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단 김연아 선수 올림픽 금메달 딴 거 축하할 건 축하하고 이야길 시작하자.
온국민이 한 스포츠 선수에게 이 정도로 열광하기는 90년대 후반 박찬호가 메이저리그에서 수준급 활약을 펼치던 이후로 거의 처음이 아닐까 싶다. 그 다음에 특정 선수는 아니지만 2002년 월드컵을 빼놓을 순 없겠지. 이들의 공통점은? 한국인(들)이 국제적으로 좋은 활약을 펼친다는 거다. 집안에서 판검사가 나오면 그 부모는 말할 것도 없고 할아버지, 할머니, 삼촌, 사촌할 것없이 그걸 뿌듯해하고 자랑스러워하는 거랑 꽤나 유사한 심리일 거다. 물론 가족들끼리 모였을 때도 즐거워하며 이야기하겠지만, 그 뿌리에는 결국 자신이 속한 집단--판검사의 예에선 가족, 김연아의 경우엔 국가--이 혹은 그 집단의 구성원이 그 이외의 집단이나 집단의 구성원에 비해 상대적 우위를 점한다는데에 있다.
이는 물론 진화론적으로 지극히 당연한 감정에 뿌리를 두고 있다. 인간이 작은 부족 단위로 정착하여 농경 사회를 이루면서, 힘에 의한 권력 관계가 형성되기 시작한다.1 이는 도시 내에서 지배와 피지배의 관계에서도 중요한 역할을 하지만, 도시가 팽창함에 따라 주변 도시들과 힘겨루기를 하게 되면서 더더욱 중요해진다. 이 당시에 내가 꼭 힘이 세지 않더라도 힘이 더 센 집단에 속한다는 것만으로도 내게는 하나의 권력이 되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게 사회가 팽창함에 따라 애매해진다. 힘센 사람, 예를 들면 오늘날 박찬호와 나 사이의 사회적 공간은 만년전 우리 부족장 및 부족원들과 나 사이의 사회적 공간에 비하면 엄청나게 팽창했음에도 불구하고--앞서 <뇌와 인류>란 제목의 글에서 비슷한 얘기를 했는데--그 넓디 넓은 사회적 공간은 200년 정도 묵은 국가관이라는 비교적 새로운 개념 하나로만 가득 메워버리고는, 이 만년 묵은 뇌는 여전히 '박찬호는 한국인, 나도 한국인, 그러니까 우리는 같은 편, 다른 편인 니들은 날 함부로 보면 안 돼'라고 똑같이 반응하고 있는 거다. 지난 200년 새에 근대 국가관이 왜 생겼는지는 또 전혀 다른 이야기지만, 아무튼 뭐, 진화의 속도란 게 원래 좀 느린 편이라 별 수 있나, 꽤나 정상적인 반응이다. 특히 그동안 한국 사람들 중에 다양한 스포츠에서 세계 1위를 해본 사람은 제법 많았지만, 페더러나 우즈처럼 시대를 초월한 수준은 김연아가 처음이니까.
자, 여기서 이야기를 살짝 비틀어 보자. 내가 세살 때 아빠는 웬 여자와 눈이 맞아 엄마, 우리 형, 나를 버리고 집을 나갔다. 내가 한 열두살 때까지는 생일 때면 그래도 생일 카드 한장 정도는 보내주더니 어느날인가 그것마저도 끊어졌다. 엄마는 어떻게든 형과 나를 모두 대학에 보내고 싶어하셨지만, 그럴 형편이 못 됐던 걸 잘 알던 형은 형보다 공부를 잘 하던 날 학교에 보내기 위해 결국 직업 전선에 뛰어들었고, 그렇게 뼈빠지게 일해서 나를 대학까지 뒷바라지한 끝에 난 아주아주 성공한 청년 사업가가 되었다. 나의 이런 이야기가 신문에 실린지 얼마지 않아 웬 사내에게서 연락이 왔다. 아빠였다. "이 녀석 잘 컸구나, 허허허"에서 시작해서, 눈물을 흘리며 "미안하다, 아들아. 그렇지만 아빠 얘기도 좀 들어봐"로 이어지는 뻔한 뒷이야기... 경제학에서 무임 승객 문제(free rider problem)라고 하는데, 어느 사회에서고 단물만 빨아먹는 사람들은 항상 있게 마련이라, 무임 승객이 있다는 사실은 꽤나 정상적이지만, 사회 대다수의 사람들이 무임 승차를 하려 한다면 정상적이라고 보기 어렵다.
원래 피겨 스케이팅에 관심이 있었던 게 아니라면, 김연아에 대한 국민적 관심은 이 두가지의 복합이라고 보면 되겠다. 김연아가 나와 같은 한국인이란 게 자랑스러운 건 만년 묵은 뇌가 삽질 중인 거지만, "애국가가 나오면 눈물을 흘릴까요"라고 말하는 건 김연아에게 우리의 존재를 잊지 말라고 말한다는 점에서 무임 승차 중이라고 보면 되겠다.
그런데 이 무임 승차가, 축구에 대해서는 조금 냄비근성이 있긴 해도 그래도 프로축구도 있고, 언론에서도 축구 이야기는 수시로 하는 점을 감안하면 월드컵 때는 조금 덜하고, 박찬호 때는 월드컵 때에 비하면 조금 더 심하지만, 그렇게 심각한 수준은 아니었는데, 김연아 때에 가서는 중증이 됐다. 문제는 앞서 말한 두가지 전혀 다른 증상을 사람들이 동일한 증상으로 받아들인다는 데에 있다. 앞서 말했듯 만년 묵은 뇌가 삽질하는 건 비교적 정상적인 반응이고 그 자체만으로는 큰 해악이 없지만, 무임 승차를 원하는 건 아주 아주 바람직하지 않고, 당연히 서로 지적을 해줘야 정상적인 부분임에도, 두가지를 동일화하다보면 무임 승차하는 행위를 정상적이라고 받아들이게 되는 거다. 이미 몇년 묵은 이야기지만 황우석 사태 때도 동일한 현상이 나타났었는데, 황우석이란 과학자가 한국에 있어서 자랑스럽다 + 황우석의 과학이 국가에 엄청난 부를 안겨줄 거다--물론 구라로 판명이 나긴 했지만--라는 무임 승객 심보가 여과없이 드러난 케이스에 해당한다.
그래서 뭐 어쩌라고? 자, 아래에 자가 진단 테스트가 있습니다. 자가 진단들 해보십시오.
@ 위 자가 테스트 결과를 너무 진지하게 받아들이시면 고혈압, 심장마디, 뇌경색 등의 질환이 찾아올 수 있으니 주의 바랍니다.
@@ 다시 읽어보니 글 쓰다 귀찮아서 급하게 둘둘 말아버린 티가 너무 나는데. -_-a
1 물리적 힘에 의한 권력에는 뭔가 원초적이고 원시적인 느낌이 있지만 사실 먹을 걸 찾아 가젤과 물소를 쫓아다니고, 다 익은 열매가 있으면 따먹던 오히려 훨씬 더 원시적인 시절엔 권력층과 피권력층의 관계가 오히려 형성이 되질 않는다. 한 자리에 머물지 않고 작은 무리를 지어서 계속해서 떠돌아다닌다는 점과 잉여--이말을 요새 인터넷에서 잘못 쓰면 오해받는데 -_-a--의 음식물을 축적할 여력이 아무도 없었기 때문에, 먹을 걸 못 구한 힘센 사람이 먹을 걸 가진 다른 사람의 것을 한시적으로 뺏어 먹을 순 있어도, 언제 어디서 또 만날지 알 수 없는 관계 속에서 토착적인 상하관계가 유지되지 않는다.
온국민이 한 스포츠 선수에게 이 정도로 열광하기는 90년대 후반 박찬호가 메이저리그에서 수준급 활약을 펼치던 이후로 거의 처음이 아닐까 싶다. 그 다음에 특정 선수는 아니지만 2002년 월드컵을 빼놓을 순 없겠지. 이들의 공통점은? 한국인(들)이 국제적으로 좋은 활약을 펼친다는 거다. 집안에서 판검사가 나오면 그 부모는 말할 것도 없고 할아버지, 할머니, 삼촌, 사촌할 것없이 그걸 뿌듯해하고 자랑스러워하는 거랑 꽤나 유사한 심리일 거다. 물론 가족들끼리 모였을 때도 즐거워하며 이야기하겠지만, 그 뿌리에는 결국 자신이 속한 집단--판검사의 예에선 가족, 김연아의 경우엔 국가--이 혹은 그 집단의 구성원이 그 이외의 집단이나 집단의 구성원에 비해 상대적 우위를 점한다는데에 있다.
이는 물론 진화론적으로 지극히 당연한 감정에 뿌리를 두고 있다. 인간이 작은 부족 단위로 정착하여 농경 사회를 이루면서, 힘에 의한 권력 관계가 형성되기 시작한다.1 이는 도시 내에서 지배와 피지배의 관계에서도 중요한 역할을 하지만, 도시가 팽창함에 따라 주변 도시들과 힘겨루기를 하게 되면서 더더욱 중요해진다. 이 당시에 내가 꼭 힘이 세지 않더라도 힘이 더 센 집단에 속한다는 것만으로도 내게는 하나의 권력이 되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게 사회가 팽창함에 따라 애매해진다. 힘센 사람, 예를 들면 오늘날 박찬호와 나 사이의 사회적 공간은 만년전 우리 부족장 및 부족원들과 나 사이의 사회적 공간에 비하면 엄청나게 팽창했음에도 불구하고--앞서 <뇌와 인류>란 제목의 글에서 비슷한 얘기를 했는데--그 넓디 넓은 사회적 공간은 200년 정도 묵은 국가관이라는 비교적 새로운 개념 하나로만 가득 메워버리고는, 이 만년 묵은 뇌는 여전히 '박찬호는 한국인, 나도 한국인, 그러니까 우리는 같은 편, 다른 편인 니들은 날 함부로 보면 안 돼'라고 똑같이 반응하고 있는 거다. 지난 200년 새에 근대 국가관이 왜 생겼는지는 또 전혀 다른 이야기지만, 아무튼 뭐, 진화의 속도란 게 원래 좀 느린 편이라 별 수 있나, 꽤나 정상적인 반응이다. 특히 그동안 한국 사람들 중에 다양한 스포츠에서 세계 1위를 해본 사람은 제법 많았지만, 페더러나 우즈처럼 시대를 초월한 수준은 김연아가 처음이니까.
자, 여기서 이야기를 살짝 비틀어 보자. 내가 세살 때 아빠는 웬 여자와 눈이 맞아 엄마, 우리 형, 나를 버리고 집을 나갔다. 내가 한 열두살 때까지는 생일 때면 그래도 생일 카드 한장 정도는 보내주더니 어느날인가 그것마저도 끊어졌다. 엄마는 어떻게든 형과 나를 모두 대학에 보내고 싶어하셨지만, 그럴 형편이 못 됐던 걸 잘 알던 형은 형보다 공부를 잘 하던 날 학교에 보내기 위해 결국 직업 전선에 뛰어들었고, 그렇게 뼈빠지게 일해서 나를 대학까지 뒷바라지한 끝에 난 아주아주 성공한 청년 사업가가 되었다. 나의 이런 이야기가 신문에 실린지 얼마지 않아 웬 사내에게서 연락이 왔다. 아빠였다. "이 녀석 잘 컸구나, 허허허"에서 시작해서, 눈물을 흘리며 "미안하다, 아들아. 그렇지만 아빠 얘기도 좀 들어봐"로 이어지는 뻔한 뒷이야기... 경제학에서 무임 승객 문제(free rider problem)라고 하는데, 어느 사회에서고 단물만 빨아먹는 사람들은 항상 있게 마련이라, 무임 승객이 있다는 사실은 꽤나 정상적이지만, 사회 대다수의 사람들이 무임 승차를 하려 한다면 정상적이라고 보기 어렵다.
원래 피겨 스케이팅에 관심이 있었던 게 아니라면, 김연아에 대한 국민적 관심은 이 두가지의 복합이라고 보면 되겠다. 김연아가 나와 같은 한국인이란 게 자랑스러운 건 만년 묵은 뇌가 삽질 중인 거지만, "애국가가 나오면 눈물을 흘릴까요"라고 말하는 건 김연아에게 우리의 존재를 잊지 말라고 말한다는 점에서 무임 승차 중이라고 보면 되겠다.
그런데 이 무임 승차가, 축구에 대해서는 조금 냄비근성이 있긴 해도 그래도 프로축구도 있고, 언론에서도 축구 이야기는 수시로 하는 점을 감안하면 월드컵 때는 조금 덜하고, 박찬호 때는 월드컵 때에 비하면 조금 더 심하지만, 그렇게 심각한 수준은 아니었는데, 김연아 때에 가서는 중증이 됐다. 문제는 앞서 말한 두가지 전혀 다른 증상을 사람들이 동일한 증상으로 받아들인다는 데에 있다. 앞서 말했듯 만년 묵은 뇌가 삽질하는 건 비교적 정상적인 반응이고 그 자체만으로는 큰 해악이 없지만, 무임 승차를 원하는 건 아주 아주 바람직하지 않고, 당연히 서로 지적을 해줘야 정상적인 부분임에도, 두가지를 동일화하다보면 무임 승차하는 행위를 정상적이라고 받아들이게 되는 거다. 이미 몇년 묵은 이야기지만 황우석 사태 때도 동일한 현상이 나타났었는데, 황우석이란 과학자가 한국에 있어서 자랑스럽다 + 황우석의 과학이 국가에 엄청난 부를 안겨줄 거다--물론 구라로 판명이 나긴 했지만--라는 무임 승객 심보가 여과없이 드러난 케이스에 해당한다.
그래서 뭐 어쩌라고? 자, 아래에 자가 진단 테스트가 있습니다. 자가 진단들 해보십시오.
자가 진단 해보기
@ 위 자가 테스트 결과를 너무 진지하게 받아들이시면 고혈압, 심장마디, 뇌경색 등의 질환이 찾아올 수 있으니 주의 바랍니다.
@@ 다시 읽어보니 글 쓰다 귀찮아서 급하게 둘둘 말아버린 티가 너무 나는데. -_-a
1 물리적 힘에 의한 권력에는 뭔가 원초적이고 원시적인 느낌이 있지만 사실 먹을 걸 찾아 가젤과 물소를 쫓아다니고, 다 익은 열매가 있으면 따먹던 오히려 훨씬 더 원시적인 시절엔 권력층과 피권력층의 관계가 오히려 형성이 되질 않는다. 한 자리에 머물지 않고 작은 무리를 지어서 계속해서 떠돌아다닌다는 점과 잉여--이말을 요새 인터넷에서 잘못 쓰면 오해받는데 -_-a--의 음식물을 축적할 여력이 아무도 없었기 때문에, 먹을 걸 못 구한 힘센 사람이 먹을 걸 가진 다른 사람의 것을 한시적으로 뺏어 먹을 순 있어도, 언제 어디서 또 만날지 알 수 없는 관계 속에서 토착적인 상하관계가 유지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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헉, 그렇네요. 예리하시기도 하지. 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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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하하하.. 난 D형이라오 ㅋ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