인격이나 인성에 도대체 얼마나 영향을 미친다고 생각들 하시는지?", 그게 궁금하단 이야기였는데, 뭐, 언제나처럼 글로 쓰다보니 산으로 가버렸달까나. ㅡㅠㅡ 체제가 인격에 영향을 줄 리가 없잖아라는 의미로 반문하는 게 아니고, 그냥 정말로 궁금하다는 이야기. 화폐까 없는 세상 이야기가 나온 건, 그런 정말로 다른(엉뚱한?) 세상을 상정해보면 정말 세상이 달라질까? 뭐, 그런 맥락에서... 그렇지만 사실 사고의 프레임이 현존하는 체제 내에서 형성됐으니, 그런 세상은 어떤 세상일지 알 길이 없기도 하지요.
에헤 그 점에 관해서라면.. 언젠가 자네가 올렸던 모 동영상의 케인즈 선생 얘기가 생각나는군? "Practical men, who believe themselves to be quite exempt from any intellectual influences, are usually the slaves of some defunct economist."
인격/인성이란 게 결국 사회에서 타인과 상호작용하는 방식 혹은 그 판단준거의 문제라고 한다면, 인간의 사회성에서 교육의 비중을 고려할 때 -- 특히 유소년기에 주입/각인되는 특정 정치경제 체제의 기초적인 사고방식은 분명 큰 영향을 끼치겠지. 아시다시피, 북한은 전적으로 이 방식에 크게 의존해서 사회주의 국가 사상 최초로 세대간 권력승계를 달성한 = 절대왕정 전환한 사례라능? :)
다만 역시 또 애매한 포인트가 남았는데.. 자네가 "야만스럽게"라고 표현했던 부분은 말 그대로 인성/인격 이전에 인간 본성의 문제라네. 이렇게까지 하위 레벨로 내려가면 ㅇㅇ 어떤 체제도 이걸 근본적으로 바꿀 수는 없겠지. 자 그래서, 인간 사회는 약육강식인가? 아니 적어도 "물리적 힘"에 관해서는 통제되고 있는 편이고, 아마 다들 이런 방향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할 듯 한데. (아님 말고? ㅋ)
그럼 이제 "물질만능주의"를 보세. 간단히 말해서 "돈이면 다 돼"라는 얘기지? 이런 사고방식이 나타나는 기본적인 이유는, 현 시스템에서 축적된 자본의 힘이 다른 모든 것의 힘을 압도하기 때문이라네. 대표적인 예로는 작년 말의 소위 "원포인트 사면" 사태를 들 수 있겠군; 이런 시스템을 다른 말로는 "금권에 의한 약육강식"이라고 표현할 수도 있겠네. 아닌가? :)
나도 물론 체제가 인간의 본성을 바꿀 수 있다는 식의 환타지는 안 가지고 있삼. 그렇지만 뭔가 인간다운 가치라는 건 종종 본성에 반하는 경우가 많고, 그래서 본성/본능적 충동을 제어하고 더 나은 사회를 유지하는 것이 결국 온갖 제도와 체제의 목적이잖아?
그러니 누군가 신자유주의나 물질만능주의 따위를 비판할 때, 이건 당연히 인류보완계획 따위 얘기가 아니지; 또한 아예 자본주의를 때려치우자는 얘기도 아닌 경우가 대부분이겠고. 그냥 좀 이게 너무 "야만적"이라능? :) 우리가 물리적 힘을 자제하고 약육강식 상황을 벗어난 것처럼, 같은 식으로 더 나은 제도들을 고안/수정하도록 노력하자고 한다면 -- 글쎄 뭐 이게 그렇게 허무맹랑한 얘기는 아닌 것 같은데; 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