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의 주장에 따르면 초기의 순수한 촛불집회의 취지가 변질된 최근의 '불법폭력시위'는 전문 시위꾼들로 구성된 국가전복세력과 이들에게 선동 당한 일부 선량한 국민들이 아무것도 모르고 거리에 뛰쳐나온 거란다. 그렇다면 지난 주말에 촛불집회에 나갔던 나는 1) 국가전복을 노리는 선량하지 않은 데모꾼이거나 2) 선량하지만 선동에 놀아나는 어리석은 인간이다.

그런데 데모꾼이라기엔 학교 다니면서 데모 한번 안 해본 내 이력이 너무 미천해서, 아무리 봐도 난 데모꾼은 아닌 거 같고, 그렇다면 남의 선동에나 놀아나는 바보 멍충이란 이야긴데... 이거 무지하게 자존심 상하는데... 뭐, 다른 건 다 제쳐두고 내가 아무리 멍청해도 이명박보다는 똑똑할 텐데... 기냥 확 명예훼손죄로 고소해버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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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경하는 대통령 각하, 지난 6월 29일, 김경한 법무부장관이 불법시위 엄단에 대한 대국민담화문을 발표하던 그 시간에, 저는 시위에 참가했다가 대전으로 돌아가기 위한 버스에 올라 있었습니다.

김경한 장관의 극렬시위는 엄단하겠다며, 법을 지키는 가운데 자기주장을 펼치는 성숙한 시민의식을 보여주실 것을 부탁드린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법무부 장관 좌우로 자리잡고 서 있는 노동부, 행정안전부, 문화체육관광부 장관과 국무총리실장을 보면서, 대통령 각하를 편안하게 모시지 못한 제 자신을 자책했습니다.

버스 안에서 생각하고 또 생각했습니다. 수없이 제 자신을 돌이켜보았습니다. 저는 인터넷의 각종 포탈 사이트, 포럼, 블로그들을 돌며 국민들의 생각을 엿볼 기회를 가졌습니다. 그분들께서는 이렇게 충고해주셨습니다. "혼자서 고민하지 말고, 대통령 각하께 털어놓고 이해를 구하라"고 말입니다.

제가 오늘 이 자리에 선 것은 그분들의 말씀대로 대통령 각하께 저간의 사정을 솔직히 설명드리고 이해를 구하기 위해서입니다. 그리고 앞으로의 촛불집회가 나아갈 방향을 말씀드리고 새출발을 다짐하려고 합니다.

돌이켜보면 쇠고기 협상이 타결된 후 저희는 마음이 급했습니다. 과거의 협상들에 비추어 볼 때, 고시가 이루어지고 나면 30개월 이상의 미국산 쇠고기가 국민들의 밥상에 오르는 걸 막을 수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쇠고기 협상 타결로 이 정부에 대한 국민 여론은 급속히 악화되고 있었습니다. 쇠고기 협상에 겹쳐 대운하, 영어몰입교육, 공기업 민영화 등의 정책으로 국민들의 불만이 쌓여 있었습니다. 이런 국민의 의사를 분명히 하여 국민주권 국가의 위상을 확실히 하는 일이 시급했습니다.

시민들이 모여 우리의 목소리를 내는 것이 헌법을 수호하는 지름길의 하나라고 판단했습니다. 정부가 국민의 뜻에 반할 때조차 국민이 침묵하면서 국민주권국가가 될 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보았습니다.

현행법률의 위반도 예상됐습니다. 싫든 좋든 온 국민이 이토록 분노로 들끓는데 촛불집회는 피할 수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집회/결사의 자유가 보장되면 대한민국의 민주주의가 발전할 것으로 예측됩니다.

민주시민으로서 이런 절호의 기회를 놓치고 싶지 않았습니다. 아무 노력도 하지 않고 기회의 문이 닫히는 것을 그냥 바라보고만 있을 수는 없었습니다. 우리나라는 자유민주주의국가입니다.

그러나 독재시절의 그늘에서 벗어난지 20년밖에 안 되는 위험을 머리 위에 이고 있습니다. 독재시절의 그림자를 완전히 떨쳐내는 일을 더 늦출 수 없었습니다. 그러다보니 현행집시법을 지키라는 정부의 요구를 꼼꼼히 헤아리지 못했습니다.

자신의 지지율보다도 법치를 더 걱정하는 대통령 각하의 마음을 세심히 살피지 못했습니다. 아무리 지켜져야할 헌법정신이 있다 하더라도, 대통령 각하께서 이를 어떻게 받아들일지, 또 각하께서 무엇을 바라시는지, 잘 챙겨봤어야 했습니다.

저희 민주시민들은 이 점에 대해 뼈저린 반성을 하고 있습니다. 국민은 지금 최선의 노력을 하고 있습니다. 헌법 정신을 지키면서도 법치에 대한 대통령 각하의 염려를 해소하기 위해서입니다. 대통령 각하께서 원하지 않는 한 불법집회가 벌어지는 일이 결코 없도록 할 것입니다.

현행법의 태두리를 확실히 벗어나지 않겠습니다. 대한민국의 볍률과 경찰도 자국민을 보호할 그 의무를 존중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습니다. 국민들은 이번 일을 계기로 모든 실정법의 준법을 담보하기 위해 철저한 조치를 취하도록 하겠습니다.

존경하는 대통령 각하, 그 동안 각하께서는 촛불집회 중단을 요구했습니다. 그런데 저희는 헌법이 보장하는 자유만 설명하려고 했습니다. 이런 태도가 각하께는 국민이 각하의 뜻을 따르지 않는 것으로 비친 것 같습니다.

이런 정부의 요구가 커지자 국민들 중에서도 저희에게 '일단 촛불집회를 그만두고 보자'는 이야기가 나왔습니다. '헌법의 권위가 떨어지더라도 당장 대통령 각하의 분노를 풀어야한다'고 했습니다.

헌법 문제가 아니었다면 벌써 그렇게 했을 것입니다. 저희들이 일신의 편의만을 고려했다면 주저하지 않고 받아들였을 것입니다. 저희가 '촛불집회를 그만둔다'고 선언했다면 당장은 어려움을 모면할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저희도 많은 갈등을 한 것이 사실입니다.

전경들이 매일밤 저렇게 힘들어하고, 각하께서도 이토록 짜증을 내시는데 저희가 무엇을 위해 고집을 부리겠습니까? 그러나 저희는 민주시민으로서 헌법이 보장하는 국민의 자유를 지키고 민주주의의 미래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엄청난 후유증이 있을 것을 뻔히 알면서 그렇게 할 수는 없었습니다.

대통령 각하께서는 1987년의 6월 항쟁을 기억하실 겁니다. 전두환 전 대통령이 4.13 호헌조치를 취합니다. 그러자 국민들이 호헌철폐를 외치며 거리로 나왔습니다. 전두환 전 대통령은 엄청난 과잉진압으로 이 반대 여론을 찍어누르려 했습니다.

그러다 "책상을 '탁'하고 치니 '억'하고 죽었다"는 명언 아닌 명언을 남긴 박종철 고문 치사 사건이 일어났습니다. 천주교 정의구현사제단을 중심으로 한 집요한 진상 규명 노력으로 이 사건의 진상은 밝혀졌고, 국민들은 더더욱 분노하여 6월 항쟁을 이뤄냈습니다.

그런 우리가 민주주의마저 잃어버리면 미래가 없습니다. 때문에 현행법을 지키면서 헌법정신에 악영향을 미치지 않을 방법으로 국민은 촛불문화제를 선택한 것입니다.

대통령 각하께서 이런 사정을 깊이 이해해주셨으면 합니다. 존경하는 대통령 각하, 저희는 쇠고기 협상 타결 두달만에 법무부 장관이 내놓은 담화를 통해 얻은 교훈을 민주주의가 바로 서는 그날까지 되새기면서 촛불집회에 임하겠습니다.

대통령 각하와 소통하면서, 대통령 각하와 함께 가겠습니다. 대통령 각하의 뜻을 받들겠습니다. 반대 의견에 귀를 기울이겠습니다. 집회 참가자들도 처음 시작하는 마음으로 대폭 개편하겠습니다. 집회 주최측도 개편하겠습니다.

첫 주최측 구성에 대한 대통령 각하의 따가운 지적을 겸허히 받아들여서 대통령 각하의 눈높이에 모자람이 없더록 인선에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노동자들의 기본권인 파업도 대통령이 반대한다면 하지 않겠습니다. 어떤 민주주의적 이상도 대통령 각하와 함께 해야 성공할 수 있다는 것을 다시 한번 절심히 느꼈습니다.

존경하는 대통령 각하, 대한민국의 대의제가 대단히 어렵습니다. 대운하, 영어몰입교육, 공기업 민영화 등 민의에 반하는 정책들이 많습니다. 앞으로도 이런 정책들이 계속 나올 것이라는 우려 섞인 예측도 있습니다. 이렇게 되면 대한민국의 민주주의 자체가 위기에 처하게 될 것입니다.

국민 그 누구도 이 위기에서 자유로울 수 없습니다. 이에 대한 대비를 지금부터 철저히 해야 합니다. 지금 국내에서 정치인들이 국민의 뜻을 자의적으로 해석하고 왜곡하는 일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자기 밥그릇을 챙기기 위해 행동에 나선 정치인들을 무조건 탓할 수는 없는 일입니다. 하지만 비리와 부폐가 오래 가 정치권 전반에 대한 국민의 신뢰가 사라진다면 그 피해는 정치인 모두에게 고스란히 돌아가게 됩니다. 지금은 관료들도, 정치인도, 국민도 모두 한 걸음씩 양보하고 고통을 분담해야 할 때입니다.

우리는 이미 4.19, 5.18, 6.10 등 여러 차례의 민주주의의 위기를 국민 모두가 힘을 합쳐 훌륭히 극복한 경험을 갖고 있습니다. 이번 일도 서로 고통을 나누면서 손잡고 협력할 때 훨씬 더 빠르게 이 위기를 극복할 수 있습니다.

민주주의가 무너지면 가장 고통을 받는 이들은 국민입니다. 정부가 국민의 목소리에 귀기울이게 하는 것을 촛불집회 목적의 최우선으로 하겠습니다. 반드시 민주주의를 지키겠습니다. 누구나 언제 어디서든 자신의 목소리를 낼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해 언론/출판/집회/결사의 자유를 꽃피우겠습니다.

이제 새로 시작해야 할 시간입니다. 두려운 마음으로 겸손하게 다시 대통령 각하께 다가가겠습니다. 대통령 각하께서도 새로 출발하는 저희 국민들을 믿고 지켜봐 주시기를 바랍니다. 촛불로 뒤덮였던 거리에 희망의 빛이 넘치게 하겠습니다.


@ 국민들한테 사과도 했고 추가협상도 했으니 이제 집회 좀 그만하라고? 우리도 대통령한테 사과하고 말 바꾸기만 조금 하면 진압 그만할래? 사과는 말로 하지 말고 행동으로 하란 말이다, 시바야.
@@ 근데 명뷁아, 너가 읽어보면 저게 사과로 읽힐 것 같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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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뭐병

일상다반사 2008/06/18 01:20
이명박 대통령 지지율이 4점척도 조사로는 12.1%를 기록했단다. 그런데 설문조사 문항에 '그저 그렇다' 하나를 더 집어 넣은 5점척도 조사로는 7.4%까지 떨어졌다고 한다. 일단 관련 기사 하나,

이명박 정부, 마침내 대망의 '747' 달성?

취임 네달도 안 됐는데... 이거 뭐, 한마디로밖에 이 상황은 설명이 안 된다.

그 한마디란 물론,


물론 정말 신기한 건 아직도 정신을 못 차렸다는 거다.

李대통령 “인터넷의 힘, 신뢰없으면 약 아닌 독”

명뷁님 계속해서 짱 드셈.

@ 그러고보니 이뭐병이랑 이명박이랑 이니셜이 같네. ㅡㅠ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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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단추

4월 18일, 이명박 정부가 미국산 쇠고기 수입 결정. 간이고 쓸개고 다 빼주며 뼉다구고 내장이고 다 받아오는 협상력을 발휘, 국민의 짜증을 산다. 이때까지는 분노라기보단 짜증이었다.


5월 2일

4월 29일, MBC에서 미국의 축산업과 광우병에 대한 PD 수첩이 방송되고, 이를 본 국민들의 우려가 커지기 시작, 이 우려를 촛불집회의 형태로 발산한다. 이 촛불집회의 주도권은 놀랍게도 10대들에게 있었다. 뭐, 애초에 주도권이 그들에게 있진 않았더라도 많은 이들이 그들의 집회 참여를 한번쯤 분석해볼 필요가 있는 사회현상으로 받아들이며, 그들에게 관심을 집중시키며 주도권이 그들에게 넘어간다.


배후론/선동론

한 선배의 이야기대로 현정부는 '정의로운 미국님을 왜 못 믿나'란 생각 뿐이었던 것 같다. 답답한 마음에 누군가 이들을 뒤에서 조종했다고 판단한 청와대, 배후론/선동론을 꺼내며 국민들의 짜증을 분노로 승화시켜준다. 이때부터 전면전 돌입이다. 그런데 사실 적게는 수천에서 많게는 수십만명이 거리로 쏟아져나오는 현실에서 모든 이들이 똑같은 양의 정보를 갖고 상황 판단을 했다고 볼 수 없다, 고로 더 많은 정보를 지닌 이들이 그렇지 못한 이들을 선동한 것은 맞다. 근대국가에서 거의 모든 정치적 행위는 선동에 의해 이뤄진다고 보는 편이 정확하다. 문제는 그 선동이 정당한가 부당한가의 문제다.


광우병은 과학이다?

자, 이명박과 아이들은 미국의 쇠고기는 광우병으로부터 안전하다고 이야기한다. 이는 과학적으로 확인된 사실이므로 토론의 대상이 아니라는 거다. 고로 이를 문제 삼는 것은 부당한 선동이라는 논리다. 이 말을 믿는 사람들한테는 무척이나 그럴싸한 이 주장이 왜 국민 대다수한테는 씨알도 안 먹힐까? 문제는 과학 자체는 비정치적일지언정, 과학을 논하는 인간은 지극히 정치적이라는 사실에 있다. 그래서 과학도 정치적일 수 있으며, 이번에 광우병은 분명히 누구를 믿느냐의 정치의 문제다.

일단 광우병에 대한 과학적 사실들은 이지형 블로그에 이미 잘 정리된 글이 있으니 그 글로 대신.

광우병?
UK vs. US

자, 저런 사실들 중 무엇을 취사 선택하느냐의 정치적 선택에 따라 미국산 쇠고기는 안전해지기도 하고 위험해지기도 한다. 소위 기준이라는 OIE에 따르면 미국산 쇠고기가 크게 문제가 되지 않는 건 틀림없어 보인다. 그런데 문제는 OIE 기준이 국제 표준이라면 왜 아직도 미국은 OIE 기준에 따라 쇠고기 수출을 하기 위해 전세계를 상대로 이렇게 열심히 싸우고 있을까? 표준이란 건 정의가 아니라 실천에 의해 결정된다. OIE 기준이란 정확히는 '최소한의 안전장치를 확보하기 위한 권고 사항'에 불과하다. OIE의 권고 사항보다 더 강화된 기준을 더 많은 나라들이 택한다는 사실 자체가 OIE의 기준이 어떤 표준일 수는 없음을 보여준다.

고로 '왜 우리만?'이라는 소위 선동은 아주 정당한 의문이다. 그러자 '우리만이 아니라니까, 정의로운 미국의 아름다운 미국인들도'라는 뻘소리를 하는 바람에 정부는 더 곤란해졌다. '미국인들이 미국산 쇠고기를 소비한다'는 사실은 전혀 과학적 논거가 아니다, 그냥 하나의 사실일 뿐이다. '미국이 OIE 기준을 따른다'는 것 역시 'OIE 기준을 과학적 기준'으로 만들어주지 않는다. 그것 역시 미국의 정치적 선택은 OIE 기준에 부합한다라는 하나의 사실일 뿐이다. 와중에 미국인들도 안 먹는 게 한국엔 들어온다는 사실이 뽀록나버렸다. 캐안습, 쯔쯔. "선동질해보기만 하다가, 선동된 사람들이랑 맞붙으려니 어찌할 바를 모르겠쿤화."


재협상 해주세요

앞서 말했듯, 과학은 현재 상태에서 광우병에 대한 의문 부호를 거두지 않았고, 어떤 쇠고기를 먹을까는 정치적 선택에 따라 결정된다. 정부는 과감하게 선택을 내리긴 했는데, 국민은 정부의 선택이 영 못마땅하다는 거다. 그래서 우린 외쳤다, 재협상 고고씽. 그런데 정부 우리 말 진짜 안 듣는다. 이젠 이렇게 외친다, 재협상 고고썅.


정부의 눈치 보기

일단 이명박은 곤란해졌다. 재협상하자니 미국의 눈치가 보이고, 안 하자니 국민의 눈치가 보인다. 그런데 어이없게도 이명박은 미국의 눈치를 보기로 한 것 같다. 현재 재협상을 하자고 할 경우, 우리가 부담해야 할 비용이 증가하는 건 틀림없다. 약속은 약속인 건 사실이다. 우리가 조낸 병신 같아서 손해보는 장사를 하고 나서 이제 와서는 무작정 판을 엎자고 할 순 없는 거니까. 미국측에서 아무 이유없이 재협상에 임할 리는 없고, 뭔가를 내주거나 협박을 하거나 둘중 하나는 해야 한다.

어라, 그런데 우리의 MB정부는 여기서도 또 어김없이 뻘소리. 재협상시 '미국의 경제적 보복'이 있거나, '경제적 충격'이 오고, '대외 신인도'가 떨어진단다. 약속했다가 변수가 생기면 서로 조정을 해서 약속을 바꿀 수 있는 거 아닌가? 약속을 바꾸는 거랑 약속을 파기하는 거랑 똑같다? 에이, 무슨 그런 말씀을... 우리가 말하는 재협상이란 외교력을 발휘해서 미국과 이야기를 다시 하자는 거잖아. 양자협상에서 타결된 내용을 양자가 마주 앉아 손을 보는데 대외 신인도가 왜 떨어지고 경제적 보복이 왜 있냐?

물론 미국에게 쇠고기 수출을 포기하게 만드려면 뭔가를 양보해야겠지. 그 뭔가는 경제적인 어떤 것일 가능성이 크다. 이는 우리 국민이 나눠져야할 부담이 될 것은 틀림없다. 이래서 정부가 삽질을 하면 국민이 고생하는 거다. 그렇지만 그건 보복과는 차원이 다른 거고, 그 뭔가를 최대화하는 게 미국측의 외교력이고, 그걸 최소화하는 게 우리측 외교력이다. 어쨌든 현재 국민의 요구는 미국과 협상 테이블을 사이에 두고 다시 마주 앉아서, 국민건강을 지키기 위한 추가 비용이 얼마나 들지 알아라도 보라는 거다. 그걸 안 하면서 '국민건강을 최우선으로 여긴다'는 이야기가 왜 나오니? 이뭐병.

어쨌든 정부가 삽질 한번 함으로써 국민건강이든 경제적 비용이든 우리 국민이 둘중 한가지는 부담해야 할 듯하다. 이렇게 추가적 비용이 발생하게끔 애초에 원인 제공을 한 것 자체가 현정부의 대표적 실정으로 역사에 남을 거란 사실을 겸허하게 받아들이고, 이를 통해 배워야 한다는 게 국민의 요구다. 그런데 이럴 때 자꾸 '경제적 충격' 같은 자극적 용어를 쓰며 불가능하다고 우긴다. 충격 같은 단어로 국민들에게 겁을 주려는 꼼수, 이런 걸 아주 비겁하고 부당한 선동이라고 하는 거다.

국가 신인도 이야길 잠깐만 하고 넘어가자면 국가 대 국가간에 신인도만큼 감상적인 개념은 없다. 국민들 눈치를 봐야 하는 정치인들에게 원칙을 꼿꼿하게 지키는 게 그닥 큰 장점이 못 되다보니, 그런 정치인들끼리 마주 앉아 해야하는 국가 대 국가간의 거래는 철저하게 실리를 쫓을 뿐이다. 용감하게 교토의정서 탈퇴하는 부시를 보란 말이지, 부시를, 응? 결국 문제는 현정부가 지금 누구의 실리를 쫓고 있느냐다. 지금 우리 눈엔 정부가 국민의 실리를 챙기고 있지 않다는 게 이 분노의 요체다.


6월 10일

6월 10일 100만 촛불집회를 추진하며 국민의 힘을 보여주자던 지난 10일의 대규모 집회는 제법 성공적이었다. 정확히 얼마나 많은 사람이 모였는지 알 수는 없지만, 25만 정도일 듯하다. 시청에서 출발해서 세종로 사거리로 올라가 양쪽으로 갈라져서, 서대문역을 지나 경찰청으로 내려와 시청으로 돌아오는 것과 안국역쪽으로 올라가는 두가지 동선을 합하면 약 5km, 거기에 노폭이 50m니까, 집회참가인구의 밀도를--시청쪽에선 조금 더 빽빽하고, 동선을 따라 시청역에서 멀어질수록 조금 옅어지니까--평균 1인/제곱미터로 잡으면 25만명이 나온다.

경찰은 여기서 3배수 정도 축소하다보니 8만이란 숫자가, 주최즉은 3배수 정도 과장하다보니 70만이란 숫자가 나오면서, 경찰과 주최측의 통계치가 10배-_-정도 차이나는 엽기적인 상황이 펼쳐졌다고 보면 되겠다. 어떻게 숫자를 세면 10배가 차이가 나냔 말이지, 정말. -_-,,

뭐, 25만이라면 100만엔 많이 못 미치지만 그래도 엄청난 숫자다. 수도권 인구 중 100명 중 한명이 거리로 나왔단 말이다. @.@ 이거 무척 놀랍긴 한데, 이게 놀라운 만큼이나 이 시점에서는 '이젠 뭘 어쩌지?'라는 의문이 남는다.


집회의 의미

이 논의를 더 전개시키기에 앞서 현 촛불정국에 대해 잘 정리된 글 두개부터 소개.

촛불정국 논쟁점에 대한 생각들
포스트 6.10

6.10 의 집회가 성공적이었다는 사실은 우리의 의지를 보여줬다는 상징성은 크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부가 근본적인 태도 변화를 보이지 않았다는 점에서, 대단히 역설적으로 상징성이 컸기 때문에 그만큼 정치공학적으론 득보다 실이 많다.

무슨 이야기나면 이명박 정부가 6.10 집회를 보고도 '사람이 많이 나오긴 했는데, 뭐, 그래봐야 얘네들이 뭘 어쩌겠어'라고 판단했다면, 대략 OTL. 지금부터는 뭘 해도 점강적(anticlimactic)일 수밖에 없다. 이를 피하려면 6.10 촛불집회보다 정부에 대한 공격의 수위를 높여 일회성 이벤트를 준비하거나, 지속성이 보장되는 시위의 방법을 찾아야 하는데, 둘다 쉽지 않다.

일단 광우병대책위는 이제 최후통첩이라며 열흘 이내에 정부가 재협상 의지를 보이지 않을 경우 촛불집회를 이명박 퇴진운동으로 확대시키겠다는 입장을 밝힘으로써 전자를 택한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이택광님의 이야기처럼 쇠고기 재협상을 외치던 많은 중간계급은 아직까지는 이명박 퇴진을 바랄 만큼 급진적이지 않다. 아직도 한나라당이 정부에 제대로 된 쓴소리를 안 하는 시점에서 탄핵 의지가 없는 것은 분명하고, 이명박 퇴진 운동에 한국의 많은 중간계급을 끌어들이지 못한다면 이 운동이 힘을 쓸 수는 없다는 사실은 광우병대책위가 둔 수의 분명한 한계다.

이 명박 퇴진 운동이 실효를 못 거둘 경우, 이명박 정부에게 압력을 가하기 위해서는 정부 정책에 대한 반대의사 표현에 대한 지속성이 어떤 형태로든 보장되어야 하는데, 일단 이게 촛불집회일 수는 없다. 일단 그래본 경험이 없기에 '계속 모이는 것만으로 정부를 변화시킬 수 있다'는 믿음이 생겨날 수 없다. 오히려 '아직도 이 꼴이면 결국 이래서는 아무것도 안 되는 거 아냐?'라는 불신이 자라기 시작할 거고, 그 지루함과 무력감은 거리에 나온 사람들을 집으로 되돌려 보낼 거다. 거기다가 앞서 말한 퇴진 운동이 본격적으로 전개될 경우 자신의 정치색과는 맞지 않다고 판단한 중간계급의 이탈은 생각보다 빠를 수도 있다.

게다가 일단 여름 무더위라는 큰 복병이 도사린 상태에서 매일밤 몇천-몇만명의 사람들이 거로리 모이는 것을 체력적으로 견뎌낼 수 없다. '광우병'이라는 개인의 안위에 대한 문제로 결집된 이 거대한 인파는 체력적 고갈 상태에서 자기자신을 끝없이 내던지며 정부와 투쟁할만큼 절박하지 않다. 이 절박함의 결여는 중간계급이 이명박 퇴진을 절실히 바랄 정도로 급진적이지 않다는 점과도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


정부의 고집

국민들이 쇠고기 재협상을 요구하며 한달이 넘게 진행하고 있는 촛불집회에도 불구하고 정부는 꿋꿋하다. 추가협상, 자율규제, 가트 협정 등 온갖 용어와 수단을 동원해가면서 이 촛불을 끄려고 하고 있지만 정작 '재협상'이란 상황만큼은 기를 쓰고 피하고 있다. 정부에서 내놓은 재협상에 가장 근접한 해법은 실질적 재협상이다. 이명박 정부는 왜 이렇게 고집을 부릴까?

해답은 FTA라는 세글자에 담겨 있다. 현정부에 FTA를 포기할 수는 없다는 내부적 방침이 있지 않나 싶다. 쇠고기 재협상을 하려면 미국에서 요구할 카드는 FTA 포기 내지는 FTA 재협상일 가능성이 크다. 그런데 현재 쇠고기에 대한 국민의 반응과 정부에 대한 신뢰를 감안했을 때, 국민들이 안전한 쇠고기를 위해 FTA를 포기하자고 할 가능성이 있다는 게 두려운 듯.


이젠 뭘 어쩌지?

커다란 선거가 눈 앞에 없는 현시점에서 제도 정치에는 답이 없다가 답이다. 이게 바로 이명박이 말한 '소나기는 피한다'는 상황 판단이 나올 수 있는 이유다.

그렇다면 현재로서의 최선책은? 정부로부터 촛불 집회의 이슈 및 주도권 탈환이다. '집회의 배후를 밝히라'는 이명박의 뻘소리에 대한 '촛불집회의 배후는 바로 이명박'이라는 우리의 답은 이 집회의 주도권이 전적으로 우리에게 있지만은 않다는 점을 상징한다. 현재 촛불집회에 결집된 세력의 주장은 쇠고기를 큰 축으로 해서, 대운하, 공기업 및 공공서비스 민영화, 공교육 정상화를 사칭한 비정상화 반대 등 정부의 정책적 삽질에 대한 반대가 주를 이룬다.

아무래도 정부에서도 예측 가능한 이슈들만 파고들 경우, 정부에서는 수비하기도 쉽다. 지금처럼 일단 보류라며 한발 물러서면 그만이니까. 그래서 이쯤에서 이슈를 탈환해올 필요가 있다. 예를 들면 이 기회에 국민소환제 채택이나 집시법 개정 같은 정치적 문제를 공론화하는 거다. 이번 촛불 집회의 경험에서 '국민의 힘'을 읽는 사람들이 많다. 그렇지만 현재 그 한계도 분명하다. 한가지는 우리 손으로 뽑은 국민의 대표자들이 국민의 의사로부터 멀어지는 경우에도 우리 손으로는 벌할 수 없다는 점은 대규모 집회에도 불구하고 일말의 무력감을 느끼게 만든다.

또, 다수의 국민이 한 자리에 모여 정치적 의사 표현을 할 자유를 불법으로 규정한 현행법으로 인한 공권력과의 소모전을 많은 이들이 경험한 지금이 집시법 개정을 공론화할 적기다. 다양한 이슈의 배치는 집회를 토론장으로 바꿈으로써 지루함을 덜어줄 수도 있다. 오늘 집회에서 광장 토론회가 열린 것은 그런 의미에서 대단히 고무적이다.

정부에서 예상치 않았던 정치적 잉슈들을 전면에 배치하여 정부를 한번 흔들어 보는 거다. 이에 따른 정부의 대응 속에서 우리에게도 다음 수가 열릴 수 있다. 또, 이를 통해 대의 민주주의를 견제하는 직접 민주주의의 작동법이 발결된다면 그게 이번 촛불집회의 큰 수확이다. 그 전까진 25만이 모인 지난 10일의 집회에 그 숫자의 상징성 이상은 없는 것 같다.


@ 국민들에게 맨날 끌려 다니느라 지지율 상승이라고는 없는 민주당이 현재 등원 타이밍과 방법을 고심하고 있는 듯한데, 이럴 때 이런 이슈를 갖고 국회로 들어가는 영리함을 발휘할 줄도 모르니 어쩌면 좋으냐. 정말이지 한나라당이고 민주당이고 대한민국의 거대정당들은 답이 없다, 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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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로를 막았다. 한달째 촛불을 들고 거리로 뛰쳐나온 시민들을 이야기하는 게 아니다. 이명뷁과 아이들 이야기다. 오와열을 맞춰세운 경찰버스와 전경들을 이야기하는 게 아니다. 이번엔 대형 컨테이너다. 믿거나 말거나, 대형 컨테이너로 이순신 장군상을 보호하기 위한 성벽을 쳤다. 이명뷁의 장군님 사랑이 가히 하늘을 찌른다.

시민들은 아침에 출근길에 서울에서 제일 큰 거리에 난데없이 나타난 성벽에 당황 지각자가 속출했다고 한다. 아니, 열심히 일해 경제를 살려야 할 일꾼들을 지각하게 만들면 어쩝니까, 대통령 나으리.

거리를 점거한 집회 참가자들의 불법성에 개탄하는 자들이 어째서 저들의 불법성에 대해서는 침묵하는가?

그들은 이반시민들이 불법적으로 도로를 점거하는 바람에 그 일대의 도로를 이용해야 하는 일반시민들에게 피해가 간다고 말한다. 그런데 거리로 뛰쳐나온 사람들은 도로 이용자에게 피해를 주지만, 전경 버스는, 대형 컨테이너는 피해를 안 주나? 시민이 하면 불법, 나라가 하면 합법? 왜? 왜? 왜?

그들은 말한다. 더 많은 국민을 보호하기 위한 국가의 책임을 다하기 위해 선의의 피해자가 생기는 거라고. 이 논리의 요체는 행위의 직접적 결과와 행위의 목적의 분리이다. 즉, 그들의 행동--컨테이너로 거리를 막는 행동--의 직접적인 결과로 인한 피해를 결국엔 더 많은 이들을 보호한다는 다소 추상적인 '국가관'으로부터 분리/독립시킴으로써 행위의 정당성을 확보한다. 이는 어떤 행위의 합법성/불법성 논쟁을 초월하는 데에 있어서는 더없이 탁월하고 효과적인 메카니즘이다.

그런데 그들이 말하는 소위 불법시위도 사실은 똑같은 메카니즘 위에서 작동한다. 쇠고기 문제와 관련된 국민의 건강권, 헌법이 보장하는 집회/결사의 자유권, 그리고 그 집회/결사를 통해 행사하는 참정권 등의 회복을 통해 더 많은 국민들의 일반적 이익을 보호하기 위해 우리 역시 일부 시민들의 불편이라는 댓가를 치루고 거리로 나서는 거다. 국가가 컨테이너로 거리를 막음으로써 생기는 직접적인 피해와 그들이 말하는 시민의 안전 사이의 머나먼 거리만큼이나, 우리가 당장 시청-광화문 일대를 지나다녀야 하는 사람들에게 끼치는 직접적인 피해와 우리가 추구하는 국민의 기본권 획득이라는 목적은 멀리 떨어져있다.

이렇게 완벽하게 동일한 논리에서 출발한 행위가 이명뷁과 아이들이 하면 합법, 10만의 시민이 하면 불법이라는 상황 인식이 바로 국가가 국민을 옭죄는 독재의 독특한 논리다.

국가가 국민을 보호한다고 하지만, 실제로 전쟁이 났을 때 전쟁터에 나가 싸우는 건 실체가 불분명한 '국가'라는 어떤 개념이 아니라, 어제까지 우리와 먹고 자던 우리의 친구들이다. 국가와 군대라는 포괄적인 개념이 국민을 보호하고 있다고 말하는 그 순간에도 국민을 보호하고 있는 건, 우리를 위해 전쟁터에서 목숨을 걸고 싸우고 있는 건, 군인이란 이름의 국민 개개인일 뿐이다.

그래서 만약 우리가 국가와 국민들중 어느 한쪽에 애정어린 시선을 보내야 한다면 국민인 편이 낫다. (물론 국가가 그들을 동원하고 조직하는 건 사실이다. 그렇지만 그 사실이 국가의 행위에 무조건적으로 정당성을 부여하진 않는다는 이야기다. 오히려 그런 '국가의 국민을 보호할 책임'을 이해하기 때문에 전쟁터로 나갈 용기를 내는 군인 개개인에게 감사하는 게 더 인간적임과 동시에 합리적인 선택이라는 거다.) 우리는 대한민국에 살지만, 그보다 더 피부에 와닿는 건 우리는 대한민국민들과 함께 산다는 사실이기 때문이다. 그 사실을 절실하게 깨닫고 우리가 우리끼리 연대할 수 있다면, 지금처럼 국가가 국민을 외면하는 순간에도, 서로가 서로를 보호할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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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주말(5월 31일)의 집회에서 내가 이명박 정부를 향한 국민의 분노를 체험했다면, 어제(6월 7일) 저녁의 집회를 통해서는 전경들의 분노를 체험해야만 했다.

우리가 이명박 정부에게 분노하는만큼 전경들 또한 분노로 가득차 있었다. 그들 모두가 그랬는지는 알 수 없지만, 적어도 집회 해산을 위해 교보빌딩쪽 인도로 쏟아져나온 전경들 중 선두에 섰던 이들은, 우리들과 방패 하나만을 사이에 두고 서로 밀고 밀리는 몸싸움을 하던 그들의 눈빛과 욕설은, 분노로 가득차 있었다.

그 분노는 전경차 위에서 오와 열을 맞춰 밤새도록 피곤과 싸워야 하는 짜증스러운 상황에 대한, 또는 군대든 경찰이든 끌려가 젊음을 바쳐야 하는 대한민국의 솥같은 상황에 대한 막연한 분노가 아니었다. 이명박이나 어청수의 뒤치닥거리를 온몸으로 하고 있는 이들은 이명박도 어청수도 아닌 자신들이라는 부조리한 상황에 대한, 자신들과 관계없는 싸움에 자신들이 '왜' 불려나와야 하는가에 대한 의문으로 들끓는 분노가 아니었다. 오히려 그들의 그런 부조리한 상황에 대해 분노하는 것은--적어도 물리적 충돌이 일어나기 전까지는--집회참가자들의 몫이었다.

그 분노는 매우 구체적인 대상을 향한, 분노라기보다는 차라리 증오였다. 그 증오는 대단히 사적이어서, 집회참가자들을 정확히 정조준하고 있었다. 그들의 입에서 섞여 나오는 육두문자는--시위가 불법이냐 합법이냐 따위엔 관심도 없이--시민을 향해 폭력을 행사해야 하는 불합리한 상황을 안타까워하며 배설되는 것이 아니라, 진압하라는 명령을 받은 바로 그 시민들이 그냥 밉기 때문에 내뱉어졌다. 그 증오 속에서 지난주 시위에서 한 여학생의 머리를 군홧발로 짓밟아 문제가 됐던 그 상황에 대한 반성이 자리할 여지는 없었다. 그들은 그렇게 하지 않으면 그들의 밤잠을 방해하는 우리의 나쁜 버릇을 고칠 방법이 없다고 정녕 믿고 있었음에 틀림없다. 그 증오는 그래서 위협적이진 않았지만 무척이나 위험했다.

그 증오에 맞서 우리는 무기력했다. 경찰 버스에 올라타고, 버스를 끌어내는 등 바리케이트를 뚫으려 할 때엔 잠시 과격해지기도 했지만, 경찰이 강제 해산을 작정하고 거리로 쏟아져 나오자 집회는 순식간에 와해됐다. 증오로 똘똘뭉쳐 사람들을 몸과 방패로 밀고 들어오는 그들을 상대로, 그들을 저지해야 한다는 안타까움과 격렬한 몸싸움으로 부상자가 나올 염려가 교차하는 '우유부단'함은 애초에 힘을 발휘할 수 없었다.

이런 우리의 증오의 부재에 대해 혹자는 그 증오가 일방적이기만 한 것은 아니라고 한다. 이네들의 말대로 대부분의 집회 참가자들은 경찰의 그런 증오에 대해, 우리가 왜 너희들과 싸워야 하는지에 대해 안타까와할지라도, 우리들 중에는 그들이 우리를 향해 가진 증오를 고스란히 그들을 향해 집중하고 있는 이들이 있고, 설령 그들을 증오하진 않더라도 그들을 움직이는 공권력을 향한 분노를 그들을 향한 폭력으로 표현하는 것 외의 방법을 찾지 못하는 이들도 있었다. 그렇지만 이런 증오는 간헐적이고 비조직적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의 이런 분노와 폭력에 손가락질을 하는 것은 집회 전체를 무력화하는 도구로 사용된다. 그리고 우리는 한편으로 집회를 무력화하는 이들의 무관심에 손가락질을 한다.

그렇지만, 우리가 이렇게 증오와 분노의 소용돌이에 휘말려 상대를 비난하며 분열하는 상황의 최대 수혜자는 다름 아닌 현정권과 공권력이란 사실에 우리는 충분히 민감하지 않은 듯하다. 우리의 의지를 꺾으려는 경찰의 태도는 부당하다. 그 부당함에 맞서 싸우는 것이 비록 정당하지만, 그 과정에서 우리 스스로 우리가 얻고자 하는 것이 무엇인지 잊는다면 우리는 그 싸움을 할 이유가 없다.

'경찰은 여러분의 적이 아닙니다'라는 얼굴을 드러내지 않은 여경(아마도 경찰이겠지?)의 안내방송은 이 모든 부조리를 함축하고 있었다. 경찰이 우리의 적이 아니라면, 우리 또한 경찰의 적일 수 없다. 그렇다면 왜 우리를 막아서는가?

경찰이 우리의 적이 아니라고 말하는 그 이면엔 우리로 하여금 우리가 그 자리에 있는 경찰만을 상대로 투쟁하길 바라기 때문이리라. 그래서 그들은 우리에게 침도 뱉고, 오줌병도 투척한다. 그 자릴 지킨 경찰 개개인이 우리를 상대로 갖고 있는 사적 증오를, 우리 또한 그들을 향해 갖길 바란다. 매일 밤 증오를 그들을 향해 겨냥하며 그들과만 싸움을 벌이는 동안, 하루 하루 이명박에 대한 분노를 전경 개개인에 대한 사적 증오로 바꿔가는 동안, 우리 중 일부는 지쳐서, 일부는 원래의 목적이 무엇이었는지 잊어서 거리를 떠나게 될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그 자릴 지킨 경찰 한사람 한사람을 향해서가 아니라, '경찰은 여러분의 적이 아닙니다'라는 그들의 모순적 한마디를 향해 분노해야 한다. 청와대 앞에 발을 딛고 서고, 그 앞에서 깃발을 휘날리고, 확성기를 통해 이명박의 퇴진을 요구하는 것 그 자체가 우리의 싸움이 아니다. 청와대 앞에 서서 소리를 외치는 것은 상징일 뿐이다. 이명박이 국민의 목소리에 귀기울이는 정도를 걷는 것 이외의 해법으로는 우리 분노의 불길을 끌 수 없다는 사실을 그에게 확인시켜주지 못한다면 아무 의미가 없는 상징.

청와대를 한번 가기 위해 경찰의 바리케이트를 뚫느라 우리의 싸움이 무엇인지 잊느니, 경찰의 바리케이트 앞에서 그냥 밤새도록 연좌시위만 하는 편이 낫다. 연좌만 하고 있기 지겨우면 노래도 부르고, 춤도 추고, 서로 이야기도 나누고, 그 앞에서 축제를 하자. 서로가 서로에게 우리가 그 자리에서 무엇을 하고 있는지 상기시켜주며, 밤새도록 그렇게 떠들고 놀다가 아침에 경찰이 강제로 우릴 쫓아내면 다음날 저녁 다시 돌아오면 된다.

오늘, 혹은 6월 10일, 그게 아니라면 그후의 어느 하루, 청와대를 가는 것보다도 중요한 건, 내일까지, 모레까지,  그리고 이명박이 본인의 과오를 진심으로 인정하는 그날까지 촛불이 꺼지지 않는 거다. 이명박을 청와대에 입성시킨 것은 우리라는 사실에 대한 우리 자신들의 뼈저린 후회와 반성을 통해 우리가 우리의 실수를 인정할 때, 우리가 이명박 정권의 실정에 대한 책임을 묻는 행위는 그와 동시에 우리 자신들의 책임을 묻고 있는 것임을 보여줄 때, 이명박 또한 우리가 오늘 냄비가 파르륵 끓듯이 열받아서 거리로 나선 게 아님을 알 것이다. 촛불은 물과 소화기로 끌 수 있을지언정, 우리 마음의 분노는 물로도 소화기로도 끌 수 없음을 알 것이다.


@ 이번에도 아고라에 올렸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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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는 서울에 올라간 김에 저녁에 서울시청 앞에서 열린 촛불 문화제에 참가했다. 미국 가 있는 동안 효순/미순 추모회, 탄핵, 김선일 사건 등을 모두 바다 건너에서 지켜보기만 해야했던 내게, 2003년 3월 이라크 전쟁을 앞두고 (3월 20일에 있었던 가장 크고 조금은 과격했던 반전 시위 이전에 수차례의 반전시위가 있었음) 시카고에서 펼쳐진 반전 거리 시위 이래로 처음으로 참가한 대규모 시위였다.


1.

내가 미국과 한국에서 경험한 두번의 집회는 모두 평화적인 가두행진이란 점에서는 같았지만, 경찰의 대응법은 크게 달랐다. 지금의 어렴풋한 기억으로 시위는 미시간 애비뉴와 와커 드라이브가 만나는 곳에서 시작해서 시카고 다운타운을 크게 한바퀴 돌고 끝났다. 시위 출발지에 도착해보니 시위대의 동선은 이미 결정돼 있었고, 이에 대한 경찰과의 사전 조율이 있었는지, 시위가 지나는 곳은 차량 통제를 이미 해둔 상태였다. 동선을 따라 좌우로 경찰이 간헐적으로 눈에 띄긴 했지만 이는 운동 경기장이나 콘서트장 등의 사람이 많이 모이는 곳에 안전을 위해 약간의 경찰을 배치해두는 이상은 아니었다.

반면에 서울의 경찰은 괴상한 집시법--정확한 집시법이 어떻게 되는지 잘 모르겠다. 찾아보기 조금 귀찮기도 하고--을 핑계로 불법 시위 단속이란 핑계로 닭장차와 전경을 배치, 거리 곳곳, 특히 청와대로 향하는 길을 막아놓고 시위대를 사냥감 몰 듯 살살 몰아서 가둬둘 생각이었던 듯하다. 그러다가 제풀에 지쳐 나가떨어지길 바란 듯한 인상을 지울 수 없다. 그리고 물론 그게 안 되자 살수차와 특공대가 동원되는 엽기적인 상황이 펼쳐졌다. 이쯤에서 '근조, 대한민국' 한번.


2.

2003년의 시위에 절박함은 없었다. 부시 정부에 대한 불신과 염증이 있었지만, 당시에 정부가 행사하는 폭력의 대상은 지구 반대편에 있었다. 그 전쟁에 반대하던 우리는 '가만히 앉아 있을 수는 없다'는 책임감을 느꼈을지언정 이게 정말 우리의 삶을 위협하는 문제라는, 이 전쟁을 반드시 막아야 한다는 절박감이 없었다. '나는 적어도 이 문제에 대해 침묵하지는 않았다'는 자기만족 따위를 느끼는 내 자신이 부끄러워 시위에 두번 다시 나갈 수 없었다.

어제의 시위는, 길거리에 자리 깔고 앉아 떡, 김밥, 맥주를 까먹으며 소풍 나온 듯한 사람들, 유모차를 끌고 미는 젊은 부부들, 십대의 반항기를 분출할 더없이 좋은 출구를 찾은 듯 신나 보이던 교복 차림의 학생들, 그리고 이번 시위에서 빼놓을 수 없는 우리의 예비군 등 다양한 사람들이 구호를 외치고 노래를 부르며, 웃고 즐기느며 거리를 활보하는 여유로운 모습 속에서도 '정말 이대로는 안 된다'는 절박함이 느껴졌다. 이들에게는, 그리고 내게는 이명박의 백기투항 내지는 퇴진을 향한 진심어린 염원이 있었다.


3.

이쯤에서 사람은 끼리끼리 논다는 간단한 사실은 날 항상 걱정스럽게 만든다. 이는 만명이 있으면 만가지 의견이 있는 게 정상이라는 내 평소 지론과 맞물려, 나로 하여금 항상 여론의 왜곡에 대한 불안(?)을 갖게 만든다. 뭐, 아주 간단한 예로 내 주변에는 한나라당 지지자만큼이나 민노당이나 진보신당 지자자들이 많지만, 국민 여론의 현실은 이런 내 주변 상황과 전혀 다르다. 따라서 나와 정치적 목적을 공유하는 흐름을 읽게 되더라도 이게 전체 여론의 어느 정도를 반영하느냐의 의문을 달고 살 수밖에 없다. 물론 어제처럼 수만명의 사람들이 한가지 목적을 위해 운집하기 위해서는 (경찰 추산 4만, 집회 주최측 추산 10만이라는데 내가 봤을 땐 5만명에서 7만명 사이였을 것 같다. 시카고 마라톤시 출발점에 3만 5천명 정도가 운집하는데, 그 두배를 넘을 것 같진 않았다. 그리고 나는 솔직히 집회 추최측 또한 경찰측이 거짓말을 하는 것과 똑같은 동기로 거짓말을 할 수 있다는 인간에 대한 기본적인 불신을 갖고 있다. 내가 항상 객관적이지 않듯이, 나와 정치적 목적이 같은 사람들이 매사를 객관적으로 바라보는 눈을 갖고 있는 건 아니기 때문이다.) 그들과 정치적 의견을 같이 하는 사람들이 그보다 수십-수백배 많아야 하겠지만, 눈에 보이지 않는 세력의 의중을 헤아리는 일은 항상 조심스럽다.

이런 나의 불안을 어제 저녁 택시 기사 아저씨와 다른 사람들도 아닌 내 가족들을 통해 환기해야만했다. 철저하게 체제순응적인 어머니는 내가 광화문 앞에 있단 사실을 알고는 성을 내며 얼른 귀가 명령(?)을 내렸다. 생까고 버텨볼까 하다가 계속되는 귀가 강요 전화(?)에 결국은 경복궁 앞에서 전경과 대치하고 있는 시위대를 뒤로 하고 시위장을 떠났다. 자정을 넘어 시위가 슬슬 과격해지는 조짐을 보이던, 진짜 사람 머릿수 하나라도 더 보태야할 타이밍이었던 터라 돌아서는 발걸음은 무겁기만 했다.

그렇게 광화문 앞에서 택시를 잡아탔는데 택시 기사 아저씨는 '집회도 아니고, 데모도 아니고, 이게 무슨 짓거리들이냐'며 무척이나 짜증을 내셨다. 그렇게 고모집에 돌아가서 만난 내 가족들 중 그 누구도 내편이 아니었다. 특히나 전경 출신인 사촌동생은 쌍욕까지 섞어가며 집회 참가자들에 대한 불만과 불신을 쏟아냈고, 울 엄마나 고모는 그런 사촌동생의 불만에 적극 동조하셨다.

엄마나 고모, 사촌동생 중 그 누구도 지금 이명박이 잘 하고 있다고 여기진 않으신다. 아마도 택시 기사 아저씨도 이명박이 잘 하고 있다고 생각하진 않으시리라. 그렇지만 이들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자신들을 보호할 누군가가 있다면 그 누군가는 정부라고 믿고 있다, 정부에 '반항'만 하지 않는다면 말이다. 집회에 안 나가고 가만히 있었으면 왜 살수차를 뿌리고, 왜 연행하겠냐는 거다. 언론, 집회, 결사의 자유를 체제 전복을 꿈꾸는 데모꾼들의 사치품 정도로 믿는 이들에 맞서 나는 무기력했다. (자유와 권리라는) 사회적 이상이 아무리 고매할지언정, (통제된 도로를 이리저리 피해가며 택시를 몰거나, 전경 출신이라는, 혹은 전경의 고충을 모성애를 통해 경험하는) 개인의 체험을 넘어서는 사회적 이상을 갖기란 그렇게나 어려운 거다.


4.

이들의 모습위에 포개지는 지금 떠오르는 최악의 시나리오는, 이명박이 자신의 하야 여부를 국민투표에 붙이자는 제안을 하는 것. 이렇게 될 경우, 사실 지금의 촛불 집회 세력이 분열될 가능성이 있다. 지금까지의 실망스러운 정책들로 국민들에게 불만이 쌓여 있다고는 하지만, 이들이 모두 이명박 퇴진을 원한다고 보기는 어렵다. 일단 집회에 나오는 사람들은 대중들보다는 아무래도 조금 치우쳐 있을 가능성이 높다.

둘째로는, 이명박의 강수에 움찔하며 그 자리에서 집회에서 이탈하는 세력이 조금 나올 거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실제로 국민투표를 한다면 그 준비한답시고 최소 2주는 걸릴 텐데, 그 사이에 집회를 계속 할 수도 쉴 수도 없는 딜레마에 빠진다. 집회를 계속할 경우, 방금 언급한 두 세력이 '국민투표하기로 했으면 되지 왜 계속 저래?'라며 반정부 집회에 대한 거부감이 확산될 수 있다는 거. 반면에 그 기간 동안 집회를 쉰다면 반정부 정서가 냉각될 수도 있다는 거. 물론 전제 조건 하나는 그 2주 가량 이명박이 납작 누워 자살골을 넣지 않아야겠지. 워낙에 무식한 양반이라 그 정도도 못참을지 모르긴 하지만, 참모진이 조금만 똘똘하다면 그 정돈 통제하겠지. 사실 대통령이 물러난다고 생각하면 의외로 국민들 사이에서 '국정공백'에 대한 우려가 커질 수 있다. '아무리 무능해도 없는 것보다야 낫지 않겠어'라는 감성적인 사고는 안타깝게도 전염성이 강하다. 대통령의 하야를 국민투표를 통해 할 경우, 그 정치적 책임이 자신에게 고스란히 돌아올 수 있다고 생각하면 더더욱...

그리하여 국민투표 결과 이명박을 붙여놓자는 결과가 나올 경우, '거봐라, 그렇게 반대하고 날뛰더니 결국 한줌밖에 안 되는 놈들이 국민 전체를 대표하는 냥 날 뛰는 바람에 괜히 쫄았다'라며, 앞으로 모든 정책을 강행할만한 강력한 핑계거리를 제공하게 된다는 거다. 그 이후로는 모든 국민적 반대가 소수의 날뜀으로 치부될 테니까... orz 정말 불도저를 보게 될 거다. 지금 집회에 나오는 사람들 중 가장 강경한 주장을 전면에 드러냄으로써 실질적으로 조정이 필요한 세부 정책 문제에 대한 물타기를 하는, 아주 고도의 정치적 움직임이다.

다행히도, 어쨌든 이 시나리오는 이명박 입장에서 위험 부담도 그만큼 크다. 성공하면 대박이지만 실패하면 정말 쪽박. 이제 겨우 취임 100일에 좀 심한 강수이긴 하다. 그런데 앞으로 퇴진 압력이 정말 강력해지면, 바로 하야하는 대신에 국민투표를 제안할 가능성은 충분. 그때가면 밑져야 본전이니까.


5.

한때는 내 목소리가 사람들 사이에서 무게감 있게 다가갈 수 있도록, 내 개인의 힘을 키워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렇지만 민주주의 체제에서 개인의 힘은 아무리 크다해도 충분히 크지 않다. 대통령 조차도 결국은 저지경으로 코너에 몰리고 말았잖은가. 지식인이랍시고 펜을 아무리 휘갈겨도 그들이 실제로 세상을 바꾸는 경우는 없다.

4.19도, 6월 항쟁도 어느 강력한 개인의 의지나 필력으로 이뤄지지 않았다. 그때 세상을 바꿀 수 있었던 건 개개인이 자신의 미약한 힘으로는 아무것도 못할 수도 있다는 사실을 각오하고도, 그 힘을 보탤 용기를 냈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는 지금 우리의 현실이 답답하다면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야 하는 거다.

4.19 때나 6월 항쟁 때 본인은 손가락 하나 까닥 안 하고도, 그 열매를 얻어먹은 사람들이 있고, 그들의 그런 경험은 '굳이 내가 아니어도'라는 생각을 키우게 만들었을 거다. 조금 패배주의적이기는 하지만, 그런 생각 때문에 움직이기 싫다면 움직이지 않아도 좋다. 그것 또한 그들의 자유다. 그렇지만 그 작은 힘을 보탤 용기를 낸 사람들에게 손가락질만은 하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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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연 명언이로다. "I am the CEO of the Korea, Inc."

이리하여 2008년 4월 17일, 대한민국은 주권국가에서 영리법인으로 전락하는구나.

@ 저것도 은유랍시고 자신의 문학성에 대해 뿌듯해할까?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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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MB님께서 쇠고기가 비싸 못 먹는 국민들을 불쌍히 여기셔 미국 쇠고기 수입을 해주셨구나, 지화자. 나랏님께서 이제 쇠고기도 먹여주시기로 했으니 우린 하루 14시간이고 16시간이고 열심히 일하여 성은에 보답하는 일만 남았구나, 얼쑤.

@ 이런 시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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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가 잡겠다고 50개 품목 선정하라고도 하고, 경제 성장률 7% 달성하자고 경기 부양하자고도 하고... 이거 어째 아무것도 못할 거 같다. 경기부양 실컷해서 물가는 올리고, 경제 성장률은 4%대 정도 찍어주는 거 아닌가 몰라. 아무래도 다른 경제지표는 단기간 내에 안 되겠고, 취임 1년내에 물가부터 선진국을 따라잡자는 거 아닐까?

@ MB식 전시행정에 어울리는 발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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