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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0/06/13 4. 분업과 시장
- 아담 스미스, <국부론>
세상 모든 것과 마찬가지로 자본주의 역시 사람에 따라서는 찬양할 수도, 경멸할 수도 있지만, 당신의 자본주의에 대한 입장이 뭐든 간에, 아담 스미스의 정치와 경제에 대한 시각이 우리 삶에 깊숙히 침투해 있음을 부정할 수는 없다.

세상에 둘도 없는 맑시스트조차도, 아니 맑스 본인도 스미스의--당시에는 정치 경제(political economy)라고 불리운--경제학에 대한 통찰력에는 크게 반대하지 않았다. 다만 당대의 주류 경제학파와는 노동 이론과 계급 인식에 대한 차이가 있었고, 여기서 사회주의가 탄생했을 뿐이다.

그런 아담 스미스의 경제학 이론을 집대성한 책이 국부론으로 여러 부문에서 뛰어난 통찰력이 돋보이는데, 그 중 하나가 물론 분업의 경제적 기능을 짚어낸 거다. 유명한 핀 공장을 예로 드는데, 한 사람이 재료만 받아서 핀을 처음부터 끝까지 다 만들어야 한다면 보통은 하루에 한개 만들기도 벅차고, 아주 능숙한 사람 조차도 하루에 핀 20개 만드는 건 불가능하지만, 핀 생산 공정을 18가지 정도로 세분화해서 10명이 이들을 나눠서 담당하는 핀 공장에서는 10인 1조가 핀을 약 48000개, 한 사람당 하루에 4800개 가량의 핀을 생산해낼 수 있더라는 이야기가 국부론에 실려 있다.

분업의 결과 1인당 생산성이 많게는 4800배, 적게 잡아도 240배 이상 증가했다는 이야기. 그렇지만, 여기에는 중요한 전제가 한가지 깔려 있다. 그 전제란 바로 "분업은 시장의 크기에 의해 제한된다"는 사실. 응? 그게 뭔 소리여?

자, 다시 핀 이야기로 돌아가보자. 만약 인구가 100명짜리인 동네에 대장장이가 한명있고, 핀이 필요하다는 사람이 있으면 그때마다 핀을 하루에 1개를 만들어 줄 수 있다. 사람들이 핀을 쓸 일이 별로 없기 때문에 열흘에 한번씩 핀을 만들고 있다, 나머지 9일 동안은 주문에 따라 칼이나 농기구를 만들지만, 칼이나 농기구는 쉽게 잃어버리거나 망가지지 않다보니, 주문이 그다지 밀려 있는 건 아니다. 그런데 인구가 1000명이고 이들이 같은 비율로 핀을 이용한다면? 인구가 10배가 됐으니 핀을 10배 많이 만들어야 한다. 따라서 이 대장장이는 늘상 핀만 만들게 된다. 그대신 칼, 농기구 등을 만들 시간이 없어진다! 그 대신 칼만 만드는 사람, 농기구만 만드는 사람이 따로 생긴다. 시장이 커짐에 따라 대장장이가 핀장이, 칼장이, 농기구장이 따위로 분화가 된다는 거다.

물론 이런 시나리오도 가능하다. 원래 인구 100명인 동네에 대장장이가 1명이었으니, 1000명인 동네엔 대장장이가 10명 있고, 이들이 각자 열흘에 한번씩 핀을 만들면 그만 아닌가? 아, 그런데 이는 단순히 인구 100명인 동네 10개가 따로 따로 있는 것과 마찬가지다. 이런 경우에는 결국 100명에게 필요한 재화와 상품을 100명이 모두 생산하고 소비를 해야 한다는 사실. 그게 뭐가 문제지? 자, 주변을 돌아보고, 나한테 가장 필요한 것 100가지를 추려 보고, 이것들 중 단 한가지라도 100명분을 자신이 혼자 만들 수 있을지 생각해보라. 뭐라도 좋다. 쌀, 물, 배추, 소금, 설탕, 전화기, 열쇠, 옷, 신발... 뭐라도 좋다.

이 시나리오에서 잘 생각해야 하는 건, 자신이 100가지 제품을 추려냈다면, 그 최종 상품을 만들기 위해 필요한 다른 부품이나 재료들도 결국은 자신이 생산해야 한다는 거다. 예를 들어 쌀은 100가지 중에 포함이 됐는데, 농기구나 비료는 포함이 안 돼 있다면, 쌀을 생산하는데 필요한 농기구와 비료도 본인이 만들어서 사용해야 한다. 100명 단위의 마을을 10개로 쪼갠다면 비료를 별도로 생산할 사람은 없기 때문이다. 오늘날 우리는 분업이 너무나 일상화된 사회에 살고 있기 때문에, 그 효과를 쉽게 체감하지 못하고 산다. 우리 식탁에 올라온 쌀은 농부가 지은 거라고 생각하지만, 그 상품의 최종 생산자가 농부일 뿐, 그 전 단계의 농기계, 비료, 그리고 그 다음 단계의 유통업체 등등의 기능에 대해서는 별로 생각하지 않는다.

그렇지만 농부가 쌀을 100명치만 생산하는 대신에, 만명 십만명어치의 쌀을 생산하기 때문에, 쌀을 생산하는 데에만 집중할 수 있고, 만명 십만명어치의 쌀을 생산하는 데에 필요한 비료와 농기계의 생산은 다른 사람의 고민일 수 있는 거다. 농부가 쌀을 천만명, 일억명어치 생산해야 한다면 쌀 농사를 짓는 사람들 사이에서도 서로 다른 역할이 생길 수 있다. 아담 스미스의 핀의 예를 보면, 핀을 생산하기 위해 18가지 작업을 10명이 수행한다고 했는데, 핀이라는 최종 생산품 하나 조차도 더 이상 처음부터 끝까지 혼자 만들 수 있는 사람이 없어지듯이... (자동차를 혼자 만드는 상상을 해보라. 자동차 부품 제조는 물론이거니와, 철광에서 재료를 혼자 채취해야 한다고 생각하면, 이걸 해낼 수 있는 사람은 지구상에 존재하지 않는다.)

다시 말하면, 분업의 효과로 나타나는 생산성의 증대는, 그렇게 늘어난 생산량을 소비할 수 있는 시장이 있을 때에만 유용하다. 그렇기 때문에 시장의 크기가 분업을 제한한다는 말이다.

예전에 물질 풍요를 이루게 하는 원동력으로 슘페터의 창조적 파괴를 이야기한 적이 있는데, 창조적 파괴의 가장 원시적이고, 1차적인 단계가 바로 아담 스미스가 말한 분업이다. 노동력이 편성돼 있던 과거의 직업군을 파괴하고, 새로운 직업군을 창조하여 노동력을 재편함으로써 생산성을 늘리고, 늘어난 생산량만큼의 물질적 풍요를 누리게 된다는 이야기. 그래서 적어도 경제적 관점에서는 팔방미인은 쓸모가 없다는 말이 딱 맞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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