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에 해당되는 글 2건

  1. 2006/10/04 이땅에서 과학하기: 이공계 위기에 위기는 없다 (1)
  2. 2006/10/01 나는 너의 너다
나름대로는 과학자가 되겠다는 꿈이 있어서 과학고를 나오고 과기대도 나온, '과학자의 커뮤니티' 속에 파묻혀 있을줄만 알았던 내 주변에도 이제 과학자가 되겠다는 사람이 얼마 안 남았다. 그런 상황이 실망스럽다거나, 나만 남겨두고 떠나간 당신들이 원망스럽고 밉다는 정신나간 이야기를 하려는 게 아니다. 현실주의자가 이상주의자에게 냉소를 보내고, 이상주의자가 현실주의자를 비난하는 일이야 손바닥 뒤집기보다 쉽지만, 쉽다고 손바닥만 뒤집고 앉아 있어봐라, 뭐가 남나. 다들 어린 마음에 속은 걸 어쩌겠는가. 나도 가끔은, 이 우중충한 지하 실험실에 내 청춘을 다 바치다가 어느날 정신을 차리고 고개 들어 세상을 둘러보니 남은 건 처자식에 빚더미일 암울한 미래에 대한 회의가 안 드는 거 아닌데...

그래도 내가 아직도 과학을 하겠다고 고집을 피우는 것은, 첫번째로는 나는 아직도 과학이 좋다. 과학이 지닌 논리의 정갈함, 1+1이 2인데 이유가 있어야 한다는 사실이 좋다. 목소리 큰놈이 하자는대로 하는 게 아니란 그 사실... 요새는 1+1이 2가 아닐 때도 있다는 이야기들이 나오기도 하는데, 1+1이 2가 아니라면, 그때에도 역시 이유가 있어야 한다는 점을 모두가 납득하고 있다는 사실이 얼마나 의미있는 일인지 생각해보란 말이다. 과학하는 사람들 중에야 여느 바닥이나 마찬가지로 거짓말쟁이들이 널렸지만, 과학은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둘째 이유는, 오히려 남들이 다 떠나가니까 떠나기 싫어진다. 왠지 남들 하는 거 하기 싫고, 남들 안 하는 거 하고 싶어하는 어설픈 반항아라 어쩔 수 없다. (사춘기 소년도 아닌 것이... -_-,,) 마지막으로는, 대학원 와서 5년이 넘도록 논문 딸랑 두편 내놓은 별 볼일 없는 대학원생이지만, 나만이 이 바닥에 공헌할 수 있는 일이 꼭 있을 거라는 자존심, 그거 아직 버릴 수 없다.

사실 과학, 특히 기초과학에 대한 투자가 축소되고, 과학자들에 대한 대접이 소홀해지는 건 꼭 우리나라에만 국한된 이야기가 아니다. 이는 일차적으로는 국가나 기업 경영자들의 경영원리에 좌지우지되는 까닭이겠지만, 그 이면에 숨은 이유가 있다고 보는데, 바로 인간 진화의 속도가 정보와 지식의 생산 속도에 따라 잡혔기 때문이다. 과학이란 게 사이비 종교 교리가 아니다보니 무에서 유가 창출이 안 된다. 결국 '새로운 발견'하나를 위해 지금까지의 발견을 습득해야하는데, 사람 머리가 아주 빠른 속도로 비상해지는 일이 없다보니, 시간이 갈수록 학습에 투자해야하는 시간은 늘어나는 거다. 그렇다고 수명이 갑자기 늘어나는 일도 없기 때문에 '새롭고 놀라운 발견'의 속도가 계속해서 더뎌지고 있다는 이야기다. 진짜 솥빠지게 공부하는데도, 과학자들이 하는 일 없이 놀고 앉아 있는 것처럼 보이는 세상이 와버리고 말았다. 한사람의 과학도로서는 안타까운 일이지만, 과학자들 대접이 갈수록 박해지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인지도 모른다.

그런데 진짜 문제는 따로 있다. 과학자를 푸대접하는 상황 자체가 문제가 아니다. '이공계의 위기'가 '국가의 위기'가 되는 것은 자본주의적 경제발전이 삶을 풍요롭게 한다는 잣대를 적용했을 때 다다를 수 있는 하나의 결론일 뿐이기 때문이다. 밥을 굶어 생존이 위협될 정도의 빈곤에 시달릴 때에는 삶의 질을 가늠할 척도는 먹고 사느냐 굶어 죽느냐로 획일화될 수밖에 없다. 그렇지만 밥을 굶지 않을 정도의 경제적 안정성이 확보된 이후에는ㅡ현실적으로는 불행히도 우리나라는 여전히 경제성장을 통한 물질문명의 확대라는 획일적인 잣대가 압도적인 주류를 이루고 있다마는 원칙적으로는ㅡ어떻게 사는 게 잘 사는 것인가에 대한 다양한 잣대를 가질 수 있다. 단적으로 말하자면 자전거를 타고 다니는 것보다 자동차를 타는 것이, 촛불을 켜고 사는 것보다 형광등을 켜고 사는 것이 더 편리한 삶인 것은 틀림없지만, 이게 반드시 더 나은 삶은 아니기 때문이다. 현대 문명이 제공하는 모든 혜택을 누리고 사는 내 삶이, 산속에서 수양하며 깨달음을 향해가는 이름 모를 그 누군가의 삶보다 낫다고 말할 수 없기 때문이다. 행복의 기준은 마음먹기에 달린 거니까...

그런 의미에서 과학의 발전이 인간의 삶을 풍요롭게 하니까, 과학자들 대접을 잘해줘야 된다는 이야기는 사실 다 호랑이가 풀 뜯어먹는 소리다. 극단적으로 말해 과학기술의 발전으로 호버크래프트가 자동차를 대체한들 그게 풍욘가? 뭐, 타이어 마모에서 나오는 분진 감소로 환경이 깨끗해질라나? 그건 확실히 좋은 일이긴 하겠군. --a 아무튼 과학자들 푸대접받는 게 못마땅하다는 건, 거리의 청소부가 푸대접받는 게 못마땅하다고 하는 것보다 나을 게 없다. (청소부를 예를 들어 청소부들한테는 조금 미안하군.) 왜냐하면 '과학의 중요성'이란 건 누가 어떻게 쓰느냐에 따라 그 정의가 달라지는 말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바꿔 말하면 이공계 위기는 산업혁명 이후 사회구조의 위기이고, 자본주의의 위기이며 물질문명의 위기이지, 이공계의 위기가 아니며, 국가의 위기나 인간 삶의 위기는 더더욱 아니다. 그게 단 몇명일뿐일지라도, 사람들이 과학이 재미있어서 과학을 하는 한, 이공계 위기에 이공계 위기는 없다.

그런데 진짜 문제가 뭐냐면, 국가와 기업 경영자들이 거짓말을 한다는 거다. 과학에 투자할 마음이 없다면 그거 탓할 마음은 없다. 사람마다 생각이 다르고, 과학이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하는 것 역시 사람 사는 세계의 다양한 스펙트럼의 일부다. 그걸 인정 안 해주면서, 과학이 중요한 거니까 과학자들 대접해달란 이야기, 낯짝 뜨겁게 어떻게 하냐? 그런데 경영자란 놈들이, 과학이 중요하네, 이공계생들의 처우 개선을 해야하네 따위의 말을 떠들면서 어설프게 사람들 현혹해서 열심히 쓰다 버리는 거, 이게 문제다. 곧 노벨상도 나올 거라는 개구리가 뱀 잡아먹는 소리로 바람 열심히 잡다가, 우리가 선진국에 몇십년 뒤졌다며 빨랑 쫓아가야된다고 쥐잡듯이 다그치는 정신 나간 놈들, 이게 문제다. 실험 장비 살 돈이라곤 땡전 한푼 안 주면서, 과학자들보고 왜 아직도 제자리 걸음이냐고 다그치기만 하면, 팥으로 메주가 쒀지냐?

우린 남는 게 빚더미 뿐이더라도 별로 바라는 것 없이, 왜 1+1이 2인지 신기해하면서 우리끼리 재밌게 잘 살 수 있으니까, 우리한테 해주는 것도 없이 바라지 말라는 말, 과학을 과학하는 사람들에게 넘겨달란 말, 그게 하고 싶었다.
이올린에 북마크하기(0) 이올린에 추천하기(0)
2005. 2. 18.

글을 시작하기에 앞서 일단 인간에 대한 애정을 갖고 남들에게 배풀며 살라는 종교적 가르침에 충실한 사람들과 그들의 삶을 매우 가치있게 생각하고, 특별한 종교가 없어서인지 내가 쉬이 행하지 못하는 만큼이나 그런 사람들을 대단히 존경한다는 사실, 그리고 종교들이 가진 이런 순기능에 대해 모르는 바가 아님을 미리 밝혀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종교적 독단ㅡ특히 유일신을 섬기는 종교적 독단ㅡ, 한 종교의 독단 대 다른 종교의 독단간 충돌로 인한 종교 분쟁 등 종교가 가진 역기능이 인류 역사상 반복적으로 나타나는 데에는 어떤 이유가 있다고 생각한다.

계속 읽기

이올린에 북마크하기(0) 이올린에 추천하기(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