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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8/03/25 보통 사람들의 위험한 욕망 (2)
1. 미국의 라디오 프로그램 중 This American Life라는 프로그램이 있다. 매주 한가지 주제를 정해서 그 주제와 관련된 이야기들을 몇가지 글이나 인터뷰의 형태로 소개하는 프로그램이다. 책벌레 스타일의(nerdy) 호스트 Ira Glass의 약간은 긴장된 듯한 목소리의 진행이 탁월한 주제선택과 편집과 맞물려 영어로된 라디오 매체라는 한계에도 불구하고 즐겨 듣게 된다. (관심있는 분들은 http://www.thislife.org/에서 확인들 해보시라. 매주 월요일 무료 포드캐스트를 다운받을 수 있다.)

최근에 아주 재밌게 들은 내용은 2월 25일에 나간 테스토스테론을 주제로한 방송분이었다. 이날 방송된 에피소드 중 하나는 건강상의 이유로 테스토스테론을 체내에서 한동안 제거했던 사람의 이야기, 남성전환을 위해 테스토스테론을 주입한 사람의 이야기, 이 프로그램의 제작진 전원(남자 다섯, 여자 넷)이 테스토스테론 수치를 측정한 이야기, 그리고 십대 소년을 둔 어머니의 이야기를 다뤘는데 특히 첫 에피소드가 흥미로왔다.

생식기에서 분비되는 호르몬으로 흔히들 남자들의 주책바가지 같은 성욕의 근원으로 알려진 테스토스테론은--일반적으로 남성들이 여성들에 비해 수십배 많아 남성호르몬이라고도 불린다--성적 욕망 이외의 인간의 욕망 대부분과 강한 연관성을 갖는다고 한다. 테스토스테론을 제거했던 남자는 그 동안 자신을 규정짓는 정체성--자신이 열정을 갖고 좋아하던 일들, 감정, 성격 등등--이라고 생각했던 것이 완전히 소멸하는 경험을 했다고.

뭐에도 흥미를 느끼지 못했다며, 하루에 몇시간씩 침대에 누워 천장만 바라보거나, 식빵에 마요네즈만 발라 먹어도 불편한 줄을 모르겠더란다. 한가지 또 재미있는 것은, 그 기간 동안 주변의 온갖 사소한 것들, 심지어는 남의 무릎의 수술자국까지 '아름답게' 보이더라는 것이다. 그런데 '아름답다'는 인식이 이는 사물들에 대한 적극성을 갖는 감상이 아니라, 아무 감정이 실리지 않은 사물에 대한 단순한 묘사였다고.

예는 반증의 논거로써는 훌륭하지만, 증명의 논거로써 한 개인의 경험이나 단 한 가지 예는 형편없다는 걸 잘 알기에 '테스토스테론을 제거하면 우리가 인간의 오욕칠정으로부터 자유로워진다'는 이야기를 하려는 게 아니다.


2. 우리는 대부분 욕망을 달성함으로써--때로는 버림으로써--행복을 찾을 수 있는 그 어떤 것으로 받아들인다. 이는 지극히 개인적인 해법으로, 그런 과정에는 '우리의 욕망이 사회적으로 어떤 맥락을 지니며 과연 정당한가'에 대한 사유는 없다. 아주 가끔 내 욕망의 결과가 가까운 주변 사람의 이익과 대치될 때 갈등이 존재하기는 하지만, 그 욕망이 사회정의와 어떻게 대치하는가에 대한 사유는 없다는 이야기이다.

예를 들어보자. 사회상류층 편입을 노리는 신분상승에 대한 개인적 욕망은--적어도 그 욕망을 가진 자가 인식하는--사회구조 내에 계층이 존재한다는 사회적 현상을 반영한다. 바꿔말하면, 내가 고통받는 이유는 상류사회에 진입하지 못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보다 근본적으로 평등이 보장되지 않는 구조적 모순에 있다. 전자에 집중할 경우, 나의 고통은 신분상승을 통해 해소할 수도 있겠지만 (신분상승이 갈등의 해소를 보장하지는 않는다) 사회정의의 관점에서 봤을 때, 고통 받는 다른 누군가가 어딘가에는 있다는 문제를 안고 있다.

사실 욕망이란 것이 대체로 개인적 경험--돈/힘이 없어서 무시당해본 일이 있다거나 혹은 돈/힘 있는 사람을 보니 부럽더라 따위의 경험--에 대한 반사작용으로 순식간에 발생하는 감정인데다가 '무언가를 하고 싶다'라는 감정은 태생적으로 '무언가를 하면 된다'는 즉각적인 해법을 안고 있기 때문에, 대부분의 개인이 그 욕망의 사회적 맥락에 대해 고민하지 않는 것은 어찌보면 당연하다. '내가 이러면 안 되는 걸까?'라는 고민이래봐야  '너무너무 갖고 싶은 물건이 있어도 도둑질을 하다 잡히면 감옥에 간다' 같은 내 이익이 직결된 문제이거나, 간혹 내 욕망을 이루기 위해 친구를 짓밟거나, 팔아먹어야 한다거나 하는 개인 간의 이익이 대치될 경우 발생하는 기초적인 수준의 도덕성 범위 내의 갈등 정도다.

즉, 욕망을 둘러싼 갈등이 '내 욕망이 사회정의를 해치지 않는가'라는 물음에서 출발하지 않기 때문에 개인의 욕망 해소의 해법은 단순한만큼이나, 이런 개개인의 욕망은 항상 충돌할 수밖에 없고 이로 인한 사회적 문제는 더욱 심각해진다. 개개인이 신분상승을 노리는 것보다, 보다 본질적으로 사회계층 형성에 직간접으로 영향을 주는 내 행위를 제거하는 것이 원칙적으로는 올바른 일이지만, 현실적으로는 타자의 욕망이 항상 나의 그런 노력을 짓밟기 때문에 어려워진다. 사기꾼이 딱 한 사람만 있어도 '정직한 사람은(만) 손해를 보는 거'라 정직해지지 않는 게 현명한 선택이 된다.


3. 그래도 정직하고 우직한 사람은 어디에나 존재한다. 그리고 많은 보통 사람들은 이런 사람들의 행실에 감동한다. 내 자식에게는 집 한칸이라도 물려주려고 그렇게 애쓰는 사람들도, 몇십억을 자식들에게 물려주지 않고 기부한 시골의 웬 할머니의 이야기에는 언제나 감동한다. 다만 감동만 하고 말 뿐이다.

서울에서 카이스트보다 훨씬 등록금이 비싼 대학을 다니며 수없이 과외를 해서 자기 학비, 생활비 벌어서 쓰는 친구들도 있었다. 그럴 능력이 없는 것도 아니었는데 나는 왜 안 그랬을까? 학비가 공짜라는 이유로, 경제적 자립능력이 없는 학생이라는 이유로 집에서 주는 용돈 아무렇지도 않게 받아 썼다. 그런데 지금 생각해보면 사실 너무너무 부끄럽다. 그런데 이렇게 부끄럽게 살았는데도, 주변에서 나한테 손가락질하는 사람은 어째서 하나도 없을까? 오히려 그걸 부끄러워하는 나의 결벽증(?)을 보고 가족들은 '쓸데없는 고집' 부리지 말라며 역정만 낸다.

다른 사람의 꼿꼿한 원칙엔 감동하는 가족들에게, 왜 내 뒤늦은 후회는 쓸데없는 고집이 되는 걸까? 왜냐하면 그 할머니가 실천한 사회정의를 내가 실천했을 때 돌아오는 직접적인 이익이 없기 때문이다. 오히려 이건희가 이재용에게 회사를 물려주는 순간 막심한 손해로 되돌아올 뿐이다.

우리가 단돈 몇푼이라도 죽기전에 사회에 환원하지 못하는 건, 그 할머니가 손수 보여준 삶의 원칙이 나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 아니다. 오히려 그 원칙이 너무도 훌륭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런 원칙은 60억이나 있는 사람이 실천했을 때에나 효과적이라며 그러지 못하는 자신의 행동을 합리화하는 일이 훨씬 더 쉽기 때문이다. 60억을 기부한 사람을 특별하다고 생각하는 이상, 그런 사람을 보며 스스로 그러지 못하는 자기자신을 부끄러워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보통 사람은 특별히 잘난 사람과는 다르다는 생각, 그래서 보통 사람이 무서운 거다. '특별해지기' 위해서는 신분상승을 해야만 하는 자기분열적인 모순에 빠진 보통 사람들 말이다.


4. 테스토스테론이 사라지니 욕망으로부터 자유로와졌다던 아까 그 사람, 그 당시를 기묘하게 흐뭇하더라고 회고한다. 욕망을 없애기 위해 테스토스테론을 없애라는 것은 아니지만, 그 기이한 흐뭇함이 무엇일까라는 호기심, 욕망이 없는 상태에 대한 욕망은 가져보는 것도 나쁘진 않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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