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000억불'에 해당되는 글 1건

  1. 2008/10/07 신용위기의 겉과 속 (7)
미국 의회에서 월가를 휩쓸고 있는 신용위기를 타개하고자 자그마치 7000억불 짜리 구제금융법안을 통과시켰음에도 불구하고 소위 글로벌 이코노미라는 놈이 안정될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7000억불이라고 하면 감이 잘 안 올 텐데, 미국의 올한해 석유 수입량이 4000억불을 넘어설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매년 감소하고 있다만 미국내 자체 생산량이 수입량의 70-80% 수준인 걸 감안하면 결국 미국이 자국민들에게 '올한해 동안 석유는 나라에서 대줄 테니 공짜로 쓰셈'이라고 할 수 있는 돈... orz 참고로 90년대 말 한국이 IMF 사태를 맞이했을 때 IMF로부터 빌린 돈이 195억달러였다.) 다우지수는 4년만에 1만이 무너졌고, 일본의 닛케이지수도 오늘 오전에 1만이 무너졌다. 코스피는 아직까지는 1300을 지키고 있지만 이게 계속될지는 모르겠고, 환율은 개장하자마자 1300원을 뚫었다.

'위기'라는 이야기는 계속 나오는데,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거지? 갖고 있던 주식의 가치가 조금 (아니 꽤 많이) 하락했다는 정도 외에 위기를 체감할 방법이 없는--주식이라고는 단 한주도 없고 펀드라고도 들어놓은 곳이 없는 나 같은 인간으로서는 더더욱--우리랑 이 위기는 대체 무슨 상관? 그리고 7000억불로는 이 위기를 어떻게 타개하겠다는 걸까? 사실 주가의 폭락은 한가지 증상일 뿐이고, 진짜 위기는 사실 신용에 있다. 언론에서는 계속해서 주가와 환율을 이야기하지만, 정작 주의깊게 봐야할 부분은 다양한 금리다. 지난번에 subprime mortgage crisis에 대해 설명하면서 마지막에 subprime mortgage crisis가 신용위기로 번졌다는 이야기만 간단히 던졌는데, 일이 계속해서 커지고 있는 만큼, 신용위기에 대해 조금 더 이야기해볼까 한다.


돈의 속도

이를 위해 먼저 '돈의 속도(velocity of money)'라는 개념부터 설명해보자.

갑과 을 두 사람이 있다고 생각해보자. 갑에게는 본인에게 전혀 쓸모가 없는 온갖 고철과 현금 5만원이 있고, 을에게는 갑이 갖고 있는 고물 중에서 필요한 부품을 골라 자동차를 만들 수 있는 기술과 만원이 있다고 해보자. 초기에 두 사람 사이의 부는 현금 6만원이 전부다.

갑의 고철을 본 을이 갑에게 만원에 그 고물들을 자신에게 팔 의향이 없냐고 묻자 어차피 쓸모도 없는 고물들이었던만큼 갑은 이 제안에 흔쾌히 응한다. 자, 이 거래가 끝난 후 갑은 6만원의 돈을, 을은 만원어치의 고물(중 일부인 자동차 부품)을 갖게 된다. 이 경우 갑과 을 사이에는 만원어치의 재화와 6만원어치의 통화가 존재한다.

그런데 을이 사흘에 걸쳐 필요한 자동차 부품들을 조립하여 자동차를 만들었는데, 갑이 보니 이 자동차가 꽤나 탐이 나는 거다. 그래서 을에게 5만원을 줄 테니 자동차를 자신에게 팔라고 제안한다. 을의 입장에선 만원을 들여서 5만원을 남기는 게 나쁜 장사가 아니라고 판단, 거래를 성사시킨다. 그러면 이 거래가 끝난 후 갑에게는 5만원짜리 차와 만원이, 을에게는 5만원이 남는다. 이를 도표로 살펴보자.

사용자 삽입 이미지

즉, 두 사람 사이에 통화량은 6만원으로 고정돼 있었음에도 나흘만에 초기 조건에 비해 5만원에 해당하는 '부'가 발생한 거다. (차후에 투자 혹은 '돈을 번다'는 개념에 대해 다시 조금 이야기를 하겠지만, '돈을 번다'는 것은 실제로 더 많은 사람들에게 더 많은 돈, 즉 화폐가 생긴다는 이야기가 아니라 이렇게 창출된 현금 가치가 있는 부를 나눠갖음을 뜻한다. 갑과 을이 며칠 사이에 거의 두배로 잘 살게 됐지만 그들 사이에 보유한 현금은 전혀 늘어나지 않았다는 점에 주목하자.)

앞선 예에서와 같이 '부'가 발생하는 데에 있어서 핵심은 갑과 을 사이에서 돈이 계속해서 오고 가야 한다는 점이다. 여기서 돈이 오고 가는 빈도가 바로 '돈의 속도'이다. 앞선 예에서는 나흘 동안 돈이 오가며 5만원의 부를 생산해냈다. 이로부터 돈의 속도가 높을수록 생산량이 높아짐을 예측할 수 있고, 이말을 또 바꾸면 '노는 돈이 많을수록 경제 성장은 더뎌진다'는 이야기.


은행의 탄생

그래서 은행이라는 경제 주체가 탄생한다. 자, 이제 병이라는 인물을 생각해보자. 병이 한달에 100만원을 버는데 50만원짜리 자동차가 갖고 싶어졌다고 해보자. 병이 그동안의 가계부를 꼼꼼히 확인해보니 아끼고 아끼면 한달 생활비를 75만원까지 줄일 수 있을 듯해서 두달간 25만원씩 돈을 모으기로 했다. 그래서 처음에 월급 100만원이 나오자 25만원은 따로 떼어내서 저금통에 넣어두고 나머지 75만원으로 생활하고, 다음달 월급이 나오자 여기서 또 25만원을 떼어내서 50만원짜리 자동차를 샀다고 하자. 병의 알뜰함은 칭찬 받아 마땅한데, '돈의 속도' 측면에서는 25만원이란 돈이 한달 내내 아무것도 안 하고 놀았다는 문제가 발생한다.

그런데 역시 한달 월급이 100만원인 병의 친구 정이 있다고 해보자. 그런데 정이 아파서 병원에 가야겠는데 병원비가 50만원이란다. 첫달 월급에서 25만원은 끌어올 수 있겠는데 남은 25만원은 도저히 자신의 월급에서 충당할 방법이 없어서 병에게 다음달에 꼭 갚아줄 테니 25만원을 빌려달라고 한다면? 병이 을을 신뢰한다면 못 빌려줄 이유가 없다. 이 경우 병의 25만원은 정을 통해서 경제활동에 투입됨으로써 '돈의 속도'를 높여주게 된다.

이렇게 누군가가 미래를 위해 남겨둔 돈이 있을 경우, 그 사람이 원하는 미래에 그 돈을 돌려줄 것을 약속해주고, 현재의 돈의 속도를 높이는 아주 체계적인 중개업자가 바로 은행이다. 그리고 이 중개과정에서 은행은 돈을 빌린 사람에게서 약간의 이자를 받고, 예금주에게는 그보다 조금 더 적은 이자를 지불함으로써 그 차이만큼의 소득을 올리게 된다.


만기 불일치

그런데 은행의 사업모델에는 피해가기 어려운 문제점이 한가지 있다. 바로 만기 불일치(maturity mismatch)의 문제다. 만기 불일치란 은행이 진 채무와 갖고 있는 채권의 만기일이 말 그대로 일치하지 않아서 은행이 겪게 되는 유동성 위기--아주 단순하게 생각하면 현금 부족--를 말한다. 예를 들어보자. 내가 A라는 은행에 100만원어치 자유예금을 들었다고 하자. 앞서 말했듯 은행이 이렇게 맡은 돈은 다른 누군가가 사용을 할 때 경제적 가치가 있지 은행에 그냥 묶여 있다면 경제 전반적으로도, 은행에게도 좋을 것이 없다. 은행으로써는 이 돈을 빌리기를 원하는 누군가가 나타날 경우 빌려주고는 싶은데, 돈을 빌리는 사람이 이 돈을 1년 후에나 갚을 수 있다고 한다면? 내가 은행에 맡긴 자유 예금의 경우 오늘 100만원을 맡겼다가 당장 내일이라도 찾을 수 있기를 기대한다. 그런데 은행이 1년 후에나 회수할 수 있는 곳에 대출을 해줄 경우, 막상 내가 이 돈을 찾으러 은행에 갔을 때엔 은행에 이 돈이 없을 수 있다. 여기서 발생하는 문제가 바로 만기 불일치다.

이런 문제를 피하기 위해 전통적인 은행의 경우 일정량의 유동성 자산을 확보했을 때에만 대출을 할 수 있게끔 규제를 하고 있다. 이러기 위해서는 '돈의 속도'를 조금 줄일 수밖에 없겠지만, 경제 활동에 참여하지 않은 채 은행이 쥐고 있는 '노는 돈'을 확보해두지 않고, 은행에 들어온 모든 예금을 톡털어 대출해줄 수는 없단 말이다. 이런 규제를 하는 것은 결국 은행이 유동성 위기를 겪어 부도가 날 경우의 경제적 타격과 돈의 속도를 낮춤으로써 경제 성장에 나타나는 손실에 대한 우선순위를 조절하는 과정이라고 보면 된다.

그런데 투자 은행의 경우 이와 같은 규제 대상이 아니다보니 전혀 다른 방법으로 이 문제를 해결해왔다. 투자은행의 경우 단기자금으로 장기투자를 메운다. 방법은 간단히 말하면 이렇다. 어떤 투자자가 이율 10%로 1년짜리 대출받기를 희망하는 사람을 발견했다고 치자. 즉, 100만원을 투자한다면 연말에 110만원을 회수할 것을 기대할 수 있다. 그런데 수중에 돈은 3만6천5백원 밖에 없다. 그래서 이 투자자는 단기저리로 100만원을 빌릴 곳을 찾는다. 100만원을 가진 누군가에게 지금 100만원을 빌려주면 다음날 100만 100원을 돌려주겠다고 하는 거다. 그리고는 다음날이 되면 그 사람에게 100원만 주고 원래 100만원에 대해 차환을 발행하거나, 같은 조건으로 100만원을 빌려줄 다른 사람을 찾아서 그 사람에게서 100만원을 빌려 처음에 빌린 100만 100원을 갚고 하루 동안 생명 연장을 하는 식이다. 이렇게 단기저리로 돈을 빌려가면서 1년을 버틴다면 결국 내게 필요한 '내돈'은 매일 100원씩 갚아야할 3만6천5백원 뿐. 즉, 3만6천5백원만 있으면 100만원을 빌려서 10만원을 벌게 되는 셈이니 1년 새에 자본금의 거의 세배에 가까운 돈을 벌어들이는 셈이다.


레버리지

이를 위해서는 두가지 조건이 필요하다. 한가지는 3만6천5백원을 갖고도 100만원을 빌릴 수 있는 거의 30배에 달하는 소위 재무 레버리지(leverage)가 그 하나고, 단기 대출에 대한 저금리가 그 둘째다. 일반적으로는 단기대출의 경우 장기대출이나 장기투자에 비해 금리가 낮은 것은 당연하다. 무슨 이야기냐면 같은 100만원을 빌릴 경우 내일 갚겠다는 사람과 1년 후 갚겠다는 경우 중, 내일 갚겠다고 하는 경우가 미래의 불확실성이 훨씬 작기 때문에 저금리로 돈을 빌려줄 수 있다.

그렇지만 레버리지는 그렇게 당연하지만은 않다. 3만6천5백원밖에 없는 사람에게 100만원을 빌려주기란 쉽지 않다. '신용'이란 게 그래서 필요한 거다. 투자은행이 이런 높은 레버리지를 가질 수 있게 된 것은, 아이러니하게도 투자은행의 초기 수익모델은 직접 투자에 관여하지 않았기 때문에 가능했다. 무슨 이야기냐면, 초기의 투자은행은 100만원이 필요한 사람과 100만원을 갖고 있는 사람을 찾아서 연결해주는 역할을 하고 그 사이에서 약간의 수수료를 받아왔다. (이런 사업모델을 따를 경우 만기 불일치로 인한 위기를 맞을 일이 없기 때문에 애초에 은행처럼 자금 확보에 대한 엄격한 규제를 따를 이유가 없었다.) 그런데 이렇게 돈을 벌어보니 큰돈은 안 벌리는 거다. 그래서 조금씩 돈을 빌려 직접 투자를 시작한 거다. 처음엔 내가 갖고 있는 돈만큼만 빌려서 투자하고, 그렇게 벌어서 빌린 돈은 갚고... 그런데 돈을 잘 갚다보니 신용이 쌓이고, 신용이 쌓이니 더 많은 돈을 빌릴 수 있게 되고, 그렇게 판이 서서히 커진 거다. 그렇게 해서 수십년에 걸쳐 수십배의 레버리지를 갖게 된 거다.

이렇게 한번 쌓아놓은 신용의 지렛대(레버리지)는 투자은행이 잘 나갈 때는 무척이나 유용했지만, 이 지렛대는 순식간에 불신의 지렛대로 바뀔 수 있다는 뇌관을 안고 있다. 오늘은 힘드니까 헥헥헥 여기까지만 하고, 다음에 이 지렛대가 뒤집히는 이야기를 해보자.


@ 다 어깨너머로 배우고 익힌 지식들이라 사실과 다를 수 있음. ㅡㅠㅡ 혹시 독자들 중에 더 잘 아는 분이 계시다면 잘못된 내용을 지적해주거나 내용을 덧붙여주세요, 굽신굽신. orz
이올린에 북마크하기(0) 이올린에 추천하기(0)