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촛불집회'에 해당되는 글 2건

  1. 2008/06/16 쇠고기정국 총정리
  2. 2008/06/08 그들은 왜 분노하고, 우리는 왜 분노하는가 (2)
첫단추

4월 18일, 이명박 정부가 미국산 쇠고기 수입 결정. 간이고 쓸개고 다 빼주며 뼉다구고 내장이고 다 받아오는 협상력을 발휘, 국민의 짜증을 산다. 이때까지는 분노라기보단 짜증이었다.


5월 2일

4월 29일, MBC에서 미국의 축산업과 광우병에 대한 PD 수첩이 방송되고, 이를 본 국민들의 우려가 커지기 시작, 이 우려를 촛불집회의 형태로 발산한다. 이 촛불집회의 주도권은 놀랍게도 10대들에게 있었다. 뭐, 애초에 주도권이 그들에게 있진 않았더라도 많은 이들이 그들의 집회 참여를 한번쯤 분석해볼 필요가 있는 사회현상으로 받아들이며, 그들에게 관심을 집중시키며 주도권이 그들에게 넘어간다.


배후론/선동론

한 선배의 이야기대로 현정부는 '정의로운 미국님을 왜 못 믿나'란 생각 뿐이었던 것 같다. 답답한 마음에 누군가 이들을 뒤에서 조종했다고 판단한 청와대, 배후론/선동론을 꺼내며 국민들의 짜증을 분노로 승화시켜준다. 이때부터 전면전 돌입이다. 그런데 사실 적게는 수천에서 많게는 수십만명이 거리로 쏟아져나오는 현실에서 모든 이들이 똑같은 양의 정보를 갖고 상황 판단을 했다고 볼 수 없다, 고로 더 많은 정보를 지닌 이들이 그렇지 못한 이들을 선동한 것은 맞다. 근대국가에서 거의 모든 정치적 행위는 선동에 의해 이뤄진다고 보는 편이 정확하다. 문제는 그 선동이 정당한가 부당한가의 문제다.


광우병은 과학이다?

자, 이명박과 아이들은 미국의 쇠고기는 광우병으로부터 안전하다고 이야기한다. 이는 과학적으로 확인된 사실이므로 토론의 대상이 아니라는 거다. 고로 이를 문제 삼는 것은 부당한 선동이라는 논리다. 이 말을 믿는 사람들한테는 무척이나 그럴싸한 이 주장이 왜 국민 대다수한테는 씨알도 안 먹힐까? 문제는 과학 자체는 비정치적일지언정, 과학을 논하는 인간은 지극히 정치적이라는 사실에 있다. 그래서 과학도 정치적일 수 있으며, 이번에 광우병은 분명히 누구를 믿느냐의 정치의 문제다.

일단 광우병에 대한 과학적 사실들은 이지형 블로그에 이미 잘 정리된 글이 있으니 그 글로 대신.

광우병?
UK vs. US

자, 저런 사실들 중 무엇을 취사 선택하느냐의 정치적 선택에 따라 미국산 쇠고기는 안전해지기도 하고 위험해지기도 한다. 소위 기준이라는 OIE에 따르면 미국산 쇠고기가 크게 문제가 되지 않는 건 틀림없어 보인다. 그런데 문제는 OIE 기준이 국제 표준이라면 왜 아직도 미국은 OIE 기준에 따라 쇠고기 수출을 하기 위해 전세계를 상대로 이렇게 열심히 싸우고 있을까? 표준이란 건 정의가 아니라 실천에 의해 결정된다. OIE 기준이란 정확히는 '최소한의 안전장치를 확보하기 위한 권고 사항'에 불과하다. OIE의 권고 사항보다 더 강화된 기준을 더 많은 나라들이 택한다는 사실 자체가 OIE의 기준이 어떤 표준일 수는 없음을 보여준다.

고로 '왜 우리만?'이라는 소위 선동은 아주 정당한 의문이다. 그러자 '우리만이 아니라니까, 정의로운 미국의 아름다운 미국인들도'라는 뻘소리를 하는 바람에 정부는 더 곤란해졌다. '미국인들이 미국산 쇠고기를 소비한다'는 사실은 전혀 과학적 논거가 아니다, 그냥 하나의 사실일 뿐이다. '미국이 OIE 기준을 따른다'는 것 역시 'OIE 기준을 과학적 기준'으로 만들어주지 않는다. 그것 역시 미국의 정치적 선택은 OIE 기준에 부합한다라는 하나의 사실일 뿐이다. 와중에 미국인들도 안 먹는 게 한국엔 들어온다는 사실이 뽀록나버렸다. 캐안습, 쯔쯔. "선동질해보기만 하다가, 선동된 사람들이랑 맞붙으려니 어찌할 바를 모르겠쿤화."


재협상 해주세요

앞서 말했듯, 과학은 현재 상태에서 광우병에 대한 의문 부호를 거두지 않았고, 어떤 쇠고기를 먹을까는 정치적 선택에 따라 결정된다. 정부는 과감하게 선택을 내리긴 했는데, 국민은 정부의 선택이 영 못마땅하다는 거다. 그래서 우린 외쳤다, 재협상 고고씽. 그런데 정부 우리 말 진짜 안 듣는다. 이젠 이렇게 외친다, 재협상 고고썅.


정부의 눈치 보기

일단 이명박은 곤란해졌다. 재협상하자니 미국의 눈치가 보이고, 안 하자니 국민의 눈치가 보인다. 그런데 어이없게도 이명박은 미국의 눈치를 보기로 한 것 같다. 현재 재협상을 하자고 할 경우, 우리가 부담해야 할 비용이 증가하는 건 틀림없다. 약속은 약속인 건 사실이다. 우리가 조낸 병신 같아서 손해보는 장사를 하고 나서 이제 와서는 무작정 판을 엎자고 할 순 없는 거니까. 미국측에서 아무 이유없이 재협상에 임할 리는 없고, 뭔가를 내주거나 협박을 하거나 둘중 하나는 해야 한다.

어라, 그런데 우리의 MB정부는 여기서도 또 어김없이 뻘소리. 재협상시 '미국의 경제적 보복'이 있거나, '경제적 충격'이 오고, '대외 신인도'가 떨어진단다. 약속했다가 변수가 생기면 서로 조정을 해서 약속을 바꿀 수 있는 거 아닌가? 약속을 바꾸는 거랑 약속을 파기하는 거랑 똑같다? 에이, 무슨 그런 말씀을... 우리가 말하는 재협상이란 외교력을 발휘해서 미국과 이야기를 다시 하자는 거잖아. 양자협상에서 타결된 내용을 양자가 마주 앉아 손을 보는데 대외 신인도가 왜 떨어지고 경제적 보복이 왜 있냐?

물론 미국에게 쇠고기 수출을 포기하게 만드려면 뭔가를 양보해야겠지. 그 뭔가는 경제적인 어떤 것일 가능성이 크다. 이는 우리 국민이 나눠져야할 부담이 될 것은 틀림없다. 이래서 정부가 삽질을 하면 국민이 고생하는 거다. 그렇지만 그건 보복과는 차원이 다른 거고, 그 뭔가를 최대화하는 게 미국측의 외교력이고, 그걸 최소화하는 게 우리측 외교력이다. 어쨌든 현재 국민의 요구는 미국과 협상 테이블을 사이에 두고 다시 마주 앉아서, 국민건강을 지키기 위한 추가 비용이 얼마나 들지 알아라도 보라는 거다. 그걸 안 하면서 '국민건강을 최우선으로 여긴다'는 이야기가 왜 나오니? 이뭐병.

어쨌든 정부가 삽질 한번 함으로써 국민건강이든 경제적 비용이든 우리 국민이 둘중 한가지는 부담해야 할 듯하다. 이렇게 추가적 비용이 발생하게끔 애초에 원인 제공을 한 것 자체가 현정부의 대표적 실정으로 역사에 남을 거란 사실을 겸허하게 받아들이고, 이를 통해 배워야 한다는 게 국민의 요구다. 그런데 이럴 때 자꾸 '경제적 충격' 같은 자극적 용어를 쓰며 불가능하다고 우긴다. 충격 같은 단어로 국민들에게 겁을 주려는 꼼수, 이런 걸 아주 비겁하고 부당한 선동이라고 하는 거다.

국가 신인도 이야길 잠깐만 하고 넘어가자면 국가 대 국가간에 신인도만큼 감상적인 개념은 없다. 국민들 눈치를 봐야 하는 정치인들에게 원칙을 꼿꼿하게 지키는 게 그닥 큰 장점이 못 되다보니, 그런 정치인들끼리 마주 앉아 해야하는 국가 대 국가간의 거래는 철저하게 실리를 쫓을 뿐이다. 용감하게 교토의정서 탈퇴하는 부시를 보란 말이지, 부시를, 응? 결국 문제는 현정부가 지금 누구의 실리를 쫓고 있느냐다. 지금 우리 눈엔 정부가 국민의 실리를 챙기고 있지 않다는 게 이 분노의 요체다.


6월 10일

6월 10일 100만 촛불집회를 추진하며 국민의 힘을 보여주자던 지난 10일의 대규모 집회는 제법 성공적이었다. 정확히 얼마나 많은 사람이 모였는지 알 수는 없지만, 25만 정도일 듯하다. 시청에서 출발해서 세종로 사거리로 올라가 양쪽으로 갈라져서, 서대문역을 지나 경찰청으로 내려와 시청으로 돌아오는 것과 안국역쪽으로 올라가는 두가지 동선을 합하면 약 5km, 거기에 노폭이 50m니까, 집회참가인구의 밀도를--시청쪽에선 조금 더 빽빽하고, 동선을 따라 시청역에서 멀어질수록 조금 옅어지니까--평균 1인/제곱미터로 잡으면 25만명이 나온다.

경찰은 여기서 3배수 정도 축소하다보니 8만이란 숫자가, 주최즉은 3배수 정도 과장하다보니 70만이란 숫자가 나오면서, 경찰과 주최측의 통계치가 10배-_-정도 차이나는 엽기적인 상황이 펼쳐졌다고 보면 되겠다. 어떻게 숫자를 세면 10배가 차이가 나냔 말이지, 정말. -_-,,

뭐, 25만이라면 100만엔 많이 못 미치지만 그래도 엄청난 숫자다. 수도권 인구 중 100명 중 한명이 거리로 나왔단 말이다. @.@ 이거 무척 놀랍긴 한데, 이게 놀라운 만큼이나 이 시점에서는 '이젠 뭘 어쩌지?'라는 의문이 남는다.


집회의 의미

이 논의를 더 전개시키기에 앞서 현 촛불정국에 대해 잘 정리된 글 두개부터 소개.

촛불정국 논쟁점에 대한 생각들
포스트 6.10

6.10 의 집회가 성공적이었다는 사실은 우리의 의지를 보여줬다는 상징성은 크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부가 근본적인 태도 변화를 보이지 않았다는 점에서, 대단히 역설적으로 상징성이 컸기 때문에 그만큼 정치공학적으론 득보다 실이 많다.

무슨 이야기나면 이명박 정부가 6.10 집회를 보고도 '사람이 많이 나오긴 했는데, 뭐, 그래봐야 얘네들이 뭘 어쩌겠어'라고 판단했다면, 대략 OTL. 지금부터는 뭘 해도 점강적(anticlimactic)일 수밖에 없다. 이를 피하려면 6.10 촛불집회보다 정부에 대한 공격의 수위를 높여 일회성 이벤트를 준비하거나, 지속성이 보장되는 시위의 방법을 찾아야 하는데, 둘다 쉽지 않다.

일단 광우병대책위는 이제 최후통첩이라며 열흘 이내에 정부가 재협상 의지를 보이지 않을 경우 촛불집회를 이명박 퇴진운동으로 확대시키겠다는 입장을 밝힘으로써 전자를 택한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이택광님의 이야기처럼 쇠고기 재협상을 외치던 많은 중간계급은 아직까지는 이명박 퇴진을 바랄 만큼 급진적이지 않다. 아직도 한나라당이 정부에 제대로 된 쓴소리를 안 하는 시점에서 탄핵 의지가 없는 것은 분명하고, 이명박 퇴진 운동에 한국의 많은 중간계급을 끌어들이지 못한다면 이 운동이 힘을 쓸 수는 없다는 사실은 광우병대책위가 둔 수의 분명한 한계다.

이 명박 퇴진 운동이 실효를 못 거둘 경우, 이명박 정부에게 압력을 가하기 위해서는 정부 정책에 대한 반대의사 표현에 대한 지속성이 어떤 형태로든 보장되어야 하는데, 일단 이게 촛불집회일 수는 없다. 일단 그래본 경험이 없기에 '계속 모이는 것만으로 정부를 변화시킬 수 있다'는 믿음이 생겨날 수 없다. 오히려 '아직도 이 꼴이면 결국 이래서는 아무것도 안 되는 거 아냐?'라는 불신이 자라기 시작할 거고, 그 지루함과 무력감은 거리에 나온 사람들을 집으로 되돌려 보낼 거다. 거기다가 앞서 말한 퇴진 운동이 본격적으로 전개될 경우 자신의 정치색과는 맞지 않다고 판단한 중간계급의 이탈은 생각보다 빠를 수도 있다.

게다가 일단 여름 무더위라는 큰 복병이 도사린 상태에서 매일밤 몇천-몇만명의 사람들이 거로리 모이는 것을 체력적으로 견뎌낼 수 없다. '광우병'이라는 개인의 안위에 대한 문제로 결집된 이 거대한 인파는 체력적 고갈 상태에서 자기자신을 끝없이 내던지며 정부와 투쟁할만큼 절박하지 않다. 이 절박함의 결여는 중간계급이 이명박 퇴진을 절실히 바랄 정도로 급진적이지 않다는 점과도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


정부의 고집

국민들이 쇠고기 재협상을 요구하며 한달이 넘게 진행하고 있는 촛불집회에도 불구하고 정부는 꿋꿋하다. 추가협상, 자율규제, 가트 협정 등 온갖 용어와 수단을 동원해가면서 이 촛불을 끄려고 하고 있지만 정작 '재협상'이란 상황만큼은 기를 쓰고 피하고 있다. 정부에서 내놓은 재협상에 가장 근접한 해법은 실질적 재협상이다. 이명박 정부는 왜 이렇게 고집을 부릴까?

해답은 FTA라는 세글자에 담겨 있다. 현정부에 FTA를 포기할 수는 없다는 내부적 방침이 있지 않나 싶다. 쇠고기 재협상을 하려면 미국에서 요구할 카드는 FTA 포기 내지는 FTA 재협상일 가능성이 크다. 그런데 현재 쇠고기에 대한 국민의 반응과 정부에 대한 신뢰를 감안했을 때, 국민들이 안전한 쇠고기를 위해 FTA를 포기하자고 할 가능성이 있다는 게 두려운 듯.


이젠 뭘 어쩌지?

커다란 선거가 눈 앞에 없는 현시점에서 제도 정치에는 답이 없다가 답이다. 이게 바로 이명박이 말한 '소나기는 피한다'는 상황 판단이 나올 수 있는 이유다.

그렇다면 현재로서의 최선책은? 정부로부터 촛불 집회의 이슈 및 주도권 탈환이다. '집회의 배후를 밝히라'는 이명박의 뻘소리에 대한 '촛불집회의 배후는 바로 이명박'이라는 우리의 답은 이 집회의 주도권이 전적으로 우리에게 있지만은 않다는 점을 상징한다. 현재 촛불집회에 결집된 세력의 주장은 쇠고기를 큰 축으로 해서, 대운하, 공기업 및 공공서비스 민영화, 공교육 정상화를 사칭한 비정상화 반대 등 정부의 정책적 삽질에 대한 반대가 주를 이룬다.

아무래도 정부에서도 예측 가능한 이슈들만 파고들 경우, 정부에서는 수비하기도 쉽다. 지금처럼 일단 보류라며 한발 물러서면 그만이니까. 그래서 이쯤에서 이슈를 탈환해올 필요가 있다. 예를 들면 이 기회에 국민소환제 채택이나 집시법 개정 같은 정치적 문제를 공론화하는 거다. 이번 촛불 집회의 경험에서 '국민의 힘'을 읽는 사람들이 많다. 그렇지만 현재 그 한계도 분명하다. 한가지는 우리 손으로 뽑은 국민의 대표자들이 국민의 의사로부터 멀어지는 경우에도 우리 손으로는 벌할 수 없다는 점은 대규모 집회에도 불구하고 일말의 무력감을 느끼게 만든다.

또, 다수의 국민이 한 자리에 모여 정치적 의사 표현을 할 자유를 불법으로 규정한 현행법으로 인한 공권력과의 소모전을 많은 이들이 경험한 지금이 집시법 개정을 공론화할 적기다. 다양한 이슈의 배치는 집회를 토론장으로 바꿈으로써 지루함을 덜어줄 수도 있다. 오늘 집회에서 광장 토론회가 열린 것은 그런 의미에서 대단히 고무적이다.

정부에서 예상치 않았던 정치적 잉슈들을 전면에 배치하여 정부를 한번 흔들어 보는 거다. 이에 따른 정부의 대응 속에서 우리에게도 다음 수가 열릴 수 있다. 또, 이를 통해 대의 민주주의를 견제하는 직접 민주주의의 작동법이 발결된다면 그게 이번 촛불집회의 큰 수확이다. 그 전까진 25만이 모인 지난 10일의 집회에 그 숫자의 상징성 이상은 없는 것 같다.


@ 국민들에게 맨날 끌려 다니느라 지지율 상승이라고는 없는 민주당이 현재 등원 타이밍과 방법을 고심하고 있는 듯한데, 이럴 때 이런 이슈를 갖고 국회로 들어가는 영리함을 발휘할 줄도 모르니 어쩌면 좋으냐. 정말이지 한나라당이고 민주당이고 대한민국의 거대정당들은 답이 없다, 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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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주말(5월 31일)의 집회에서 내가 이명박 정부를 향한 국민의 분노를 체험했다면, 어제(6월 7일) 저녁의 집회를 통해서는 전경들의 분노를 체험해야만 했다.

우리가 이명박 정부에게 분노하는만큼 전경들 또한 분노로 가득차 있었다. 그들 모두가 그랬는지는 알 수 없지만, 적어도 집회 해산을 위해 교보빌딩쪽 인도로 쏟아져나온 전경들 중 선두에 섰던 이들은, 우리들과 방패 하나만을 사이에 두고 서로 밀고 밀리는 몸싸움을 하던 그들의 눈빛과 욕설은, 분노로 가득차 있었다.

그 분노는 전경차 위에서 오와 열을 맞춰 밤새도록 피곤과 싸워야 하는 짜증스러운 상황에 대한, 또는 군대든 경찰이든 끌려가 젊음을 바쳐야 하는 대한민국의 솥같은 상황에 대한 막연한 분노가 아니었다. 이명박이나 어청수의 뒤치닥거리를 온몸으로 하고 있는 이들은 이명박도 어청수도 아닌 자신들이라는 부조리한 상황에 대한, 자신들과 관계없는 싸움에 자신들이 '왜' 불려나와야 하는가에 대한 의문으로 들끓는 분노가 아니었다. 오히려 그들의 그런 부조리한 상황에 대해 분노하는 것은--적어도 물리적 충돌이 일어나기 전까지는--집회참가자들의 몫이었다.

그 분노는 매우 구체적인 대상을 향한, 분노라기보다는 차라리 증오였다. 그 증오는 대단히 사적이어서, 집회참가자들을 정확히 정조준하고 있었다. 그들의 입에서 섞여 나오는 육두문자는--시위가 불법이냐 합법이냐 따위엔 관심도 없이--시민을 향해 폭력을 행사해야 하는 불합리한 상황을 안타까워하며 배설되는 것이 아니라, 진압하라는 명령을 받은 바로 그 시민들이 그냥 밉기 때문에 내뱉어졌다. 그 증오 속에서 지난주 시위에서 한 여학생의 머리를 군홧발로 짓밟아 문제가 됐던 그 상황에 대한 반성이 자리할 여지는 없었다. 그들은 그렇게 하지 않으면 그들의 밤잠을 방해하는 우리의 나쁜 버릇을 고칠 방법이 없다고 정녕 믿고 있었음에 틀림없다. 그 증오는 그래서 위협적이진 않았지만 무척이나 위험했다.

그 증오에 맞서 우리는 무기력했다. 경찰 버스에 올라타고, 버스를 끌어내는 등 바리케이트를 뚫으려 할 때엔 잠시 과격해지기도 했지만, 경찰이 강제 해산을 작정하고 거리로 쏟아져 나오자 집회는 순식간에 와해됐다. 증오로 똘똘뭉쳐 사람들을 몸과 방패로 밀고 들어오는 그들을 상대로, 그들을 저지해야 한다는 안타까움과 격렬한 몸싸움으로 부상자가 나올 염려가 교차하는 '우유부단'함은 애초에 힘을 발휘할 수 없었다.

이런 우리의 증오의 부재에 대해 혹자는 그 증오가 일방적이기만 한 것은 아니라고 한다. 이네들의 말대로 대부분의 집회 참가자들은 경찰의 그런 증오에 대해, 우리가 왜 너희들과 싸워야 하는지에 대해 안타까와할지라도, 우리들 중에는 그들이 우리를 향해 가진 증오를 고스란히 그들을 향해 집중하고 있는 이들이 있고, 설령 그들을 증오하진 않더라도 그들을 움직이는 공권력을 향한 분노를 그들을 향한 폭력으로 표현하는 것 외의 방법을 찾지 못하는 이들도 있었다. 그렇지만 이런 증오는 간헐적이고 비조직적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의 이런 분노와 폭력에 손가락질을 하는 것은 집회 전체를 무력화하는 도구로 사용된다. 그리고 우리는 한편으로 집회를 무력화하는 이들의 무관심에 손가락질을 한다.

그렇지만, 우리가 이렇게 증오와 분노의 소용돌이에 휘말려 상대를 비난하며 분열하는 상황의 최대 수혜자는 다름 아닌 현정권과 공권력이란 사실에 우리는 충분히 민감하지 않은 듯하다. 우리의 의지를 꺾으려는 경찰의 태도는 부당하다. 그 부당함에 맞서 싸우는 것이 비록 정당하지만, 그 과정에서 우리 스스로 우리가 얻고자 하는 것이 무엇인지 잊는다면 우리는 그 싸움을 할 이유가 없다.

'경찰은 여러분의 적이 아닙니다'라는 얼굴을 드러내지 않은 여경(아마도 경찰이겠지?)의 안내방송은 이 모든 부조리를 함축하고 있었다. 경찰이 우리의 적이 아니라면, 우리 또한 경찰의 적일 수 없다. 그렇다면 왜 우리를 막아서는가?

경찰이 우리의 적이 아니라고 말하는 그 이면엔 우리로 하여금 우리가 그 자리에 있는 경찰만을 상대로 투쟁하길 바라기 때문이리라. 그래서 그들은 우리에게 침도 뱉고, 오줌병도 투척한다. 그 자릴 지킨 경찰 개개인이 우리를 상대로 갖고 있는 사적 증오를, 우리 또한 그들을 향해 갖길 바란다. 매일 밤 증오를 그들을 향해 겨냥하며 그들과만 싸움을 벌이는 동안, 하루 하루 이명박에 대한 분노를 전경 개개인에 대한 사적 증오로 바꿔가는 동안, 우리 중 일부는 지쳐서, 일부는 원래의 목적이 무엇이었는지 잊어서 거리를 떠나게 될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그 자릴 지킨 경찰 한사람 한사람을 향해서가 아니라, '경찰은 여러분의 적이 아닙니다'라는 그들의 모순적 한마디를 향해 분노해야 한다. 청와대 앞에 발을 딛고 서고, 그 앞에서 깃발을 휘날리고, 확성기를 통해 이명박의 퇴진을 요구하는 것 그 자체가 우리의 싸움이 아니다. 청와대 앞에 서서 소리를 외치는 것은 상징일 뿐이다. 이명박이 국민의 목소리에 귀기울이는 정도를 걷는 것 이외의 해법으로는 우리 분노의 불길을 끌 수 없다는 사실을 그에게 확인시켜주지 못한다면 아무 의미가 없는 상징.

청와대를 한번 가기 위해 경찰의 바리케이트를 뚫느라 우리의 싸움이 무엇인지 잊느니, 경찰의 바리케이트 앞에서 그냥 밤새도록 연좌시위만 하는 편이 낫다. 연좌만 하고 있기 지겨우면 노래도 부르고, 춤도 추고, 서로 이야기도 나누고, 그 앞에서 축제를 하자. 서로가 서로에게 우리가 그 자리에서 무엇을 하고 있는지 상기시켜주며, 밤새도록 그렇게 떠들고 놀다가 아침에 경찰이 강제로 우릴 쫓아내면 다음날 저녁 다시 돌아오면 된다.

오늘, 혹은 6월 10일, 그게 아니라면 그후의 어느 하루, 청와대를 가는 것보다도 중요한 건, 내일까지, 모레까지,  그리고 이명박이 본인의 과오를 진심으로 인정하는 그날까지 촛불이 꺼지지 않는 거다. 이명박을 청와대에 입성시킨 것은 우리라는 사실에 대한 우리 자신들의 뼈저린 후회와 반성을 통해 우리가 우리의 실수를 인정할 때, 우리가 이명박 정권의 실정에 대한 책임을 묻는 행위는 그와 동시에 우리 자신들의 책임을 묻고 있는 것임을 보여줄 때, 이명박 또한 우리가 오늘 냄비가 파르륵 끓듯이 열받아서 거리로 나선 게 아님을 알 것이다. 촛불은 물과 소화기로 끌 수 있을지언정, 우리 마음의 분노는 물로도 소화기로도 끌 수 없음을 알 것이다.


@ 이번에도 아고라에 올렸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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