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산'에 해당되는 글 2건

  1. 2006/10/16 군대 vs 출산: 이해와 오해 2
  2. 2006/10/13 군대 vs 출산: 이해와 오해 (2)
자, 하던 이야기 오늘 끝장을 보자.

오해 3) 남성에게는 병역의 의무가, 여성에게는 출산의 의무가 있다.

이 글의 제목으로도 뽑았는데, 한국 사회에서 페미니즘 논란의 핵심 키워드는 단연 '군대 vs 출산'이다. 사실은 이 이야기에 도달하기 위해 쓰기 시작했던 글이라 제목을 저렇게 뽑았던 건데 지난 글에서는 미처 다 정리를 못한 까닭에 ileshy님께 낚시성 글이라는 지적을 당하기도 했었다. --a 뭐, 낚시성이었던 게 사실이니 'ileshy님 나빠요!'라고 말해야겠다거나 그런 건 아니다. :-)

각설하고, 사람들이 저지르는 흔한 오해 중 하나는 군대와 출산이 대칭 관계에 있다는 것이다. 물론 가부장제의 기원까지 파내려가다보면 이런 대칭 관계는 자연스럽게 성립하지만, 인간의 수명이 7-80세에 다다르면서 여성이 출산과 육아에 대한 부담을 덜 수 있고, 2차-3차 산업이 산업의 중심으로 자리잡아 가면서 물리력에 의존하는 노동의 가치가 낮아진만큼 남성이 사회활동에 특별히 우위를 점할 이유가 없어진 오늘날 이런 대칭 관계에 얽매이는 것은 사회 변화를 직시하고 이에 적응하는 순발력을 보여주지 못하는 인간의 어리석음에 기인한다. 그리고 신기하게도 이런 오해로 인한 피해는 남녀 모두가 입는다. 우선 출산의 의무. 앞서도 얘기했다시피, 인간의 평균 수명이 2-30세이던 시대에는 여성의 제일과제는 출산과 육아였다는 사실은 그리 놀랍지 않다. 수명이 조금 길어져 평균 수명이 40세 근처를 맴돌던 조선 시대까지만해도 다산의 필요는 어느 정도 있었고, 아이를 낳지 못하는 여자는 사람 취급을 못 받았다. 여기에 가부장제의 폐단이 끼어들면서 아이를 못 만드는 남자는 비난을 면하는 참 우스운 상황이 펼쳐진다. 아무튼 워낙에 오랜 역사에 걸쳐 종족 보존의 책임을 여성에게 지워놓고보니, 아직도 여성은 아이를 낳을 의무가 있다는 인식이 지배적이다.

오늘날 '7-80살 사는 게 일도 아닌 세상에서는 많이 낳아놓고 보면 그중에 몇명은 살아남겠지'라는 종족 보존을 위한 다산의 필요는 사라졌다. 그러나 사람이 오래 살다보니 이제는 다른 이유로 출산의 필요성이 생겼다. 그 이유란 이른바 '고령화 사회'다. 전체인구 대비 65세 이상 인구가 7%이상이면 고령화 사회, 14% 이상이면 고령 사회, 20% 이상이면 초고령 사회로 정의하는데, 우리 나라는 현재 고령화 사회단계에 있다. 65세 이상의 노령인구의 증가는 비노동인구의 증가와 맞물리기 때문에 이들의 부양에 대한 사회적 책임이 증가하게마련이다. 이에 대한 해법 중 하나는 출산률 증가를 통한 노령화 속도를 늦추는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여성들이 아이를 낳아야 한다'라는 생각은 '신체의 자유'에 대한 몰이해에서 출발하는, 출산에 대한 심각한 오해 중 하나다. 아이를 안고 있는 9개월이란 짧지 않은 기간 동안 여성은 상당한 정도의 신체적 제약을 받게될 뿐만 아니라, 그 이후 딸려올 육아에 대한 책임을 지워놓는 사회 분위기 속에서 이에 대한 기회비용의 고려 없이 '여성은 아이를 낳아 키워야 한다'라고 말할 수 없다. (사실 그 이외의 모든 가사 노동의 책임이 여성에게 지워지는 것도 대부분의 가사일을 육아의 일부로 무책임하게 귀속시키기 때문이다.) 물론 출산과 육아에 따른 사회가 제공하는 반대급부가 있다할지라도 이에 대한 저울질은 철저하게 여성 개인의 몫이지 사회의 몫이 아니다.

예를 들어보자. 개인과 사회의 갈등에 대한 이야기를 할 때면 항상 드는 예인데, 10명이 타고 가던 배가 갑자기 가라앉기 시작했는데, 이주 한명이 배에서 내리면 가라앉는 걸 멈출 수 있다고 하자. (이런 일이 가능한가에 대해서는 논하지 말자. -_-a) 다행히도 구명조끼가 하나 있다. 그래서 10명 중 한 사람은 구명조끼를 입고 배에서 내려서 기다리면 배를 탄 나머지 사람이 목적지에 도착한 후 이 한 사람을 구하러 오기로 합의를 봤다. 그런데 정작 배에서 내리겠다고 나서는 사람이 없다. 이때, 이 10명이 택할 수 있는 합리적인 방법은 나머지 9명이 배에서 내린 사람에게 합의된 형태로 보상을 하는 거다. 예를 들어 9명이 10원씩 걷어서 90원을 주는 방법을 생각할 수도 있고, 9명이 돌아가면서 식사를 한끼씩 제공, 총 9끼의 끼니를 해결해주겠다고 하는 방법도 있을 수 있고, 아니면 목적지에 도착해서 9명이 힘을 합쳐 집을 한채 지어주겠다고 할 수도 있다. 방법은 무엇이든 좋다. 10명이 이런 저런 대안을 내놓는 와중에 어느 시점에서 한 사람이 '아, 그 정도 보상이라면 내가 배에서 내리겠소'라고 말할 거다. 이때, 구명조끼를 입고 구조를 기다리는 고생에 대한 보상에 대한 저울질은 각 개개인의 몫이다.

그런데 만약 10명 중 9명이 담합을 한 후, 나머지 한명에게 '우리가 나중에 10원씩 걷어서 90원 줄 테니 배에서 내려'라고 말한다면? 그런데 이 한 사람이 '싫다'고 한다면? 9사람은 이 한사람의 의견을 존중해야 한다. 그런데 그러지 않고 '90원씩이나 준다는데 저 하나 편하자고 우릴 다 같이 죽일 작정이야? 이런 이기적인 새X를 봤나'라며 배에서 내릴 것을 강요할 수 있다. 이는 '다수의 이익을 위해 희생할 줄 모르는 소수'를 '이기적인 존재'라고 비난함으로써 소수자의 선택의 폭을 제한하는 대단히 비열한 방법이다. 이게 비열한 짓인 이유는, 10원씩 걷어서 90원을 주겠다고 한 9명이 정녕 90원을 받는 것이 찬물에서 덜덜 떠는 것보다 낫다고 판단했더라면 스스로 지원했을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이 9명도 결국은 90원을 받고 찬물에서 덜덜 떠느니 10원을 지불하고 배를 타고 목적지에 도착하는 것이 낫다는 판단이기 때문에 '결국은 똑같이 이기적인 판단'인 것이다. 이때 비용은 90원든 90억원이든 마찬가지다. 핵심은 '내 신체의 자유의 가치'는 '내가 판단'할 수 있어야 한다는 점이다.

물론 이 예를 출산 문제에 완전히 적용시킬 수는 없다. 왜냐하면 남자는 생물학적으로 아이를 낳을 수 없기 때문에 앞선 예에 적용해보면 아무리 배에서 내리고 싶어도 내릴 수 없는 상황인 셈이다. 엇, 상황이 조금 복잡해졌다. 그럼 이야기를 조금 바꿔보자. 갑과 을, 2명이 배를 타고 가다가 한명이 내려야 하는 상황이 펼쳐졌다고 해보자. 그런데 이중 갑만 목적지를 알고 있고, 그 이유야 어쨌든 갑이 을에게 목적지를 설명할 수 없다고 하자. 그러면 '당연히 을이 배에서 내려야 한다'고 생각하기 쉽다. 그런데 을이 배에서 내리지 않겠다고 한다면? 을이 이기적인 걸까? 을의 판단이 합리적이지는 않지만 이기적이지는 않다. 왜냐하면 을이 배에서 내리지 않음으로써 을이 취할 수 있는 이득이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갑이 어떤 형태의 보상을 제안한다면? 이 보상의 정도에 따라 을이 배에서 내릴 수도, 안 내릴 수 있다. 이 과정에서 을은 자신이 받아낼 수 있는 최대한의 보상을 받아내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어느 시점에선가 갑이 '이 정도면 충분하잖아. 너가 목적지를 알았더라면 난 이 정도 받고 충분히 배에서 내렸겠다'라며 을을 물에 빠뜨리고 가버린다면? 이 역시 온당하지 않다. 왜냐하면 이런 갑의 태도에는 '둘다 살아남는 것에 대해 을은 같은 정도의 갈망이 없다'는 생각이 깔려 있기 때문이다. 바꿔 말하면 '나는 우리의 생존이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우리의 생존을 위해서라면 이 정도 보상으로도 만족할 수 있지만, 너는 우리 공동의 생존에 관심이 없기 때문에 이 기회에 보상만 챙기려 한다'는 인식이 밑바탕에 깔려 있다는 것이다.

다시 출산 이야기로 돌아가보면, 여성에게 출산은 의무가 아니다. 저출산으로 인한 사회적 비용 증대가 걱정된다면 여성들이 출산으로 인한 피해가 없도록 제도적 장치를 마련함으로써 출산을 장려해야한다. 근데 이건 아무리 봐도 미봉책으로밖에 안 보이는데, 많이 낳기만 한다고 해결되냐면 그건 또 아닌 게, 얘네들이 나이들어 일 안 하고 놀기시작하면, 얘네들 떠받칠 애들은 더 많이 낳아야 되니... -_-a 출산률 증가가 고령화 방지에 도움이 되는 내가 미처 모르는 핵심적인 요소가 있나? -_-a 또 한가지, 평균수명의 증가에 따라 퇴직 정년도 자연스럽게 늘리는 방법을 생각해 볼 수 있는데, 노후를 편하게 보내려는사람들의 의도에 반하는 감이 있는데다가 안 그래도 일자리가 없어서 실업률이 치솟는 상황에서, 정년 퇴직 늘려봐야, 나이든양반들이 빠져나가지 않아 젊은 놈들이 놀기 시작하면 그 비노동 인구를 늙은이들이 고스란이 먹여 살려야 되는 코메디 같은 상황이펼쳐지니... 아, 골 때린다. -_-,, 뭐, 끝에 가서는, 인구가 줄어들지는 않게 인구 증가율을 현재 수준이나 이보다 약간 높은 수준으로 묶어놓고, 부의 효과적인 재분배, 바꿔 말하면 연금제도 개편이 있어야 한다고 본다. 구체적인 해법? 그런 거 이몸이 알면 정부에서 이미 모셔 갔겠지. 그렇다, 탁상공론만 일삼는 무책임한 몹쓸 블로거, 여기있다. -_-)/

아무튼 이야기를 조금 바꿔보자. 그러면 군대는? 병역 의무도 사회적 필요에 따른 '신체적 자유'의 구속 아닌가? 맞다. 그래서 원칙적으로는 징병제에 반대하지만, '남북이 대치하는 특수한 상황에 대한 고려에 따라 필요한 수준의 병력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징병제가 필요하다'는 주장에 수긍할 수 있다. 전쟁의 위험은 단순한 사회적 비용이 아닌 생존과 직결된 문제다보니 이를 위한 일정 수준의 신체적 자유 제한은 불합리하다고만 할 수 없으니까. 반면에 저출산으로 인한 노령인구의 부양에 필요한 사회적 비용의 증가를 막기 위해서는, 여성에게 출산으로 인한 불이익이 돌아가지 않는 제도적 보완에 필요한 사회적 비용을 지출하여 해결해야 하는 것이다. 그 둘 사이의 비용이 경쟁 관계에 있을 때, 이 둘 사이에 임계점이 존재하고, 이를 기준으로 출산에 대한 보상의 정도에 대한 사회적 합의를 도출하는 것이 합리적이다.

그리고 바로 이런 이유 때문에 출산과 군대를 대칭 관계에 둠으로써 남자들도 피해를 본다는 거다. 여성들에게 출산의 부담을 강하게 지우는 사회 분위기 속에서 여성운동이 싹트기 시작하자, 어느 녀석 머리에서 나온 논리인지는 몰라도 '애 낳고 기르는 게 힘들다고? 그래서 너희가 애 낳는 대신 우린 군대 가잖아!'라는 휘황찬란한 논리가 탄생했다. 여성들이 받아온 사회적 불이익에 대한 불만을 '우리도 고생한다'는 논리로 물타기하려던 속이 아주 빤히 보이는 수작이었는데, 이게 사실 남자들 입장에서는 자충수다. 왜냐하면 이 논리는 '군대 가는 게 힘들다고? 그래서 우린 애 낳아 키우잖아!'라고 고대로 부메랑이 돼서 날아오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부메랑 이면에는 '여성들이 출산의 의무로 부터 피해를 본다'는 인식이 깔려 있다. 즉, 여성들에게 사회가 출산에 대한 압력을 가함으로써 일차적으로 여성들이 피해를 보고, 이 피해는 또 고스란히 병역의 의무가 지닌 불합리함을 희석시키는 데에 사용됨으로써 남성들이 피해를 보는 것이다.

정리하자면, 여성들에게 출산의 의무가 있다는 사회적 인식은 대단히 부당하고 불합리한 인식으로, 이 오해를 불식시키려는 사회적 노력이 필요하다. 물론 이로 인한 출산율 저하는 다양한 출산 장려 정책을 통한 사회적 비용을 통해 해결해야 한다. 그렇게 함으로써 여성들은 신체의 자유의 본질에 보다 접근할 수 있고, 반면에 남성은 병역의 '의무'가 지닌 불합리성을 보다 효과적으로 노출시킬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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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를 건전하게 변화시키고자 하는 노력은 기본적으로 약자를 보호하기 위한 노력이다. 대학 시절 전공과목 교수님 중 한분이 첫수업 시간에 성적 산출 기준을 밝히며 이런 이야기를 하신 적이 있다. '중간고사, 기말고사에 비해 숙제 비중이 조금 큰데, 그게 다 이유가 있어요. 시험은 머리가 좋으면 평소에 꾸준히 공부를 안 해도 잘 볼 수 있거든요. 그렇지만 숙제는 평소에 틈틈이 해야되는데, 머리가 좋은 사람보다 평소에 열심히 공부하는 사람한테 성적을 잘 주고 싶어요. 왜냐하면, 머리가 좋은 사람은 머리가 좋기 때문에 성적이 나빠도 성공할 수 있그든요.' 이 공감이 갈듯 말듯한 이야기를 갑자기 왜 하냐고? 약자를 보호해야 하는 이유는 강자는 강자이기 때문에 특별히 보호받지 않아도 된다는 기이한 논리를 펼치기 위해서다. 사실 이런 주장을 하는 데에는 제도적 보호 장치의 효과에 선행해서 존재하는 강자와 약자가 분리돼 있다는 인식을 필요로 하고, 이런 주장은 조금 모호한 감이 있다. 이 이야기는 이것 자체로 긴 이야기니 다음에 따로 하기로 하고 일단은 넘어가자, 하핫. ^^,,

아무튼 우리 사회의 약자는 노동자 혹은 저소득층, 장애인, 여성, 외국인 등으로 대변된다. 이중 '여성'이 다른 약자들에 비해 구별되는 것은 여성이 입는 피해는 '소수자에 대한 소수의 횡포와 이 횡포에 대한 다수의 무관심'에 기인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대한민국 인구의 절반이 여성이란 점에서 숫자상으로 여성은 소수자가 아니지만, 생물학적 차이에서 기인한 사회 구조가 오랜 시간 동안 고착되면서 사회의 무게 중심이 한쪽으로 기울어버렸다는 점에서 특이한 케이스라 할 수 있다. 그리고 이런 장기간에 걸친 남성중심적 사회가 고착되는 과정에서 남녀 서로간에 다양한 오해가 세습되면서 문제가 굉장히 복잡해졌다. 이런 갈등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역시나 상대방에 대한 이해가 선행되어야 한다는 생각에, 우리가 아무렇지도 않게 세습한 이런 오해들을 하나씩 파헤쳐볼까 한다.


오해 1) 출산과 육아의 책임은 당연히 여성의 몫이다.

아직까지도 많은 사람들ㅡ남성은 물론 많은 여성들도ㅡ'여성의 제일과제는 아이를 낳고 돌보는 것이다'라고 믿고 여기서 다시 '아이를 낳고 돌보는 책임은 전적으로, 혹은 대부분 여성에게 있다'라는 결론에 도출한다. 그런데 이게 사실일까? 한번 뜯어보자.

남성과 여성의 생물학적 차이는 꽤나 많아 보이지만, 따지고 보면 이는 여성만이 아이를 낳을 수 있다는 점 하나로 수렴한다. 성적 욕망과 번식에 대한 욕구가 기이하게 맞물려 뭐가 어느쪽인지 분간이 안 되는 상태에서 씨만 뿌리는 남자들에 비해 수태부터 출산까지의 '임신'이라고 불리는 9개월간 2세에게 토양과 양분을 제공하는 여자가 자신의 아이에게 흔히들 '모성애'라고 표현하는 특별한 책임감을 느끼는 것은 그리 이상한 일이 아니다. 게다가 분유라는, 관점에 따라서는 꽤나 부자연스러운, 발명품(?)이 나오기 전까지는 출생 이후에도 한동안 아이에게 모유를 통한 양분 공급을 하게 돼 있는 생물학적 역할 분담은 꽤나 자연스럽게 육아의 책임을 여성이 떠안게 만들었다. 반면에 여성에 비해 강한 물리적 힘을 지닌 남자들은 수렵, 채집 등의 원시적인 식량 수급 방법은 물론이고, 그 이후 농경 사회의 발달 이후에도 농사라는 물리적 노동을 책임지게 됐다.

그런데 이런 생물학적 기능의 차이에 따른 자연스러운 역할 분담이 구조화되면서 문제가 발생한다. 예를 들어 '남자들이 전반적으로 여자들에 비해 물리적 노동에 적합하다'는 사실과 '대다수의 남자들에 비해 물리적 노동에 더 적합한 여자가 존재한다'는 사실은 전혀 상호배타적이지 않다. 그렇다면 이런 여자가 존재할 때, 이런 여자로 하여금 노동을 하게 하는 것이 사회적으로 유용하다는 판단을 할 수 있다. 그런데 왜 우리는 이렇게 꽤나 자연스러워 보이는 판단을 왜 하지 못하고 남녀의 역할 분담을 이토록 구조화시켰을까?

아마도 종족 보존에서 답을 찾을 수 있을 듯하다. 여기에는 인간의 수명이 굉장히 짧았다는 점이 크게 작용하는데, 수명이 짧은 상태에서 종족 보존을 위해서는 다산의 사회적 가치가 증가한다. 그런데 개나 고양이처럼 한번에 여러마리를 낳지 못하는 인간에게 있어서 다산의 부담은 고스란히 여성이 지게 돼 있다. 평균 수명이 2-30년인 상황에서, 일년에 한명씩 낳아도 8-9명의 아이를 낳으려면 그것만으로 10년 세월이다. 거기다가 모유 제공을 비롯한 육아의 부담까지 지다보면 결국 여성이 사회에 대해 져야하는 책임은 평생 철저하게 출산과 육아로 한정되고 만다. 그리고 여성이 출산과 육아를 위한 책임을 지고 있는 동안 남성은 당연히 종족 보존을 위한 기타 과제, 즉 의식주의 해결을 위한 노동에 종사를 해야 한다. 종족의 보존 자체가 사회적 과제로 대두되어 있을 때, 노동을 잘 하는 여성의 사회적 가치란 없고, 노동을 못하는 남성의 사회적 가치 역시 없다.

그런데 의학의 발달로 인간의 평균 수명이 80살에 육박한 오늘날 다산의 필요성 역시 급격히 감소했다. 따라서 여성이 당연히 출산과 육아에 평생을 바쳐야할 필요 역시 없다. 아주 극단적으로, 여성이 출산과 육아의 책임을 대부분 져야 한다고 할지라도, 아이를 낳아 길러야 하는 30대부터 40대 중반까지를 제외하고도 30년 이상의 삶을 자기 자신을 위해 투자할 수 있는 시간을 갖게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성의 제일과제는 출산과 육아다'라고 말하는 것은 공정하지 않다.

이렇게 '여성이 출산과 육아에만 전념할 이유가 없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나면, 여기서부터 자연스럽게 '여성의 사회 활동의 필요를 인정해야한다'는 결론을 도출할 수 있다. 이 결론으로부터 우리는 다시 '노동의 책임'을 남성이 모두 질 이유가 없다는 판단과 남성이 노동에만 종사할 이유가 없다는 판단을 자연스럽게 할 수 있다. 즉, 여성이 출산과 육아에 전념해야 하는 시간이 줄어듦과 동시에 육아에 남성이 할애할 수 있는 시간은 자연스럽게 늘어난다. 그 이외의 가사업무 분담은 이와 동시에 자연스럽게 따라와야 함은 두말하면 잔소리다.


오해 2) 가부장제는 남성에게 유리하기 하다.

앞서 말한 역할 분담은 많은 경우 사회적 필요에 따라 자연스럽게 발전한 형태로 큰 문제가 없어 보인다. 그런데 이런 역할 분담이 어째서 가부장제로 대표되는 남성중심적 사회로 발전한 걸까? 앞서 말한 성에 따른 역할 분담이 종족 보존에 대한 필요에 의해 구조화 되었다면, 성적 불평등에 대한 해답은 개체 보존에 대한 필요에 있다. 종족 보존의 핵심은 생식에 있지만 개체 보존은 의식주의 해결에 있다. 그런데 이런 의식주 해결에 대한 책임을 남성들이 지는 것은 개체 대 개체로서의 남과 여의 관계에 있어서 남성에게 권력을 쥐어준다. 쉽게 말하면 먹을 것을 갖고온 남자에게 여자가 의지할 수밖에 없다는 이야기이다. 남성이 이런 권력 구조에서 우세를 점하면서, 가장으로서 지니는 권력의 세습을 남자들이 독점하는 소위 가부장제가 탄생했다. 그리고 이렇게 발생한 힘의 불균형이 오늘날 우리가 당면한 모든 남자 대 여자의 문제를 낳았다.

일전에 썼던 글Justin님이 댓글로 다셨듯이 시스템 초기에는 인간의 의지가 들어가지만, 시스템이 어느 저도 정착이 되고 나면 인간이 시스템의 지배를 받게 된다. 무슨 이야기냐면, 의학의 발달로 다산의 필요가 급감함에 따라 여성의 출산과 육아에 대한 부담이 급격하게 줄었고, 산업혁명으로 인한 기계의 발달로 인간의 물리적 노동력의 가치가 급락함에 따라 남성이 여성에 비해 사회 활동에 대해 지니고 있던 우위도 급격하게 줄었다. 이런 변화들을 통해 여성의 사회활동이 확대될 수 있는 기본적인 조건들이 만족됨에도 불구하고, 이미 구조화된 사회가 남성에게 쥐어진 권력은 여성이 가정을 벗어나는 데에 커다란 굴레로 지워졌고, 아직까지도 사회적 문제로 남아 오늘날 소위 페미니즘이라는 거대한 사회운동의 탄생시켰다.

그런데 이런 페미니즘의 등장과 함께 발생한 오해 중 하나는 가부장제가 남성에게 이득만을 가져다 준다는 거다. 물론 권력을 세습하는 집단과 그렇지 못한 집단의 차이는 엄청나다. 그런 관점에서 남성이 여성에 비해 지니는 우위는 굉장하지만 이로부터 '가부장제 하에서 남성이 입는 피해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결론은 도출되지 않는다. 그렇다면 남성이 입는 피해가 뭐 있냐고? (나중에 조금 더 분명해지겠지만 사실 '피해'라는 표현에는 꽤나 심각한 어폐가 있다. --a)

언급했다시피 남녀간 역할 분담은 여성에게 출산과 육아에 대한 책임을 지웠다면, 남성에게 노동에 대한 책임을 지웠다. 이 노동에 대한 책임이 결과적으로 남녀간 힘의 불균형을 초래했지만, 오늘날 가족 부양의 '책임감'을 더 크게 느끼는 쪽은 여전히 대부분 남성이고 이는 상당한 부담으로 다가온다. 물론 여성운동을 하는 사람들의 주장은 '그래서 우리 주장의 요지는 그 책임을 우리도 나눠질 테니 그런 책임을 핑계로 우리 엿먹일 생각하지 말라'는 거 아니냐는 거다. 이 주장은 굉장히 합리적인 주장이 맞는데, 주장의 합리성과 별개로 현실적인 문제들이 또 존재한다. 대표적인 문제가 여성운동에 모든 여성이 인식을 같이하지 않는다는 것이 문제다. 오늘날 여성운동은 소수의 여성과 진짜진짜진짜 극소수의 남성 대 다수의 여성과 거의 모든 남성의 대결 양상을 띈다. 바꿔 말하면 '우리 여성들이 노동의 책임을 나눠질 테니'의 '우리 여성'이 사실 얼마 없다는 거다. 그러다보니 많은 남성들이 여성운동에 신뢰를 가지지 못한다.

이 대표적인 예가 바로 군대 문제다. 대한민국 헌법은 국방의 의무를 교육, 근로, 납세의 의무와 함께 국민의 4대 의무로 정했다. 이를 조금 더 자세히 살펴보자. 대한민국 헌법 제39조를 보면 1) 모든 국민은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 국방의 의무를 진다. 2) 누구든지 병역의무의 이행으로 인하여 불이익한 처우를 받지 아니한다라고 되어 있다. 국방의 의무는 전국민의 의무이지만 이 구체적 형태는 법률로 정하게 되어 있고, 그 법률은 신체 건장한 남성의 경우 병역의 의무를 지는 쪽으로 되어 있다. 이는 가부장제 하에서 가족부양의 '책임'을 남성이 진다는 인식이 표현된 구체적인 예다.

다른 예를 들어보자. 한쌍의 남녀가 소개팅을 한다. 이때 남자고 여자고 이런 고민 한번쯤 해본 적 있을 거다. 남자라면 '소개팅 비용 다 내가 책임져야 되나?', 여자라면 '남자가 돈 다 내는 거 보고 있으면 되나?' 이 고민을 하는 것은 우리 사회가 이미 '데이트 비용에 대한 책임이 전적으로 남자의 것일까?'라는 의심을 갖기 시작했다는 것을 뜻하지만 이는 동시에 '데이트 비용에 대한 책임이 남자의 것이다'라는 인식이 존재했다는 반증이다. 이것은 여성의 사회활동이 제약되어 경제적 능력이 없던 시대에는 철저하게 유효했던 인식이다. 이런 인식은 확실히 감소하고 있기 때문에 우리 사회가 올바른 방향으로 발전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아직도 경제적 책임에 있어서 남성들에게 약간의 부담이 더 지워져 있다.

물론 '어떤 책임(노동에 대한 책임) 덕분에 그로 인해 막대한 이득(가부장제 하에서 남성이 지니는 권력)을 얻으면서 그 책임에 대해 불평하는 것은 옳지 않다'는 주장은 논리적으로 합당하다. 조금 더 쉽게 체감할 수 있는 예를 들자면, 부동산의 임대인이 임차인에게 '시바, 건물 수리는 내가 다 해야 되잖아'라고 불평하는 것은 전혀 설득력이 없다. 그게 싫으면 건물을 임차인에게 넘기면 그만이니까. 그렇지만 역으로 임차인이 임대인에게 임대인이 '임차인의 설움을 뭘 아라? 하는 일은 하나도 없으면서 겨우 가게 하나 내주면서 돈은 다 받아먹으면서'라고 말하면서 임대인에게는 책임이 없다고 주장하는 것 역시 설득력이 없다. 임차인은 임대인의 책임을 인정하면서, 임대인이 가진 책임과 이 책임을 통해 얻는 이득의 저울질을 통해 제도적 부조리가 존재하는가 존재하지 않는가를 주장할 때 그 주장이 힘을 얻는다. 즉, 가부장제 하에서 남성들은 이득 본다는 생각은 여성운동 세력이 남성을 적으로 지게 만드는 자충수가 되는 위험한 오해다.

겨우 오해 2개 썼는데 글이 꽤나 길어졌다. 좀 힘들군. -_-a 나머진 다음 기회에 이어서 쓰고 오늘은 이쯤에서 정리를 해야겠다, 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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