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짜 점심'에 해당되는 글 1건

  1. 2010/05/23 1. 공짜점심과 공짜폰
- 20세기를 살다간 누군가

(최근에는 대중화도 많이 됐지만) 경제학계에서 자주 쓰이는 표현 중에 "공짜 점심이란 없다"는 말이 있다. 누가 처음 한 말인가는 다소 불분명하지만, 이 표현을 경제학계에 널리 퍼뜨린 것은 통화주의 경제학파의 대가인 밀튼 프리드만(Milton Friedman)으로 사료된다.

뭐, 누가 한 말이냐는 불분명하지만 이 표현의 유래는 19세기말 20세기초 미국의 선술집의 "공짜 점심(Free Lunch)" 광고이다. 술집들이란 게 보통 그렇듯 점심 시간은 저녁 시간에 비해 한가하게 마련. 그래서 조금이라도 손님을 더 끌기 위해 술집들이 "공짜 점심"을 내걸기 시작한다. 내용인즉슨, 점심 시간에 와서 술을 시키면 점심은 공짜로 주겠다는 거다. 물론 술집 입장에서 이는 고객의 눈에는 보이지 않는 비용(술값으로 벌어들이는 이윤)으로 눈에 보이는 비용(공짜로 점심을 제공함으로써 발생하는 손실)을 맞바꾼 상술에 불과했지만, 이런 전략은 대공황으로 미국 경제가 초토화되기 전까진 상당히 유효했다.

그렇지만 결국 그 점심값은 술집 손님들이 냈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그러지 않았다면 술집들은 마 망했을 테니까... 그래서 "공짜 점심이란 없다"는 말이 탄생했다. 그런데 이 단순한 표현의 의미는 시간이 지남에 따라 조금 더 다양한 층위를 갖게 된다.

가장 직접적이고 피부에 와닿는 의미는 물론 지극히 개인적인 관점에서 공짜는 없다는 의미. 예를 들어 통닭집에서 쿠폰 10장을 모으면 통닭을 공짜로 준다고 할 때, 그 11번째 통닭 값은 이미 앞선 10번에 걸쳐 분할 지급한 거다.

그게 아니라면 이런 시나리오. 오랜만에 짠돌이로 유명한 친구한테 연락이 왔는데 자기가 술 한잔 사겠다고 한다. 이게 웬일인가 싶으면서도, 오랜만에 친구가 인심쓰는구나 싶어서 나갔더니 술 먹다 말고 자기가 사업을 구상하고 있는데 은근히 투자를 하라고 꼬득이는 거다. '이런 썅, 딴 생각이 있었구만, 그럼 그렇지.' 이런 경우는 이미 지불하진 않았지만 술값을 미래에 지불해야하는 상황. 물론 투자를 안 해도 될 수 있지만, 친구와의 관계 술판의 크기(?)와 분위기(?) 등에 따라 이미 걸려들은 걸 수도 있다. 그리고 설령 투자를 안 하기로 한다고 해도 신경이 쓰인다면 이미 심리적 비용을 지불하고 있는 셈.

그렇지만 이런 시나리오들은 모두 공짜 같았는데 알고보니 내가 다른 형태로 그 값을 지불하는, 앞선 공짜 점심에서와 마찬가지로 (심리적 비용 같은 경우를 제외하면) 이는 모두 한가지 회계비용을 다른 회계비용으로 맞바꾸는 상황이다.

이와 조금 다른 개념은 회계비용을 기회비용으로 맞바꾸는 상황. 기회비용이란 회계상에서는 드러나지 않는 경제학적 개념으로, 모든 자원은 유한하기 때문에 이 자원을 어떻게 이용할지에 대해 다양한 옵션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 예를 들면, 인간이 영생의 신비를 밝혀내지 않는 한, 시간 역시 인간에겐 유한한 자원이다. 따라서 살면서 하고 싶은 모든 걸 할 수 없다. 의대를 갈까 치대를 갈까 -_- 고민하다가 의대를 가기로 한다면, 결국 치대를 감으로써 내가 얻을 수 있었을 모든--그게 돈이든 즐거운 삶이든--이득을 포기할 수밖에 없다. 회계 장부상에는 보이지 않지만 어쨌든 나한테는 그것도 비용이기 때문에 기회비용이라고 한다.

공짜 점심이랑 이게 무슨 상관이냐고? 누군가 나에게 아무런 대가를 바라지 않고 저녁을 사주겠다고 해서 하루 저녁을 할애할 경우, 회계비용은 전혀 안 들었지만, 그 사람과 밥을 먹는 시간 동안 내가 할 수 있는 무언가는 포기한 거다. 그게 집에서 혼자 밥 먹는 것이었을 수도 있고, 오랜만에 영화를 보러 가는 것이었을 수도 있고, 피곤해서 그냥 쓰러져 잠을 자는 것이었을 수도 있다. 그게 뭐였든 간에 저녁 약속이 없었더라면 내가 하고 싶었던 무언가는 포기해야 한다는 점에서 공짜는 아니라는 이야기.

그런데 이게 다가 아니다. 이 표현의 또 다른 의미는 '나한테 공짜인지 몰라도 결국 다른 누군가는 그 비용을 지불한다'이다. 다른 말로 하면--기회비용을 무시할 경우--회계비용이 내 장부엔 안 올라갔지만, 다른 사람의 장부엔 올라갔다는 뜻. 예를 들어 친구가 아무런 대가를 바라지 않고 내게 저녁을 사줬다면, 나는 돈 한푼 안 들였지만, 그 저녁 값을 낸 사람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과는 다른 개념. 저녁을 먹으러 갔는데 식당측에서 실수를 해서 주문이 뒤섞이는 바람에 음식이 나오기까지 엄청 오래 기다렸다고 하자. 그래서 식당측에서 사과의 의미로 음료수를 서비스로 준다면? 이 음료수값은 나도, 내 친구도 내지 않았으니 공짜? 그럴 리가, 그 음료수값은 식당이 냈다.

이 마지막 개념의 등장이 꽤 중요하다. 왜냐하면 이 세가지를 종합할 경우 "사회 전체를 봤을 때 공짜는 절대 없다"는 결론이 나오기 때문이다. 바꿔 말하면 인간의 모든 경제 활동에는 사회적 비용이 존재한다는 말이 되겠다. 그런데 재미있는 건 세금은 바로 이런 공짜 점심과 거의 정반대 개념이란 것. 무슨 말이냐면 세금을 내는 순간에 비용이 드는 건 보이는데, 그 비용에 대한 댓가는 체감이 잘 안 된다. 학교, 도로, 댐, 수도, 전기 등의 적잖은 혜택에도 불구하고, 비용 지불 순간과 이런 혜택을 누리는 순간 사이의 시차 때문에 세금은 언제나 갈취 당하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 게다가 세금이 잘못 쓰이는 경우의 스캔들은 또 얼마나 선정적인가.

그렇지만 진실은 공짜 점심은 공짜가 아니고, 세금은 (비교적 투명한 사회에서는) 갈취가 아니다.

@ 덤으로 공짜 휴대폰 때문에 벌어진 코메디 같은 소동 하나 : '공짜 휴대폰' 광고문구 공짜로 준다는 것 아니다
@@ 제목에 번호는 왜 붙였냐고? 얼마나 갈진 모르겠지만 ㅡㅠㅡ 연재 들어갑니다. 업데이트 주기는 일주일에 한번 매주 일요일 예상.
이올린에 북마크하기(0) 이올린에 추천하기(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