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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까지 한 국가나 사회에 부가 어떤 식으로 축적되고, 돈이 그 부를 재단하는 척도로써 어떻게 생겨나고 사용됐는지 대충 이야기를 했는데, 이제 이게 유로화의 등장과 무슨 상관인지 이야기해보자.

현재 세계 대부분의 나라는 그 나라 고유의 화폐를 갖고 있다. 이는 자국의 통화를 조절할 수 있는 능력이 경제적 주권과 연결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중상주의의 영향에 따른 폐쇄적 경제의 역사적 잔해(뭔 말이 이렇게 복잡해? -_-,,)라고도 볼 수 있다. 그리고 이런 후자의 시각 하에서 유로화의 등장은 굉장한 설득력을 갖는다. 그럼 왜 이런 결론이 나는지 차근차근 살펴보자.

앞서서도 이야기한 적이 있지만 화폐의 단위는 대단히 임의적이다. 만원이 천원에 비해서 더 많은 돈임에는 틀림없지만, 만원이 천달러보다 더 많은 돈일 당위성은 없다. 만원은 천달러보다 큰 돈일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 그래서서 만원이란 과연 몇달러에 해당하는 가치가 있는가라는, 즉 환율의 개념이 등장하고, 이 대답에는 중앙은행의 역할이 적잖은 비중을 차지한다.

각 나라의 중앙은행은 인플레이션을 0~3% 수준으로 유지하기 위해 애를 쓴다고 했는데, 사실 인플레이션이란 게 말은 쉽게 하지만 조금 애매한 개념이다. 왜냐하면 서로 다른 제품들간의 가격은 항상 같이 움직이지 않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올해는 쌀이 풍작인데 밀가루는 흉작이라고 해보자. 그러면 쌀값은 비교적 쌀 것이고, 밀가루는 비교적 비쌀 거다. 그런데 내년에는 쌀이 흉작이고 밀가루가 풍작이 된다면 쌀값은 오르고, 밀가루값은 떨어질 거다. 그래서 각 나라에서는 식품이나 의류, 교통비 등, 생활 필수품이랄 만한 제품들을 선별하여, 이들 제품 소비량에 따른 가중평균을 낸  소비자물가지수(consumer price index)라는 걸 산출한다. 그리고 이 소비자물가지수가 얼마나 오르내리는가로 인플레이션을 계산한다.

그런데 각 나라 별로 소비자들의 소비 패턴이 다르기 때문에 소비자물가지수에 포함되는 항목들과 각 항목들의 가중평균은 차이가 나게 마련이다. 예를 들어 동아시아에서는 쌀이 주식인데 반해, 유럽이나 미국은 밀가루, 남미는 옥수수를 주식으로 삼기 때문에 동아시아의 경우 쌀의 가격 변동이 밀가루, 옥수수의 가격 변동에 비해 인플레이션에 더 많이 반영된다. 따라서 세계 모든 나라에서 인플레이션을 2%로 정확하게 유지할 수 있다고 하더라도, 실제로 나라마다 각 항목별 가격 변동의 정도는 다를 수밖에 없다.

그런데 한 나라의 경제라는 게 워낙에 다양한 요소가 복잡하게 작용하기 때문에 인플레이션을 2%면 2%로 늘상 정확히 유지할 수 있는 게 아니다. 그래서 인플레이션이 너무 높다 싶으면 중앙은행에서 시중에 채권을 풀어 돈을 회수하고, 디플레이션이 일어나면 채권을 다시 사들여 돈을 푸는 식이다. 따라서 국가별로 인플레이션의 정도가 조금씩 (물론 정부/중앙은행이 심하게 삽질을 하면 더러 많이 차이 나는 경우도 있다) 차이가 나게 마련.

이런 이유 및 또 다른 변수들로 인해 화폐 가치가 오르내리는 정도가 나라마다 다르기 때문에 1달러면 1000원이라고 딱 정해지는 게 아니고 시시각각 변하게 마련이다. 또 다른 변수들 중 아주 큰 변수가 바로 수출입이다. 환율이 1달러 당 1000원인데, 한국에서 A라는 자동차값이 구백만원이고, 미국에서는 A와 비슷한 성능의 B라는 자동차값이 만달러라고 해보자. 이 경우 한국의 자동차값이 미국인들에게는 천달러 더 싸다. 그래서 미국의 소비자들이 한국의 A라는 차를 수입하기를 원한다. 미국 달러가 기축 통화이기 때문에 미국은 달러로 차값을 지불한다. 그런데 한국의 자동차 회사가 기축통화라고 달러를 받긴 받았는데, 막상 직원들 월급이라도 좀 주고, 하청업체 대금 지불도 하고, 전기세를 낼라치니 달러는 써먹을 곳이 없다. 그래서 은행에 가서 달러를 주고 원화로 바꿨다. 자동차 한대를 팔았을 땐 별 문제가 없었는데, 미국에서 자동차 A가 불티나게 팔리기 시작하면서 이 자동차 회사에서는 달러를 계속해서 원화로 바꿔야 하는 상황이 발생함에 따라, 달러 대비 원화 가치가 상승한다. 이는 결국 환율이 1달러당 900원으로--자동차 A가 달러로 환산했을 때 만달러, 즉 자동차 B의 가격과 맞춰질 때까지--떨어지는 결과를 낳는다.

환전은 한가지 화폐를 다른 종류의 화폐로 바꾸는 것이기도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한가지 화폐로 다른 화폐를 사는 것이기도 하다. 즉, 한국은행에서 생산한 한정된 양의 원화라는 상품을 달러를 주고 산다고 생각하면 된다. 달러를 쥐고 있는 입장에서 보면 다른 모든 재화와 마찬가지로 원화의 수요가 증가하면 원화의 가격은 오르는 거다. 예전에는 1달러로 원을 1000개를 살 수 있었는데, 원화가 비싸짐에 따라 1달러로 원을 900개밖에 못 사게 된다는 그런 얘기.

아무튼 다양한 요인들로 인해 환율이 오르락 내리락하게 되면 불편한 점이 있다. 각 나라들 사이에 무역이 활발하지 않은 경우에는 큰 문제가 없지만, 무역량이 많을 때에는 환차손이나 환차익 때문에 어느 시점에 상품과 돈을 맞교환하느냐가 민감한 문제가 된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는 한 가지 방법은 환율을 고정시키는 거다. 즉, 앞선 예에서 한국과 미국 사이의 환율은 무조건 1달러=1000원으로 묶어놓자고 약속을 하는 거다. 그런데 이렇게 되면 한가지 문제가 있다. 앞선 예에서 양국간 자동차 수출입이 일어날 경우 원화 가치가 상승압력을 받는다고 했다. 이 원화 상승압력을 해제하는 방법은 한국은행에서 원화를 더 많이 찍어내서 원화의 인플레이션을 유발하는 거다. 즉, 달러로 원화를 사겠다는 사람이 많아지면, 원화 공급을 늘림으로써 원화의 가격을 낮춘다. 이때 문제는 한국은행은 더 이상 통화정책에 독립성이 없다. 즉, 미국과 한국 사이의 환율을 기준으로 통화정책을 펼 뿐, 한국의 인플레이션을 조절하는 능력이 없다는 말이다.1 이게 바로 경제학에서 말하는 불가능한 삼위(impossible trinity 또는 trilemma)이다. 이를 다시 요약하면, 자주적인 통화 정책, 고정 환율, 자유로운 자본의 유출입(쉽게 말하면 자유무역) 세가지를 동시에 달성할 수는 없고, 이 중 한가지는 포기해야 한다.

바꿔 말하면, 양국간 자유로운 교역의 편의를 위해 1달러=1000원이라고 묶는 순간 불가능한 삼위 중 두가지, 고정 환율과 자유로운 자본의 유출입을 선택한 셈이다. 그렇게 되면 양국 중 한 곳의 중앙은행은 독자적인 기능을 포기해야 한다. 즉, 달러와 원은 그 단위의 차이로 인해 1:1000이라는 숫자의 차이가 있지만 실질적으로는 동일한 화폐다. 1달러의 백분의 일을 1센트라고 하듯, 1달러의 천분의 일을 1원이라고 부르게 되는 꼴.

그리고 바로 이 지점에서 유로화가 탄생한다. 즉, 유럽내의 다양한 국가들은 서로 활발한 교역을 하기에 지리적으로 좋은 여건을 갖췄다. 그런데 물건을 사고 팔 때마다 번번히 환율 눈치를 봐가며 화폐를 바꿔서 거래를 해야 한다면 여간 성가신 일이 아니다. 그래서 수입은 죄악, 우리의 살 길은 무조건 수출뿐이라는 중상주의적 가치에 시달리지 않고 자유로운 교역을 할 셈이라면, 자연스레 "그냥 확 환율을 고정해버려? = 그냥 확 화폐를 통일해 버려?"라는 이야기가 나왔고, "그러자!"가 된 거다. 물론 이렇게 했을 경우, 유로화를 이용하는 경제 단위의 규모가 일본을 제치는 건 물론, 미국을 위협할 수 있는 정도가 된다는 고려도 작용을 했다. 즉, 유럽의 경제 규모를 상징하는 한가지 화폐가 등장한다면, 달러 패권을 물리칠 수도 있을 거야라는 꿈과 희망...까지는 좋았지만, 인생에 뜻대로 되는 일이 몇가지나 있디? 결국 예상치 못한 복병을 만나 바로 지금 그 꿈이 휘청거리고 있다. 도대체 그 복병이 뭐였는지는 내일 정리하고 이 시리즈를 마무리 짓기로 하자.


1 이게 바로 요새 중국이 하고 있는 짓이다. 위안화 절상 이야기가 뉴스에서 종종 나오는 것도 이때문. 앞서 한국의 자동차 예를 들었듯, 보통 수출을 많이 하는 나라의 화폐 가치는 오르고, 수입을 많이 하는 나라의 화폐 가치는 떨어지게 된다. 이 메커니즘에 의해서 양국간의 수출입은 보통 플러스마이너스 제로로 수지를 맞추게 되는데, 수출을 통한 성장을 이루려는 중국은 위안화의 화폐 가치가 오르길 원하지 않는다. 그래서 중국의 중앙은행이 자국의 인플레이션을 잡는 기능을 포기하고 1달러 = 약 6.8 위안 정도로 묶어놓은 상태.

위안화 가치가 안 오른다는 건 중국의 수출에 제동을 거는 브레이크가 없다는 이야기고, 중국의 수많은 수출업자들은 계속해서 미국에서 걷어들인 달러를 위안화로 바꾸려고 하게 되는데, 새로운 달러가 유입될 때마다 시중의 위안화로 맞바꾸는 게 아니고, 중앙은행이 위안화를 추가로 찍어주는 거다.

이럴 경우 문제는 역시 인플레이션. 중국에서 생산한 상품과 서비스의 양은 한정돼 있는데--와중에 그중 많은 양을 미국에 내다 팔기까지 했다--중국 내에 유통되는 위안화의 양은 계속 늘어나고 있다. 이는 결국 중국 내에서 무언가는 가격이 오를 거라는 이야기. 그래서 최근 중국도 부동산에 거품이 잔뜩 끼고 있다.

원래 돈으로 할 수 있는 일은 딱 두가지뿐이다, 소비와 투자. (저축은? 흠, 저축도 투자의 일종이다, 단지 간접적이고 수익률이 낮을 뿐이다.) 그런데 소비할 상품과 서비스가 별로 없다면, 투자를 할 수 밖에. 그런데 이래저래 훑어봐도 투자할 곳이 마땅치 않다면 결국 끝에 가면 부동산이라능... orz 중국의 부동산 거품이 언제 터지냐도 문젠데, 어쨌든 수출을 계속 하는 동안은 버티긴 하겠지. 변수는 역시 (한번으로 안 끝날) 위안화 절상의 시기와 정도...

중국과 달러, 유로 이야기도 하려 들면 할 이야기가 엄청 많은데, 이건 다음에 기회 봐가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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