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에 해당되는 글 3건

  1. 2008/07/28 The Dark Knight 보고 싶어!!!!!!!! ㅠ.ㅠ (11)
  2. 2007/03/26 타인의 삶(Das Leben der Anderen) (3)
  3. 2006/10/19 영화 괴물과 한미관계 (4)
최근 개봉한 The Dark Knight의 인기가 가히 하늘을 찌를만하다. 대중과 평론가 모두로부터 엄청난 찬사를 받고 있는 이 영화가 imdb 관객 평점에서는 감히 대부의 아성을 무너뜨려 논란(?)이 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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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엽기적인 건 10점 만점을 준 사람들의 비율이다. 관객 10명 중 7명이 '이 영화는 만점!'이라고 말하고 있다. 아니, 도대체 얼마나 재밌고 훈늉하길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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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아, 느무느무느무 보고 싶다. 포스터나 월페이퍼만 봐도 심장이 막 벌렁거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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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HY SO SERIOUS? 조커의 에센스를 저보다 더 간결하고 정확하게 담아낼 수 있을까? 크리스토퍼 놀런은 천잰가봐. ㅠ.ㅜ



뭐, 인터넷엔 이미 캠코더 버전이 떠돌고 있긴 하다만, 이런 영화는 디지털 상영관에서 제대로 봐야 하는데... 문제는 개봉일이 8월 7일, 뚜둥. 너무 오래 기다려야한다는 게 문제가 아니라 난 8월 6일에 네덜란드를 간단 말이다. orz

@ 자... 잠깐, 네덜란드 간다는 자랑을 하려는 게 절대 아님라고... -_-,,
@@ 아, 나도 영화잡지 기자나 해볼까? (뭐, 하겠다고 누가 시켜나 주냐마는... ㅡㅠㅡ) 허지웅은 벌써 봤던데... 부러워!!! 엉엉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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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전 이 영화를 보고 무척 맘에 들어서 글이라도 하나 쓸까 했지만, 귀차니즘에 순순히 백기 투항해버린 쥔장. ㅡㅠㅡ 자주 가는 블로그들엔 새글이 없어서 지루함에 시달리다 무척 오랜만에 키드님 블로그에 가봤더니 이 영화에 대한 글이 있는 게 아닌가. '아, 이것도 일종의 계시인가'라는 다분히 미신적인 관점에 입각하여 글을 쓰기로 결심. ㅡㅠㅡ

영화의 무대는 체제의 붕괴가 엄습해오는 80년대 동독. 잠재적 반체제인물로 의심되는 한 작가-연극배우 커플을 감시하라는 상부의 명령을 받은 한--체제를 의심하는 사람에게는 일말의 동정심도 없던, 체제의 철저한 신봉자였던--비밀경찰이 이 커플들의 삶에 천천히 동화되는 과정을 굉장히 설득력 있게 그려낸 영화. 그리고 그 핵심에 자리한 모티프는 '타인과 연대하기'다.

키드님 말씀대로 이념을 뛰어넘는 예술/사랑의 호소력으로 이 영화를 이해해도 상관없겠지만, 어떤 가치의 보편성이란 건 공유된 경험과 학습을 바탕에 깔았을 때에만 존재하기 마련이라 믿는지라, 수십년의 경험과 학습이 쌓아올린 체제에 대한 맹신을 단지 '예술의 보편성'이란 이름으로 뒤흔들 수 있다는 것이 이 영화가 말하고자 하는 바의 전부는 아닌 것 같다.

이 비밀경찰이 비즐러가 드라이만(작가)을 훔쳐보기 이전부터 이들 사이에는 이미 공유된 가치가 있었고, 영화는 이 점을 놓치지 않고 보여주기 때문에 설득력이 생기는 것. 달라도 너무 다른 삶을 사는 이들에게 무슨 공통점이 있을까? 바로 이 지점에 타인--가족이나 친구 등 삶의 일정부분을 공유한 특정 소수가 아닌 불특정 다수로서의 타인--에 대한 연대감이 자리를 잡고 있다.

비즐러의 삶을 유지시키는 것은 체제에 대한 환상이다, 현체제가 사람들에게 행복한 삶을 보장한다는 환상. 그렇기 때문에 본인의 삶은 꽤나 공허하지만--비즐러는 영화 내내 단 한번도 웃지 않는다--이를 체제를 보호하기 위한 자신의 숙명으로 받아들인다. 바로 자신의 불편함이 다른 사람들에게 행복을 가져다 줄 것이라는 믿음을 가짐으로써, 즉 체제를 통해 타인과 연대함으로써 삶의 공허함을 견뎌낸다. 그렇기 때문에 그런 체제--보다 정확히는 그가 지닌 체제의 환상--를 의심하는 사람들에게는 동정의 여지 또한 없다.

드라이만의 삶은? 드라이만이야 말로 체제의 혜택을 톡톡히 누리고 있다. 사랑, 부, 명예, 모든 것을 가졌고, 그는 체제 하에서 충분히 행복할 수 있고 보기에 따라서는 행복해야만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불행하다. 그는 체제에 대한 환상이 없기 때문이다. 현체제가 자신 이외의 사람들의 삶을 얼마나 피폐하게 만드는지 잘 알기 때문에, 그리고 그런 그들에게 연대감을 갖고 있기 때문에 그는 불행하다. 그의 불행은 숙명이 아니고 선택의 결과인 셈이다, 타인과 연대하기로 한 선택의 결과.

이 지점에서 두 사람은 만난다. 두 사람 다 자신의 삶 이상으로 타인의 삶에 애정과 관심을 갖고 있기 때문에, 비즐러는 드라이만이 설령 자신이 그토록 맹신해온 체제와 맞서 싸울지라도 그에게 동화된다. 체제로부터 철저한 비호를 받아온 드라이만이 체제를 불신하는 것은 스스로의 이익을 위함이 아니라 체제로부터 행복을 보장받지 못한 타인들을 위함을 깨닫는 순간, 체제의 일부인 그루비츠나 헴프 같은 인물들은 실제로는 개인의 이익 외에는 관심이 없다는 것과 극명한 대비를 이루며, 비즐러는 드라이만이 자신과 연대하고 있음을 깨닫는 것이다.

그리고 그 덕분에 '타인의 삶(Das Leben der Anderen)'이란 영화의 제목도 숨결을 부여받는다.

@ 매우 훌륭한 영화임에 틀림없지만 쥔장은 여전히 아카데미 외국어 영화상은 판의 미로가 받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사실 판의 미로는 최우수 작품상을 받아 마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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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로만 듣던 영화 괴물을 드디어 봤다. 지난 10월 5일부터 시카고 국제 영화제가 개막을 해서 오늘 막을 내린다. 한국 영화는 괴물(봉준호 감독), 방문자(신동일 감독), 비열한 거리(유하 감독), 시간(김기덕 감독), 왕의 남자(이준익 감독), 용서받지 못한 자(윤종빈 감독)의 6편이 출품됐는데, 지난 주에는 왕의 남자를 어제는 괴물을 보러 갔다.

이곳 친구들 8명과 같이 갔는데, 다들 영화의 드라마 자체에는 만족했지만, 미국/미군에 대한 묘사에 불편/섭섭한 감정을 갖는 기색이 역력했다. 평소에 미국의 일방주의적 대외정책에 대한 비판의 날을 세우기를 서슴지 않던 친구들인 걸 감안하면 다소 의외이긴 했지만, 또 다른 한편으론 원래가 내가 내 가족을 욕하는 건 상관없지만, 다른 사람이 내 가족을 욕하면 발끈하게 되는 게 또 사람 마음 아닌가. (이런 잣대의 이중성이야 늘 경계해야하지만 그 심정을 이해 못하는 건 아니라는 이야기.)

사실 국내에서는 요새 주한미군 감축과 기지이전, 작전통수권 반환 등의 문제를 둘러싼 한미의 미묘한 갈등이 꽤나 큰 쟁점이지만, 전세계에 벌여놓은 일이 워낙에 많은 미국인들에게 큰 분쟁의 여지가 없는, 동맹국이라고 생각하는, 한국과의 관계는 그리 큰 관심사가 아니다. 그런 상황에서 딸/손녀/조카를 납치해간 돌연변이 괴물과 사투를 벌이는 한 가족의 이야기를 다룬 오락영화를 기대하고 갔다가, '미군의 부주의로 괴물이 자랐고, 이에 적극적으로 개입 의사를 밝힌 미국/유엔은 무능하고 무책임하기만 하다'는 뉘앙스를 풍기는 영화가 당황스러웠으리라.

불평등한 소파의 불합리함, 용산 기지 반환 후 알게 된 기지 터전의 심각한 오염상태 등 미군이 한국에 주둔하면서 발생한 부작용 등의 배경이 있는 영화라고 설명을 하자, 한 친구는 어느 정도 수긍은 하면서도, 그렇게나 미군이 달갑지 않은 거면 미군이 완전 철수하기라도 바라는 거냐는 질문을 다시 던졌다.

그리고 바로 저 질문 하나에 딴나라당 딴따라들과 이들의 호위대를 자처하는 조중동의 꼴통 언론, 그리고 이들이 결집시키는 소위 보수 세력의 우려가 온전히 담겨있다. 미국인들의 심기를 불편하게 함으로써 그들이 '그렇게 싫으면 나가면 될 거 아니야'라고 하는 상황은 '미군의 도움없이 북한과 전쟁을 치루는 것'을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이들에게는 이보다 더 끔찍한 시나리오는 없으리라.

그렇지만 이들이 크게 오해하는 것이 하나 있다. 여기서 주인장, '우리는 자주 국방을 할 군사력이 충분하니, 주둔시킴으로써 득보다 실이 많은 미군은 나가는 게 낫다'라는 주장을 하려는 건 아니다. 사실 군사매니아/전문가들 사이에서도 의견이 분분한 이 문제에 대해 별 아는 게 없는 주인장, 미군의 필요성에 대해 어느 한쪽편을 들 정도로 체계화된 정보를 갖고 있지 못하다. 주인장이 아는 게 그렇게나 없다면, 이들이 도대체 무얼 오해한다고 이토록 당당하게 말하는 걸까?

답은 간단하다. 비단 미군 문제 뿐만 아니라 어떤 문제나 현상을 바라보고 이를 개선하기 위한 접근에 있어서의 기본 전제가 잘못됐다는 데에 이들의 오해가 존재한다. 무슨 이야기냐하면, 미군이 한국에 주둔함으로써 순기능이 있고, 이에 따른 부작용이 있다. 순기능이라면 당연히 대북억지력일 것이고, 부작용이라면 불평등한 소파 조항들로 인한 한국민들의 권리 침해, 용산 기지에서 드러났듯 기지 터전에 대한 미군의 무책임한 관리 등이다. 문제는 이 순기능과 부작용 사이에는 어떤 인과관계도 없다는 점이다. 바꿔 말하면, 미군이 대북억지력을 갖기 위해서는 미군이 반드시 한국정부로부터 치외법권에 놓여야 한다는 주장은 성립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인과관계를 별 생각없이 이 문제의 기본 전제로 받아들이고나면, 이를 위한 해결책은 다음의 양자택일로 좁혀지고 만다: 1) 미군이 이땅에서 뭔짓을 하든 이를 용납하고, 미군 주둔을 허용한다. 2) 미군이 지꼴리는대로 하게 용납할 수 없다면, 미군은 완전 철수한다. 선택권이 이 두가지일 때는, '미군없이 북한을 막을 수 없다'는 판단이 섰을 때 1)을 주장할 수밖에 없고, 미군이 지멋대로 행동하는 걸 반대하는 세력은 자연스레 미군의 철수를 주장하는 세력이 된다.

그런데 정말 선택권이 저 둘 뿐일까? 농담도~. 미군의 대북억지력과 미군이 한국으로부터 치외법권에 있는 것 사이에는 어떤 인과관계도 없다. 즉, 미군주둔으로 인해 나타나는 각종 부작용들은 미군주둔에 따른 순기능으로부터 필연적으로 발생하는, 그러므로 우리가 어쩔 수 없이 감수해야 하는 성질의 것들이 아니다.

물론 목마른 사람이 우물을 파는 거다. 우리가 미군의 필요를 인정한다면, 우리가 미국에게 어느 정도 특권을 인정해줄 수밖에 없다. 그런데 그 특권이란 게 '뭐든 마음대로 하라'여야 할 필요는 없다는 것뿐이다. 예를 들어보자. 돈이 없어서 누군가에게 돈을 빌려야 할 경우, 우리는 '이자'를 지불하고 돈을 빌린다. '이자'라는 것이 돈을 빌리는 사람의 권리를 침해하지 않으면서도, 돈을 빌려주는 사람에게는 돈을 빌려줄 만한 좋은 인센티브가 되기 때문이다. 돈을 빌리는 사람이 목마른 쪽이라고 돈을 빌려주는 사람에게 무조건 '우리집에 와서 당신 멋대로 해도 좋아요. 원하면 내 딸을 범해도 됩니다'라고 말해야 된다? 이건 아니잖아~. 이건 아니잖아~.

소파 개정을 외치고, 국내에서 미군의 자제력 있는 행동을 외치는 사람들은 미국이 아무런 이익관계없이 선의로 자국민들을 전쟁발발 위협이 있는 남의 나라땅에 파견하기를 바라는 게 아니다. 단지 미군 파견의 댓가로 모든 걸 내줄 필요는 없다고 이야기하는 것뿐이다. 돈을 빌리면서 얼마만큼의 이자가 적당한 이자인가 상대방과 합리적이고 논리적으로 합의를 보라는 것이다. 그게 바로 건전한 외교고, 국가의 할 일이다.

그리고 우리가 할 일은, 국가가 당당한 외교를 할 수 있는 토양을 만들어주는 거다. 죽고 싶어 사는 사람은 거의 없지만, 그래서 죽기 싫더라도, 우리는 비굴한 삶보다 가치 있는 떳떳한 죽음이 있다는 것쯤은 인정하고 받아들일 수 있다. 국가 경영자들이 국민을 사지로 내모는 정책/외교를 펼치는 것은 옳지 않다. 그렇지만, 국민이 손해를 감수할 각오가 돼 있을 때, 국가는 국가간 외교에서 상당한 레버리지를 확보한다. 미군주둔과 관련된 예를 들면, 미국과 교섭할 때에 실제 교섭에 임한 정부의 관리들은 '국가를 경영하는 관점에서 미군이 꼭 필요한데, 국민들은 멋모르고 미군이 필요없다며 저렇게 날뛰니 어찌해야 될지 모르겠다. 완전 치외법권까지는 보장해줄 수 없고 이런저런 조건 정도밖에 제시하지 못하겠는데, 이 정도에라도 꼭 좀 한국에 군대 좀 주둔시켜달라'라고 엄살을 부릴 수 있는 여건을 확보할 수 있다.

이래서 국가는 단순히 국민들의 집합명사가 아닌 거다. 국민들 개개인은 미군이 떠나는 것이 두려워서 그들이 꼭 필요한 존재라고 호들갑을 떠는 것보다, 미국에게 비굴하게 구는 게 두려워 미군은 떠날라면 떠나라고 배짱을 부릴 때, 국가는 미군이 필요할 때는 그들이 필요한 존재임을 보다 당당하게 상대방(미국)에게 납득시킬 수 있다. 이 국가 대 국민, 국가 대 국가간의 역설적 관계를 이해할 때, 정녕 미군의 한국 주둔에 위협이 되는 존재가 누군지 분명해진다. 그래서 사즉생이요 생즉사란 말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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