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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8/08/22 네덜란드 + 영국 이모조모 (12)
제방, 운하, 튤립, 대마, 매춘, 안락사의 나라 네덜란드, 그 자유로움을 닮고 싶다

1. 운하의 도시

영국, 프랑스, 독일 등 유럽 열강의 틈새에서 세계 16위 규모의 경제력을 자랑하는 손바닥만한 나라 네덜란드의 생존비결은 '장사'에 있다. 17세기 이미 해상무역을 통해 유럽경제의 중심지로 떠오른 네덜란드의 로테르담은 현재까지도 세계 최대의 항구도시이다. 게다가 제방을 쌓아 육지를 확장시켜온 지리적 특성을 이용하여 수로를 이용한 운송업에 눈을 뜬 네덜란드는 (과장을 조금 보태서) 온 나라가 제방과 운하 천지이다.

그런 네덜란드의 수도인--암스텔(강이름)과 담(뚝)에 어원을 둔--암스테르담 역시 165개의 운하로 도시 곳곳을 연결한 운하의 도시. 특히 구시가의 경우 물길로 갈 수 없는 곳이 없다. 로테르담의 경우 못 가봐서 어떤지 모르겠지만 물이 이렇게 많은 도시는 베니스 이후로 처음.

@ 대운하 찬성론자들이 운하의 필요성을 역설하면서 네덜란드와 독일의 예를 자주 드는데 여기서 한가지만 확실히 짚고 넘어가자. 네덜란드의 운하가 경제적으로 유용할 수 있는 건 유럽 최대의 물길인 라인강을 끼고 있기 때문이다. 다른 말로 하자면 항구인 로테르담과 유럽 내륙을 이을 수 있는 수상통로로 운하의 활용가치가 높은 것이라는 이야기. 즉, 직접 연결할 내륙이 없는 반도국가 대한민국에서 운하는 삽질이란 이야기.


2. 스타벅스가 없는 도시, 암스테르담

암스테르담에 까페가 절대로 적지 않음에도 전세계 주요 도시에 손을 뻗치지 않은 스타벅스를 단 한 개도 볼 수 없었다. 스타벅스만이 아니다. 암스테르담의 눈에 띄는 특징 중 하나는 다국적 프랜차이즈의 부재다. 시내에서 본 KFC 정도가 고작? Albert Heijn이라는 대형 수퍼마켓이 종종 눈에 띄지만 대형 할인마트와 편의점이 넘쳐나는 이 나라 길거리의 분위기와는 매우 다르다.

물론 불편은 하다. 빡빡한 학회 일정 속에서 5~6시면 문 닫는 가게들 때문에 물한병 사먹는 일도 무척이나 귀찮은 일이다. 그렇지만 불편하다는 것은 역시나 상대적인 개념일 뿐. 이들에겐 대형 프랜차이즈들이 도시를 획일화시키는 게 오히려 더 지루한 것 뿐이리라.


3. 기다려라, 먹을 것이다

아침은 호텔에서 먹고, 점심은 학회장에서 나왔기 때문에 하루에 한끼만 자체적으로 해결하면 됐다. 그런데 7시쯤 밥 먹으러 들어가면 9시가 넘어 나오기가 일쑤였다. 2시간 이상씩 저녁을 먹는 것이 놀라운 일은 아니지만, 그게 일상이라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아주 특별한 날 특별한 음식을 먹는 것도 아니고, 그냥 매일 비슷한 음식을 먹었을 뿐인데 말이다.

느리다. 주문 받으러 오는 것도 느리고, 주문 받고 음식이 나오는 것도 느리다. 좋게 말하면 여유있고 느긋한 거고, 나쁘게 말하면 꾸물대며 게으른 거다. 그렇지만 누구하나 불평하지 않는다. 우리 일행 빼고, 동행중 성격 급한 한 사람은 웨이트리스에게 밥이 왜 이리 안 나오냐고 묻는 게 일이었다. -_-a

밥 먹고 할 일도 없던 우리들은 무엇 때문에 이리 급한 걸까?

@ 앞서 말한 거대 자본과 다국적 프랜차이즈의 흔적이 없는 것과 이들의 느긋함, 왠지 분리돼 있지 않은 것 같다. "정말 손바닥만한 나라가 이렇게 느긋하게 살아도, 세계 16위 규모의 경제를 자랑하고 일인당 GDP가 10위인데, 정말 빠르고 경쟁적인 미국식 신자유주의만이 최고일까?"라고 아무리 이야기해도 대한민국의 엄숙주의자들께서 마약과 매춘이 합법인 나라 네덜란드를 롤모델로 삼으실 일은 절대로 없겠지...


4. 75만명에게 술을 먹이려면 술집이 몇개나 필요할까?

인구 75만의 암스테르담에 바는 과연 몇개나 있을까? 자그마치 1300여개라고 한다. -_-,, 대충 550명당 술집이 하나라는 이야기다. 그래서일까, 술집들이 참 한산하다. In De Wildeman이라고 200여 종류의 맥주를 파는 술집이 있다고 해서 이틀 연속으로 찾아갔다. 가기전에 "요새는 관광객이 몰려 분위기가 별로다"라는 평을 본 적이 있는데 사람이 너무 없어서 놀랐다. 물론 한산해서 무척이나 좋았다. 그리고, 맛있는 맥주 너무 많았다. 도저히 다 먹어볼 수 없을 정도로... ㅠ.ㅜ


5. 쑥뜸의 나라?

네덜란드 이야기를 하면서 대마 이야길 안 할 순 없지. 뭐, 미국에서도 대학생/대학원생들 사이에서는 꽤나 많이 소비되는 마약인지라 대마 자체가 신기하거나 새로울 건 없었지만, 길가다 쑥뜸 냄새를(대마초 타는 냄새는 쑥뜸 냄새와 꽤나 유사하다) 낯과 밤을 가리지 않고 맡을 수 있는 건 꽤나 낯선 풍경임에 틀림없다.


6. 남자 vs 남자

네덜란드에서 또 합법인 것이 바로 매춘, 그래서 암스테르담의 홍등가는 관광지로도 유명하다. 재미있는 것은 홍등가를 다녀온 만나본 미국인들은 아주 흥미로웠다고 한 반면에, 나와 같이 간 한국인 일행들의 반응은 '에게, 이게 다야?'였다. -_-a

샘플이 작아 성급한 일반화의 오류일 가능성이 있지만, 그들과 우리 사이의 성적 개방도의 차이에 기인하는 게 아닐까라고 추측. 한국의 그 많은 망하지 않는 러브호텔과 여관들에도 불구하고, 표면적으로는 여전히 섹스가 타부인 이땅의 사람들은 '합법적 매춘'에서 스트립쇼와 같이 감각으로 즐길 수 있는 일종의 성적 스펙태클을 기대한 반면, 섹스가 러브호텔과 여관으로 숨어들어가지 않는 미국인들에게 있어서는 빨간 전등이 빛나는 유리창 너머의 여성들이 상징하는 성의 노골적 상품화라는 컨셉 자체에 흥미를 가질 수 있었던 건 아닐까?



영국에서 과거를 만나다

아는 사람은 알겠지만, 1990년에 1년간 영국 옥스포드에 살았었다. 철저하게 낯선 이국땅이었음에도 오랜 전통(이래봐야 사실 몇백년이지만 -_-,,)이 살아있는 옥스포드의 풍경은 무척이나 따뜻해서 18년 세월이 흐른 지금도 우리 식구들은 그 당시를 회상하며 흐뭇해하곤 한다. '영국에 다시 가거든 옥스포드를 꼭 들려보자'는 다짐을 잊지 않으며... 그렇게 18년만에 찾은 영국은, 신기하게도 그 옥스포드에서의 추억만이 아니라 지난 20년간의 수많은 과거와 마주치는 여행이 되었다.

그 과거와의 마주침은 수없이 많은 감정들을 되살려냈다. 어느 시점부턴가 인간사의 희로애락에 갈수록 무뎌지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는데, 덕분에 미국에 있는 동안에 친구들로부터 무심하다부터 시작해서 anti-sentimental하다는 평가에 이어 심지어는 sociopathic 아니냐는 의심까지 받았는데... -_-a 갑작스런 감정의 홍수는 무척이나 당황스러웠던 게 사실.


1. 1988년

1985년 춘천으로 이사를 갔을 때, 우리가 살던 아랫집 (조금 더 정확히는 바로 아랫집의 앞집)에 또 다른 강원대학교 교수님네 가족이 살았다. 여름이면 가끔 휴가도 같이 가고 꽤나 가깝게 지냈던 기억이 있다. 나보다 조금 어린 딸만 둘이 있는 집이었는데, 1988년인가 교수님께서 서울의 한 대학으로 자리를 옮기셔서 이사를 간 후, 부모님들은 부모님들끼리, 이집 딸들과 누나는 서로 연락을 하고 지낸 반면, 나는 사실 이집 식구들과 왕래할 일이 거의 없었다. 이번에 영국에 가기 전까지.

올 7월 교수님께서 안식년을 맞아 영국으로 교환교수로 나가셨길래, 영국에 있는 동안 이집에 묵기로 한 것. 둘째는 2004년 봄에 귀국했을 때 한번 만났는데, 그외의 식구들은 20년만에 처음이었던 듯. 그냥 오랜만에 한가족이 20년이란 세월을 훌쩍 뛰어넘은 것을 보니, 나만 늙은 건 아니구란 생각에 잠시 안도(?). 물론 잠시 후에 이야기하겠지만 이 생각도 그리 오래 가진 않았다. -_-,,


2. 1998년

1997년 4월, 대학 초년생의 어느 점심 시간 학교 도서관 컴퓨터실에서 이름도 학과도 모르는 아가씨에게 한눈에 반해 짝사랑에 빠진 일이 있다. 그렇지만 가끔 캠퍼스를 오가며 얼굴을 보며 가슴 설레는 것으로 그뿐.

그러다가 1997년 여름 가족들이 안식년을 맞아 미국으로 가신 아버지를 따라 1년동안 미국에서 살다온 1998년 가을 복학 후 한 교양 수업에서 그녀를 다시 발견... 오후 4시 수업이라 무척이나 가기 싫었지만, 한번도 결석하지 않았다. ㅡㅠㅡ 해가 뉘엿해지기 시작하는 5시 반에 수업이 끝날 때면, 오늘은 말이라도 한번 걸 기회가 없을까 눈치를 살폈지만 그런 게 있을리 없지. -_-a 한학기 내내 그렇게 눈치만 보다가 결국 좀 뻘짓/사고를 치고 그녀를 단념(?)했다. 단호히 말하건데 뻘짓의 내막은 공개 안 할 테다. s(-_-)z 그리고 너무 쪽팔려서 그녀가 나를 망각의 저편으로 밀어내버려주길 바랬다. ㅠ.ㅜ

그러다가 한 2년반쯤 전, 바로 위에서 언급한 교수님네 큰아이가 내 싸이 미니홈피 방명록에 메세지를 남긴 일이 있다. 영국으로 유학을 갔는데 그곳에서 그녀를 만났다며 '나는 그녀를 기억 못하겠지만, 그녀는 나를 기억하더라는 것' 에엑? 망각의 저편으로 밀어내주길 바랬는데 날 왜 기억하는 건데? -_-,, 뭐, 하도 오래전 일이기도 하니 내가 한 뻘짓에 용서를 빌 기회일 수도 있겠다 싶어 싸이를 통해 용기를 내서 그녀에게 연락을 해봤는데, 신기한 건, 그녀는 내가 기억하는 그 뻘짓은 기억을 못하고 나를 '수업이 끝나고 자신에게 딱 한번 말을 걸어온 아이'로 기억하고 있는 거다. 그런데 나는 정말 그녀와 직접 대화를 나눈 기억은 전혀 없다. -_-,, 그리고 그녀는 내가 말한 뻘짓에 대한 기억이 없단다. 영화 라쇼몽도 아니고, 이 무슨...

아무튼 그리하여 그 이후로는 온라인상으로 종종 연락을 주고 받다가, 이번에 영국으로 가면서 한번 만나기로 했다. 언제였는지는 정확히 모르겠는데--2000년 봄이 아닐까 싶다--내 기억에 남아있는 그녀의 마지막 모습은 당시 그녀의 남자친구였을 것으로 추측되는 한 총각의 자전거 뒷자리에 옆으로 걸터 앉아 카이스트 쪽문을 향해 가는 모습이었다. 싸이에서 사진을 보긴 했지만, 사실 뭘 기대해야할지 잘 몰랐다. 피천득의 인연에서처럼 후회하는 건 아닌가라는 걱정도...

약속 장소로 향하는 동안 (그녀는 그때 이미 20대였지만) 10대의 마지막을 장식한 어설프기만했던 짝사랑의 상대를 만나는 일이었으니 솔직히 가슴 설레였던 건 사실. 심장이 콩닥콩닥 콩닥콩닥... 그렇지만 이미 10년이나 지난 일. 그 설렘은 10년전 그 10대 소년에 대한 역투사 정도로 취급해버렸다. 남자 친구도 있다는데 그게 바람직한 일이기도 하고...

그런데 이게 웬걸. 약속한 기차역을 빠져 나와 그녀가 어디 있는 두리번 거리는데 오른쪽에서 내 이름을 부르는 소리에 그쪽을 돌아보는 순간 콩닥콩닥 뛰던 내 심장 소리가 쿵쾅쿵쾅으로 바뀌었다. 그녀한테 내 심장소리가 드리는 건 아닐가 걱정될 지경이었다. 제기랄, 이게 아닌데. orz 나만 늙는 건 아닌줄 알았더니, 왜 그녀는 안 늙은 게야? 내 기억보다 조금 말라 있었고, 키도 기억하는 것보다는 조금 작았다. 그렇지만 그녀에게서 10년의 세월은 느껴지지 않았다. 그런데, 아마도 진실은 그녀가 늙지 않은 게 아니라, 그녀가 늙지 않았다고 생각하는 바로 이게 남들이 말하는 콩깍지이리라. -_-,,

10년전 그 감정들이 고스란히 살아났다. 내가 무슨 이야기든 하고 있을 때면 큰 눈동자를 깜박이며 나를 바라보고 있는 사람이 그녀라는 사실만으로도 마냥 기분이 좋았고, 또 한편으로는 다소 초현실적으로 느껴지기도 했다. 그 흥분과 설렘은 더 이상 지금은 존재조차하지 않는 한 소년의 감정의 역투사 따위가 아니었다. 2008년 8월, 그 자리의 내 감정 그 자체였다. 그렇지만 그녀랑 마주 앉아 차를 마시고, 저녁을 먹는 그날 오후는 딱 10년 너무 늦게 찾아왔다. 제기랄, 이게 아닌데. orz 이 감정, 다스리려면 또 한참 고생하게 생겼다. 난 왜 맨날 남자친구 있는 아가씨들만 좋아하는 거야? ㅠ.ㅜ

아니 만났어야 좋았을 것이라는 피천득은 이번에도 옳았다, 비록 이 경우에 그 이유는 다르지만...

@ 이글 읽고 즐거워하는 사람들 있는 거 다 안다, 쳇. 이런 이야기, 원래 자기 이야기만 아니면 무척 재밌지. -_-,,


3. 1990년

그녀를 만난 이틀 후, 드디어 옥스포드를 찾았다. 내가 살던 집은 옥스포드 기차역에서 매우 가까웠다. 기차역에서 집으로 가는 길에 길을 건너 작은 굴다리를 지나가게 돼 있었다. 그 사실은 옥스포드에 도착해서 그 굴다리를 보는 순간까지 기억나지 않았다. 그렇지만 그 굴다리를 바라보는 그 순간, 집으로 향하던 그 길이, 그리고 그 길을 수없이 지나다니며 런던을 오다니던 18년전의 기억과 더불어, 뭐라고 정의할 수 없는 과거를 향한 무책임한 향수들이 마구 일어났다. 사실 이 시점에서 옥스포드의 다른 부분은 더 안 봐도 된다 싶을 정도로...

옥스포드는 참으로 변한 게 없었다. 18년 동안 뭐가 변했나 바라보는 게, 마치 숨은그림 찾기하는 기분이었다. 그래서 너무 좋았다. 적어도 이번엔 18년만의 재회를 후회할 필요가 없었다. 재개발의 천국인 대한민국에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일. 뭐, 조금 변했다면, 내 기억보다는 상권이 조금 더 발달한 것 같다는 정도? 그렇지만 10살짜리 소년이 보는 도시와 28살짜리 아저씨가 보는 도시는 어차피 다를 수밖에 없다보니 그 차이일지, 정말 상권이 더 발달한 건지는 감이 잘 안 온다. 게다가 당시에는 후덜덜한 영국의 물가에 놀라 외식 한번 안 하고 살았고, 그저 먹을 거 장보기 이외의 쇼핑은 그다지 한 일이 없다보니, 내 입장에선 특히 옥스포드의 상권에 눈을 줄 일이 없었긴 하다.

아무튼 이틀 간격으로 너무 많은 감정이 동시다발적으로 뿜어져나오는 경험을 하고나니 좀 멍했다. 네덜란드에서는 개인적 감정은 철저하게 배제된 관찰자로 존재했던 반면, 이번 영국 여행은 이건 정말이지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사적 경험과 감정으로부터 벗어나지 못하는 특이한 경험이 돼버렸다.

어찌됐든 무사히 살아돌아왔고, 이젠 연구에 매진하는 일만 남았다.

@ 에엑, 근데 9월 18일에 4주훈련 받으러 오라네, 타이밍 최악이다. 연기할 테다. ㅡㅠ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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