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웃기는 사건이 터졌다. '월간 박정희'라는 잡지가 나왔다. 이 코메디 같은 상황ㅡ잡지 표지도 무슨 합성 사진 같은 게 처음엔 무슨 패러디 유머 기사인 줄 알았다ㅡ에 낄낄거리고 웃다가 발행인 김동주씨(박정희바로알리기국민모임 대표)의 '박정희 대통령에 대한 매도현상이 그치지 않는 상황에서 박 전 대통령에 대한 왜곡된 시각을 갖고 있는 젊은이들에게 균형 있고 올바른 판단을 돕기 위해 만들었다'는 한마디에 흘러넘치는 비장함에 잠시 움찔.
박정희 정권이 쿠데타에 의한 정권이란 역사적인 사실을 부정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박정희 정권을 옹호하는 사람들은 주로 장면 정권의 무능함으로 인한 사회적 혼란을 수습하는 데에는 쿠데타가 필요했다고 말하는데, 자유민주주의국가 대한민국에서 이런 걸 '균형 있고 올바른 판단'이라고 말해버리면 아주 골 때리는 상황이 펼쳐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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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민주주의는 그 어떤 개인도 다른 개인보다 우월하지 않다는, 만인은 평등하다는 정신에 기초한다. 특정 개인의 우월성을 인정하지 않는 민주주의 체제에서 국민 개개인의 필요를 충족시키거나 개인 대 개인의 갈등을 해소하기 위해서는 합의된 방법에 따라 권위를 위임할 필요가 있고, 기본적으로 이 필요가 많은 나라에서 공화정을 근간으로 하는 근대국가의 형태로 발전했다. 그런데 쿠데타의 본질은 이런 공화정 체제를 다수의 동의를 얻지 못한 개인 혹은 개인들이 부정하는 것이라는 데에 문제가 있다.
쉽게 생각하면 '필요에 따라 쿠데타를 인정할 수 있어야 한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것 자체에는 아무런 모순이 없는 것 같지만, 사실 여기에는 아주아주 심각한 모순이 내재돼 있다. 이 전제를 받아들이기 위해서는 '쿠데타의 필요성'을 결정하는 개인의 존재를 인정해야 하는데, 이 개인은 태생적으로 다른 개인들보다 우월해질 수밖에 없다는 점이 바로 그것이고, 이는 자유민주주의의 정신에 철저하게 대치된다.
박정희 정권은 바로 이 논리적 모순이 쿠데타 정권에 제공하는 태생적 한계를 안고 시작했기 때문에 정권 유지를 위한 인권탄압이 따를 수밖에 없었다. 시작이 부당했기 때문에, 집권 당시 이룩한ㅡ최근 들어 소위 경제발전의 부작용이 심하게 나타나고 있긴 하지만, 밥 굶던 시절을 겪은 사람들에게 밥 굶지 않을 수 있는 세상이 펼쳐진 것에 대한 감상이 남다를 수밖에 없다는 점을 감안해서 경제발전의 공을 박정희에게 돌린다 하더라도ㅡ경제 성장에도 불구하고 정당성을 확보할 수 없는 거다. 유토피아가 아닌 이상 어떤 사회에도 선의의 피해자는 항상 생긴다는 점에서, 지도자가 자신이 원하는 이념과 목표를 추구하는 과정에서, 그 사회 구성원 일부가 선의의 피해를 입는 것은 어쩔 수 없겠지만, 자신의 이념과 목표에 반한다고 해서 사회 구성원 일부에게 악의적으로 피해를 입혔다면, 그 이념이나 목표가 아무리 가치있더라도, 그 성과는 정당성을 인정받을 수 없다.
예를 들어보자. 갑이라는 부자가 있는데, 혼자 잘 입고, 잘 먹는 일에만 관심이 있고, 남을 도울줄 모르는 사람이다. 그렇다고 특별히 남들을 괴롭혀서 돈을 모은 악랄한 사람은 아니다. 반대로 을이라는 사람은 남들을 돕고 싶은데 가진 게 없다. 그러던 어느날 을이 결심을 하고는 갑의 전재산을 갈취해서는 자선사업을 벌였고, 사람들에게 많은 도움을 준다. 비록 '남을 돕고 살자'는 을의 정신이 '내 돈 나 혼자 쓰면서 잘 먹고 잘 살자'는 갑의 정신보다 숭고한지는 몰라도, 을이 자선사업을 하는 과정에서 갑에게 악의적인 피해를 입혔기 때문에, 갑에게 피해를 준데 대한 도덕적, 법적 책임이 있는 것은 물론, 을이 행했던 자선사업마저도 그 정당성을 획득하지 못한다. 을이 자기가 열심히 돈을 벌어서 자선사업을 했거나, 최소한 그냥 길가다 줏은 돈으로 한 일이라면ㅡ이 경우에는 비록 그 돈을 잃은 선의의 피해자가 생기긴 하지만ㅡ을의 행동은 칭찬 받을 수 있다.
박정희 정권과 완전히 동일한 비유가 아닌 줄은 알지만 이런 예를 드는 것은, 그가 이룩한 경제 성장이란 것이 불법적으로 획득한 정권을 통해 이룩한 일인데다가, 그 수가 얼마나 되느냐를 떠나서 국민들에게 악의적인 피해를 주면서 이룩한 성과라는 점이다. 더군다나, '자기 주머니 불리기'라는 사욕까지 부린 상황에서 그의 행동은 더더욱 정당화가 안 된다.
을이 많은 사람들을 도왔다지만, 그렇다고 을의 행동이 잘한 일일까? 아니다. 오히려, 남의 돈으로 생색냈다고 욕먹어 마땅하다. 마찬가지로, 박정희가 경제 성장을 이뤘느냐? 아마도... 그렇다고 그 정권이 역사적 정당성을 획득하느냐? 그건 아니다. 결과는 수단을 정당화하지 않는다. 우리는 우리 아이들에게 길 가던 사람 폭행해서 돈을 뺏은 후 고아원에 기부하라고 가르치지는 않잖는가? 박정희 정권의 정당성을 인정하지 않는 것이, 박정희 정권이 이룬 경제성장을 부정하는 거라고 가정한 후 이에 대한 대우명제를 취해버리면 아주 곤란하단 말이다.
왜 우리는 아주 간단히 '박정희가 경제 성장에 공헌을 했지만, 그 방법이 잘못됐다'고 말할 수 없는 걸까? 왜 2세들에게 경제 성장의 실리는 취하면서도 '자유민주주의 하에서 우리는 모두 평등하다'는 사실과 '결과가 수단을 정당화하지는 않는다'는 중요한 가르침을 남길 수 있는 이 훌륭한 기회를 이용하는 대신에, '인간 박정희'를 온전하게 되살려 영웅을 만드는 데에 목을 메는 걸까? 박정희를 한번 죽이면 우리가 살 수 있는데... 박정희가 우리에게 남긴 유산이 있다면 그게 그의 유산이다. 박정희가 정녕 박정희바로알리기국민모임 회원들 생각처럼 국가를 위해 살신성인하는 사람이었다면, 그를 한번 죽여 우리를 일깨울 수 있는 이 기회를 내다버리지 말라고 하지 않을까? 인생의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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