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은행'에 해당되는 글 2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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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2010/05/19 중앙은행과 통화공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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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은행과 통화공급

앞서서 중앙은행이 왜 등장했고, 꾸준한 통화공급의 확대가 왜 필요한지에 대해 간단히 이야기했는데, 실제로 통화공급량을 어떻게 조절하는지에 대해 살펴보자.

중앙은행에 대해 더 자세히 논하기에 앞서 정부가 경제활동에 개입하는 방법은 크게 재정정책과 통화정책으로 나뉜다. 재정정책이란 정부가 예산을 짜서, 그에 맞춰 세금을 걷고 집행하는 것을 말하고, 통화정책이란 중앙은행이 돈을 찍어내는 걸 말한다. 이들 각각에 대해 간단한 예를 들어 살펴보자.

자, 정부가 새로운 학교를 짓기로 결정했다고 하자. 학교 건물을 짓는 건축비는 물론, 학교가 새로 생겼으니 교사도 새로 뽑아야 하고, 뭐, 이래저래 돈이 많이 드는데, 이를 다 계산해보니 100억쯤 필요하다. 그래서 이를 위해 세금을 100억을 더 걷는다. 이 경우에 이 100억은 국민들의 주머니에서 나와야하고, 결국 국민전체로 봤을 때 그들의 실질 소득이 100억 줄어든 것과 마찬가지다. 결국 국민들은 자신들에게 가장 덜 중요한 것들부터 소비를 줄여나갈 거고, 그 결과 전 국민이 자가용을 조금 덜 끌기로 결정, 100억원에 해당하는 주유비를 아꼈다고 하자. 이 경우 주유소와 정유사의 수입이 줄어들 거고, 그에 따라 주유소와 정유사에서 필요없는 인력을 처분한다. 정부는 이들을 고용/교육하여 학교 건설을 맡기고, 교사로 임용한다.

여기서 이 시나리오가 그럴 듯하냐, 그럴 듯하지 않냐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 이 이야기를 하는 이유는 국가 전체로 봤을 때 특정 산업(이 경우엔 정유산업)은 100억원어치 생산량이 줄고, 특정 산업(건설 및 교육)에서는 생산량이 100억원어치 늘어난다는 거다. 즉, 국가 전체의 부는 늘지도 줄지도 않고, 물가에도 큰 변화가 없다. 다만 국가내 산업의 구조가 바뀌었을 뿐. 이게 재정정책이다.

그런데 정부에서 학교를 짓고 나니 미처 몰랐는데, 학생들이 통학하기에 학교 주변의 도로들이 조금 위험해 보이는 거다. 그래서 학교 주변 도로 정비를 하는 김에 전국 각지의 도로도 한꺼번에 정비하기로 결정한다. 그래서 사업구상을 해보니 또 100억 정도가 필요하다. 그런데 얼마전에 세금을 100억 올린 까닭에 다시 세금을 올리려니 국민들이 좋아할 것 같지 않다. 그래서 이번엔 통화정책을 집행하기로 한다. 그래서 중앙은행에 가서 돈이 한 100억 필요한데, 간만에 인쇄기 좀 돌리는 게 어때? 그래서 오만원짜리 신권을 20만장 발행한다. 그리고는 도로 정비에 필요한 인력을 모집하기 시작한다. 그러자 최근 농사 짓는 일이 지긋지긋하던 농부들이 대거 도로 정비를 하러 몰리는 바람에 쌀 생산량이 100억원어치 줄었다고 해보자.

이 경우에는 국가가 쓴 100억이 국민들의 주머니에서 나오지 않았기 때문에, 국민들의 실소득이 줄지 않았다. 다만 쌀 농사를 짓던 사람들은 쌀 농사 해서 100억을 버는 대신 도로 정비를 해서 100억을 벌었을 뿐. 그렇다면 아무 문제가 없을까? 그렇지 않다. 왜냐하면 쌀 생산량이 줄어듦에 따라 국민들에게 평소에 쌀을 사먹는데 쓰던 돈이 남았기 때문이다. 이 남은 돈은 결국, 더 비싼 값에 더 적은 양의 쌀을 사 먹거나, 쌀 대신 밀가루나 옥수수, 콩 등을 사먹는데로 옮겨가게 된다. 그런데 그 결과로 밀가루, 옥수수, 콩의 공급량은 그대로인데 수요가 증가했기 때문에 이들의 값이 또 오른다. 결국 화폐 가치가 하락해서 물가가 오르는 인플레이션이 발생한다. 이게 통화정책이다. 통화정책을 사용할 경우에도 국가 전체로 봤을 때 산업의 구조만 바뀌었을 뿐, 국가 전체의 부는 줄지도 늘지도 않았다. 다만 시중의 화폐의 양이 100억원어치 늘어남에 따라 상대적인 화폐 가치가 하락한 것뿐이다. 이때 주머니에서 세금으로 빠져 나가지는 않았지만, 갖고 있는 돈의 가치가 하락했기 때문에 실질적으로 소득은 감소한 것과 같은 효과가 나온다. 그래서 통화발행권을 국가가 쥐고 있는 시스템 하에서 인플레이션은 눈에 보이지 않는 세금이다.

그래서 국가는 돈을 발행할 수 있는 권한이 있지만 이를 매우 조심해서 사용해야 한다. 특히 정치적 계산에 영향을 받을 경우 국민들에게 치명적일 수 있기 때문에, 대부분의 국가에서 중앙은행은 행정부로부터 독립된 기관으로 존재하고, 중앙은행장은 대통령이나 국회의 입김에 놀아나지 않을 수 있는 독립적 권한을 부여하려고 한다. 그리고 이들의 제1의 역할은 정부가 온갖 재정정책으로 죽을 쓰든 말든, 눈 질끈 감고, 인플레이션을 조절하는 거다. 이미 몇차례 말했듯이, 기술 발전으로 인해 생산량이 증가할 경우, 이에 맞춰 시중에 돈을 더 푸는 거다. 그렇지만 이를 정확히 맞출 수는 없기 때문에 보통 인플레이션이 매년 0~3% 정도 발생할 수 있게끔 여분의 돈을 푼다. 약간의 디플레이션에 비해 인플레이션을 선호하는 까닭은 앞선 글에서도 밝혔듯이 아무도 월급이 감소하는 걸 보고 싶어하지 않는다는 심리적 요인 때문. (물론 정치와 경제라는 게 태생적으로 쉽게 분리가 안 되는 부분이 있다보니, 중앙은행장이라는 자리가 철저하게 비정치적인 자리라고 할 수는 없다.)

그러면 실제로 중앙은행들이 인플레이션을 조절하는 메카니즘은 뭘까? 사실 시장에 돈을 풀기만 하면 인플레이션은 발생한다. 벤 버냉키(Ben Bernanke) 말대로 헬리콥터를 타고 다니면서 하늘에서 돈을 뿌려도 그만이다. 그런데 이렇게 하면 뭔가 불공평하잖아. 때마침 헬리콥터 밑에 있던 사람들과 그렇지 않은 사람들 사이에서 누구는 꽁돈을 줍고 누구는 못 줍는 거니까.
사용자 삽입 이미지

Ben "Helicopter" Bernanke


그래서 보통은 공개 시장 조작(open market operation)이란 프로세스를 거친다. 그 방법은 간단하다. 국채를 돈으로 바꾸는 거다. 무슨 말이냐면, 대부분의 국가들은 재정정책을 사용하는 과정에서 국채를 발행한다. 국가도 개인과 마찬가지로 가끔은 돈을 빌려야 할 필요가 있다. (물론 대부분의 국가에선 돈을 빌리는 행위가 만성적이라는 게 문제긴 하다. 관련글: 전인교육) 예산을 책정하고 이에 맞춰 세금을 거뒀는데, 갑자기 예상치 못한 대형 사고들이 터진다거나 하면 생각했던 것보다 돈이 더 필요할 수 있으니까. 그런 걸 대비해서 세금을 걷어야지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필요가 불분명한 일에 세금을 더 내고 싶어하는 사람은 없으니까. ㅡㅠㅡ

아무튼 국가에서 돈을 빌리는데 신용카드를 긁거나, 청와대를 담보로 잡을 수는 없는 일이고, 국채라는 걸 발행한다. 국채는 다른 모든 채권과 마찬가지로 액면가, 만가일, 쿠폰이 있다. 액면가란 말 그대로 국채에 찍혀 있는 가격으로 채무자, 국채의 경우엔 국가가 빌리는 돈의 액수라고 보면 된다. 만기일이란 국가가 언제 그 돈을 되갚겠다는 날짜를 말하고, 쿠폰은 만기일 전에 국가가 채권자에게 정해진 시기에 내는 이자를 말한다. (참고로, 액면가와 채권 거래가는 사실 다르다.) 결국 국채란 건 고정 금리 대출이라고 보면 되겠다.

자, 그런데 국채랑 인플레이션이랑 무슨 상관이냐? 국채는 철저하게 재정정책의 결과로 인플레이션을 발생시키지 않는다. 갑이 을에게 채권을 주고 돈을 빌려서 새로 집을 지을 경우에, 을은 채권이라는 자산을 갖고 있지만, 실제로 만기일이 되어 갑이 을에게 돈을 갚기 전까지, 을은 그 돈을 사용할 수 없다. 돈이 필요하다면 채권을 팔면 되지만, 여전히 채권을 산 사람은 그만큼의 돈을 사용할 수 없기 때문에, 국가 전체로 봤을 때 유통되는 통화량은 일정하고, 그로부터 생산되는 상품(갑의 집)의 가치가 누구의 소유(갑)냐의 차이만이 있을 뿐. 따라서, 국가가 국채를 발행할 때는 강제로 세금을 더 걷은 것은 아니지만, 나중에 돌려준다는 명목하에 사람들에게 자발적으로 세금을 내게 한 것과 같다.

이렇게 국채를 발행한 경우에 이 돈을 갚는 방법은 두가지가 있다. 한가지는 훗날에 필요한 돈보다 세금을 더 걷어서 재정흑자를 낸 후에 이 남는 돈으로 국채를 갚는 방법이 있고, 다른 한가지는 중앙은행에서 돈을 더 인쇄해서 이 돈으로 국채를 갚는 방법이 있다. 전자의 경우엔 한가지 재정정책을 다른 재정정책으로 바꾸는 것이지만, 후자의 경우는 재정정책을 통화정책으로 치환하는 거다. 그리고 이는 앞서 설명한 통화정책과 마찬가지로 인플레이션을 유발한다. 그리고 오늘날 대부분의 국가는 중앙은행이 국채를 사고 파는 과정을 통해 인플레이션을 조절하고 이를 공개 시장 조작이라고 한다.

신문이나 뉴스에서는 항상 중앙은행이 기준금리를 조정한다고 나오는데, 그 이유는 금리가 통화공급의 증감에 대한 한가지 지표이면서 동시에 일반인들에게도 익숙한 개념이기 때문이다. 자, 그러면 공개 시장 조작이 금리에 어떻게 영향을 미치는지 간단히 정리해보고 오늘 이야기는 마치도록 하겠음.

중앙은행에서 국채를 사들이거나 국채를 팔 때, 사실 아무나 이걸 중앙은행으로부터 사고 파는 건 아니다. 중앙은행은 (아주~ 아주~ 예외적으로 긴급한 상황이 아니라면) 은행들 하고만 거래를 한다. 일반적으로 은행이란 건 갑에게서 돈을 빌려 (예금을 받고), 을에게 돈을 빌려준다. 그렇지만 은행이 빌린 돈을 남들에게 다 빌려주는 건 아니고, 일정 금액은 은행이 쥐고 있다. (안 그러면 사람들이 통장에서 돈을 못 찾을 것 아닌가.) 은행이 빌린 돈 중 얼마나 많은 양을 쥐고 있어야 하는가는 보통 법으러 정해져 있는데, 동네마다 다르지만 10~20% 정도다.

이 비율이 20%라고 해보자. 이때 사람들이 100억을 예금했으면 80억은 다른 사람에게 빌려줘도 되지만, 20억원은 비상시를 대비해 은행이 쥐고 있어야 한다. 그런데 A은행에서 돈을 빌려달라고 오는 사람들한테 돈을 다 빌려주고도 30억이 남았다고 하자. 그러면 다른 사람들에게 더 빌려줄 여유 자금이 10억이 있지만 그냥 은행 금고에 썩고 있는 거다. 뭐, 그게 대수인가 싶겠지만 10억을 빌려줬을 경우 벌어들일 수 있는 이자 수익이 그만큼 줄어드는 거다. 그런 경우에 A은행은 중앙은행에서 쿠폰이 5천만원어치의 국채를 사들임으로써 국가로부터 이자 수익을 매년 5% 벌어들일 수 있다.

그런데 어느날 이 A은행의 큰손 고객이 은행을 옮기겠다며 10억을 빼갔다. 그러면 A은행이 받은 총 예금은 90억으로, 현재 은행 금고에 남은 돈은 10억으로 줄어든다. 90억의 20%면 18억이 있어야 되는데, 10억밖에 없으니 8억이 모자란다. 이 경우에 A은행은 국채 중 8억원어치를 다시 중앙은행에 되팔아서 은행 금고의 돈을 18억으로 맞출 수 있다. 그렇지만 이것만이 유일한 방법은 아니다. 은행끼리 돈을 빌려주고 받는 일도 얼마든지 가능하다. 이때, 결국 은행들은 다른 은행과의 거래, 국채, 혹은 기업 채권 등 다양한 경로를 통해 돈을 빌리고 갚을 수 있는데, 결국 어느 경로가 은행의 수익에 가장 도움이 되는가를 살피게 된다.

다시 앞선 예로 돌아가서, A은행에서 10억을 빼간 큰손 고객이 A은행과 같은 규모의 B은행에 10억을 예금한다. 그러면 B은행의 총예금은 110억이 되고, 은행이 쥐고 있는 돈은 30억이 된다. 그래서 B은행에서 A은행이 필요한 8억을 빌려주겠다고 한다. 그러자 A은행은 이율이 얼마냐고 묻고 B은행은 7%를 내라고 한다. A은행으로서는 10억짜리 국채로 매년 5천만원이 들어오는데, 8억을 B은행에서 빌리고 7% 이자를 내려면 매년 5600만원을 내야 하니 600만원 손실인 셈. 그럴 경우엔 차라리 중앙은행에 국채 8억원 어치의 국채를 되팔고 (중앙은행 입장에서는 국채를 8억원어치 국채를 사들이는 셈이다!) 2억원의 5%에 해당하는 천만원이라도 매년 버는 게 낫다고 판단한다. 그렇게 되면 B은행에서는 이율을 낮출 수밖에 없다. 물론 실제로는 이것보다 훨씬 복잡하다. 은행이 단 2개뿐일 리도 없고, 채권의 가격도 수요-공급에 따라 변하게 마련이라, 국채의 매물이 얼마나 많은지에 따라 (액면가와는 다른) 거래가가 수시로 변하기 때문에 이런 요소들이 다 고려의 대상이다. 그렇지만 여기서 요점은 중앙은행이 국채를 사들일 경우, 시중에 현금의 양은 더 많아지고, 이율은 떨어지는 반면, 중앙은행이 국채를 팔게 되면, 시중의 현금이 줄고, 이율은 오른다는 거다.

다른 말로 하면, 이자라는 건 돈의 (액면가가 아닌) 거래 가격이다. 나한테 필요없는 돈이 천만원 있어서, 돈을 경매에 부친다고 가정해보자. 이 경우 돈을 다른 재화로 바꾸는 게 아니고, 천만원에 대한 이자를 통해 경매에 부친다면, 돈의 가치가 높다면, 즉 돈을 원하는 사람이 많다면, 이율이 높아질 거고, 그 반대라면 이율이 떨어질 거다. 따라서, 중앙은행이 시중에 있는 국채를 돈으로 교환함으로써, 시중에 돈이 많아지면 돈의 상대적 가치가 하락하기 때문에 이율이 낮아진다. 그리고 물론 인플레이션은 심해진다. 그 반대도 마찬가지. 그래서 공개 시장 조작이 하는 통화공급량의 조절은 기준금리와 밀접하게 얽혀 있는 거다.

글이 생각보다 길어졌는데, 내일 이어서 환율과 (마침내!) 유로의 등장에 대해 끄젉거려보겠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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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의 가치, 그리고 부(富)

일반적으로 노동자가 실질적으로 지배력을 행사할 수 있는 자원은 자신의 노동력뿐이다. 그 노동이 광산에서 석탄을 캐는 것일 수도 있고, 카페에서 커피를 만드는 것일 수도 있고, 동사무소에서 민원을 받는 것일 수도 있고, 학교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는 것일 수도 있듯이, 그 형태는 다양하지만, 결국 그 결과는 무형의 노동력이 유형의 상품이나 무형의 서비스로 변환된다는 거다. 돈이라는 것은 이렇게 다양한 상품과 서비스의 교환을 보다 쉽게 하기 위해 등장한 또 다른 형태의 자원(resource)일 뿐. 돈이 등장하기 전에도 물물교환을 통한 상거래는 언제나 있어 왔다는 걸 상기하면 되겠다.

결국 한 사회나 국가의 부(富)란 그 사회에 돈이 얼마나 많으냐가 아니라, 그 사회의 구성원들의 노동력이 얼마나 생산성이 높으냐, 즉, 일정량의 노동으로 얼마나 많은 상품과 서비스를 생산해내느냐에 달린 셈이다. 여기까지만 써 놓으면 사실 맑스의 노동 이론이랑 통하기 때문에, 자본가는 결국 노동자들의 노동력으로 일군 결과 중 일부를 정당한 이유없이 착취한다는 결론이 나는데, 여기에 '시간 선호도(time preference) 및 위험 감수(risk taking)'의 개념이 들어가면 자본가의 역할이 꽤나 중요해진다. 그렇지만 이 이야기는 나중에 다시 하게 될 테니 일단은 맑스의 노동 이론을 바탕으로 이야기를 계속 풀어나가 보자.

다시 한번 강조하자면, 부유한 사회는 다른 상품이나 서비스에 비해 노동력의 가치가 높은 사회를 말한다. 우리가 흔히 선진국에 가면 인건비가 비싸다는 이야기가 나오는데, 그 이유가 정확히 이거다. "잘 산다 = 노동력이 가치가 높다 = 인건비가 비싸다"인 거다. 그리고 이 '인건비가 비싸다', 이 부분에서 돈의 개념이 다시 들어온다. 앞서서 돈은 다양한 상품과 재화의 가치를 교환하기 위한 수단이라고 했는데, 이를 위해 교환 가치를 정량화할 필요가 있다. 예를 들어 시장에서 배 한개로 사과 두개를 맞교환할 수 있다면 배는 사과 2배의 가치가 있다는 걸 알 수 있다.

그렇지만, 시장에 나와 있는 상품과 서비스의 종류가 많아지면, 매번 한 가지 상품에 대한 다른 상품의 가치를 매기는 일은 성가신 일이다. 이를 위해 모든 상품과 서비스의 가치의 균일한 척도로서 돈이 등장한다. 즉, 배 한개와 사과 두개의 가치가 같다고 말하는 대신, 배 한개는 천원, 사과 한개는 오백원이라고 말할 수 있는 '원'이라는 가치의 척도가 있다면, 이를 통해 다양한 상품의 교환이 훨씬 용이해진다. 그렇지만 이는 대단히 임의적인 가치의 척도로, 한국에서는 '원'이라고 하지만 미국에서는 '달러'라고 하고, 중국에서는 '위안', 일본에서는 '엔', 유럽에서는 '유로'라고 하는 서로 다른 척도를 사용한다. 즉, 배 한개는 천원이기도 하고, 백엔이기도 하며, 1달러이기도 하다. 우리는 오늘날 원, 달러, 유로 등의 법정 불환 통화(fiat money: 쉽게 말해 종이로 된 돈)이라는 가치의 척도를 이용하지만, 예전에는 은화와 금화 따위를 이용했었다. 그리고 여기에 인플레이션의 비밀이 있다.

이미 몇차례 언급했지만, 부라는 건 노동력이 다른 자원에 대해 얼마나 많은 지배력을 갖느냐에 의해 결정된다. 에르메스별의 화장지 회사 예를 들면서, 화장지의 가격이 떨어짐으로써 에르메스별 사람들이 더 부유해진다고 했는데, 이때 화장지의 화폐 가치가 떨어진 이유는 노동의 화폐 가치를 고정시켜놨기 때문이다. 그러나, 실제 세계에서는 역사적으로 노동의 화폐 가치가 고정돼 있던 적이 단 한번도 없다. 이유인즉슨, 금과 은을 화폐로 이용하던 시절, 중상주의 경제학 하에서 사람들은 금과 은이 많으면 부자가 된다고 믿었기에 끊임없이 금과 은을 찾아 헤맸다. 그 결과 노동생산성이 증가하여 상품과 서비스의 질과 양이 다양해짐에도 불구하고, 금과 은의 양도 같이 늘어났기 때문에 상품 가격의 하락은 크지 않았다. 오히려 (비교적) 고정된 상품의 화폐 가치에 비해 노동의 화폐 가치, 오늘날로 말하면 임금이 꾸준히 늘어난 거다. 결국 유통되는 돈/통화의 양이 사회 전체의 부를 결정한다는 착각 때문에 늘어나는 노동 생산성과 맞먹는 통화 공급이 꾸준히 있어 왔다. 오히려 통화 공급량이 생산되는 상품과 서비스의 양보다 많아서 이들의 가격이 오르는 인플레이션이 일어나는 일이 많았다.

이렇게 인플레이션에 길들여진 이상, 이를 되돌리는 일은 쉽지 않다. 이유인즉슨, 사람들이 인플레이션에 익숙해 있다면 매년 그와 맞먹거나 그보다 더 빠른 소득 증가를 기대한다. 그런데 어느해에 갑자기 소득이 줄어든다고 하면, 상당한 불만/불안심리가 생겨날 거다. 통화 공급의 축소로 소득 뿐만이 아니라 모든 상품과 서비스의 가격이 같이 떨어진다고 하더라도, 이를 모든 사람들이 이해하고 수긍하기란 쉽지 않다.

실제로 부의 척도는 화폐의 양과는 별로 상관이 없다고 하더라도, 이미 부=화폐라고 수백년간 길들여졌기 때문에 이 심리적 효과를 무시할 수 없다는 말이다. 1920-30년대의 대공황의 원인 중 하나로 바로 이 통화 공급 부족을 꼽는 것도 같은 이유에서다. 당시에도 이미 지폐와 동전을 돈으로 사용하긴 했지만, 그 당시의 지폐는 금본위제를 따랐다. 즉, 돈을 갖고 있는 사람이 원하면 언제든지 그 돈을 은행에 갖고 가서 정해진 양의 금으로 교환할 수 있었다. (오늘에도 돈을 금으로 바꾸는 건 가능하지만 그 양은 금의 시세에 따라 변한다. 금본위제에서는 금의 시세라는 게 없이 이미 약속된 양이 있기 때문에 돈=금인 셈이다.) 그런데 금이란 건 금광을 찾아 캐내야 하는 것이다보니, 그 양이 쉽게 늘었다 줄었다 하지 않기 때문에 금의 양이이 노동 생산성을 따라 같이 움직이지 못하다보면 인플레이션과 디플레이션이 제멋대로 일어날 수 있다.

이런 문제 때문에 결국 금본위제는 폐기되기에 이르렀고, 오늘날의 중앙은행들이 등장한다. 그리고 오늘날 이들의 역할은--역사적으로는 다양한 정치적 이해관계에 따라 여러차례 변해왔지만--꾸준한 통화 공급 조정을 통한 인플레이션 조절이다. 그리고 이를 위해 이들에게 '공짜로 돈을 만들어낼 수 있는 권한'을 쥐어준다. 이들이 이 권한을 이용해서 어떻게 통화 공급을 조절하는지는 내일 이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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