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해 3) 남성에게는 병역의 의무가, 여성에게는 출산의 의무가 있다.
이 글의 제목으로도 뽑았는데, 한국 사회에서 페미니즘 논란의 핵심 키워드는 단연 '군대 vs 출산'이다. 사실은 이 이야기에 도달하기 위해 쓰기 시작했던 글이라 제목을 저렇게 뽑았던 건데 지난 글에서는 미처 다 정리를 못한 까닭에 ileshy님께 낚시성 글이라는 지적을 당하기도 했었다. --a 뭐, 낚시성이었던 게 사실이니 'ileshy님 나빠요!'라고 말해야겠다거나 그런 건 아니다. :-)
각설하고, 사람들이 저지르는 흔한 오해 중 하나는 군대와 출산이 대칭 관계에 있다는 것이다. 물론 가부장제의 기원까지 파내려가다보면 이런 대칭 관계는 자연스럽게 성립하지만, 인간의 수명이 7-80세에 다다르면서 여성이 출산과 육아에 대한 부담을 덜 수 있고, 2차-3차 산업이 산업의 중심으로 자리잡아 가면서 물리력에 의존하는 노동의 가치가 낮아진만큼 남성이 사회활동에 특별히 우위를 점할 이유가 없어진 오늘날 이런 대칭 관계에 얽매이는 것은 사회 변화를 직시하고 이에 적응하는 순발력을 보여주지 못하는 인간의 어리석음에 기인한다. 그리고 신기하게도 이런 오해로 인한 피해는 남녀 모두가 입는다. 우선 출산의 의무. 앞서도 얘기했다시피, 인간의 평균 수명이 2-30세이던 시대에는 여성의 제일과제는 출산과 육아였다는 사실은 그리 놀랍지 않다. 수명이 조금 길어져 평균 수명이 40세 근처를 맴돌던 조선 시대까지만해도 다산의 필요는 어느 정도 있었고, 아이를 낳지 못하는 여자는 사람 취급을 못 받았다. 여기에 가부장제의 폐단이 끼어들면서 아이를 못 만드는 남자는 비난을 면하는 참 우스운 상황이 펼쳐진다. 아무튼 워낙에 오랜 역사에 걸쳐 종족 보존의 책임을 여성에게 지워놓고보니, 아직도 여성은 아이를 낳을 의무가 있다는 인식이 지배적이다.
오늘날 '7-80살 사는 게 일도 아닌 세상에서는 많이 낳아놓고 보면 그중에 몇명은 살아남겠지'라는 종족 보존을 위한 다산의 필요는 사라졌다. 그러나 사람이 오래 살다보니 이제는 다른 이유로 출산의 필요성이 생겼다. 그 이유란 이른바 '고령화 사회'다. 전체인구 대비 65세 이상 인구가 7%이상이면 고령화 사회, 14% 이상이면 고령 사회, 20% 이상이면 초고령 사회로 정의하는데, 우리 나라는 현재 고령화 사회단계에 있다. 65세 이상의 노령인구의 증가는 비노동인구의 증가와 맞물리기 때문에 이들의 부양에 대한 사회적 책임이 증가하게마련이다. 이에 대한 해법 중 하나는 출산률 증가를 통한 노령화 속도를 늦추는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여성들이 아이를 낳아야 한다'라는 생각은 '신체의 자유'에 대한 몰이해에서 출발하는, 출산에 대한 심각한 오해 중 하나다. 아이를 안고 있는 9개월이란 짧지 않은 기간 동안 여성은 상당한 정도의 신체적 제약을 받게될 뿐만 아니라, 그 이후 딸려올 육아에 대한 책임을 지워놓는 사회 분위기 속에서 이에 대한 기회비용의 고려 없이 '여성은 아이를 낳아 키워야 한다'라고 말할 수 없다. (사실 그 이외의 모든 가사 노동의 책임이 여성에게 지워지는 것도 대부분의 가사일을 육아의 일부로 무책임하게 귀속시키기 때문이다.) 물론 출산과 육아에 따른 사회가 제공하는 반대급부가 있다할지라도 이에 대한 저울질은 철저하게 여성 개인의 몫이지 사회의 몫이 아니다.
예를 들어보자. 개인과 사회의 갈등에 대한 이야기를 할 때면 항상 드는 예인데, 10명이 타고 가던 배가 갑자기 가라앉기 시작했는데, 이주 한명이 배에서 내리면 가라앉는 걸 멈출 수 있다고 하자. (이런 일이 가능한가에 대해서는 논하지 말자. -_-a) 다행히도 구명조끼가 하나 있다. 그래서 10명 중 한 사람은 구명조끼를 입고 배에서 내려서 기다리면 배를 탄 나머지 사람이 목적지에 도착한 후 이 한 사람을 구하러 오기로 합의를 봤다. 그런데 정작 배에서 내리겠다고 나서는 사람이 없다. 이때, 이 10명이 택할 수 있는 합리적인 방법은 나머지 9명이 배에서 내린 사람에게 합의된 형태로 보상을 하는 거다. 예를 들어 9명이 10원씩 걷어서 90원을 주는 방법을 생각할 수도 있고, 9명이 돌아가면서 식사를 한끼씩 제공, 총 9끼의 끼니를 해결해주겠다고 하는 방법도 있을 수 있고, 아니면 목적지에 도착해서 9명이 힘을 합쳐 집을 한채 지어주겠다고 할 수도 있다. 방법은 무엇이든 좋다. 10명이 이런 저런 대안을 내놓는 와중에 어느 시점에서 한 사람이 '아, 그 정도 보상이라면 내가 배에서 내리겠소'라고 말할 거다. 이때, 구명조끼를 입고 구조를 기다리는 고생에 대한 보상에 대한 저울질은 각 개개인의 몫이다.
그런데 만약 10명 중 9명이 담합을 한 후, 나머지 한명에게 '우리가 나중에 10원씩 걷어서 90원 줄 테니 배에서 내려'라고 말한다면? 그런데 이 한 사람이 '싫다'고 한다면? 9사람은 이 한사람의 의견을 존중해야 한다. 그런데 그러지 않고 '90원씩이나 준다는데 저 하나 편하자고 우릴 다 같이 죽일 작정이야? 이런 이기적인 새X를 봤나'라며 배에서 내릴 것을 강요할 수 있다. 이는 '다수의 이익을 위해 희생할 줄 모르는 소수'를 '이기적인 존재'라고 비난함으로써 소수자의 선택의 폭을 제한하는 대단히 비열한 방법이다. 이게 비열한 짓인 이유는, 10원씩 걷어서 90원을 주겠다고 한 9명이 정녕 90원을 받는 것이 찬물에서 덜덜 떠는 것보다 낫다고 판단했더라면 스스로 지원했을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이 9명도 결국은 90원을 받고 찬물에서 덜덜 떠느니 10원을 지불하고 배를 타고 목적지에 도착하는 것이 낫다는 판단이기 때문에 '결국은 똑같이 이기적인 판단'인 것이다. 이때 비용은 90원든 90억원이든 마찬가지다. 핵심은 '내 신체의 자유의 가치'는 '내가 판단'할 수 있어야 한다는 점이다.
물론 이 예를 출산 문제에 완전히 적용시킬 수는 없다. 왜냐하면 남자는 생물학적으로 아이를 낳을 수 없기 때문에 앞선 예에 적용해보면 아무리 배에서 내리고 싶어도 내릴 수 없는 상황인 셈이다. 엇, 상황이 조금 복잡해졌다. 그럼 이야기를 조금 바꿔보자. 갑과 을, 2명이 배를 타고 가다가 한명이 내려야 하는 상황이 펼쳐졌다고 해보자. 그런데 이중 갑만 목적지를 알고 있고, 그 이유야 어쨌든 갑이 을에게 목적지를 설명할 수 없다고 하자. 그러면 '당연히 을이 배에서 내려야 한다'고 생각하기 쉽다. 그런데 을이 배에서 내리지 않겠다고 한다면? 을이 이기적인 걸까? 을의 판단이 합리적이지는 않지만 이기적이지는 않다. 왜냐하면 을이 배에서 내리지 않음으로써 을이 취할 수 있는 이득이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갑이 어떤 형태의 보상을 제안한다면? 이 보상의 정도에 따라 을이 배에서 내릴 수도, 안 내릴 수 있다. 이 과정에서 을은 자신이 받아낼 수 있는 최대한의 보상을 받아내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어느 시점에선가 갑이 '이 정도면 충분하잖아. 너가 목적지를 알았더라면 난 이 정도 받고 충분히 배에서 내렸겠다'라며 을을 물에 빠뜨리고 가버린다면? 이 역시 온당하지 않다. 왜냐하면 이런 갑의 태도에는 '둘다 살아남는 것에 대해 을은 같은 정도의 갈망이 없다'는 생각이 깔려 있기 때문이다. 바꿔 말하면 '나는 우리의 생존이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우리의 생존을 위해서라면 이 정도 보상으로도 만족할 수 있지만, 너는 우리 공동의 생존에 관심이 없기 때문에 이 기회에 보상만 챙기려 한다'는 인식이 밑바탕에 깔려 있다는 것이다.
다시 출산 이야기로 돌아가보면, 여성에게 출산은 의무가 아니다. 저출산으로 인한 사회적 비용 증대가 걱정된다면 여성들이 출산으로 인한 피해가 없도록 제도적 장치를 마련함으로써 출산을 장려해야한다. 근데 이건 아무리 봐도 미봉책으로밖에 안 보이는데, 많이 낳기만 한다고 해결되냐면 그건 또 아닌 게, 얘네들이 나이들어 일 안 하고 놀기시작하면, 얘네들 떠받칠 애들은 더 많이 낳아야 되니... -_-a 출산률 증가가 고령화 방지에 도움이 되는 내가 미처 모르는 핵심적인 요소가 있나? -_-a 또 한가지, 평균수명의 증가에 따라 퇴직 정년도 자연스럽게 늘리는 방법을 생각해 볼 수 있는데, 노후를 편하게 보내려는사람들의 의도에 반하는 감이 있는데다가 안 그래도 일자리가 없어서 실업률이 치솟는 상황에서, 정년 퇴직 늘려봐야, 나이든양반들이 빠져나가지 않아 젊은 놈들이 놀기 시작하면 그 비노동 인구를 늙은이들이 고스란이 먹여 살려야 되는 코메디 같은 상황이펼쳐지니... 아, 골 때린다. -_-,, 뭐, 끝에 가서는, 인구가 줄어들지는 않게 인구 증가율을 현재 수준이나 이보다 약간 높은 수준으로 묶어놓고, 부의 효과적인 재분배, 바꿔 말하면 연금제도 개편이 있어야 한다고 본다. 구체적인 해법? 그런 거 이몸이 알면 정부에서 이미 모셔 갔겠지. 그렇다, 탁상공론만 일삼는 무책임한 몹쓸 블로거, 여기있다. -_-)/
아무튼 이야기를 조금 바꿔보자. 그러면 군대는? 병역 의무도 사회적 필요에 따른 '신체적 자유'의 구속 아닌가? 맞다. 그래서 원칙적으로는 징병제에 반대하지만, '남북이 대치하는 특수한 상황에 대한 고려에 따라 필요한 수준의 병력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징병제가 필요하다'는 주장에 수긍할 수 있다. 전쟁의 위험은 단순한 사회적 비용이 아닌 생존과 직결된 문제다보니 이를 위한 일정 수준의 신체적 자유 제한은 불합리하다고만 할 수 없으니까. 반면에 저출산으로 인한 노령인구의 부양에 필요한 사회적 비용의 증가를 막기 위해서는, 여성에게 출산으로 인한 불이익이 돌아가지 않는 제도적 보완에 필요한 사회적 비용을 지출하여 해결해야 하는 것이다. 그 둘 사이의 비용이 경쟁 관계에 있을 때, 이 둘 사이에 임계점이 존재하고, 이를 기준으로 출산에 대한 보상의 정도에 대한 사회적 합의를 도출하는 것이 합리적이다.
그리고 바로 이런 이유 때문에 출산과 군대를 대칭 관계에 둠으로써 남자들도 피해를 본다는 거다. 여성들에게 출산의 부담을 강하게 지우는 사회 분위기 속에서 여성운동이 싹트기 시작하자, 어느 녀석 머리에서 나온 논리인지는 몰라도 '애 낳고 기르는 게 힘들다고? 그래서 너희가 애 낳는 대신 우린 군대 가잖아!'라는 휘황찬란한 논리가 탄생했다. 여성들이 받아온 사회적 불이익에 대한 불만을 '우리도 고생한다'는 논리로 물타기하려던 속이 아주 빤히 보이는 수작이었는데, 이게 사실 남자들 입장에서는 자충수다. 왜냐하면 이 논리는 '군대 가는 게 힘들다고? 그래서 우린 애 낳아 키우잖아!'라고 고대로 부메랑이 돼서 날아오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부메랑 이면에는 '여성들이 출산의 의무로 부터 피해를 본다'는 인식이 깔려 있다. 즉, 여성들에게 사회가 출산에 대한 압력을 가함으로써 일차적으로 여성들이 피해를 보고, 이 피해는 또 고스란히 병역의 의무가 지닌 불합리함을 희석시키는 데에 사용됨으로써 남성들이 피해를 보는 것이다.
정리하자면, 여성들에게 출산의 의무가 있다는 사회적 인식은 대단히 부당하고 불합리한 인식으로, 이 오해를 불식시키려는 사회적 노력이 필요하다. 물론 이로 인한 출산율 저하는 다양한 출산 장려 정책을 통한 사회적 비용을 통해 해결해야 한다. 그렇게 함으로써 여성들은 신체의 자유의 본질에 보다 접근할 수 있고, 반면에 남성은 병역의 '의무'가 지닌 불합리성을 보다 효과적으로 노출시킬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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